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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塘島船游記(금당도 선유기) 해석
昔聖人制禮,男子生,懸弧於門,其義大而遠矣。及其長也,以五御與禮樂六之爲藝, 其義從可知也。乃若御以行陸,水行以舟,以男子四方之志推之,操舟與御車將無同乎?
옛날 성인이 예를 제정할 때, 남자가 태어나면 문에 활을 걸었으니, 그 뜻이 크고도 원대하였다.
그가 장성하게 되면 오어(五御)와 예악(禮樂) 육예(六藝)를 익혔으니, 그 뜻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대체로 수레를 몰아 육지로 다니고, 물에서는 배로 다니는 것이니, 남자가 사방으로 나아가려는 뜻에서 미루어 본다면 배를 모는 것과 수레를 모는 것이 어찌 서로 같지 않겠는가?
※ 五御: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육예 가운데 御, 곧 수레를 모는 기술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뒤의 「水行以舟」와 연결하여 배를 타는 기술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特舟非常用,故姑不擧。苟男子而不能舟,亦欠一分於全材者也。
다만 배는 평상시에 늘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선 거론하지 않았을 뿐이다. 진실로 남자로서 배를 탈 줄 모른다면, 또한 온전한 재능을 갖추는 데 한 부분이 부족한 것이다.
觀傳記唐宋巨人多以舟行,則泝瞿塘灧澦,通行萬里者有之。程朱老先生亦不避舟行,豈乘舟之際,豈特以陸路不通,寓木道利涉而已哉?
전기(傳記)를 살펴보면 당·송의 위대한 인물들도 대부분 배를 타고 다녔다.
곧 구당(瞿塘)과 염예(灧澦)를 거슬러 올라가 만 리를 왕래한 사람들도 있었다. 정자(程子)와 주자(朱子) 같은 노선생들 또한 배를 타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어찌 배를 탈 때에 단지 육로가 통하지 않아 배라는 ‘나무의 길’을 이용하여 물을 건넜을 뿐이겠는가?
詩經賛辭稱六㘘如濡如絲者多,蓋男子欲全其材,觸物盡其理者然也。
『시경』의 찬사에서 여섯 고삐가 젖은 듯하고 실과 같다고 칭송한 것이 많은 것은, 대개 남자가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하고 사물을 접하여 그 이치를 다하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我國海邦也,人人習舟,宜如荊楊。而自前士大夫以乘舟爲諱,因以成俗。
우리나라는 바다에 접한 나라이다. 사람마다 배 타기를 익혀야 마땅하기가 형양(荊楊)과 같아야 한다. 그런데 예로부터 사대부들이 배를 타는 것을 꺼리는 일로 여겼고, 이로 인하여 풍속이 되어버렸다.
雖沿海小民,苟非啇賈,甚畏乘船;或登津艓,類皆眩掉喪魂,誰復能料量通濟之理哉?
비록 바닷가에 사는 백성이라도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면 배 타기를 매우 두려워한다. 혹 나루의 작은 배에 올라타면 대부분 어지러워하고 혼을 잃은 듯하니, 누가 다시 배를 운용하여 통하게 하고 건너게 하는 이치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況巨寇隔水,守在三㳂我,而不習舟,是棄也。
더구나 큰 도적이 물 건너에 버티고 있고, 지켜야 할 곳이 삼면(三面)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도 배를 익히지 않는다면, 이는 스스로를 버리는 것이다.
是以雖李忠武之忠義智略,苟不得魚君泳湛以爲之佐,而昧於海道形勢,使舟楫使用,亦不能全勝成功,若是之大也。
이 때문에 비록 이충무공의 충의와 지혜로운 지략이 있었다 하더라도, 만약 어영담(魚泳湛) 군을 얻어 보좌하게 하지 못했다면, 바닷길의 지형과 형세에 어두워 전선을 제대로 부리지 못했을 것이니, (어영담이 없었다면) 또한 온전한 승리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니 이 일이 얼마나 큰 것인가!
