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 구속사 강해
에서의 계보에 대하여
이삭이 죽고 난 이후 성경은 야곱의 역사와 에서의 역사가 각각 별개의 길로 진행하고 있음을 창세기 36장과 37장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이삭의 죽음 이후 에서가 이삭의 계보를 잇지 아니하고 별도의 계보를 형성하여 에돔의 조상이 되었음을 표하기 위하여 곧바로 에서의 족보를 기록함으로서 에서를 이삭의 계보와는 달리 취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하니라”(창 36:6-8)고 기록함으로서 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떠났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1. 가나안을 떠난 에서
이미 에서가 야곱으로부터 예물을 받음으로서(창 33:11) 확인된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야곱의 그늘 아래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에서에게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에서가 자신의 소유가 많아지게 되어 야곱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가나안을 떠난다는 것은, 야곱의 그늘 아래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야 하는 에서로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한다.
에서는 가나안을 떠날 때 자기가 친히 노력하여 얻은 모든 소유물들을 이끌고 갔다.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야곱을 떠났다는 것은 그동안 에서가 부를 축적한 것이 하나님의 복에 근거한 것에 있지 않고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얻은 것임을 표시한다. 이런 점을 보아 에서는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복에 참여한다는 것에 대하여 그다지 호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 즉 에서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거나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 시절 야곱은 에서의 칼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 밧단아람에서 20여 년을 지낸 바 있다. 야곱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삭의 축복과 벧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말미암아 아브라함 언약의 후계자가 됨으로서 가나안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에서는 약속의 땅에 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야곱의 세력에 밀려 가나안을 떠나 세일 땅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에서는 자신과 후손들의 생존을 위해 약속의 땅을 떠나 좀더 풍요로운 곳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로써 야곱은 이삭의 후예로서 명실상부한 가나안의 새 주인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에서와 야곱이 그동안 살아 왔던 삶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에서는 자신의 힘과 지혜로 인생을 개척하고 경영해 나가려 한 반면에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의 삶을 의지하였다. 이러한 에서와 야곱의 인생은 각각 별개의 인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에서는 약속의 땅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세일 산에서 별도의 민족을 형성해 나가게 되었고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을 소망하며 약속의 땅에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해 나가게 된 것이다. 에서의 독자적인 삶의 방식은 가인의 힘에 의한 삶의 원칙을 따른 것이었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힘의 원칙은 노아 홍수 이후 바벨탑을 쌓은 인류들의 삶의 원칙이 되었고 마침내 에서는 이 길을 따라 힘의 원칙을 근거하여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경영하고자 한 것이다.
2. 가나안의 새 주인으로 떠오른 야곱
가나안을 떠난 에서는 남쪽으로 이동하여 세일 산에 머물러 후손들을 생산함으로서 후에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다. 세일(ליאשׁ)이란 말이 수목으로 덮인 땅이라는 뜻으로 보아 당시 이곳은 산림이 우거진 곳으로 목축하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목축을 하고 있는 에서로서는 가나안 땅에서 야곱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가축들과 자기의 가축들이 충분히 풀을 먹을 수 없음을 보고 세일 땅으로 이주한 것이다.
그러나 에서가 가나안을 떠났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과 상관이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점을 볼 때, 에서는 평소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이 없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성경은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תודלות)이 이러하니라”(창 37:1-2)고 함으로서 야곱이 이삭의 후계자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성경은 그 특유한 기록 방법을 따라 이곳에서 야곱의 약전을 기록함으로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총정리하고 야곱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지금부터 역사의 흐름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상당히 많은 부를 축적하고 그 양 떼와 소 떼가 심히 많아짐으로서 에서와 공존하지 못하게 된 것은 에서로 하여금 가나안을 떠나게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에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여 진정한 주인의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손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그의 백성들이 고유한 언약 사상을 유지하며 허다하게 생육하고 번성함으로서 하나의 독립된 성격을 표시할 수 있는 민족으로 발전하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