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0년~1800년대🌺 |
✿1592년 임진왜란 해유령 전투,
한양을 함락 시킨 일본이 양주를 침공하고, 조선 육군이 격퇴하여, 임진왜란 최초로 승리한 전투이다.
해유령 전투(蟹踰嶺戰鬪)는 임진왜란 초기 조선의 부원수 신각이 경기도 양주에서 조선 육군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였으나 작은 전투이고 이치 전투에 밀려 잘 조명되지 않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지명의 이름을 따서 양주 전투(楊州戰鬪)라고도 불린다. | |
✿1876년 미 제7기병대, 인디언에게 전멸
1800년대 중반, 미 대륙의 동쪽과 서쪽을 이미 정복자들에게 빼앗긴 인디언들에게 남은 땅이라곤 중북부의 대평원뿐이었다. 남북전쟁으로 경황이 없던 정복자들은 두 번의 ‘라라미 조약’을 통해 그 길을 지나는 백인 개척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았다. 대신 인디언들에게는 영토보장을 약속했다.
그러나 남북전쟁도 끝나고 이 지역 내 블랙힐즈에서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복자들의 탐욕이 되살아났다. 미 정부가 인디언들에게 1876년 1월 31일까지 이곳을 떠나 보호구역으로 옮기라고 통보했지만 인디언들은 시한 내에 이주할 수 없었다. 미 정부가 제7기병대를 급파하자 수우족의 최대 부족인 라코타족과 샤이엔족은 시팅불과 크레이지 호스를 중심으로 몬태나주(州) 리틀 빅 혼 강가에 모여 항전 채비를 했다.
1876년 6월 25일, 남북전쟁의 영웅 커스터 중령은 다른 부대와의 합류약속을 깨고, 먼저 인디언 공격에 나섰다. 하지만 전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코만치라는 기마만이 살아남았을 뿐 200명 이상의 기병대원 전원이 몰사했기 때문이다. | |
| 🌱1900년대🌱 | |
🌳05년 낙동강 철교 준공 🌳16년 경복궁에 조선 총독부 청사 기공식 : 1926년 10월 준공됨. | |
🌳20년 천도교청년회의 이돈화 등, 월간종합지 <개벽> 창간
1920년 6월 25일 한국 최초의 월간 종합지 `개벽` 창간
한국 최초의 종합 월간지 `개벽`이 1920년 6월 25일 창간됐다. 편집인 이돈화, 발행인 이두성, 인쇄인 민영순으로 창간된 이 잡지는 국판 160면 내외의 국한문 혼용체였다.
개벽은 1920년 6월부터 1926년 8월(통권 72호)까지 6년간 매호 8,000-9,000부를 발행하였고, 평균 7,000부 이상의 판매량을 자랑하던 1920년대 전반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잡지였다. 발행 금지 처분으로 1926년에 강제로 폐간되었던 개벽은 1934년 11월에 속간호가 발간되었지만, 4개월 만인 1935년 3월호(통권 4호)를 끝으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았다. 해방 이후인 1946년 1월에 다시 개벽의 복간이 이루어졌지만, 역시 제대로 발행되지 못하고 1949년 3월호(통권 9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 |
🌳40년 조선어 학회에서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발표함. 🌳43년 일본, 학도 전시동원체제 확립요강 결정 🌳47년 미소공동위원회, 서울과 평양에서 각 단체와 합동회의 🌳48년 제1회 전국바둑선수권대회 🌳49년 북한 남북의 ‘민족전선’을 통합,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결성. | |
🌳50년 6·25전쟁 발발
맥스 데스포의 ‘폭파된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1950년 12월 4일 촬영. 이 사진으로 맥스 데스포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38선 여러 지역에서 북한의 공세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북한 인민군이 4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3개월만에 대구, 부산 등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을 장악하게 됐다. 그러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개최, 국제연합군 참가를 결의하게 되고 이로써 전쟁은 국제전화되었다.
