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담 유일대사 시문/-연담 유일대사(1720~1799)/ 남도탐방(13)/ 김규정/한학자
승인 2021.05.27
⦁贈冠山吳椽吏 관산 오 아전에게 주다.
芳菲度盡客來踈 예쁜 꽃 다지자 객 드물게 오더니
却喜詩人遠訪余 도리어 멀리서 날 찾는 시인은 반갑구나.
門掩三春長臥病 석 달 봄날 문 닫고 오래 앓아누웠지만
樓開半日共看書 한나절 누각에 올라 함께 글 읽는다.
落花香歸含泥燕 제비는 진흙 물고서 낙화향기 먹이고
古井紋生吹水魚 옛 우물 속 물고기 뻐끔대며 물결 일으킨다.
雲外鍾聲皈思動 구름 밖 종소리는 고향생각 일으키니
夕陽元在竹林西 석양은 원래 죽림 서쪽에 있었단다.
皈與餽同 皈(귀)자와 餽(궤)자는 같다.
역자 注)
연담대사의 고향은 전라도 화순으로 옛 지명은 ‵竹樹′라서 ‵竹林′이라 표현했다.
다섯 째 구 ‵歸′ 字는 仄聲(去聲 ‵寘′ 韻部에 속함)으로 ‵먹일 餽′의 뜻이다.
歸 = 皈 는 같은 글자인데 동일한 문자의 반복을 피하기 위하여 이체자(異體字)를 쓰고 注를 달았다.
▪연담 유일蓮潭有一(숙종46년1720~정조23년1799)
속성은 개성 천씨(開城千氏). 법명은 유일(有一).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 전라남도 화순읍 출신.
18세 때 법천사法泉寺 성철性哲에게 출가하였으며 안빈安貧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해인사海印寺 호암虎岩 화상을 찾아가 여러 해 동안 시봉하면서 그의 종지를 터득했다.
영허靈虛·벽하碧霞·용암龍岩·영곡靈谷·호암虎岩·설파雪坡·풍암楓岩·상월霜月·용담龍潭·영해影海 등 10대 법사들을 참알參謁하고 그들에게 교리를 배워 통달하였다. 또 동문수학한 설파 상언雪坡常彦과 함께 서로 학문을 갈고 닦았다.
⟦화엄경⟧ 강주(講主)가 된 뒤로 30여 년 동안 무릇 15차례나 강론 법회를 열었는데 늘 따르는 학인들이 100여 명에 이르렀다.
31세 때 보림사(寶林寺)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여 60세까지 계속했다. 78세 때 보림사 삼성암(三聖庵)으로 옮긴 뒤 세속 나이 80세에 입적했고 승랍은 62년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의 명승으로 대종장이고 대선종이다. 가지산문에서 집필한 저작물을 국역해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
정조23년(1799) 全羅道 靈巖郡 美黃寺에서 목판본으로 인행한 문집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4卷과 여러 저술이 전한다.
해남 대둔사(大芚寺, 대흥사)로 이진(移鎭)하였던 판목이 남아있다.
派系는
서산대사(西山大師1520~1604) → 편양언기(鞭羊彦機1581~1644) → 풍담의심(楓潭義諶1592~1665) → 월담설제(月潭雪霽1632~1704) → 환성지안(喚惺志安1664~1729) → 호암체정(虎巖體淨1687~1748) →연담유일蓮潭有一(1720~1799)로 불법이 전승된다.
⦁重到寶林次前韵
보림사에 다시 도착해 옛날에 지은 시에 차운하다.
重來無恙舊溪林 옛 숲 시내 다시 찾자 아무 탈 없고
雙級觚棱聳碧岑 이층전각 모서리에 푸른 산봉우리 솟았다.
歲月崢嶸僧亦老 세월은 자꾸 흘러 운수승도 늙었고
魚龍寂寞水偏深 어룡이 적막한 시냇물은 유독 깊구나.
山應記我非生客 낯선 객 아니라서 산천은 응당 날 기억하고
詩不如人改故吟 옛날에 읊었던 시 고쳐도 남 같지가 않다.
一壑烟霞堪曳尾 한 계곡 안개노을서 감히 꼬리 끌고 다니니
百年身世可安心 일생백년 신세는 마음 평안 하겠나.
