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峰(282m)의 작은 고개 金沙嶺을 3번째 넘는 野草, 海山, 樂山의 모습....10:56:05
* 금사재는 산북 서중리와 호계 지천리를 잇는 작은 고개
海山의 운행으로 산북 서중리의 아침 햇살이 밝게 빛취는 "근암서원"에 주차 후 출발한다....09:23:16
마을 안길의 牛舍를 지나는데 매번 보이는 작은 백구가 목청껏 짖어대고, 앞쪽에 안어른이 밀차에 의지하여 천천히 앞서 가고있다...09:25:53
마을을 벗어나자 하늘에 솔개가 떼를 지어 하늘을 회전하며 내려보고있다....09:29:09
논에 물이 얇게 얼어서 野草가 확인해 본다...09:42:47
전봇대가 뻗어있는 위쪽의 좁은 고개가 금사재(金沙嶺)이고 아래에 물탱크, 저장창고, 좌측의 계단식 건물은 개구리 양식장이다....09:46:44
*艸谷農園(초곡농원) : 허가번호(2018) 품종(북방산 개구리) 위치(산북면 서중리349-1)
주인장(권상일 010-4474-0101)
매번 만나는 백구가 과수원에 묶여서 인적이 드문 곳에 추위를 견디며 반갑게 짖어댄다....09:52:48
35분간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니 피로하여 중간 휴식을 양지바른 물탱크 삼거리에서 하며 축대 위의 높은 언덕 위에 산소가 있다....09:57:24
*밀양 박 종 하(1934.12. 02 음 ~ 2018. 8.15 양) 경주 김 정 열(1936. 6. 15 음 ~ 2018.11. 8 양) 의 묘
(合葬하여 平葬함)
휴식을 마치고 금사마을 방향으로 올라간다...09:58:50
공사 준비용 破石이 쌓인 저온창고를 돌아서 올라간다....10:01:14
과수원을 지키는 순둥이 백구가 짖다가 물꺼러미 쳐다보고있다...10:02:03
과수원을 지키는 백구와 흑구가 힘차게 짖어대며 흑구만 길쪽으로 다가와서 쳐다만 본다...10:06:23
고개를 넘어서니 찬바람이 불러오고, 멀리 문경대학교가 보인다. 우측의 산소는 후손들의 조상 숭배정신이 높은 묘원이다...10:07:30
* 碑石 : 安東權氏 副正公派 諱秉極 后裔 家族墓 ※ 后裔 (후예=후손)
내리막 길을 내려서서 삼거리에서 우측인 지천리 방향으로 내려간다....10:09:21
* 삼거리 좌측은 금사마을로 통한다.
논에 바퀴 자욱에 고인물이 얼어서 겨울을 실감나게하고, 고압선철탑 아래 옛 부천초등 건물이 보인다. ....10:13:09
볏집사료가 공용알처럼 모여있고, 내리막 길의 발걸음은 가볍고 상쾌하다....10:14:39
길에서 보이던 산소가 높게 축을 쌓고 우측으로 돌계단을 만들어 후손들의 정성이 지극하다.
앞쪽의 삼거리는 금사재를 넘어 오는 길과 마주쳐 지천리로 통한다...10:22:20
추측으로는 수해로 산소가 훼손되어 재정비하면서 자연석으로 산소 둘레를 조성하고 진입로와 봉분도 보수를 했다...10:23:08
* 床石 : 孺人全州李氏之墓
지천리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배구와 흑구가 나란히 감나무 밭으로 내려가서 흑구가 눈치를 보며 숨어있고, 백구는 거리낌 없이 지나간다...10:24:42
내리막길을 편안하게 내려가며 전신주가 끝나는 곳이 지천리로 통하는 지방도로이다...10:25:31
아랫쪽에서 불쾌한 냄새가 올라와서 도로까지는 생략하고 앞쪽 우측의 향나무 까지 내려간다... 10:27:50
소똥 냄새가 심하여 큰 향나무가 세 그루있는 곳에서 되돌아 서서 올라간다...10:29:57
햇살에 뿌옇게 보이는 금사재의 구불구불한 길을 천천히 올라 간다...10:43:32
중학생 시절 野草가 넘어 다니던 군자봉 아래 산길이 지금은 중장비로 땅을 넓히고 길을 만들어 많이 변해가고 있다. 오늘은 개짖는 소리가 안들리고 조용하다.....10:47:46
우측의 비탈진 과수원은 높게 둑을 쌓아서 과수원을 평지로 만들고 있다...10:48:00
기존의 비탈진 과수원을 깊게 파내어 평지를 만들고, 둘레에 破石을 넣어 배수를 한다...10:51:55
우측의 봉우리가 君子峰(282m)으로 고개를 넘으면 산북면 대상 2리로 이어진다...10:54:30
금사재를 넘어서니 먼저 내려간 牛步가 물탱크 옆에 보이고, 내리막 길을 즐겁게 내려간다....10:58:53
양지바른 곳에서 간식을 하고, 牛步의 재담으로 모두 破顔大笑한다....11:19:47
농사철에 이용하려고 비닐하우스를 규모있게 거실과 수면실을 구분하여 만들었다....11:34:36
응달은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이 얼어서 작은 빙벽을 이루고, 양지는 햇살로 따뜻하다...11:36:14
