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조린다
ㅡ 이황(李滉 조선)
ㅡ무재 박상호 번역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홀로 기대인 산창의 밤빛은 싸늘하고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매화 가지 끝 달 뜨니 정녕 둥글어라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다시 부를 필요 없이 미풍은 이르렀고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절로 있는 맑은 향은 담장에 가득하다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안을 걷노라면 달도 사람을 따르고
梅邊行遶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매화 주변으로 가서 몇 번을 돌았던가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휘망기) 깊은 밤에 오도카니 일어나길 잊었노라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향기는 의관과 그림자 몸에 가득하여라'
고매한 품성을 추구하던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는
고산(孤山)에 20여 년 동안 은일(隱逸 속세를 떠나 숨어 지냄)생활을 하면서,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녀로 삼음)로 지냈다.
이후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로,
고매한 품성인 지조(志操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나 기개)의 상징이 되었다.
무재 일행이 어제 다녀온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은,
동인의 거장인 퇴계 이황(李滉)이 제자들을 양성한 도산서당을 사후 제자들이 세운 서원이다.
이황은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했으며,
죽기 직전에 "저 매형에게 물을 주라"고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임포가 은거한 후 오히려 그의 고매한 품성이 널리 퍼져,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듯이,
무재 일행도, 이황의 고매한 향내가 베인 매화 향내를 맡기 위해,
도산서원으로 심매여행(尋梅旅行 매화를 찾아 나선 여행)을 가서,
이황이 도산서당을 운영할 때 지은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조린다) 시를
도산서원에 가서 읊조렸나 보다.
무재 일행들의 먼 심매여행 덕분에,
'불능사기종인, 학자지대병'(不能舍己從人,學者之大病)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다.
'천하지의리무궁, 기가시기이비인'(天下之義理無窮,豈可是己而非人)
천하의 의리(義理)에 끝이 없는데,
어찌 자기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피력한
이황의 품성을 여생에 접붙여 보려한다.
ㅡ무재
유신의 말이 천관녀를 찾아감인가?
매화 사랑하는 화리를 알았음이라
도산의 달밤은 비가 와 불가하려니
안동호 흘러도 매화는 또 피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