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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荀子)
글 신영복/성공회대 교수
순자’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살펴본 다른 제자백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대 사회에 대한 순자의 문제의식을 먼저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이 오늘의 사회적 과제에 대하여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접근이 ‘순자’를 재조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자는 대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하학파(稷下學派)의 제주(祭主)였다고 합니다. 직하학파는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에 있는 학자단지(學者團地)로서 당시 학문의 중심지이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학파였습니다.
제나라 수도 임치는 폭 4km 전장 20km의 넓이를 가진 대단히 큰 성이었으며 모두 13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서문(西門)을 직문(稷門)이라고 했습니다. 이 직문 부근에 학자단지가 조성되었던 것이지요. 잘 알려진 ‘관자(管子)’가 바로 이 직하학자들의 선집(選集)입니다.
이 직하학파의 제주란 물론 제사의 책임자이지만 학문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대학자라는 의미입니다. 제나라에서도 그를 매우 존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순자에 관해서는 그의 친필로 추정되는 ‘순자’ 32편을 남기고 있는 것 이외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업습니다. ‘사기’에도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자(荀子)의 생몰연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전국시대 말기인 대체로 BC 313-238이 통설입니다. 이름이 황(況), 자(字)는 경(卿), 또는 손경(孫卿)이라고도 하며, 제(齊)나라의 직하학궁(稷下學宮)에서 오랫동안 학문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여 제주를 3번씩이나 역임하였으나 후에 모함을 받아 초(楚)나라로 가서 난릉령(蘭陵令)을 역임하였으며,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의 학문적 권위나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에 비하여 남아있는 자료는 매우 소략합니다. 그가 유가의 이단(異端)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당연히 그 이단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에 쏠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순자사상의 특징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통유가의 성격을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 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유학(儒學)은 객관파(客觀派)의 갈래와 주관파(主觀派)의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天理)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소위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孟子)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기학파(氣學派)와 이학파(理學派)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순자는 예(禮)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덕(德)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계승하여 예(禮)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禮)는 공자와는 달리 선왕(先王)의 주례(周禮)가 아니라 금왕(今王)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禮)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국(戰國) 말기가 급격한 변혁기였음은 물론입니다. 순자의 예는 법(法)의 의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를 법가(法家)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성립하는 것이지요. 아마 전국 말기의 상황에서는 순자의 주장이 패자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가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와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재상(宰相) 이사(李斯)가 순자 문하의 제자들이지요.
‘순자’의 사상영역도 물론 광범위합니다만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것은 그의 법제(法制)사상입니다. 그리고 성악설(性惡說) 등 그것과 관련된 것에 한정하기로 하겠습니다.
순자가 유가학파로부터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그의 천론(天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천(天)은 물리적(物理的) 천(天)일 뿐이었습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일 뿐입니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유가의 정통적 천인 도덕천(道德天)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는 종교적인 천, 인격적인 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순자의 탁론(卓論)입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유가의 정통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정통 유가와 결정적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바로 순자의 천론(天論)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天)과 인(人)은 서로 감응하지 않는 별개의 존재입니다.(天人二分) 천(天)은 자연(自然) 음양(陰陽)일 뿐입니다. 천(天)은 천명(天命), 천성(天性), 천리(天理)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순자의 주장입니다.
星隊木鳴 國人皆恐 曰 是何也 是天地之變 陰陽之化 物之罕至者也 怪之可也 而畏之非也(天論)
“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울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이 무슨 일인가? 한다. 이것은 천지와 음양의 변화이며 드물게 나타나는 사물의 변화일 뿐이다. 괴상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두려울 것은 없다.”
성대(星隊)는 ‘星墜’로 해석됩니다.
목명(木鳴)은 폭풍이 몰아쳐서 나무가 넘어지고 찢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요컨대 천재지변이란 자연의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 순자의 천론입니다. 천은 물리적 천입니다. 부연 설명하는 것보다 ‘순자’의 원문을 몇 가지 더 소개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天行有常 不爲堯存 不爲桀亡 應之以治則吉 應之以亂則凶 彊本而節用 則天不爲貧 養備而動時 則天不能病 修道以不貳 則天不能禍
“하늘에는 변함 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요순같은 성군(聖君)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걸주(桀紂)와 같은 폭군(暴君)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바르게 응하면 이롭고 어지럽게 응하면 흉할 뿐이다. 농사를 부지런히 하고, 아껴 쓰면 하늘이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기르고 비축하고 때맞추어 움직이면 하늘이 병들게 할 수가 없으며, 도를 닦고 마음이 흩어지지 않으면 하늘이 재앙을 줄 수 없는 것이다.”
