카페의 글은
2018년 7월 28일 포스팅하였습니다.
CBS 정관용의 시사 자키에 전화 인터뷰한 도올 김용옥 선생은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애달파하며 노회찬은 예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씨 뿌리는 비유 등 비유로 말씀하셨고
그 비유는 속담이요, 속담은 민중의 소리며, 예수의 비유는 민중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민중의 언어로 애기하며 민중과 밀착된 삶을 살면서 민중의 언어가 몸에 뱄다며
비유를 베풀어 민중의 소리를 하는 예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도올 선생의 노회찬 의원에 대한 편견이 무엇이든지간에
예수님의 비유를 민중의 소리라고 희화한 것은 어불성설이요,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민중의 언어, 그 소리가 아니라
소위 말하는 민중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는 비밀한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비유는 속담이요, 속담은 민중의 소리며
비유는 민중의 소리라는 논리는 궤변이며 비유의 계시적 말씀에 대한
복음적인 이해가 전혀없는 자의적 궤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민중 혁명가로 이해하는 좌파적 신앙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농단이요, 농간입니다.
좌파적 지성으로 충만한 도올 김용옥 선생의 깊은 학문은
북한 체제야말로 플라톤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의식으로 고착되었습니다.
도올의 동서양 철학적 사상의 융함된 사고는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이경숙 작가의 책이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상의 본질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언어의 연금술사, 그 궤변의 달인으로 또라이와 초록동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도올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본질을 이단과 사이비의 굿당이 되게 한 교회의 강단은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탄식이 되었습니다.
☞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28-29)
참으로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된 설교,
곧 진리의 말씀에 대한 이현령비현령식 강단의 설교로
교단과 신학교와 교회의 수 만큼 많은 하나님을 믿는 범신론적 다신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자살 공화국의 오명은
소위 말하는 크리스챤의 자살이 큰 몫을 담당하였습니다.
성서의 본질에서 변질된 신앙으로 비롯된 크리스챤의 쉬운 자살은
고통의 세월 가운데 죄의 구원을 받지 못한 저주의 실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자살 당한 의혹으로 애국 유튜브 방송의 도마 위에 오른 노회찬 의원은
크리스챤이라는 성도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된 연애인과 정치인을 비롯한 저명 인사의 자살은
크리스챤의 자살 퍼레이드요, 그 자살을 방조하고 미화하는 한국 교회는 과연 성서적 기독교인가?
종말로 범신론적 다신교가 된 한국 교회는
죄악으로 점철된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극단적 자살이라는 심판을 자초하는 병폐를 낳았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빈소에 조문하는 이혜훈 의원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국회의원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애국 유튜브 방송의 댓글에는 루시퍼의 꼬봉이라는 비난의 글이 빗발쳤습니다.
한 때 이혜훈 의원의 교회 간증은 은혜의 감동, 그 자체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앞장서면서부터 종편의 여삼적에 올라 정유팔적과 함께
태극기 물결의 마녀사냥감이 되었습니다.
도올은 노회찬 의원을 보내며......
혁명의 계절은 참 좋은 것이지만 그 시절에 암운도 있게 마련이라는 애도는
민중의 언어를 예수의 비유로 승화시킨 애도시가 되었습니다.
革命之節暗雲濃(혁명지절암운농) 혁명의 시절 암운이 짙어져.
燦然消去更哀傷(찬연소거갱애상) 찬연히 사라지니 다시 슬퍼 가슴 아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