※ 어영담(魚泳湛): 광양 현감을 지낸 어영담은 남해안의 물길(조류, 암초, 수심 등)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던 최고의 수로 전문가(물길장수)였다.
余生於海岸,魚視而蟹息者也。然七八歲時,觀禮記懸弧章,有感於心。
나는 바닷가에서 태어나 물고기처럼 바라보고 게처럼 숨 쉬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일곱여덟 살 때 『예기』의 ‘※현호(懸弧)’에 관한 장을 보고 마음에 느낀 바가 있었다.
※ 禮記 懸弧章 (예기 현호장): 유교 경전인 『예기』 「내칙(內則)」 편에 나오는 구절로 고대 사회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문 왼쪽에 활을 걸어두는(懸弧, 현호) 풍습이다.
大而聖賢學業、君民經綸、禮樂文章、戰陣奇正、七政推步、八方夷險;小而醫藥、書辨、仙佛異端、百工伎巧,凡男子之事,皆默識旁照。
크게는 성현의 학업, 임금과 백성을 다스리는 경륜, 예법과 음악 및 문장, 군사 전술의 정석과 변칙, 천문 관측과 역법 계산, 사방 변방 지형의 평탄함과 험난함에 이르기까지,작게는 의학과 약학, 서예와 문필, 도교와 불교 같은 다른 사상, 온갖 장인의 기술과 공예에 이르기까지,무릇 남자가 대하는 세상의 모든 일을 전부 묵묵히 깨닫고 두루 명확하게 통달하였다.
雖使不成,固無安於偏材小局之志。歲與命去,事與心違,俛仰之間,歲月崢嶸,松簷竹牗,只伴弊硯禿毫而已。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본래부터 한 가지 재주나 좁은 국면에 안주할 뜻은 없었다. 세월은 운명과 함께 흘러가고, 하는 일은 마음과 어긋났다. 잠깐 고개를 숙였다 드는 사이에 세월은 어느덧 깊어져, 소나무 처마와 대나무 창 아래에서 다만 낡은 벼루와 닳은 붓만 벗 삼고 있을 뿐이다.”
少時所編,有海道誌者,自長興南洋西至平壌,北至咸興,島嶼滄泊水泉有無,風濤險易,水站遠近,大略皆具其意。盖欲以爲射御餘藝,補胡安㝎一齋之事也。若究求其詳,以成完書,可爲當局者一眼必矣。顧海民雖目熟心練,能遠以口者甚難遇。仍以白髮無聊,則舍之爲亂藁矣。
젊은 시절에 편찬한 책 가운데 『해도지(海道誌)』라는 것이 있었는데, 남쪽으로는 장흥에서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평양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함흥에 이르며 섬들은
물의 깊고 얕음과 물샘, 정박할 곳, 바람과 파도의 유무와 험하고 평탄함, 물길의 역참과 그 원근을 대략 모두 기록하여 그 뜻을 갖추었다. 대개 그것을 사어(射御)의 여가에 익히는 기술로 삼아, 호안정(胡安㝎)의 일재(一齋)의 일을 보충하고자 한 것이었다. 만일 그 상세한 것을 끝까지 찾아 완전한 책으로 만든다면, 당시 일을 맡은 사람에게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돌이켜보면 바닷사람들이 비록 눈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단련하여 먼 바다의 일을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백발이 되어 무료하게 지내면서 이를 내려놓아 흩어진 초고(亂藁)로 남겨두었다.
然每杖屨登高,浩歌望遠。鴨背空濶,鰲戴錯落,高帆短艇來徃於雲烟浩淼之間。因念古人有欲觀天地之外者。今我生長於海,而未甞觀於海,誠非理之當然也。
그러나 매번 지팡이를 짚고 높은 곳에 올라 크게 노래하며 먼 곳을 바라보면, 오리 등처럼 드넓은 바다와 자라가 이고 있는 듯한 섬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높은 돛을 단 큰 배와 작은 배들이 구름과 안개가 아득히 펼쳐진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에 옛사람 중에는 천지의 바깥을 보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생각하였다. 지금 나는 바다에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일찍이 바다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으니, 참으로 이치상 마땅한 일이 아니었다.