天不爲人之惡寒也輟冬 地不爲人之惡遼遠也輟廣 君子不爲消印之匈匈也而輟行 天有常道矣 地有常數矣 君子有常體矣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어 가는 법이 없으며, 땅은 사람이 먼 길을 싫어한다고 하여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군자는 소인이 떠든다고 하여 할 일을 그만 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는 변함 없는 법칙이 있으며 땅에는 변함 없는 규격이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함 없는 도리가 있다.”
위 두 문장에서 순자의 천은 하등의 의지(意志)가 없는 물리적 천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다만 끝에 수도(修道)와 군자(君子)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 순자가 유가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순자는 유가(儒家)의 천(天)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이단으로 배척당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천관(天觀)에 의거하여 순자는 인간의 적극의지를 주장합니다. 그러한 주장이 다음의 문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大天而思之 孰與物畜而制之 從天而頌之 孰與制天命而用之(天論)
“하늘이 위대하다고 사모하는 것과, 물자를 비축하여 하늘을 제어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하늘에 순종하여 그것을 칭송하는 것과 천명을 통제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대천(大天)의 ‘大’는 동사로 읽습니다. 위대하다고 하는 것, 크다고 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숙여(孰與)는 x과 x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라는 뜻입니다.
순자는 인간의 능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천(天)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천론은 당시의 생산력의 발전, 그리고 천문학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개인의 사상이란 크게 보아 사회적 성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지요.
天有其時 地有其財 人有其治 夫是之謂能參
舍其所以參 而願其所參 則惑矣(天論)
“하늘에는 사시(四時)의 운행이 있고, 땅에는 자원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다스림이 있다. 이 다스림을 능참(能參)이라고 한다. 사람이 (천지와 동등한 자격으로 나란히) 참여할 수 있는 소지를 버리고(舍), 천지와 동등한 자격을 기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환상(惑)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순자의 능참은 ‘실천론(實踐論)’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이것은 유가학파의 공통된 입장으로서 문화사관(文化史觀), 발전사관(發展史觀)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聽天由命)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人定勝天)이 바로 순자의 체계입니다.
하늘(天)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객관적인 운동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의지로써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람은 능참 즉 주체적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순자는 결국 유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천론(天論), 능참론(能參論), 중민론(重民論) 등 적극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결국 같은 결론에 귀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순자는 입장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세습귀족이 아닌 신흥 관료지주를 대변한다는 사회적 입장에서만 차이를 보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순자사상은 실제에 있어서 공자나 맹자에 비하여 훨씬 더 현실적이었으며 당시의 패자(覇者)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노장(老莊)의 입장과는 근본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의 적극의지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런 점에서 귀(歸)를 설파하였던 노장과는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지요. 원시유가(原始儒家)의 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순자의 체계에게 있어서 하늘을 칭송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의 도리 여하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순자의 체계에 있어서 지인(至人)이란 장자의 경우와 달리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구별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明於天人之分) 사람입니다.
순자는 결코 하늘을 단순화하거나 그 존재를 격하시키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늘의 신비스러운 작용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아는 것은 다만 이루어져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하며 그 보이지 않는 무궁한 세계는 알 수 없다는 것(皆知其所以成 莫知其無形)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천공(天功)은 알 길이 없는 것이며, 성인은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범부들이나 하늘을 알려고 무리하게 지혜를 짜낸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순자의 주장에서 우리는 한 개인의 사상이나 한 학파의 사상이 다른 것과 어떻게 구별되고 동시에 어떻게 침투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순자에게 있어서 하늘을 안다(知天)는 것은 하늘의 무한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교(大巧) 즉 뛰어난 장인(匠人)은 손대지 않고 남겨두는 데에서 그 진가(眞價)를 발휘하며, 뛰어난 지자(大智)는 생각을 남겨두는 데에 그 진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겨두는 것’은 천의 법칙을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천(知天)은 지기(知己)와 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이 순자를 그 이단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역시 유가로 분류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말했습니다. 학파는 결국 관점과 강조점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천론(天論)’과 ‘천명론(天命論)’의 차이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순자가 천명론(天命論)에서 명(命)을 제거함으로써 인(人)을 제자리에 놓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조금 추가해두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소위 유가의 정통에 관한 것입니다. 유가의 정통은 도통(道統)계보가 만들어지면서 확정됩니다. 당말(唐末)의 한유(韓愈) 이고(李 등 유학자들이 불교와 노장사상을 비판하고 유학을 유신(維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 송대의 주자(朱子)에 이르러 완성됩니다.
