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이탈리아 출신의 오토리노 바라시 FIFA 부회장은 월드컵 트로피를 점령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신발 상자에 넣어 침대 밑에 숨겨 두기도 했다.
출전 자격이 엄격히 제한되었던 월드컵 대회였지만 이 무렵에는 출전권을 확보한 팀들은 철수하고 이미 탈락한 팀들이 출전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인도 대표팀은 FIFA가 맨발로 경기에 뛰지 못하도록 하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결국 13개 팀만이 본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1950 FIFA 월드컵™ 수상결과
전쟁으로 중단되었던 월드컵 대회가 재개되었고 우루과이가 '결승전 아닌 결승전'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그에 앞서 미국은 벨로 호리존테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으며 상 파울로에서는 스웨덴이 이탈리아를 맞아 3-2로 승리를 거두었다.
미니 리그 형식을 띤 이 대회에서는 브라질, 스웨덴, 스페인 및 우루과이가 결승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주최국이었던 브라질은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으나 리오데자네이로의 마라카나 홈구장에서 17만 4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2-1로 패하고 말았다.
월드컵 뒷이야기
7월16일 리오의 마라카나 경기장에는 17만 4천명(비공식 집계로는 20만명 이상)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이것은 역대 최대의 관중 동원 기록이며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1-1의 상황에서 기지아가 종료 11분 전 승리의 쐐기를 박는 골을 성공시켜 개최국인 브라질 국민들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 주었다. 1958년 월드컵와 함께 개최 국가 팀이 결승전에 진출하고도 우승을 거두지 못한 대회였다
멕시코의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은 최다 월드컵 출전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50년에서 1966년까지 총 다섯 번 월드컵에 국가 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4번 출전한 기록을 가진 선수가 8명 있었는데 독일의 로더 마테우스 선수가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한 번 더 출전함으로써 카르바할과 같은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마테우스는 총 25번의 월드컵 경기에 출전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현재 활동중인 선수 가운데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이탈리아의 수비수 파올로 말디니로 총 14번의 경기에 출전했다.
2차 세계 대전의 포염 속에서도 이어져온 축구 정신
종전 이후 처음으로 1946년 7월 20일 룩셈부르크에서 개최된 FIFA 총회는 여러 면에서 역사적 의의가 컸다. 총회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축구 정신을 이어온 FIFA 회장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때부터 월드컵 트로피는 회장의 이름을 딴 '줄리메컵'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총회에서는 1929년 이후 불참했던 영국 연방의 복귀를 발표했으며 1950년에 있을 차기 월드컵 개최지로는 1938년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벌였던 브라질을 선정했다.
프랑스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재개된 대회는 리오데자네이로의 유명한 마라카나 경기장과 그 외 브라질 도시에서 일제히 개막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세계 최대의 축구 경기장
월드컵을 유치하게 된 브라질은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면서 리오데자네이로 외곽에 2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 경기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1948년 8월 2일 야심차게 시작된 경기장 건설 공사는 완공이 예정보다 많이 지연되었다. 대회 개막을 5주일 앞두고 브라질 관계자들은 상황이 긴박한 것을 깨달았고, FIFA는 지난 1934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뤄냈던 이탈리아축구연맹의 오토리노 브라시 회장을 리오데자네이로로 파견했다. 마침내 1950년 6월 24일, 마라카나 구장은 공식적으로 완공식을 가졌다. 비록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기자석도 마련되지 않았지만 본선 진출 13개 팀이 참가하는 대회를 주최할 수 있는 준비는 갖추어진 상태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팀들은 네 팀으로 구성된 그룹 둘, 세 팀으로 구성된 그룹 하나, 두 팀으로 구성된 그룹 하나 등 모두 4그룹으로 나뉘었다.
브라질 대표팀, 국민들의 열띤 성원에 보답 못해
브라질은 예상외로 멕시코를 4-0으로 가볍게 물리쳤으며 스위스와의 경기에서는 2-2의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편 앞선 두 번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유고슬라비아는 브라질과 비기기만 해도 2차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라카나 구장을 가득 메운 15만 명의 군중 앞에서 유고슬라비아는 브라질에 2-0으로 패하고 말았다. 이로써 브라질은 스페인, 우루과이, 스웨덴과 나란히 준결승이 아닌 라운드 로빈 방식의 결승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잉글랜드와 이탈리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탈락했다. 1주일 간의 휴식을 취한 뒤 브라질은 스웨덴을 7-1로, 스페인을 6-1로 크게 이기며 연승 가도를 달렸다. 이러한 브라질의 연승 행진은 스페인과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승점도 3점에 불과한 우루과이와의 결승전에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사실 브라질은 우루과이와 비기기만 해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최대 수용 관중이 입장한 가운데 벌어진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후반이 시작되자마자 선취골을 터뜨렸으나 긴장한 듯 특유의 삼바 스타일 축구를 보여주지 못했다. 반면에 우루과이는 브라질 관중의 위압적인 기세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경기를 펼치다 경기 종료 11분을 남겨놓고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승리를 거두었다. 결국 브라질은 다 잡은 월드컵 트로피를 우루과이에 넘겨준 셈이 되었고 나라 전체가 비통함에 빠졌다. 브라질 관리들은 우루과이 대표팀에게 월드컵 트로피를 수여하는 일조차 잊을 정도였다. 결국 줄리메 FIFA 회장이 수상식을 거행하기 위해 직접 연단에서 내려와 우루과이팀 주장을 찾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패배한 브라질은 자국에서 개최한 4회 월드컵이 경기 면에서나 재정 면에서 모두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점에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축구 역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공식 FIFA 월드컵™ 수상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