大闕謂之觚棱法堂亦然牧詩回首觚棱隔暮雲東坡讀子由棲賢堂記曰如在堂中見水石陰森草木膠葛吾刻之欲與廬山作緣且他日入山不爲生客也
대궐은 고릉을 말하니 법당이 또한 그러했다. 두목 시에 ‶고릉에 고개 돌리자 저녁 구름이 가리고″ 라고 했고 소동파(소식)는 아우 소자유(소철)의 ⟪서현당기(棲賢堂記)⟫를 읽으며 말하기를 ‶나무 우거진 침침한 산림의 수석을 보고 있노라면 당 가운데 앉아있는 것 같아 칡덩굴이 달라붙은 초목을 나는 새겨 놓았다″고 했다. 여산과 인연을 삼고 싶지만 또 훗날 산에 들어오면 낯선 객은 되지 않을 거야.
⦁枕溪樓謹次三淵韵 침계루에서 삼가 삼연 김창흡의 시운에 차운하다.
黃庭 中庭也 山谷詩 大槐陰黃庭龍 舍硯水而去黑雨注四方 황정은 안마당이다. 황 산곡의 시에 ‶큰 홰나무 그늘 안마당 용, 벼루 물 버리고 가자 세찬 비 사방에다 퍼 붓네.″ 라고 했다.
九講華嚴老且慵 아홉 번 화엄경 강독은 늙어 싫증나니
名山招我許留蹤 명산은 날 초대해 종적을 남기란다.
黃庭晩到含花鳥 꽃 머금은 새 저물녘이면 안마당에 들고
黑雨朝噴聽法龍 설법 듣던 용은 아침 세찬 비 퍼 붓네.
樓得三淵詩擅勝 누대 오르자 삼연의 시 빼어나고
山從六祖號爲宗 산은 육조대사 호 따라 종주가 되었다.
此間欲借菟裘地 이사이에 은거할 땅 빌리고자하니
數幅袈裟展幾峯 수폭의 가사장삼을 몇 봉우리에다 펼칠까.
曺溪山爲 曺叔良所主 故號曺溪 六祖至此山 時屬陳亞仙 祖請展一袈裟之地 陳許之 祖展袈裟徧山
조계산은 조숙량이 주인이었다. 그러므로 조계산이라고 부르고 육조대사가 이 산에 이르니 이때는 진아선이 주인이었다. 조사가 가사 한 벌을 펼만한 땅을 요청하자 진아선이 허락하였는데 육조가 온 산에다 가사를 펼쳤다.
⦁次默庵 묵암의 시에 차운하다.
黑女功天共逐尋 흑암녀와 공덕천을 함께 따라 찾다가
何人躱避放寒林 누가 몸을 피하여 차가운 숲에 내버리나.
升沈莫道三生業 세상사 부침은 삼생의 업이라 말하지 말게
凡聖都由一寸心 범인 성인 모두가 한 치 맘속에 달려있다네.
煩惱欲除除未盡 번뇌를 없애려 해도 다 제거하지 못하고
法門願學學彌深 법문을 배우고 싶지만 배우니 갈수록 깊구나.
主翁每喚惺惺着 매양 주인 늙은이 불러 또렷하게 깨어있어
莫遣靈臺外物侵 마음에 외물이 침범하게 하지 말라.
涅槃經云 有一女 名功德天 所至人皆喜 又有一女 名黑暗女 所至人皆憂怖 黑女曰 汝等皆愚 吾殊功天 在法家 吾本相從不離 汝何愛彼而惡吾 功天喩生 黑女喩死 西域放尸於寒林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공덕천이라 불리는 한 계집이 있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 모두가 좋아했다. 또 흑암녀라 불리는 한 계집이 있었는데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두 근심하며 겁냈다. 흑암녀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모두가 어리석다. 내가 공덕천과 다르지만 법가에서는 함께 있어 나는 본래부터 서로 따르고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저 사람은 사랑하고 나는 싫어하느냐.″고 하였으니 공덕천은 생(生)을 비유하고 흑암녀는 사(死)를 비유한 말이다. 서역에서는 사람의 시체를 차가운 숲에 내버리는 풍습이 있다.
(二)
竹裡寒泉月下鳴 달빛 아래 대숲에서 찬 샘물소리 울리니
獨憑禪几耳根淸 홀로 참선 안석에 기대자 이근원통 맑아진다.
鳶飛魚躍天機動 솔개 날고 물고기 뛰니 천기가 움직이고
水綠山靑祖意明 물은 맑고 산은 푸르니 조사의 뜻은 선명하다.