况所謂金堂島者,自古奇勝,稱爲仙窟,宛對面前而終成弱水,則豈眞凡男子哉?雖然,亦非一葦所可徃還也。遂與大小官長謀,皆辤以乘船,終不可奈何也。
더구나 이른바 금당도라는 곳은 예로부터 기이하고 빼어난 경치로 이름났으며, 신선의 굴이라고 일컬어졌다. 눈앞에 훤히 마주하고 있는데도 끝내 약수처럼 건너지 못하는 곳으로 남겨둔다면, 어찌 참으로 남자다운 사람이라 하겠는가?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갈대 한 잎으로 오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마침내 크고 작은 관리들과 의논하였으나, 모두 배를 타는 일을 핑계로 사양하니 끝내 어찌할 수가 없었다.
大率作官者,寢有突厦,居有高堂,息有几,步有輿,神饜體泰。雖有公事在所,親按百方遷托,終不一出者,舉以成風。夫山川險易,民聚盛衰,田野污燥,風俗窳姱,寧不欲領念以爲男子之觀哉?是安知一朝身當報恩之地,風帆楫浪,忽爲不可辭避者哉?又安知諳熟於衣人食人而無事之日,袵席於鯨濤鱷窟,而爲吾之獜閣雲臺哉?
대체로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잠자리는 큰 집에 있고, 거처에는 높은 대청이 있으며, 쉴 때에는 안석을 두고, 걸을 때에는 수레를 타며, 정신은 만족스럽고 몸은 편안하였다. 비록 공무가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친히 살펴야 할 일이 있어도 온갖 핑계를 대며 끝내 한 번도 나가지 않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이 풍속이 되어버렸다. 무릇 산천의 험하고 평탄함, 백성들의 모이고 흩어짐과 성쇠, 들판의 더럽고 마른 상태, 풍속은 천박하니 어찌 살펴 생각하여 남자의 견문으로 삼고자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자리에 놓이게 되어, 바람과 돛, 노와 물결을 갑자기 사양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줄 어찌 알겠는가?
남에게 입을 것을 의지하고 남에게 먹을 것을 의지하는 데 익숙해 있다가 일이 없는 날에 고래가 노니는 큰 파도와 악어의 소굴에 자리를 펴고 앉아 그것을 자신의 기린각과 운대로 삼게 될 줄 알겠는가?
會寧鎭今鎭將,淸慎勤敏,愛恤軍民,懸賞課射,興塾勸文,甚有(辞)譽。其南郭有金生景集,從余遊,夙知吾意。以其私語之鎭將,聞而樂之。詢于漁戶,討其船,暇得兩日有半,而要余同之。
회령진의 지금 진장(무관 관리)은 청렴하고 신중하며 부지런하고 민첩하며, 군사와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았다. 상을 걸어 활쏘기를 권장하고 서당을 일으켜 글공부를 권장하니 매우 좋은 평판이 있었다. 그 남쪽 성곽 밖에 김생 경집이 있었는데, 나를 따라 노닐며 일찍부터 나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가 사적으로 진장에게 이 일을 말하니, 진장이 듣고 기뻐하였다. 어부집에게 물어 그 배를 빌리고, 틈을 내어 이틀 반의 시간을 얻어 나에게 함께 가자고 청하였다.
余悅其意而從之 旣是網船之稍大,不甚輕簛,兼以風日和適,信㠶中流,安似軒堂。斜過助藥古今,遠指新紙餘鼠靑山,其小島若德于黃帝,小浪大浪之類,初遠漸通。栺麥ㅇ隴之早黃,認社樹之分靑,其自爲人間與大陸無異也。
나는 그 뜻을 기쁘게 여겨 따랐네.
