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탄생을 통하여
(마태복음 1:21~23)
2020년 아기 예수 탄생의 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인해 또 다시 이렇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이것이 잘 진정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 역사에 침투해 들어오시는 괄목할 만한 사건입니다. 인류 역사에 이것보다 더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절대적 사건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이 두 개가 나옵니다. 두 개 모두 다 하나님이 직접 예수님께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이름은 모두 하나님과 관계된 이름입니다. 본문 말씀 21절에 보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나오는데 예수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23절에 나오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여기서 임은 전치사로 ‘함께’라는 뜻을 갖고 있고,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의 4대 신앙은 임마누엘 신앙, 창조 신앙, 십자가 신앙, 부활 신앙입니다. 그중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 하나님께서 보이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을 숨어계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장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나타나셨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4:8~9에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본 것인데 왜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영국의 J. A. T. Robinson 감독이 쓴 ‘하나님에게 솔직히’(Honest to God)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할아버지로 생각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시카고에서 전도를 했었는데 한 여성분에게 전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 믿으시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전도했더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매를 많이 맞아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무섭고 불편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녀의 어렸을 때의 경험이 하나님에 대하여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같으신 분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성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사건입니다.
둘째,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을 본 자는 다 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고백하기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죄인된 몸으로 하나님을 만났으니 나는 죽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간이 왜 죽을까요? 하나님은 깨끗하시고 인간은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죄가 인간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로막았습니다. 죄와 하나님은 상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용서받고 소멸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술한대로 예수 라는 이름의 뜻은 ‘죄에서부터 구원’이란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대화와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통하여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을 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깊이 있게 사귀는 것을 가능케합니다. 이처럼 성탄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사건입니다.
셋째,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23절에 나오는데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서 표현하게 되며 하나님의 살아있음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고대의 교부 오리겐은 인간의 감각이 오감이 있듯이 영적인 감각(five spiritual senses)도 오감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보는 것은 영혼의 시각으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청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영혼의 미각은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을 맛보는 것입니다. 영혼의 후각은 말씀의 향기를 냄새 맡는 것입니다. 영혼의 촉각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육화된 말씀을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성이 깊은 사람은 하나님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할 때 ‘황홀, 기쁨과 두려움 그리고 신비로운 감정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황홀하며 두렵고 떨립니다. 그것은 또한 매우 신비롭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될 때 이렇게 기쁘고 두렵고 떨립니다. 임마누엘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함께‘라는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친근하게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혜사‘입니다. 우리는 보혜사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옆에 함께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보혜사란 ’성령이 옆에 계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이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치유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님의 탄생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할입니다. 본문 말씀 1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20절에 보면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영성 신학자는 ’부제 속의 임재‘와 ’임재 속의 부재‘라는 신학적 개념을 말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예수님이 그 시대에 육체적으로 임재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배반하였습니다. 임재 속의 부재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육체적 예수는 계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잉태하시고 탄생하셨습니다. 육체적 예수는 부재하지만 성령으로 예수님은 임재하십니다. 부재 속에 임재입니다.
찬송가 120장은 예수님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는 이렇습니다.
1. 오 베들레헴 작은 골 너 잠들었느냐. 별들만 높이 빛나고 잠잠히 있으니 저 놀라운 빛 지금 캄캄한 이 밤에 온 하늘 두루 비춘 줄 너 어찌 모르나
2. 온 세상 모든 사람들 잠자는 동안에 평화의 왕이 세상에 탄생 하셨도다. 저 새벽별이 홀로 그 일을 아는 듯 밤새껏 귀한 그 일을 말 없이 지켰네
3. 오 놀라우신 하나님 큰 선물 주시니 주 믿는 사람 마음에 큰 은혜 받도다. 이 죄악 세상 사람 주 오심 모르나 주 영접하는 사람들 그 맘에 오시네
4. 오 베들레헴 예수님 내 맘에 오셔서 내 죄를 모두 사하고 늘 함께하소서. 저 천사들의 소식 나 기뻐 들으니 오 임마누엘 예수님 내 맘에 오소서 아멘.
2020년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으로 예수님이 잉태되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탄생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