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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하겠소. 부디 이 광기를 막아줄 사람이 더 있길 바라오.”
“광기로 노동자들과 프랑스를 이끈 건 당신이지! 조레스의 피가 당신 손에 묻어 있소. 벌써 200만 명이 죽었단 말이오!”
루도빅 오스카 프로사르가 외치자 청년당원들이 동의하며 요란하게 외쳤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 SFIO의 총서기인 루이 뒤브릴은 고개를 떨구고 연단 위에서 내려왔다. 그와 함께, 뒤브릴의 지지자인 프랑스 노동총연맹의 레옹 주오 총서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나섰다.
“조레스를 기억하라! 조레스를 기억하라!”
노조원들과 당원들이 대전쟁의 개전을 반대하다 암살당한 장 조레스의 이름을 외치는 사이, 청년 당원들의 대표로 연단에 오른 마르셀 데아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를 들으며 외쳤다.
“SFIO 당원 여러분! 공화사회당 당원 여러분! 프루동 서클의 회원 여러분! 노동총연맹의 조합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프랑스의 모든 인민이여!”
데아는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오른손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프랑스의 노동계급은 더는 어떠한 종류의 전쟁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째서 프랑스의 무산계급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려야 합니까, 전쟁을 외치던 우리 수뇌부가 남긴 것은 불타 없어진 파리뿐입니다!”
데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지지자이자 스승 격이 되는 참석자들을 둘러보았다. 조르주 소렐, 구스타브 에르베, 위베르 라가르델, 에두아르드 베르트, 조르주 발루아 등이 고개를 끄덕이며 데아를 응원했다.
“오늘 우리는 신성동맹을 파기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노동자여, 단결합시다!”
*
“프랑스에서 총파업이라고…?”
레닌의 목소리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총파업이라는 단어만 듣고 좋아하던 부하린이나 트로츠키 등의 표정도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특히 조르주 소렐이라는 자가 신성동맹의 파기와 프랑스 노동계급 총파업의 배후라는 말을 듣자, 마르토프를 비롯한 멘셰비키들은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사 프랑스 정권이 뒤집히더라도, 이건 혁명이 아니라 일종의 보수주의 혁명입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국가 생디칼리슴? 민족 생디칼리슴? 어느 쪽이든 마르크스주의는 아닙니다. 차라리 죽은 불랑제가 돌아와 권력을 잡는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네사 아르망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왕당파인 악시옹 프랑세즈 정도만 알고 있던 러시아 지도부였다. 그들은 반자본주의면서 반국제주의이고 마르크스주의도 아니고 좌파와 우파도 아닌 기상천외한 집단이 프랑스를 대혼란에 빠뜨릴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저들, 그러니까 그 민족 생디칼리슴을 주장하는 자들이 우리 러시아에 적대적이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도 모릅니다.”
아르망과 함께 프랑스의 정세를 설명하던 파우코이가 입을 열었다. 반전을 외치던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가 암살당하고 찬전주의자들과 협력해 신성동맹이랍시고 전쟁수행을 적극 돕던 프랑스 노동계급이 왜 하필 지금 총파업을 선언하였는지, 그들이 왜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지,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이 총파업에 합류한 이유가 무엇인지, 파우코이는 밀려오는 업무에 눈이 깜깜했다.
“제가 받아온 정보에 따르면 우리 소비에트 러시아를 과거 러시아 제국과 동일시하여 적대하자는 분류가 있는가 하면, 7월 혁명을 우상화하고 사회유기체설에 따라 혁명을 일으켜 전체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소비에트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다는 소리군.”
“잘 봐줘도 공상적 사회주의에 불과하군요.”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정통한 보그다노프나 표도르 단이 말하자 모두가 동의했다. 아무리 논의해도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걸 깨달은 레닌은 결국 회의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모두의 마음 속에 소비에트 러시아를 '표절'한 이러한 보수주의 혁명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서서히 싹트고 있었다.
