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7320E394E96EF6B2E)
뱀은 눈과 귀가 어둡다. 대신 혀가 발달했다. 혀를 날름거려 사물의 위치나 소리의 결을 파악한다. 안타깝게도 혀 없이 태어나는 뱀이 종종 있다. 뱀 사회에서는 '신의 노혀움'을 받은 그들에게 따로 의무교육을 시킨다.
보아과의 뱀, '인호'는 혀가 없다. 그는 사하라사학재단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혀 있는 뱀들이 다니는 열대 캠퍼숲에 진학했다.
대학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열대에는 호랑이, 코끼리, 악어 등 여러 종(種)이 다닌다. 매년 123456789마리가 입학해 456수 정도만 무사히 졸업한다.
점박이하이에나인 철학과 김정우 교수는 "사체과 호랑이 장교수님께서 잔반 처리 좀 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어요."하며 첫 수업을 10분 만에 끝냈다.
중간고사 기간 중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노랑아나콘다 율이는 "오빠, 나 배고파서 야식 좀 먹고 올게."하고 나가더니 상급생 악어 B양(화학과, 3학년)을 해치우고 왔다.
인호는 걱정이 되었다. '국가 보조금으로 하루에 죽은 쥐나 서너마리 겨우 먹는 내가 이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141AF8394E96EF6C43)
"저를 잡수세요."
귀가 어두우니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를 잡수세요."
반복된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큰 형체가 다가오고 있다. 50cm 앞으로 바짝 다가오자 그 몸체가 코끼리임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국문학과 1학년 이유진입니다. 인호군과 마찬가지로 특수학교를 나왔어요. 신의 로~~~~~~~~~ㅇ여움을 받았지요. 긴꼬리증후군을 앓고 있어요. 물만 마셔도 꼬리가 자랍니다. 지금 제 꼬리는 2m가 넘어요. 꼬리가 너무 길어서 맹수를 피해 다니기 힘듭니다."
코끼리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당신을 남몰래 좋아했어요. 저를 잡수세요. 제 꼬리는 뱀의 혀와 근육조직이 비슷하기 때문에 사냥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언젠가는 소화가 되겠지만, 그대의 몸속에 품어진 채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요. 부디 허락해 주세요."
인호는 고민했다. '저 착한 코끼리를 어떻게 잡아먹나, 300kg가 넘는데 삼킬 수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놓아주더라도 어차피 다른 짐승에게 잡아먹힐거잖아!'
![](https://t1.daumcdn.net/cfile/cafe/113A3B394E96EF6C1D)
인호는 전속력으로 기어갔다. 입을 벌려 유진을 꿀꺽 삼켰다. 코부터 목구멍으로 넘기니, 입 밖으로 꼬리가 내밀어졌다. 코끼리 꼬리를 앞뒤로 움직여보았다. 제법 혀 느낌이 났다.
갑작스레 혀가 생긴 인호는 먼저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격했다. "아~~~"
"유진씨, 고맙습니다. 당신 생각해서라도 착하게 살겠습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먼저 소화 되었다. 몸집이 커진 보아뱀을 누구나 겁냈다. 인호는 약자의 재롱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권력을 갖기 위해서 뭐든 했다. 사냥한 호랑이 다섯 마리를 기부하고, 자신이 수학한 사하라사학재단에 교직원으로 취업했다.
"가장 높이 올라갈테야. 모두가 나에게 벌벌 떨도록 만들거야!"
그의 열정에 코끼리 꼬리도, 몸통도 녹아가고 있었다.
주점에서 인호의 첫 출근을 축하하는 회식이 있었다. 모두가 술에 취했다. 이사장이 인호에게 말했다.
"난 자네의 눈빛이 마음에 들어. 젊은 시절에 나를 보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이사장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충성을 다한다고? 그럼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나?"
-"네,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
-"네, 시켜만 주십시요."
"음... 자네는 우리 보통 뱀에 비해 몸이 육중한데, 혹시 똬리를 틀 수 있겠는가?
-"네, 할 수 있습니다!"
