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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 살펴보고 말씀을 전할까 합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는 “‘경천동지’할 일이 일어났다”는 표현을 합니다. 한자 하나하나의 뜻을 풀어 낱글자로 살펴보면 ‘驚(놀랄 경)’, ‘天(하늘 천)’, ‘動(움직일 동)’, ‘地(땅 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경천동지’라는 사자성어의 뜻은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주자어록(朱子語錄)’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최초의 출처로 ‘주자어록’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남송시대의 대 철학자 ‘주자’의 말을 모은 것이 ‘주자어록’입니다. 중국의 지식인으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는 사람들에게 ‘자’자를 붙여 위대한 스승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맹자, 공자, 노자, 장자 등의 유명 지식인을 우리가 중국 사상가들의 본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명이 아닌 위대한 스승을 표현하는 이름인 것입니다. ‘주자’ 또한 본명은 ‘주희’라고 불려졌던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만든 대학자로서 당대뿐 아니라 후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인용할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자가 남긴 말 중 하나인 이 ‘경천동지’를 통해 주자가 강조하는 것은 세상의 수 많은 놀라운 사건들이 인간의 뜻으로 이루어졌고 인간의 업적이나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인간은 얼마든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역사를 통해 세상이 뒤집어질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늘과 땅을 뒤집어놓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학개 2장에서도 ‘경천동지’와 비슷한 내용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일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주자가 말한 ‘경천동지’와 오늘 말씀속에서 보여주는 ‘경천동지’는 결과는 비슷할지 몰라도 원인과 과정은 너무나 다르고 주체가 완전히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학개 2장 21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오늘 본문에서도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일이 생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경천동지’의 상황인 것입니다. 이렇게 ‘경천동지’하게되는 상황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학개서 강해 마지막 설교를 듣습니다. 학개서 전체를 보면 선지자 학개가 하나님으로부터 네 번의 계시를 받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시를 백성들에게 가서 다시 알려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어쩌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설교자, 말씀을 선포하는 학개 모습이 학개서 전체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래서 학개서를 네 번의 계시, 어떤 분은 학개서를 네 번의 설교라고 구분합니다. 그 학개의 내용중 오늘은 마지막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말씀하신 네 번째 계시, 그리고 학개가 백성들에게 선포한 네 번째 설교를 보게 됩니다. 지난 번 살펴본 학개 2장 10절에서 19절 세 번째 계시 혹은 세 번째 설교로 볼 수 있는 본문과 오늘 본문 학개 2장 20절에서 23절 네 번째 계시, 네 번째 설교는 동일한 날에 받은 계시와 설교이지만 시간대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세 번째 주신 말씀과 네 번째 주신 말씀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동일한 날 계시로 주어진 하나님 말씀이지만 말씀을 듣는 대상은 달랐다는거죠. 학개 2장 10절에서 19절은 제사장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유다백성 전체에게 말씀하신 것이라면 오늘 본문 학개 2장 20절에서 23절은 오직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신 것을 말씀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말씀이 스룹바벨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이 먼저 깨달아야 할 분명한 진리가 있기에 오늘 말씀을 스룹바벨에게 준 것이지만 결국은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고 살아야 참 신앙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학개 2장 20절에서 23절을 살펴보면서 하나의 주제만 꼽아보라면 저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모든 부분이 그렇겠지만 특히 오늘 이 부분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명하시고 세워주시는 역사와 세계 모든 나라와 통치자들에 대해 행하시는 놀라운 일과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을 주관하시는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보시면서 정말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강력한 통치, 하나님 능력의 위대함을 깨닫고 하나님 임재앞에 우리를 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하나님의 위대하심,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흔들어놓으십니다.
학개 2장 21절 말씀입니다.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유다총독인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학개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성전재건 사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계속 들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교회에서 매주 전교인 성경공부를 하면서 구약개론을 배우고 있는데 성전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땅에 예수님 당시까지 총 세 번의 성전의 건립이 있었다는 사실을 성경공부에서 배웠습니다. 그 때 세워진 성전의 이름은 성전 건립의 때에 그 지역의 통치자 이름을 따라 ‘솔로몬성전’ ‘스룹바벨성전’ ‘헤롯성전’으로 구분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학개서 성전 건립 당시 유다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지역의 행정을 총괄하는 유다총독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은 주전 536년 바벨론의 1차 포로귀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성전건축을 지휘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는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즉 유다 왕족 다윗의 혈통이었습니다.
