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눈이 내린다.
존재해 본적 없는 사람의 슬픔에게 눈이 내린다
존재해 본적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시간 사이로, 눈이 내린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데
눈은 그를 피해서 내린다.
나뭇잎 속으로 시간이 흘러가듯 존재하지 않는 그를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이 나뭇잎 속으로 사라진다
거미줄 쳐진, 이유도 모르는 시간 속으로 가고 있다
의미를 잃어버린 시간 위에도 눈이 내릴까,
형체없는 그대의 존재 위에 바람이 지나가고
슬픔을 덮겠다는 것인지, 조용한 소리들을 듣겠다는 것인지...
벽과 방충망 사이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면 내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
눈이,
존재하지 않는 그 사람의 떠흘러가는 눈동자 속에 눈이 내린다.
찬 바람이 흘러가는 방 바닥 위에,
방 바닥 위에 흔들리고 있는 어둠 속에도 흘러가는 눈이 하얗게 흩날릴까
언젠가 잊혀진 나뭇잎은 햇빛 아래 흘러가던 잎사귀들의
꿈을 기억하고 있을까
벽과 방충망 사이 기억할 수 없는 시간 위에
곰팡이가 벽을 더듬으며 피어나던 여름날 위에, 막막한 날들의 몽상 위에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곰팡이가 벽을 지나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깨어나지 못하는 몽상 위에 ,
차가워진 공기 위에,
나뭇잎이 흩날려가는 가을 바람 위에, 곰팡이가 그 소슬한 쓸쓸한 바람 위에도 피어나며, 나뭇잎이 떨어져가던 시간 위에
이 추위에도 매달려 있을까, 추위가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인지 그가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흘러가는 겨울의 어둠 속에 눈이 내린다
갈 수 있는 곳이 몽상밖에 없는 어둠 속,
어찌할 수 없이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몽상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는 눈이 내리는 사실 위에,
비어있는 것 위에 눈이 내린다.
눈의 독백 속으로,
눈이 내린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데
눈은 그를 피해서 내린다.
아무 것도 기댈 것이 없는 바람결 위에
그의 등 위에 어깨 위에,
눈이 어루만지는 것은 그의 윤곽인가,
그의 윤곽을 그리며 흘러가는 어둠인가
차가워진 땅 위에 눈은 흩날리지만
눈은 땅 위를 적시지만
어쩔 수 없는, 눈동자속을 떠돌며 흘러가는 어두운 공간을 지나가는 바람.
존재해 본적 없는 사람이 살아 온 시간 위에, 그 시간을 피해서 내리는 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