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사1:21-31)
갈등
1.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을 마무리하는 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어요. 그동안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로 사람들이 주님을 크게 환영하며 영접했습니다. 사람들이 호산나 찬송을 부르며, 자기들의 겉옷을 양탄자와 같이 바닥에 깔고 주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오셨습니다.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었어요. 그들이 주님을 메시야로 기대하고 맞이했습니다. 종려주일이라는 이름이 나온 유래가 여기에 있어요. 당시 이스라엘 군중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환영 퍼레이드가 예루살렘에서 이뤄졌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격적 존재는 누구나 자기를 환영하는 자와 함께 하기를 원해요. 나를 환영하지 않는 곳에 굳이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가기를 원하지 않으셨지만,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오늘 종려 주일 아침에 이사야를 읽었습니다. 이사야는 1절,“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예언 활동을 했어요. 그는 웃시야 왕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는 왕족 출신으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2. 예언자도 인격적인 존재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이 듣고 순종할 때에는 행복했습니다. 이사야가 유다 왕국 4대에 걸쳐 예언활동을 했지만, 히스기야 왕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어요. 나머지 세 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1장은 그의 초기 사역 때 일인데,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예루살렘으로 가봅니다. 21절,“진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로다.”
이사야가 전하는 남 유다 왕국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창기처럼 되었고,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살인자들이 되어버렸어요.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창기라고 부르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살인까지 성행하고 말았어요. 22절,“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찌꺼기가 되고 물이 섞였다는 것은 혼합주의를 말씀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상숭배를 하였던 것을 의미해요. 그들은 고아와 과부-약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했는데, 약자의 삶에는 무관심하고 철저히 무시하고 말았습니다. 유다 왕국이 왜 이렇게 추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였을까요?
갈등 심화
3. 하나님은 언제나 오래 참으시지만, 이스라엘이 끝내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면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24절,“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네 원수에게 보복하리라.”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르는 이유에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주 만군의 여호와-여호와, 야웨는 스스로 계신 분-창조주를 의미해요.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전능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보응하고 보복하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오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다스리시고 벌하실 때,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창조 때와 같이 나타날 것을 예고하셨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보시고 그들에게 원수를 통하여 보복하실 때 그의 마음이 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독특하게 선포되었습니다. 25-26절,“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애 내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세상에서 재판은 피고를 향하여 죄값을 잘 치르라는 선언으로 마칩니다. 네가 죄를 범했으니 네가 당하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보응한다고 선포하시며, 이스라엘의 죄를 잿물로 씻듯이 청결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이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고, 예루살렘을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이라고 불리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세상 어느 종교 철학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고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하나님은 심판자로서 그들이 죄값을 치르도록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심판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실마리
5.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읍의 상태에 매우 실망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창기라고 부르셨어요. 예루살렘이 도덕적인 타락만 아니라 우상숭배를 했음을 의미합니다. 두 가지는 본래 한 쌍입니다. 우상숭배가 행해지는 곳에 도덕성은 항상 무시됩니다. 이것이 기복주의-세속주의 신앙의 특징이에요. 자기의 현실적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혼합주의에 빠져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며 우상숭배를 겸하였기 때문입니다.
혼합주의에 빠진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고,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했어요. 그들은 고아나 과부와 같이 돌봄이 필요한 약자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이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목적을 이루는 데에만 힘씁니다. 자기 목적을 이루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었어요. 뇌물을 주고 받는 것도 자연스럽게 행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적 성숙-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어요.
6. 오늘 본문은 유다 왕국의 타락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때만의 일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남북왕조 이야기를 전해주는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면 몇몇 왕들 때만 빼놓고 일상적인 모습이었어요. 다윗-히스기야-요시야 왕 때입니다. 이 세 왕 때는 우상숭배를 철저히 제거하고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게 하고, 순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들 시대에 도덕성은 회복되고 양심은 살아 있었고요. 사회는 성숙하고 삶의 질은 매우 높았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고 온갖 불의를 행하는 것을 싫어하시고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보복을 경고하시면서도, 그들을 향한 특별한 자세를 보여주셨어요. 하나님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 슬프다, 내가 너희 죄를 보복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는 데만 관심이 있지 않았어요.
7.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깨닫도록 엄중하게 심판하시지만, 그들이 죄값을 치르면서 그들의 모습이 새롭게 변화되기를 원하셨어요.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에 빠져 있는 삶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잿물로 씻기고, 혼잡물을 다 제거해버리고 청결하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2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그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예루살렘이 의의 성읍-신실한 고을이라고 불리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26절) 하지만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다.(28절) 회개하고 성결되지 않는 자는 끝내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지만, 끝내 그 기회를 저버리는 자-뿌리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입니다.
복음 제시
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되 27절,“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공의로 구속함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의를 일컫습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시14:1, 롬3:10 이하) 의는 오직 하나님의 의를 말씀해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너는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고 놀라운 일을 행하셨어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습니다.
9. 죄를 알지도 못하신 세상에서 유일한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구속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이루신 일이 정의와 공의로 우리가 구속함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복음의 정수인 롬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우리를 정의와 공의로 구속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기대
10. 예수님이 오늘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을 좋아하시지 않았지만, 그가 하실 일이 그곳에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공생애 마지막 주간을 예루살렘에서 보내셨어요. 밤에는 예루살렘에서 숙박하시지 않고, 동편 계곡 건너편 감람산과 나사로와 마르다다, 마리아 3남매의 집이 있는 베다니에서 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죄는 미워하셨지만,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시며 기도하셨어요.
눅13:3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예수님을 예루살렘의 어머니와 같이 표현하였어요. 암탉은 새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킵니다. 족제비가 암탉을 공격하면 자기만 살려면 날아서 지붕 위로 올라가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새끼가 날개 아래에 있다면 달라요. 어미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11.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사건을 기념합니다. 잠시 후에 성찬식을 하며 주님의 희생을 기념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어떠했는지 우리 영혼과 마음만이 아니라 몸으로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주님의 희생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우리 삶이 되도록. 다시 죄를 범하거나 세상 가치관으로 살아가지 않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나라 가치관을 따라 살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오늘 찬양은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