이사야 43장 1절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들을 불러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비록 현상적으로는 바벨론에서 자신들의 통치에 유리하도록 스룹바벨에게 유다총독이라는 임무를 맡겨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했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모든 계획에 합당한 사람 스룹바벨을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권한을 사용하여 총독의 자리에 앉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즉 유다주민들을 돌려보내게 하신 것, 그들을 관리하고 모든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유다총독이라는 직책을 만든 것, 그 직책에 맞는 사람으로 스룹바벨을 그 자리에 임명한 것, 이 모든 일이 바벨론 왕의 권한으로 바벨론 왕의 뜻을 관철한 것 같이 보여지지만 결국 이 모든 일에 주권자,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완성하신 분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저와 여러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학개 2장 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 종 스룹바벨’이라고 지칭하십니다. ‘내 종’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다윗을 지칭할 때 많이 사용되었던 표현입니다. 즉 이제 스룹바벨은 그냥 유다총독이 아닌 다윗왕조를 다시 세울 지도자로 하나님께서 지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나라가 독립하거나 다시 왕의 직책을 회복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임에도 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다윗왕조를 이어나갈 사람으로 지칭하실까요? 이 속에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다시 다윗왕조를 이어 영원한 다윗 왕권의 회복자로, 오실 메시야의 예표로 스룹바벨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스룹바벨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오실 메시야 우리의 구원자, 우리의 영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인 스룹바벨을 통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알려주시며 준비하도록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개는 그냥 단순히 성전재건의 역사기록이 아닌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게 만드는 분명한 예언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도래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 날에 있을 선택받은 하나님 백성이 경험할 구원의 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받게 될 궁극적인 복, 종말론적 구원의 복을 오늘 본문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예언을 받아 복된 선택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학개 2장 21절을 다시 같이 읽어보실까요?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이 본문의 영어성경 킹제임스버젼에서는 “내가 하늘들과 땅을 흔들리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게 되는 그 날의 징조일 뿐만 아니라 또한 열방을 심판하는 그 날의 징조를 미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있을 대환란 심판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시기 전 구약시대에 이렇게 예언을 선포하십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늘과 땅을 흔드시는 주체가 누구인 지를 발견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21절 하반 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여기서 ‘내’라는 1인칭 대명사의 주체가 누구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라고 지칭하시며 말슴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으로 그의 주권으로 세상을 흔들어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을 공의와 정의를 통해 지배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앞에서 ‘주자’라는 중국 사상가가 동아시아지역의 가치관을 오랫동안 지배하며 유교사상으로 사람들에게 인간중심의 가치관, 현세중심의 가치관, 윤리철학적 가치관을 심어온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이 세상을 다스리며 인간의 지식으로 이 세상을 관리하고 이 세상을 책임지는 가치관을 가지고 인간최고의 인본주의 시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세상을 흔들어놓으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참 신앙인이라면 신본주의, 하나님이 주인이신 것을 확신하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이 급변하고 이 세상이 바뀌어 질 수 있는 주권이 누구에게 있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도 인간이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고 지상에 유토피아 천국과 같은 세상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주권만이 이 세상을 ‘경천동지’ 하늘을 흔들고 땅을 진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하나님의 위대하심,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 권세를 멸하시고 권력을 심판하십니다.
학개 2장 22절입니다.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선지자 학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계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스룹바벨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왕이 세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시고 선택하시고 세우신 이스라엘의 지도자 스룹바벨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여 주신 그 말씀을 학개가 받고 스룹바벨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바로 “세상의 끝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앞에 굴복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완전한 구원의 역사가 이뤄지기 전에 큰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권세는 다 사라지고 이 땅의 모든 나라는 다 없어지고 결국 예수님의 재림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게 될 때 세상 권세를 멸하시고 권력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만나게 될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통해 ‘세상 열국 왕들의 왕권이 무너지며, 전쟁을 통해 열국이 파멸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은 어느 누구할 것없이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나 멸망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10장 27절입니다.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세상사람들에겐 절망이겠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겐 이 땅에서의 수고와 헌신의 끝,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역사이기에 희망입니다.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회복을 예언하고 계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심판의 날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행위와 무관하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된 자들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의 죄들이 처벌받아야 함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예수님의 그 보혈로, 예수님의 그 피값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 우리의 죄값을 우리 스스로 치룰 수 없습니다. 세상 멸망에서 살아남을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멸망에서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그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39절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권력자들이 세상을 다 가진 듯 생각해서 세상 권세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그들이 가진 권력을 부러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세상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우리 스스로 세상 권세와 세상 권력을 우상으로 숭배하거나 세상 힘에 굴복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세상 권력, 세상 모든 힘을 다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판주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리시고 영원한 나라,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권력과 명예, 지식과 재물등의 노예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발견해야 할 하나님의 위대하심,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구원자를 세우십니다.