미군을 주로한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1950.9.15), 서울을 탈환하고(9.28), 38도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10.13), 한국군 일부가 압록강 근처 초산까지 진격(10.26)하였으나 유엔군의 북진에 위협을 느낀 중공이 개입(10.25)함에 따라 전세가 역전, 휴전 교섭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련 유엔대표의 휴전제의를 미국이 받아들여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휴전회담이 진행되어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북한 인민군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나고 휴전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6·25전쟁은 남북 쌍방에 약 150만명의 사망자와 360만명의 부상자를 냈고, 국토의 피해를 가져왔다. 해방후 5년 만에 일어난 민족통일을 표방한 전쟁이었으나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분단체제를 강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 |
🌳52년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발생(범인 유시태, 배후조정자 김시현 체포)
1952년 6월 25일 이승만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6·25 전란이 한창이던 1952년 6월25일 임시수도인 부산 충무로 광장에서는 ‘6·25멸공통일의날’ 기념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이승만 대통령의 훈시 도중 단상 뒤 VIP석에 앉아있던 한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와 이 대통령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거리는 불과 3m 남짓, 하지만 탄환 불발로 저격은 실패한다.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은 의열단(義烈團) 출신 유시태(1890~1965) 선생이었다. | |
| 🌳55년 김낙중, 휴전선 넘어 단독 월북 | |
🌳63년 거제도 장승포서 산사태로 100여명 매몰
산사태가 난 지점
1963년 6월 25일 아침 8시쯤 경남 거제군 장승포읍 장승포리 3구 거제 중학교 앞 왼편에 있던 높이 70미터쯤되는 산이 무너져 언덕 뒤편의 학교운동장과 앞쪽의 가옥 6체를 완전히 뒤덮어 경찰관 9명과 주민 60명 등 모두 69명이 묻혀 숨졌다. 숨진 경찰관은 마을 주민들에게 대피를 독려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주민들과 함께 변을 당했다.
이날 사고가 난 산은 며칠전 남해안을 강타한 태풍 셀리호의 영향으로 금이 간데다 24일 밤부터 내린 비로 붕괴될 염려가 있어서, 경찰이 이 마을 9가구 주민들에게 대피를 독려했으나 이를 외면해 일어났다. 이번 사태로 너비 약50m, 길이 20m쯤 되는 흙더미가 쏟아져 1천여평이 매몰됐다. 사고 목격자에 따르면 사고난 때가 아침식사 시간이라 대부분 가족이 아침을 먹던 중 우레같은 소리와 함께 높이 2m 폭1m가량의 바위가 집 앞마당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산이 무너졌다고 한다. | |
🌳66년 김기수 선수, 우리 나라 최초로 프로 권투 세계 챔피언이 됨
1966년 6월25일.. 김기수(金基洙) 세계챔피언에 올라
한국의 첫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된김기수 선수가 주먹을 쳐들고 기뻐하고 있다.
15라운드가 끝나고 발표된 점수는 1대1. 마지막 주심의 채점을 발표하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벤베누티 68점...". 순간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8000여명의 관중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이겼다`는 표정이었다. “칠시입...”하는 발표가 다시 이어지자 장내는 함성의 도가니가 됐다. `74점`의 뒷 숫자 `4`는 환호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고 들을 필요도 없었다. | |