도통이란 말도 주자가 장구(章句)한 ‘중용’ 서문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도통계보에서 순자가 제외되었던 것이지요. 순자가 유가의 이단으로 규정되는 것은 바로 이 도통계보에 순자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유가의 도통은 저도 어릴 적부터 할아버님으로부터 뜻도 모르고 자주 듣던 ‘요순우탕문무주공(堯舜禹湯文武周公)’이 그것인데 주공 이후 공자(孔子)-안자(晏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맹자 이후로는 천년을 건너뛰어 주렴계(周濂溪)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주희(朱熹)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물론 이 도통계보는 사제지간의 직접적인 전수를 기준으로 하지도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불교의 도통계보는 직접 의발(衣鉢)을 전수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유가의 도통계보도 불교의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와 달리 직접적인 학문의 전수가 아니라면 문제는 도통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였는가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완성한 주희에 이르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이학(理學)의 발전과정으로 국한시키고 있습니다. 주희의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이학(理學)입니다. 주희는 사서의 주석도 이학의 입장에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理)는 물론 매우 복잡한 철학적 주제이지만 쉽게 이야기한다면 바로 천(天)입니다. 이(理)는 천리(天理)입니다. 모든 사물에 반드시 내재되어 있으며, 세상을 관통하고 있는 최고의 원리이고 규범이고 이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이며 천리입니다.
순자가 이 천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도통계보에서 밀려나는 결정적 이유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해야 되는 것은 순자의 천론(天論)이 갖는 의미가 그만큼 결정적이라는 것이지요.
순자가 천론에 이어서 교육론(敎育論)을 전개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수순입니다. 명(命)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교(敎)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함께 읽으려고 하는 성악설(性惡說)의 위치가 바로 이곳입니다. 천명(天命)을 전제하고 성선(性善)을 전제하는 맹자의 체계에서는 그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고(復), 그 선한 가능성(善端)을 확충함으로써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선성(善性)과 선단(善端)을 하늘로부터 이끌어 낼 수 없는 순자로서는 당연히 능참(能參)이라는 적극적 참여가 요구되며, 교육이라는 외적 기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논리 속에 순자의 소위 성악설(性惡說)이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악설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이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性)은 선악(善惡)이전의 개념입니다. 선(善)과 악(惡)은 사회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성(性)과 선악(善惡)을 조합하는 개념구성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천(天)과 천명(天命)을 부정한 순자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본성(本性)이라는 개념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敎育論)과 예론(禮論), 제도론(制度論)을 전개하는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제거를 실천적 과제로 삼았던 순자가 그의 주장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천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성선설의 관념성을 비판하는 것이 바로 순자의 성악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 성악편을 읽어보기로 하지요.
人之性惡 其善者僞也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 故爭奪生 而辭讓亡焉 生而有疾惡焉 順是 故殘賊生 而忠信亡焉 生而有耳目之欲 有好聲色焉 順是 故淫亂生 而禮義文理亡焉 然則 從人之性 順人之情 必出於爭奪 合於犯分亂理 而歸於暴(性惡篇)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선이란 인위적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남을 해치게 되고 성실과 신의가 없어진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음란하게 되고 예의와 규범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을 따르고 감정에 맡겨버리면 반드시 싸우고 다투게 되어 규범이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서 드디어 천하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
위의 글에 이어서 순자는 사람은 사법(師法)의 도(道)에 의하여 인도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자가 성악설을 예론(禮論)의 근거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든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든 우리는 본성론(本性論)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선악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社會)로써 자연(自然)을 재단하는 이른바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천성과 천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사회론을 전개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선악판단 이전의 것입니다.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On Human Nature)’에 의하면 본성은 선악판단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윌슨의 주장이 극단적 환원주의(還元主義)라고 비판되고 있습니다만 나는 그의 이론이 본성문제에 있어서 훨씬 논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DNA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 DNA는 40억 년 전에서부터 몇 억년 전에 이르기까지의 어느 시점, 또는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RNA와 단백질이라는 2개의 독립적인 반생명권(半生命圈)에서 성립한 것으로 기막히게 성공적(?)인 화학물질(化學物質)이라는 것이지요.
수십억 년에 달하는 지구상의 생명의 역사는 바로 이 DNA라는 물질의 운동이며 이 물질의 일대기(一代記)라는 것이지요. 윌슨에 있어서 본성이란 이 화학물질의 운동상의 특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DNA야 말로 가장 원초적 생명이며 그런 점에서 곧 본성입니다. 그야말로 ‘불멸의 나선’(immortal coil)입니다.