인호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토역질이 나왔다. 폭탄주에 뒤섞인 코끼리 다리 한 조각. 도로 삼키며 애써 똬리를 트는 그를 보고 놀란 뱀들이 소리쳤다.
"또아리다. 또아리다! 광란의 또아리다!"
첫댓글 국문학과 1학년 이유진 = 정숙 인거죠? 갑자기 이름이 바뀌어서 헷갈렸네요...잘 읽었습니당
앗, 수정했어요. 감사합니당 ^ ^ 정신이 없었나봐요. 쓰고 한번 읽어봤는데, 몰랐었어요. ㅋㅋ
와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 비가 많이 와요. 외출할 때는 안미끄러운 신발 신으세용~~ 오늘 저녁에 이불 빨래 하려고 했는데 ㅠㅠ
ㅎㅎ초능력자님의 상상력은 참으로 유쾌해서 좋아요.
아코, 엄청 늦게 주무셨네요. 저도 좀 늦게 잠들었는데 무서운 꿈 꿔서 제대로 못잤어요. ㅜㅜ 우리집 개도 육포 사가면 꼬리부터 흔드는데 아마 개꼬리에도 혀 기능 있을 것 같아용.ㅋㅋ
매번 잘 읽고, 상상하고,,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혀 없는 뱀끼리는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하고 묻지 않고, "점심 드셨어요?" 하고만 묻는게 예의래요.
뽀통령님, 점심 맛있게 드세용. ^ ^
어쩜,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ㅜㅜㅜ혀인가요 손인가요! 전 죽었다 깨나도 없는듯 ㅋㅋ 저는 신의 노혀움(?)을 받았나봐요 ㅜㅜ ㅋㅋ 재밌게 잘 읽구 갑니당 ㅎㅎ;)
심님, 반갑습니다. ^ ^ 부록때문에 잡지 샀는데, 가을에 뱀피가 유행이라서 그림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렸는데, 뱀 한 마리를 만들기엔 모자라서 뱀 속의 코끼리를 만들고 사인펜으로 뱀을 그렸어요. 혀를 그리는데 꼬리에 이어지길래 그려놨는데... 친구가 집에 와서 "이 그림은 뭐야?" 그래서 제가 도가니 본 거랑 섞어서 막 이야기를 지어냈더니 친구가 빵터져서 글로 써보니 밸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됐습니다. ㅎㅎ
꼬리가 길다고 한들 맛을 느끼진 못할 터.. 불쌍한 코끼리ㅠ
불쌍한 코끼리 ㅜㅜㅠ뱀처럼 혀끝 갈라지게 하기 기능은 있떼요 ㅎㅎ
<번외편> 코끼리는 거짓말할 때마다 꼬리가 길어졌다. 그동안 했던 거짓말들로 더이상 감당이 안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자, 혀가 없는 보아뱀에게 내가 혀를 줄터이니 너의 뱃속에 숨겨달라고 한다. 몸이 쉽게 차가워지는 탓에 항상 겨울나기가 걱정이었던 보아뱀은 코끼리가 배에 들어가 있으면 따뜻은 할거라는 생각에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코끼리를 꿀꺽 삼킨다. 생각처럼 몸이 따뜻해 너무 행복했다.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후로 말을 할 수 있게된 보아뱀이었지만, 하는 말마다 거짓말만이 나왔다. 안되겠어서 코끼리를 다시 꺼내니, 코끼리 코가 길어지고 꼬리가 짧아졌더라~ 원래 코끼리 코는 짧았;; ㅋ
ㅎㅎㅎ 재밌어요. ^ ^ 저도 몸이 엄청 찬 편이라 겨울나기가 걱정이예요. ㅜㅜ 슈퍼에서 거스름돈 받을 때 아주머니가 손이 어떻게 이렇게 차냐며 깜짝 놀라신 적도 있어요. 그치만 눈이 오니까, 완전 근사하고 신나는 겨울! 스스슥님도 얼른 겨울 옷을 꺼내세요~
벌써 눈을 보신건가요? 겨울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부럽군요~ ㅎㅎ
아직 못봤어요.ㅜㅜ 설雪레발 쳤음 ㅋㅋㅋ 몸에 열 많은 사람들 부러워용.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