🌳66년 서울 서소문 육교 개통(493m) 🌳77년 국내 최초의 해양자원탐사선「심해호」 명명식 🌳81년 전두환 대통령, 동남아국가연합 5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필리핀) 순방 등정 🌳81년 석유개발공사, 미국 자펙스社와 대륙붕 4광구 조광권 가계약을 체결 🌳83년 재무부, 제2금융단 금융조정안을 발표. 수신 금리를 최고 1% 인하 🌳84년 제122회 임시국회 개회 🌳84년 천주교의 노기남 대주교 사망(83세) 🌳84년 투서사건에 연루된 정내혁 대표 위원을 경질 하고 후임에 권익현 사무총장을 임명 🌳84년 한국·기니비사우 양국, 대사급 수교 🌳85년 인천 지역에 진도 3의 지진 🌳86년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 내한 🌳87년 전두환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 등 교계 지도자 들과 시국요담(∼26일) 🌳87년 이춘구 민정당 사무총장, 4.13조치는 분명히 철회됐다고 밝히고 여야대표회담을 제의. 🌳87년 경찰,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에 대한 연금을 해제 🌳90년 국세청, 삼성등 5대재벌의 비업무용토지는 모두 1096만평이라고 발표 🌳90년 문화부, 예술학교설립 등 16개사업이 포함된 문화발전 10개년계획 발표 🌳90년 학내분규로 임시휴업에 들어갔던 세종대가 71 일만에 휴업을 해제, 정상수업. 🌳90년 대검중앙수사부, 업자들로부터 36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철도청장 김하경씨(58)를 구속. 🌳90년 이상훈 국방부장관과 메네트리 주한 미군 사령관, 용산군기지를 96년까지 이전 합의각서에 서명. 🌳90년 평민당 이해찬의원, 87년 대통령선거 당시 서울시 예산 49억 4000만원 선거용 변칙지출 지적. 🌳90년 한·미간 용산기지 이전 합의각서 체결 🌳90년 태풍 오펠리아호, 9명 사망 실종, 피해액 15억여 원 🌳91년 보사부, 농어민국민연금적용 등 5개년사회 보장부문계획 발표 🌳91년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테일러박사, 미국은 한국내 핵무기를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 🌳91년 새마을운동비리사건과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건 복역중이던 전경환 이철희, 형집행정지처분 가석방. 🌳91년 정신대 피해자 신고에 155명 접수 🌳92년 노태우 대통령, 임기 8개월을 남겨두고 20번째 개각을 단행 부총리겸 통 일원 장관에 최영철, 임명. 🌳92년 정부는 0시를 기해 유가를 평균 13.9%를 인상, 이에 따라 휘발유 24.1%, 경유 17.2%씩 각각 인상. 🌳93년 러시아,우리정부에 6ㆍ25문서 전달( 스탈린 전문 등 40페이지 분량) 🌳93년 한의사-약사 분쟁 심화-약사회장 구속-약대생 수업거부 🌳93년 김영삼 대통령, `북한의 NPT 탈퇴 유보는 전쟁 가능성에 대비해 지연전술을 쓰는 것' 언급. 🌳93년 건설부, 팔당호 특별대책 지역에 가평 여주 를 포함한 「수질보전권역」 설정할 방침. 🌳93년 마약류 퇴치 위한 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협력 회의, 경주에서 개최.마약류 공조수사체제 확립키로 합의. 🌳93년 연대 의대 유전공학연구소 김윤수 오상환 교수팀, 3년간 연구끝에 새로운 유전자복구효소 3종을 발견 🌳94년 제169회 임시국회 개원(20일간) 🌳94년 강성산 북한총리, 김용순 최고인민회의 통일 정책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측대표단명단 전달 | |
🌳95년 대북 지원을 위한 대북 지원 쌀 동해항 출발, 청진항 도착.-2000톤
대북 지원용 쌀 2천톤이 ‘씨 아펙스호’에 실리고 있다.
대북쌀 지원을 위한 우리쌀 1차분이 1995년 6월 25일 오후 5시 강원도 동해항 중앙부두를 출발했다. 이날 출발은 북측의 연기요청에 의해 하루 늦어졌다가 이날 북경에서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와 북한 삼천리총회사간에 실무계약서가 서명됨에 이루어졌다. 1천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출항식에는 이홍구 국무총리의 기념사와 송영대 통일원차관의 경과보고가 있었다.