*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와 함께 프랑스에 도착한 미군은 벨기에군과 영국군을 규합해 겨우 파리를 탈환하고 독일군을 서서히 밀어내었다. 루덴도르프가 동원한 정예부대가 미군에 의해 포위 섬멸되었지만, 아무도 축하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프랑스가 공산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모두가 긴장하여 보르도의 프랑스 정부의 행동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캐나다 밴쿠버를 비롯해 협상국의 주요 도시에서 파업과 태업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 또한 문제였다. 협상국의 지도자들은 그제야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백군에 대한 지원을 줄인 것을 후회하며 어떻게든 수를 짜내어 보려 했지만, 일본군이 철수한다는 소식만이 알려졌을 뿐이었다.
“굳이 이렇게 해야겠나.”
전러시아의 수령 알렉산데르 콜차크 제독은 한숨을 쉬었다. 이르쿠츠크의 가장 큰 호텔을 빌린 화려한 연회장에서는 백군 소속의 장군들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 외면하는지 여자를 끼고 웃으며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자신의 후계자로 선포될 안톤 데니킨 장군은 적군의 배후가 프리메이슨과 유대인이라고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표트르 브란겔 남작은 이 상황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것이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있었으며, 그런 남작을 달래야 할 참모인 표트르 마흐로프는 술을 나르는 웨이트리스와 구석에서 떠들고 있었다.
‘데니킨에게 수령 자리를 양도하고, 브란겔에게 군 통수권을 주면….’ 콜차크는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음모 꾸미기 좋아하는 반쪽짜리 몽골인 그리고리 세묘노프가 자신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는 것을 알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이봐. 여기도 한 잔만 주게.”
콜차크는 마흐로프와 떠들던 웨이트리스에게서 와인 한 잔을 받았다. 잔을 건네받던 콜차크는 웨이트리스의 손에 굳은살이 박힌 것을 보고 멈칫했다. ‘농민 출신인가.’ 그는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한다고 생각하며, 총을 잡아야만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지럽군. 바람을 좀 쐬어야겠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마신 술이었지만 오히려 더 어지러워지는 느낌에 콜차크는 초겨울 바람을 쐬기 위해 발코니로 나섰다. 발코니의 난간은 낡았지만 나름의 운치가 있었고, 바로 아래의 연못에는 달빛이 비쳐 상당히 아름다웠다.
“흠. 머리가 좀….”
콜차크는 두 눈을 깜빡이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잔을 받아 가는 웨이트리스를 쳐다보았다.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웨이트리스는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콜차크는 그 눈빛에서 강렬한 증오 같은 것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보게. 궁금한 게 있네.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콜차크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웨이트리스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대답했다.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으나, 누가 질지는 알 것 같습니다. 당신입니다, 반역자.”
콜차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너무 낡아 있던 발코니 난간이 빠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연못으로 추락하면서도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수령께서 추락하셨다!”
“의사를 불러, 의사를!”
콜차크가 입에 대었던 잔과 독이 든 와인병을 모두 챙긴 붉은 군대의 중대장 마리아 포포바는 마흐로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연기하던 마흐로프는 술에 진탕 취한 듯 비틀거리며 포포바의 허리에 손을 얹고 혼란을 틈타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
“아무것도 서명하지 마시죠.”
“어. 무슨 뜻이오?”
일리야는 표트르의 잔을 채워주고는 말을 이어갔다.
“의용군단 정치위원인 저와 즈다노프 위원의 지시로 이뤄진 일로 전부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이번 사안에서는 베리야라는 그 친구의 말을 따르고 싶군요.”
“튀르크인들을 죽이고 약탈하라는 말이오, 형?”
표트르가 눈에 띄게 당황하자 일리야는 자신의 잔을 채웠다.
“아무한테나 그러지는 말고. 규정을 정해주죠. 자캅카스 저항군과 러시아 의용군을 가리지 않고 붉은 군대에게 저항하였거나, 다른 민족을 학살, 약탈, 납치, 학살에 협조한 혐의가 있는 자. 그러한 이들을 숨겨준 혐의가 있는 자.”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마을이 걸리잖소. 더군다나 베리야 그 녀석은 어린아이가 돌을 던져도 반역자라고 주장한단 말이오!”