서중리 마을의 골목 풍경은 양지 바르고 배수로가 매우 깊고 넓으며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11:48:30
안동 권씨 문중의 모임 때 이용되는 건물인 歸厚齊(귀후제)의 관리가 많이 필요하다....11:50:23
御筆閣(어필각)의 영조가 淸臺 權相日先生에게 내린 글을 액자로 담아 놓았다.....11:51:55
御製御筆(어제어필)
竭誠纂修功存闡義 一十六字以代鐵券 (갈성찬수공존천의 일십육자이대철권)
崇禎紀元後三乙亥十一月二十六日 (숭정기원후삼일을해십일월이십육일)
書下 命度支刊印 頒賜于纂修諸臣 (서하 명도지간인 반사우찬수제신)
* 숭정기원후삼일을해십일월이십육일 : 1755년 11월 26일
毅宗 崇禎1년(1628 인조6), 1635(乙亥인조13),1695(乙亥숙종21),1755(乙亥영조51)
* 書下 : 임금이 벼슬시킬 사람의 이름을 직접 적어 내리던 일 *영조1756년3월 사망
淸臺 權相日先生의 초상화
※ 권상일(權相一) 조선 영조 때의 학자. 호는 청대(淸臺), 시호는 희정(僖靖), 본관은 安東,
深의 아들. 1710(숙종 36) 문과에 급제, 영조 때 萬頃縣令이 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호하며 유학을 진흥시킴. 李麟佐반란 모의 소문을 듣고 城을 수리하고, 병기를 정비하여 적란 평정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司憲府掌令(정사품) 때 시폐를 바로 잡고 관리 선택에 공정을 기하며, 교육의 쇄신향상과 당화의 처리 등을 상소하였다. 蔚山府使, 知中樞府事, 80세에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저서: 初學指南, 觀書近思錄集解, 昭代備考, 家範, 歷代史抄常目, 詩文, 雜書 등
산행을 마치고 근암서원에서 산북 소재지를 배경으로 밝은 표정의 樂山, 牛步, 海山, 野草의 모습...11:59:31
* 近嵒書院(근암서원) 眞城 李源箕 書
근암서원은 조선시대 명현인 우암(寓庵)홍언충(洪彦忠), 한음(漢陰)이덕형(李德馨), 사담(沙潭)김홍민(金弘敏), 목재(木齋)홍여하(洪汝河), 활재(活齋)이 구(李 榘), 식산(息山)이만부(李萬敷), 청대(淸臺)권상일(權相一) 등
칠현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544년(중종39)에 근암서당으로 설립되었다가 이후 1669년(현종10)에 근암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868년(고종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毁撤)되었으며 1982년 지역의 유림과 배향인물의 후손들에 의해 사당과 강당이 중건된 바 있다. 2011년 지역 유림과 시민들의 염원을 담아 사당, 강당, 동·서재 등 모두 10동의 건물이 근암서원의 옛 모습대로 복설(復設)되었다.
近嵒書院(근암서원)에서 바라본 좌에서 우로 공덕산(대승사), 천주산, 앞쪽 숫돌봉이 소재지를 감싸고 있다
...12:00:13
중식은 "승춘기사식당"에서 정식 부페를 맛있게 먹었다....12:27:16
첫댓글 近嵒書院에 駐車하고 書中里 마을길로 들어서니 山北面 初入의 첫마을로 品位를 主張하는 傳統마을은 고요와 沈默 뿐이다.하얀 된서리가 낀 도랑길에서 밀차를 따라 無心히 걷고있는 村老를 보자니 惻隱之心이 절로 일어난다.昨年 3月에 이어 再次 訪問하는 길이지만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다.但只 一行中 松崗만 缺航했을 뿐이다.君子山엔 바람이 상당한 듯 樹木의 흔들임이 目擊되나 雲達支脈이 屛風 役割을 하니 溫和한 산골길을 平和롭게 걷는다.左右의 田畓은 耕地整理를 잘하여 平野地처럼 널찍하고 渴水期임에도 오싱기 논으로 水量을 充分히 머금고 있으니 門前沃畓임에 틀림없다.艸谷農場을 돌아서 迂回하는 金沙嶺에는 빈 農幕에 갖힌 犬公의 울부짖음이 山川을 울린다.芝泉里에 進入하니 北西風이 매섭다.右側 산자락엔 두릅 群落이 엄청나고 植生도 良好하다.君子嶺과 合流地點에서 牛步님의 休息이 안타까웠지만 한두리농장까지 내려오니 畜舍惡臭가 심하여 上向하여 陽地녁에서 休息하고 原點回歸하여 淸臺 權相日先生의 歸厚齋와 御筆閣을 親見하니 管理疏忽이 보여서 안스러웠다.近嵒書院도 굳게 잠겨 聖賢七賢(寓庵 洪彦忠, 漢陰 李德馨, 沙潭 金弘敏, 木齋 洪汝河, 活齋 李榘, 息山 李萬敷.淸臺 權相日님도 뵙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