이 DNA는 생명(生命)의 존속(存續)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개체의 존속과 개체를 넘어선 존속, 즉 생존(生存)과 유전(遺傳)과 번식(繁殖)이 유일한 운동원리입니다.
윌슨은 아주 재미있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명쾌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윌슨의 체계에 있어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명백합니다. 단연 계란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닭은 계란 속의 DNA가 자기의 유전과 번식을 위하여 만들어 낸 생존기계(survival machine)일 뿐입니다. 닭은 DNA 유전과 번식을 위하여 만들어진 중간(中間) 매개체(媒介體)일 뿐입니다. 계란 속의 DNA가 자신의 유전과 번식을 보다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계란을 만들어내야 하고, 많은 계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중간 매개체로서 닭을 만드는 것이지요. 닭은 계란의 생존기계(生存機械)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윌슨 이론의 핵심입니다.
윌슨의 이론에 의하면 DNA는 비단 닭만을 만들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도 이 DNA의 유전과 번식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식욕과 성욕이 이 DNA의 활동인 것은 물론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활동도 DNA의 유전과 번식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인간의 정신활동이란 일정한 수의 화학 및 전기반응의 총체적 활동을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인간의 이성(理性)은 그러한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성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 희생, 정직, 종교, 예술 등 일체의 정신적 영역도 이 DNA로부터 연유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결혼제도는 물론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건설하는 모든 사회적 현상도 일단 DNA의 운동으로 환원됩니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사회과학을 통합하리라고 예상되기도 합니다.
윌슨은 매우 흥미로운 임상경험들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만 예를 들어 근친혼(近親婚)을 금하는 사회적 관습에 대해서도 동일한 논리로 비판합니다.
지금까지 근친혼은 사회적 관점에서 설명되어 왔습니다. 공동체 내의 위계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또는 다른 부족과의 정략결혼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론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윌슨은 임상경험을 통하여 그것이 DNA의 운동이라는 점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열성유전(劣性遺傳)을 기피하는 DNA의 운동이라는 것이지요.
사회과학이 생물학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 학자들로부터 지나친 유물론적 환원주의라는 비판받고 있습니다만 장황하게 ‘윌슨’을 소개하는 까닭은 윌슨의 이론에 대한 찬반의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가 본성을 선악판단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저급한 논의인가를 반성하자는 것이지요.
‘묵자’편에서 소개됐다고 생각합니다만 묵자는 인간본성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白紙)와 같은 것입니다. 묵자는 소염론(所染論)에서 인간의 본성은 물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이론이나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맹자의 성성설이나 순자의 성악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귀납적으로 구성한 개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맬더스의 인구법칙(人口法則)도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식량은 산술급수로 증가하는 데에 비하여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따라서 기아와 빈곤, 전쟁 과 질병에 의한 사망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위생을 개선하려고 하거나 질병을 치료하려는 고상하지만 잘못된 애정을 거두어들일 것을 맬더스는 결론으로 내리고 있지요.
빈곤과 기아는 자연법칙이며 이에 개입하는 것은 도로(徒勞)라는 것이지요. 맬더스의 ‘인구론’은 사회개혁의 열망을 잠재우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과학이라는 옷을 입히는 것이었지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주장을 내장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데올로기에 법칙의 의상을 입히는 구조입니다. 순자의 성악설도 그런 점에서 같은 구조입니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논리의 일환입니다.