마침 이 망선은 조금 큰 배라서 그다지 가볍거나 약하지 않았고, 더구나 바람과 날씨가 온화하고 알맞았네. 돛을 바람에 맡겨 물 가운데로 나아가니, 편안하기가 마치 헌당(軒堂)에 앉아 있는 듯하였네. 비스듬히 조약도와 고금도를 지나고, 멀리 신지도·여서도·청산도를 가리켜 바라본다. 그 주변의 작은 섬들인 덕우도, 소랑도, 대랑도 같은 무리들이 처음에는 멀리 보이더니 점차 가까워지며 통하게 된다. 보리밭이 일찍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마을의 서낭당 나무가 푸르름을 나누고 있는 것을 알아보니, 이곳(섬)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인간 세상이라 육지(대륙)와 다를 바가 없구나.
到泊山伊島大里前,滄點心後,周觀形勝。潮退不可發,因止宿。翌日步越山腰,與船相會於道蔵浦。
산이도 대리 앞에 도착하여 배를 대고, 잠시 요기한 뒤 주변의 뛰어난 경관을 두루 살폈다. 조수가 빠져나가 출발할 수 없었으므로 그곳에서 묵었다. 다음 날 산허리를 걸어서 넘어가 도장포에서 배와 만났다.
"順風流到平伊島綂浦,觀海女採鰒。其躶身佩匏,到入深淵,蛙沉鳬出之狀,不忍正視。
순풍을 타고 흘러가 평이도 통포에 이르러 해녀들이 전복을 채취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그들은 벌거벗은 몸에 표주박을 차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개구리가 잠겼다가 오리가 떠오르는 듯한 그 모습은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方夏月晴和,猶爇火救寒,況積雪大凍,官吏督採,鞭朴流血者乎?鎭將亦慘然不樂,命撤而經起,優賜錢貫以慰之。
지금은 한여름의 맑고 온화한 날씨인데도 오히려 불을 피워 추위를 막아야 했다. 하물며 눈이 쌓이고 크게 얼어붙는 때에 관리들이 채취를 독촉하며 매질하여 피를 흘리게 한다면 어떠하겠는가? 진장(무관 요직) 또한 참담해하며 즐거워하지 않았다. 명하여 채취를 그만두게 하고, 돈을 넉넉히 내려 그들을 위로하였다."
因觀穴巖。全石成竇,潮通其中,可容小舠。大率水際石結成崖,大小島皆然。嵌者、突者、疂者、攴离者、刻盡者,(欲?)墜者、竦若飛者,可恠陸骸(?),可喜可賞者,隨景得勝。每覺異觀,若在陸山,而又益以山亭水榭,無非絕景。只以海中無稱焉。
이에 혈암을 보았다. 온통 돌로 구멍이 이루어져 있고 그 안으로 조수가 통하며 작은 배 한 척이 들어갈 수 있었다. 대체로 물가의 돌들이 서로 엉켜 절벽을 이루었는데, 크고 작은 섬이 모두 그러하였다. 움푹 파인 것도 있고, 돌출된 것도 있으며, 겹쳐진 것도 있고, (攴离)한 것도 있으며, 깎아낸 듯한 것도 있고, (欲?) 떨어질 듯한 것도 있으며, 날아오를 듯 우뚝 솟은 것도 있었다. 괴이한 것도 있고, 기뻐할 만한 것도 있고, 감상할 만한 것도 있어 경치를 따라 빼어난 곳을 얻었다. 매번 특별한 경치를 보게 되니 육지의 산에 있는 것과 같았다. 게다가 산정과 수사까지 더한다면 모두 절경이었다. 다만 바다 가운데 있다는 이유로 이름나지 않았을 뿐이다.