학개 2장 2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여기 나오는 “내 종”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주로 다윗을 지칭하실 때 쓰신 표현입니다. 특별히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지칭할 때도 이런 표현을 쓰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스룹바벨이 단순한 유다총독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오실 다윗 왕권을 가지고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스룹바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하나님의 인장’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인장”은 “왕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장”을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도장”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 “인장”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를 찾는다면 “옥새” 혹은 “국새”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나라의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는 이 ‘국새’가 찍힙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왕의 ‘옥새’가 찍힌 문서가 공식적인 문서가 됩니다. 구한말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할 때 왕이 도장을 찍지 않고 ‘을사오적’ ‘정미칠적’이라고 불리는 나라 팔아먹은 내각대신들이 왕의 도장을 훔쳐내어 한일강제병합조약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때 사용된 ‘옥새’가 진짜냐 가짜냐의 논쟁”부터 “왕이 찍은 것이 아니니 이 조약은 무효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예레미야 22장 24,2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이 말씀에서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도 빼어서 바벨론 왕에게 줄 것이라’ 고 말씀하시면서 어느 사회에서는 반지에 왕을 상징하는 도장을 만들어 쓴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지의 윗부분을 도장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고 주먹을 꼭 쥐고 공식문서에 도장을 찍었던 모습을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반지가 ‘옥새’ 혹은 ‘국새’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한 나라의 ‘옥새’ 혹은 ‘국새’ 역할을 하는 도장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옥새’가 찍힌 문서는 왕의 권위, 왕의 명령, 혹은 왕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왕의 도장이 왕의 권위가 되고 왕의 도장이 왕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는 스룹바벨을 하나님의 ‘인장으로 삼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스룹바벨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을 보십시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요한계시록 9장 4절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오늘 본문 학개 2장에서 스룹바벨을 인장으로 삼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신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도장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보증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스룹바벨이 상징하는 것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오실 메시야,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그 예수님의 도장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의 인치심으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치심, 즉 성령으로 도장을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확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표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장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인장과 같이 존귀하게 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인장은 주인의 권위와 권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자신의 인장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은 그를 통하여 성전을 지으실 것이고, 그를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시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위대한 일에 부름받은 스룹바벨을 향하여 ‘내 종’이라 부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하여서도 ‘내 종’이라 부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백성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인치셔서 구원받은 표식을 가진 우리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도장이 찍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종, 이 시대의 스룹바벨이 되어 하나님의 도장찍힌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스룹바벨을 드러내셨고 우리의 구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가운데 보내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해서 피흘려 죽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나라, 왕같은 하나님의 제사장,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짜리 인생, 예수님의 희생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며 빛과 소금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오늘 말씀을 끝으로 이제 학개서 강해를 마칩니다. 성전 건축이 완공된 기록을 오늘 본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지만 역사를 통해 우리는 스룹바벨 성전 완공에 대해 알고 있고 또한 예수님 당시에는 세 번째 성전인 헤롯성전이 지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신약성경 말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해 스룹바벨과 이스라엘백성들을 독려하시고 성전건축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학개 말씀의 마지막을 보면서 하나님 구원의 역사로서 성전의 의미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의미와 그 예수님을 통해 또한 하나님의 인장으로 삶을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순종으로 선택받고 이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2절에서 14절을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인치신 존재,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백성라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상 모든 것을 통치하시며 다스리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하나님의 임재앞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시는 과정, 성전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정말 힘든 노력이 들어가고 정말 성전을 완성하기까지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강력했는 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시대 진정한 성전, 참 성전은 그리스도인의 삶,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에 전심을 쏟으시고 그 성전에 임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이 진정한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예배가 삶 속에 회복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우리의 삶 속에서 보여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께 드려지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오늘 말씀처럼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고 세상 모든 권세를 멸하시며 세상 권력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라는 인을 쳐주시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안에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삶을 맡길 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