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3:15 성경과 나와의 절대적 관계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지난 앞글에서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와 뱀과의 관계성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며, 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관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가지고 살아야 할 나와 성경(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성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성경을 귀히 여기고 중요시하는 자는, 그렇게 대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이는 사는 동안 성경의 능력(영혼 구원)을 체험하여 알고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하여 알고 있다는 것은, 성경이 나를 구원 하는 어떤 무시 못 할 힘을 가지고 있고, 나는 항상 그 알 수 없는 힘에 큰 영향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성경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할 수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어떤 목적의 지혜를 주는 것인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는 어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을 읽고 들을 때, 그 말씀은 주님으로 부터 나온 것이라는 말이며,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며,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기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주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떤 성격의 믿음”이냐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그저 내가 내 맘대로 믿기만 하면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내 의지에 의한 그 어떤 수동적 적인 것의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닌, 즉, 구원받을 자와 구원해줄 자가 다르고, 그 관계에 의해 발생 되는 것으로, 구원해줄 자는 능동적이지만, 구원받을 자는 피동적,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능동적 구주는 한 분이요, 그 외의 모든 인류는 피동적 구원 받을 자로서 구원받을 자가 아무리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구원을 확신한다 해도 그 확신이 자신을 구원해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물에 빠진 사람이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으면서 나는 산다, 나는 살아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살아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물에서 살아나는 길은 어떤 구원자가 와서 자신을 물에서 건져 내 줄때에 한해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란 어떤 심리적 개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그러나 실재하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를 건져 준 자를 ⌜건져 내준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구원해준 자를 ⌜믿음⌟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말은 구원해준 자는 구원할 수 있는 자로서, 구원받을 자가 그를 “구원 할 수 있는 자”로 믿을 때, 그것을 그가 가진 믿음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그가 가지고 있는 구원케 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매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데, 도대체 그 믿음이 어디로 부터 어떻게 해야 그 믿음의 은택을 입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난제 중의 난제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설교는 무조건 믿으라고 하지만 믿어지지 않은 것을 무조건 믿는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려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어리석고 무지하면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문이 부족하다든지 I.Q 가 낮다든지 하는 말의 어리석음이나 무지가 아니라, 구원에 이르기에 필요한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지혜, 즉 그러한 지혜로운 나를 만들어 주는 매체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는 말입니다.
두말 더 할 것도 없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돈 주면 살 수 있는⌜책 성경⌟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책 성경⌟은 읽는 책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듣는 책⌟입니다.
다시 말해서 “귀로 듣는다” 함은 성령과 관계된 상태에서 보고 듣는 것을 말함이요, “그냥 보고 읽기만 한다.”라는 말은 하나님 없이 나 혼자 내 눈으로 보고, 내 입으로 읽으며, 내 머리만으로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이 구원케 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구원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모든 성경은‘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동’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성령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표현을 하나님의 감동보다는 하나님의 영감이 낫고, 그보다는 하나님의 영에 의한 성경이 더 나을 듯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과 절대적 관계성을 가진 성경이기 때문에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반드시, 그리고 절대적으로 있어야 할 성경인 것입니다.
또한 성경이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반드시 그리고 절대적으로 유익한 그 유익은 앞에서 말 한대로 구원이요, 그 구원을 이루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인 것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들이 있습니까?
가르침(교훈), 훈계로서 죄를 깨닫게 하는 책망, 잘못된 것들을 수정하고 교정하여 바르게 하는 것, 그리고 의로 훈련하고 교육하는데 유익합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어떠한 사람이 되는데, 그러한 전 과정을 성경으로 해야 하고, 그래야 그 성경이 목표를 달성하는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무엇을 위해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요?
그 해답은 17절 첫머리에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게하기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하여’ 또 하나는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기 위하여’ 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란 바로 17절의 사람을 말합니다.
(딤후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먼저는 ‘하나님의 사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그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은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뜻하는데 즉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할 것이냐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 하나님에 의해 우리는 그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며, 또한 아니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인이 나가 아닌,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누가 해주느냐? 성경이 할 수 있다. 또는 능히 할 수 있는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성경과 나와의 절대적 관계⌟ 이 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성경을 “내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라고 말하면서, 14절에서 이제 너는 네가 이미 배우고 확신한 그 말씀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권면이 또 필요한 것인가요?
구원이란 지속적이고 영원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서 계속적으로 결실해야 하는 것처럼 구원 역시 말씀과의 지속적인 불가분리의 관계성 속에서만 온전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러하지 않고 무엇이 되었고 무엇을 알았다는 그것만으로 자고(自高)할 때. 13절 내용대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의 그룹에 속해 남을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무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잘려진 가지, 맛 잃은 소금처럼 말입니다.
고로 내가 세상을 떠나고 부모 형제 처자 전토를 버린다 할지라도 버릴 수 없고 떠나서는 안 되는 유일한 한 가지는 성경과 말씀이고 또 그뿐입니다. 그것은 곧 나의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성경이 여러분의 전부이신지요?
우리가 온전한 구원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성경, 곧 말씀과 관계성에 의해 되어진다는 것이 믿어지시는지요?
우리는 앞글에서 사람이 뱀과의 관계성을 살펴보았고, 유대인들이 유대 종교와 관계성을 가진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교회와의 관계성에 대하여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과의 관계성에 의한 열매가 구원으로 주어진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관계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경]을 우리의 구원이 되는 근본임을 말하면서 우리에게 그분(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성경)과 관계로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말씀과의 관계성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분을 모시고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란 주님과 관계성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과 한 몸 되어 사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