吾輩乃以穴巖爲最,則島人言海中若是者多有,此特小者。始知絕海窮嶼固多奇詭勝觀,但爲夷啇鮫玟(?)所往還而已者,其可惜也。
우리들은 마침내 혈암을 가장 뛰어난 곳으로 여겼다. 그러자 섬사람들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이 많이 있으며 이것은 다만 작은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먼 바다 끝의 외딴 섬에는 본래 기이하고 빼어난 경관이 많이 있지만, 다만 (夷啇鮫玟?)이 왕래할 뿐이어서 그 아름다움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已午憇月松亭,五里長堤古松列立。※水齧沙崩,老根相紏。斬嶄巖壅腫,盘屈齟齬,儼立相持。始種松者,士人朴壽龜,即光海朝領相承宗之孫也。
이미 정오가 되어 월송정(月松亭)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5리에 달하는 긴 제방에 옛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파도가 치고 모래가 무너져 내려, 노쇠한 소나무 뿌리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그 뿌리와 줄기들은) 가파른 바위처럼 솟아오르고 옹이져 부풀어 올랐으며, 서리고 굽어 이가 맞지 않는 것처럼 울퉁불퉁하면서도, 엄숙하게 서서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처음 이 소나무들을 심은 사람은 선비(士人) 박수귀(朴壽龜)이다.
※水齧沙崩:(氵+齒)=齧
步從山路,約行十里。全島山形迤逦一周,[灣]曲曲環而抱,皆藏海色,到處成滄,可以藏船,真清洋一形勝也。東達鹿島,西濶會寧鎭,實是關防必守之地也。若難於剏設,移馬島之稠疊者,恰好矣。걸어서 산길을 따라 대략 십 리를 갔다. 온 섬의 산 형태가 비스듬히 길게 한 바퀴를 돌고, [물굽이가] 굽이굽이 고리처럼 둘러싸며 안고 있으니, 모두 바다 빛깔을 감추고 있고, 도처가 깊은 바다를 이루어 배를 감추는 것이 가능하니, 진실로 맑은 바다의 한 뛰어난 지형(요새)이다. 녹도(鹿島) 동쪽에 도달하니 서쪽으로 회령진(會寧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실로 이는 변방의 방어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땅이다. 만약 (진을) 새로 창설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면, 마도의 빽빽하게 겹쳐 있는 것을 옮겨오는 것이 딱 알맞을 것이다.
夕宿松浦,翌早發金堂。霽日晶暗,風帘微摇,水面軟滑,鋪碧琉璃相似,為萬頃一目,與天無極徃徃。青螺蒼黛,點出鏡中,而其外則扶桑也。如食頃到花島即。金堂崩洪西支,勝觀自此始也。
저녁에는 송포에서 묵고, 다음 날 이른 아침 금당을 출발하였다. 비가 개어 햇살은 맑고 은은하게 빛났으며, 바람에 돛은 살랑살랑 흔들렸다. 수면은 부드럽고 매끄러워 푸른 유리를 펼쳐 놓은 듯하였다. 만 이랑의 넓은 물을 한눈에 바라보니 하늘과 더불어 끝이 없는 듯하였다. 푸른 소라 같은 산과 짙푸른 산빛이 거울 같은 수면에 점점이 드러났고, 그 너머에는 곧 부상이 있었다. 한 식경쯤 지나 꽃섬에 이르렀다. 금당의 큰 물줄기가 서쪽으로 갈라져 흐르니, 빼어난 경관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遂南轉東環,雙帆高懸,兩舷如衡(?),沙工櫓夫拱手談笑。遂擧酒相(ㅇ),前眄後顧,目眩心醉。始則稱奇,漸自忘言。始則吹笛鼓琴擊鼓以爲樂,漸以心移於目,則耳遂無聞,即金堂可知也。