기념식후 우선 지원분 2천톤을 실은 ‘씨 아펙스호’(선장 김례민)는 출항 기적을 세번 울린 뒤 출발해 26일 오후 청진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씨 아펙스호’는 북한의 위협으로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만을 게양한 채 청진항에 진입, 쌀을 하역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부는 북한에 공식항의하며 북측이 사과할 때까지 2차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자 북측은 30일 공식 사과했다. 이에 수송선 3척에 나눠실은 2차분 8천톤도 7월 4일 목포항과 부산항에서 각각 출항했다. | |
🌳96년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부근 미군공군기지 폭탄테러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항구도시 다란 부근 미 공군기지 앞 도로에서 1996년 6월 25일 밤10시30분쯤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폭발사건으로 도로와 접한 기지 내 8층 건물이 부서지면서 19명이 숨지고 중상자 73명 등 2백70여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19명은 전원 미군인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미 대통령은 폭발사건 직후 이번 사고를 테러공격으로 규정하고 “이 사건을 직접 조사할 것이며 끝까지 범인을 추적 반드시 응징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파괴된 건물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소유로 미군 가족 아파트와 미 공군 4404비행단 사령부로 사용돼 왔다. 폭발 현장은 깊이 11m 폭 28m의 구덩이가 파여졌으며 사건 현장에서 5km 떨어진 주택가 유리창들도 모두 박살나 폭발물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이날 폭탄 테러는 1983년 2백41명의 사망자를 낸 레바논 미 해병대 건물 폭탄테러사건 이래 최악의 것이라고 미 국방부 측이 밝혔다. | |
🌳96년 불교계 대표적 스님 서경보 스님 입적
1996년 6월 25일 입적한 일붕선교종 종정 서경보 스님은 불교계에서 일반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중 한명이었다. 서경보 스님은 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동을 펼쳐왔으며 1백 26개의 명예박사 학위와 1천42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 그는 또 헤아릴 수 없는 서예작품을 남겼고 이같은 정력적인 활동으로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저명인사가 됐다. | |
| 🌳96년 유럽연합(EU), `제3회 한국자동차산업포럼' (서울)에서 한국자동차시장의 추가개방을 촉구 | |
| 🌺2000년대🌺 | |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전 `아! 6.25`전 전쟁기념관서 개막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참석 내빈들이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아! 6.25`특별전 개막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쟁기념관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특별기획전 `아! 6.25-그때는 자유를,이제는 통일을`이 2000년 6월 25일 오전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막됐다. 이날 오전 11시 개막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전시회 현황 브리핑을 들은 뒤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있어선 안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막행사에는 김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 피델 라모스 필리핀 전대통령 내외, 조성태 국방부장관, 방상훈 조선일보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아! 6.25`전은 `잊혀진 전쟁`이나 `동족상잔`만이 아니라 `자유세계를 지켜낸 전쟁`이자 `냉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긴 계기를 만든 전쟁`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6.25전쟁의 의미와 실상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기획됐다. 2년간 미국-일본-중국 등지에서 수집한 사진, 문서, 영상 및 실물자료 5천여점이 12월 31일까지 전쟁기념관내 2천평의 특별전시실에서 전시됐다. | |
✿2002년 6월25일..한국, 월드컵 준결승전서 독일에 0대1 패
잘 싸웠다. 휴전선에서 마라도까지, 백령도에서 독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 마음이 된 4800만 ‘붉은 악마’와 함께 잘 싸웠다.
우승후보로 꼽히던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잇달아 꺾으며 세계축구사를 새로 써온 한국의 월드컵 ‘이변 행진’이 준결승에서 멈췄다. 하지만 한국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1승은 물론 16강·8강을 거쳐 4강까지 진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 |
✿2004년 6월25일국내 최장신 농구선수 하승진 한국인으로서 첫 미국 NBA 진출
하승진 선수.
국내 최장신 농구선수 하승진(연세대·2m23·사진)이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으로 NBA(미 프로농구)에 진출했다. 하승진은 25일(한국시각)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실시된 04~05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7번, 전체 46순위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의해 지명됐다. 하승진은 2년 계약기간 최저연봉 34만9458달러(약 4억247만원)를 보장받는다.
한국 선수로선 처음으로 NBA에 이름을 올린 하승진은 자신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됐다는 소식을 드래프트가 실시된 뉴욕이 아닌 LA에서 들었다. NBA측이 1라운드 상위 지명이 예상되는 선수들만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급 대우가 보장된 1라운드 지명에서 제외되고, 2라운드 17번째 만에 이름이 불려졌으나 그의 목소리에선 실망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에 와보니 뛰어난 선수들이 너무 많았어요. 몇 라운드, 몇 순위에 지명되는가보다는 일단 NBA에 진출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습니다. 오히려 2라운드에 지명되고 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욕이 앞서요.”
2m23의 큰 키로 국내 고교(삼일상고)·대학(연세대) 무대를 간단히 평정했던 하승진은 스스로 ‘우물 안의 개구리’였음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 |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 심장마비 사망
2009년 6월25일(현지시간), 전 세계인은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팝의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스타 마이클 잭슨(Michael Joseph Jackson, 1958 ~ 2009)이 쓰러진 것이다.
향년 51세. CNN과 LA타임스, 티엠지닷컴(TMZ.com) 등에 따르면 마이클 잭슨은 이날 낮 12시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현지소방서에 긴급구조를 요청했으나 사망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