“그렇다면 우리의 표트르 사령관은 그러한 튀르크인들의 편에 서고 싶은 겁니까? 대부분이 학살에 가담한 민족을 상대로?”
표트르는 말문이 막히자 술을 병째로 마구 들이켰다. 조지아산 와인이 빈 채로 몇 병이나 방바닥에 굴러다녔다.
“표트르. 자네는 아무 책임도 질 게 없어요. 명령은 내 명의로 내려가고, 집행도 정치위원들이 할 테니까. 그냥 자네는 그러한 집행 때 병사들의 차출만 묵인하면 되는 것이고.”
“수사를 한 다음 재판을 열어서 처벌하면 되지 않소?”
“누구한테 재판을 맡길 겁니까? 영국의 제국주의자들? 학살 좋아하는 튀르크의 수뇌부? 아니면 정말로 아무나 다 죽여버릴 자캅카스의 지도부? 표트르. 나는 더 많은 튀르크인이 죽는 걸 막으려는 거지 학살과 약탈을 즐기려는 게 아닙니다.”
‘아르메니아 혁명연방의 지지를 받으려는 목적은 있지만.’ 일리야는 마지막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표트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일리야 형, 아니, 우스트랼로프 정치위원 동무. 이게 우리가 원한 혁명이오?”
“나로선 그래요, 표트르. 왜냐면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으니까.”
‘예를 들면 소비에트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인들을 팔아넘기고 튀르크와 강화를 맺는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일리야는 이번에도 자기 생각을 언급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그 사이,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들렸다.
“우스트랼로프 동무! 지도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와 보시죠!”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표트르. 아니, 사령관 동무. 잘 생각해 봐요.”
일리야가 막사를 나설 때까지 표트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 표트르는 막사 저편에 걸린 레닌의 초상화와 레닌이 직접 글씨를 적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적힌 군기를 멍하니,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
유럽이 어떻게 될지 감이 오시죠…?
마리아 안드레예브나 포포바는 바실리 차파예프가 이끌던 부대의 간호사 출신 기관총 사수로, 내전 당시 적기훈장을 받은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입니다.
브란겔의 참모 표트르 세묘노비치 마흐로프는 실제로 후일 사회주의에 감화되어 소련을 지지합니다.
첫댓글 곧 뭐가 터질 분위기...
이바닥은 지옥이야...! 근데 현실적으로는 일리야 안이 국가를 운영하는데는 괜찮겠죠. 당연히 제가 사는 나라라면 사양입니다만(..)
이러면 표트르의 앞으로 행할 행동들의 계기도 당시 플레이어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지겠네요. 지금까지는 비교적 비슷해서 정감갔건만... 어쩔수 없지(?)
이건 사족입니다만, 표트르의 상활이 rp 때 되었으면 하는 상황과 비슷하게 되어서 원래 의도한 바대로 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표트르도 배운게 없는 것이지 근본부터 멍청한(......) 캐릭터는 아니니 나름대로 자기 소신대로 가게 될 겁니다
"참 불쌍타" - 호이4 그레이트 워 리덕스 모드에서 조레스 사망 뉴스가 떴을때 나오는 반응
+ 우스트랼로프가 점점 흑화해 가는구나...
일리야는 볼셰비키의 1인 독재와 반대파에 대한 무차별 탄압을 우려하고 있는데(실제로 그게 소련이 간 루트죠 레닌시절부터), 정작 그걸 '막기 위해서' 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죠.
@렌지파일 사실 전 이런 흑화물을 전 좋아합니다. 주인공이 처음 자신의 신념과는 다른 신념에 물들며 변해가는 이런 것이 아주 맘에 들어요.
@카라멜 마끼아또 더 중요한건, 정작 자기는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죠..
@렌지파일 뭘 좀 아시는군요. 자기가 변하지 않고 처음과 같다고 생각하는게 흑화물의 올바른 루트 중 두 번째로 옳은 루트죠.
피카레스크물 맛집이군요… ㅎㅎㅎ
+ 마차, 와인, 테라스는 역시 국룰! 20세기지만 크킹의 법도를 어기지 않는군요!
마차를 넣기 애매하더라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