마침내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동쪽으로 섬을 둘러갔다. 두 돛은 높이 걸렸고 양쪽 뱃전은 (衡?)처럼 평평했으며, 사공과 노꾼들은 손을 맞잡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마침내 술을 들어 서로 (ㅇ)하고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니 눈이 어지럽고 마음이 취하였다. 처음에는 기이하다고 감탄했으나 점차 스스로 말을 잊었다. 처음에는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며 북을 쳐서 즐거워했으나, 점차 마음이 눈으로 옮겨가자 마침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것으로 금당의 경치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盖一島周四十里,全體一石,面南東三面開闢,之和海水激齧成此恠奇。然真宰化翁亦有伎巧,心癢不得不一試於意到之地也。第觀步帳盡簇寶輦華盖,長廊大廈,金堂玉如,普薩羅漢,龍鳳獅衆,隨認呈像。至其所謂折檣广,石簷上覆罘罳,椽桷庋楣雕鏤之妙,不可名狀。
대개 섬의 둘레가 사십 리이고 섬 전체가 하나의 돌이며, 남쪽과 동쪽의 세 면이 열려 있다. 온화한 바닷물이 세차게 부딪치고 갉아먹어 이러한 기이한 모습을 이루었다. 그러나 참된 조물주인 화옹 또한 재주와 솜씨가 있어,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뜻이 미친 곳에서는 한 번 솜씨를 시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라보면 보련과 화개, 긴 행랑과 큰 집, 금당과 옥 같은 모습, 보살과 나한, 용과 봉황과 사자 등의 형상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 이른바 절장에 이르러서는 돌 처마 위에 복사가 덮인 듯하고, 서까래와 들보, 선반과 미목 등을 조각한 오묘함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泊舟字下,攀躋其堂。石版鋪爲座床,其平合準,其直合繩。版厚可是一寸,邉欄細鏤雲文,五重相疊,疊間容指。鏤壁上,鏤盡物像詭恠。層槛曲閣旁躋,夾通正堂,則可環坐數十人而行盃對舞。昔人耽聆玩,不覺潮滿,帆竿碍簷,不得出,伐其竿以免舟沈,折檣之名以此云。
배를 매어두고 아래에 내려, 기어오르듯 그 대당(堂)에 올랐다. 석판을 깔아 좌석과 침상(座床)을 만들었는데, 그 평평함은 수준기(수평을 재는 도구)에 맞춘 듯하고, 그 곧음은 먹줄에 맞춘 듯했다. 석판의 두께는 한 치(약 3cm)쯤 되었고, 가장자리 난간에는 구름무늬(雲文)가 가늘게 새겨져 있었는데 다섯 겹으로 서로 겹쳐져 있었고 겹친 사이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만했다. 벽 위에도 온갖 기괴한 사물의 형상들이 남김없이 새겨져 있었다. 층층의 난간과 굽이진 누각이 옆으로 올라가 정당(正堂)과 양옆으로 통하니, 수십 명이 둘러앉아 술잔을 돌리며 마주 보고 춤을 출 만했다. 옛사람들이 이곳에서 (음악이나 풍경을) 즐겨 듣고 감상하느라 조수가 가득 차오르는 줄도 몰랐다. 돛대가 처마에 걸려 나갈 수 없게 되자, 배가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그 돛대를 베어 버렸으니, '절창(折檣: 부러진 돛대)'이라는 이름이 이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凡物稱美,每每言過其實。至如金堂,則雖韓蘓之文、李杜之詩,顧王之盡,終不可模狀。真所謂樂而忘歸之地。而鎭將以船人初約差過半日,爲奪漁時,故不得窮賞。点心車越里,乘曛歸泊牛島。
대체로 사물을 아름답다고 칭찬할 때에는 실제보다 지나치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금당과 같은 곳에 이르러서는 비록 한유와 소식의 문장, 이백과 두보의 시, 고개지와 왕유 등의 묘사를 다 동원한다 하더라도 끝내 그 모습을 제대로 형용할 수 없다. 참으로 즐거워 돌아가는 것을 잊는 곳이다. 그러나 진장이 배를 부린 사람과 처음 약속한 시간이 반나절을 조금 넘는 정도였고, 어업할 시간을 빼앗게 되므로 마음껏 감상할 수 없었다. 간단히 요기하고 (車越里) 지나 해질 무렵 돌아와 우도에 배를 대었다.
吾兄弟止宿朴春機家,鎭將乘潮滿越來德島,幾初更到鎭。大抵水行最怕水中隱石,沙工習路者自能預知(ㅇㅇ)。雖非曽經見水勢,而知淺深夷險,不爽毫髮。至於隨風面帆之妙,量險命楫之術,坐立之節,進退之法,雖老於海者,或不能盡其善。然則魚君果適用之奇才哉?