至道無難皆可學 지극한 도 어렵지 않아 다 배울 수 있으니
斯言有玷急須更 이 말이 잘못이라면 급히 고쳐야 하리.
嘿翁近日耽佳句 묵암이 요사이 아름다운 글귀를 탐하더니
或恐愁肝太瘦生 혹 시름만 늘어나 간 비쩍 마를까 걱정된다.
注)
耳根 - 이근원통(耳根圓通). 청각에 집중해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
鳶飛魚躍(연비어약) - 솔개가 날고 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인 자연 만물의 이치를 말한다.
附原 원래의 시를 붙인다.
洗衲淸溪雨後尋 비 갠 뒤 가사 씻으려 맑은 시내 찾아
坐來終日對蒼林 종일토록 앉아 울창한 수풀 마주한다.
攻文豈合滛詩律 붓 들고 씨름할 때 어떻게 음시 율 맞추나
硏法端冝做定心 시법대로 연마하여 마땅히 마음을 안정시키라.
出世道芽仍病減 출세간 도심의 싹이 병으로 줄어드니
隨塵情海逐年深 세속 따라가는 인정 해마다 깊어만 간다.
問君何術山無逼 그대는 산에서 무슨 술법으로 무핍하나
免却枯藤二鼠侵 마른 등나무에 두 마리 쥐 침범 면했는가.
注)
無逼 - 무핍뇌심 無逼惱心. 신심이 안정되어 중생에게 대비의 마음을 일으켜 번뇌하는 사람의 고통을 구제하여 주는 마음.
枯藤二鼠 - 용아(龍牙)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다.
"두 마리의 쥐가 등(藤)나무를 갉아먹을 때가 어떠합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몸을 숨길 곳이 있어야 한다." 납자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몸을 숨길 곳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를 보기나 했는가?“
해와 달 또는 밤과 낮을 희고 검은 두 마리의 쥐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현세는 무상하고 시시각각 죽음(死地)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二)
衰暮頹齡耳又鳴 늘그막 노령에 귀도 울리니
流光六十減神淸 예순 흘러간 세월에 맑은 정신도 손상된다.
律儀因病成踈逸 계율은 병 때문에 소홀하고 안일하니
禪學多思未發明 선학도 생각만 많고 발명하질 못하는구나.
虗說脫空消百歲 헛된 말 뜬소문 벗어나다 인생 소모하고
耽眠昏黑過三更 단잠 속에 깜깜해 지면 삼경이 지나갔구나.
願將出得瓶鵝藥 원컨대 병속의 아약을 꺼내다가
分施刀圭起死生 의술 고루 베풀어 죽은 사람 살리고자한다.
注)
出得瓶鵝藥 - 육긍 대부가 남전선사를 찾아와 묻기를,
"옛사람이 병 속에다 거위 한 마리를 길렀는데 거위가 점점 자라서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을 깨뜨릴 수도 없고 거위를 죽일 수도 없으니 어찌하여야 거위를 꺼내겠습니까?" 남전 曰 "대부여!" 육긍이 "예"
남전 曰 "나왔느니라."
❖묵암 최눌黙庵最訥(숙종43년丁酉1717~정조14년庚戌1790)
법명은 최눌(㝡訥). 字는 이식(耳食). 號는 묵암(默庵). 俗姓은 密陽朴氏. 興陽縣(高興郡) 長沙村人. 14세 때 전라도 낙안군 금화산 징광사로 출가했다.
부휴선수(浮休善修) → 벽암각성(碧庵覺性) → 취미수초(翠微守初) → 백암성총(栢庵性聰) → 무용수연(無用秀演) → 영해약탄(影海若坦) → 풍암세찰(楓巖世察) → 묵암최눌(黙庵最訥) 로 내려오는 법맥을 전승했다.
풍암(楓巖)에게 의발을 받고 강석을 열어 학인들을 지도했고 선교양문에서 과거 선지식들이 미처 밝히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그 지혜가 마치 신과 같다는 칭송을 받았다.
고금의 백가서를 섭렵하고 삼장(三藏)의 가르침에 두루 통달하였으나 병약하여 학문적 포부는 맘껏 펼치지 못했다.
조계산 보조암에서 세수 74세 승랍 54로 입적하자 연담 대종사는 만사를 지어 애도의 정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