우리 형제는 박춘기의 집에서 묵었고, 진장은 밀물이 차오르자 배를 타고 덕도를 지나 거의 초경 무렵에 진으로 돌아왔다. 대체로 물길을 다닐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물속에 숨어 있는 돌이다. 길에 익숙한 사공은 스스로 미리 (ㅇㅇ)을 알아차린다. 비록 일찍이 직접 물길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물의 형세를 보고 깊고 얕음과 평탄하고 험함을 알아차리는 데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다. 바람을 따라 돛을 마주 세우는 오묘한 기술, 험한 곳을 헤아려 노를 지휘하는 방법, 앉고 서는 때와 나아가고 물러나는 방법에 이르러서는 비록 바다에서 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혹 그 뛰어난 솜씨를 다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군은 참으로 이러한 일에 꼭 맞는 기이한 재주를 지닌 인재로구나?
鎭將余無雅分,但得於三日周旋。如今回官人,無論大小,皆責人承奉,專以聲色御下。鎭將則不然,接群?下,樂易款擊開心。逢情至島中,慮其貽弊,雖童孺禁勿使喚。諭止頭目迎送朝夕,粮自齎米錢,沽飲濁醪。有魚饍,必頗戲,問價時時。問船人今日歸泊,能無害於漁期否。
진장(鎭將)은 나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으나, 사흘 동안 함께 지낼 기회가 있었다. 요즘 관원들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대접받기만을 바라고, 오로지 위세와 모진 안색으로 아랫사람을 부린다. 하지만 진장은 달랐다. 아랫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고 온화했으며, 소탈하고 성실하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섬에 도착해서는 백성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하여, 어린아이조차 함부로 부리지 못하게 단속했다. 현지 우두머리들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맞이하고 배웅하는 번거로운 인사를 금지했다. 먹을 양식은 스스로 쌀과 돈을 챙겨 와 해결했고, 술도 탁주를 사서 마셨다. 생선 반찬이 오르면 반드시 넉넉히 값을 쳐주었으며, 매번 그 가격을 꼼꼼히 물어 확인했다. 배를 모는 사공에게조차 “오늘 돌아와 배를 대는 것이 그대들의 고기잡이철 생업에 방해가 되지 않겠는가?”라며 염려해 주었다.
此正先賢所謂一命之士,能存心於愛物於人,必有所濟者也。苟無是心,雖習知海道,亦何益於緩隱哉?
이것이 바로 옛 현인들이 말한 “한 번 명을 받은 선비라도 만물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반드시 세상에 도움이 되는 바가 있다”는 경우이다. 진실로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비록 해도를 익혀 잘 안다고 하더라도 어찌 (緩隱)하는 데 무슨 도움이 있겠는가?
且是島之闢於丑,會于今四萬年,迄無人以文字記之者,故無名於世。至於余始有此文。然余居金室之隣,其文又金堂也。金堂其終於不愚而已(ㅇㅇ)。
또한 이 섬이 천지개벽한 태초(丑)부터 지금까지 합치면 4만 년인데, 여태껏 아무도 문자로써 이곳을 기록한 사람이 없었기에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나(위백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글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금실(金室)'의 이웃에 살고 있고, 이 글의 대상 또한 '금당(金堂)'이다. 그러니 금당도가 어찌 결국 어리석은 채로(이름 없이 무지한 상태로) 잊히는 데서 그칠 뿐이다.
然余觀其水國空碧,雲烟晻藹,徘徊觀瞻,靈氣ㅇ人,
그러나 내가 그 물의 나라를 바라보니, 푸른 하늘은 텅 비고 운무와 안개가 어렴풋이 자욱하였다. 머뭇거리며 바라보고 살피니, 신령한 기운이 사람을 ㅇ하였다.
若使在國中大都會,爲拙墨陋筆之所嘲哭,樵眼牧舌之所押亵,安能保存眞氣,與一元相終始?
만일 이것이 나라 안의 큰 도회지에 있었다면, 서투른 먹과 누추한 붓의 조롱을 받고, 나무꾼의 눈과 목동의 입에 의해 함부로 희롱당했을 터이니, 어찌 참된 기운을 보존하여 일원(一元)과 더불어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