순자의 이론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禮)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惡)한 성(性)을 교정함으로써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仁義)와 법도(法度)를 알 수 있는 지(知)의 바탕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선단(善端)을 갖추고 있다는 맹자의 주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인간에 대한 불신(不信)이나 절망(絶望)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철학자(人文哲學者)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순자의 논리에 따라 먼저 예론(禮論)을 검토하고 연후에 교육론(敎育論)을 읽기로 하겠습니다. 그것이 순서지요. 자세하게 번역하거나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순자사상의 체계와 전체적 구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禮起於何也 曰 人生而有欲 欲而不得 則不能無求 求而無度量分界 則不能不爭 爭則亂 亂則窮 先王惡其亂也 故制禮義以分之 以養人之欲 給人之求 使欲必不窮乎物 物必不屈於欲 兩者相持而長 是禮之所起也 故 禮者養也(禮論篇)
“예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면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하게 되고 혼란하게 되면 사회가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옛 선왕이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의를 세워서 분별을 두었다.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이 예(禮)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란 기르는 것이다.”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이론입니다. 첫째 예란 물(物)을 기르는 것(養)이며 둘째 그 물(物)로써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되 물질의 생산과 소비에 일정한 한계를 두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禮)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예란 당연히 사회의 제도와 규범입니다. 제도와 규범이 분계(分界)를 세워서 쟁란(爭亂)을 안정적으로 방지한다는 것입니다. 순자의 예는 후에 법(法)이 됩니다. 순자의 가장 큰 공헌이 바로 이 예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禮)를 새롭게 정의하였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예(禮)는 공자(孔子)의 예(禮)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흔히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공자의 예가 주례(周禮)이고, 순자의 그것은 전국시대의 예이기도 합니다. 이 전국시대의 예가 바로 법(法)으로서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禮)에 도덕적인 내용 이외에 강제라는 법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자의 예론은 전국말기의 현실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이 등장한 신지주층(新地主層)과 상인계층(商人階層)의 이해관계와 그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사활적인 패권경쟁을 치르고 있는 패자들에게 왕도(王道)와 인정(仁政)은 고매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우원(迂遠)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국(戰國)통일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유명한 상앙(商鞅)이 진 효공(孝公)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상앙이 왕도(王道)를 개진하는 동안 줄곧 졸고 있던 효공이 패도(覇道)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벌떡 일어나 다가앉아 경청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맹자편에서 읽었지요. 맹자가 양 혜왕을 만났을 때, 왕이 제일 먼저 주문한 것이 바로 "당신은 어떻게 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소?"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의(仁義)의 정치론은 이미 공자당시부터 제후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겐 유가의 주장이 그야말로 “공자 맹자 같은 소리”였습니다. 공자의 주유(周遊)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지요. 유가는 당시의 제후들에게는 왕도를 표방하는 장식적 의미 정도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논어’편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유가는 그들의 사상에 만세의 목탁(木鐸)이라는 초역사적 의미부여를 하였습니다. 이 점에서 현실론으로 기울어버린 순자는 이단(異端)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순자의 이러한 현실론은 논자에 따라서는 유가의 발전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맹자가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초도덕적 가치(價値)를 지향하고 천명론이라는 종교적 편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오히려 보수적이었다고 평가됩니다.
이에 반하여 순자는 사회적 통제(統制)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천명(天命)을 비판하고 관념적 잔재를 떨어버렸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순자사상은 실제로 유가의 예치(禮治)사상으로부터 법가의 법치(法治)사상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순자의 제자 중에는 한비(韓非)와 이사(李斯) 등과 같은 유명한 법가가 배출되었다는 것도 이러한 성격을 잘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순자사상은 현실인식과 인간이해에 있어서 냉정한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그러한 냉정함을 바탕으로 하여 전통적 관념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명하게 단절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순자의 냉정함은 그의 문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순자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보다는 뜻의 창달(暢達)에 주안을 두었으며, 논설기능을 가일층 발전시켜 그의 글은 논리가 정연하고 주장이 분명한 위에 전체적인 구성에도 짜임새가 있는 것으로 정평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천론(天論)’ ‘성악(性惡)’편은 고대 논설문의 규범이 되어 이후의 논설문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순자의 예론에서 우리는 예의 기원과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를 안정적으로 작동케 하기 위해서 그는 제도와 법 이외에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도량(度量)과 분계(分界)가 안정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교육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순자의 교육론입니다.
순자는 이미 사람은 예의와 분계를 인식할 수 있는 지(知)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수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매우 긍정적 인간관을 피력해 두고 있습니다.
君子曰 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氷水爲之 而寒於水 木直中繩
輮以爲輪 其曲中規 雖有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故木受繩則直
金就礪則利 君子 博學而日三省乎己 則智明而行無過矣 故不登高山
不知天之高也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文之大也 (勸學)
처음의 ‘군자왈(君子曰)’의 군자(君子)는 순자(荀子)와 같은 뜻으로 읽습니다. ‘군자가 말하기를’로 번역하지 않고 ‘나는 말한다’로 읽는 것이 통설입니다.
“나는 말한다. 학문이란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풀에서 뽑은 것이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먹줄을 받아 곧은 나무도 그것을 구부려서 둥근 바퀴로 만들면 콤파스로 그린 듯 둥글다. 비록 땡볕에 말리더라고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 단단히 구부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하면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꺼운 줄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선비는 선왕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여러분들에게도 매우 귀에 익은 것입니다. ‘순자’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권학편(勸學篇)’의 첫 구절입니다. 유명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출전이기도 하지요.
학습과 교화를 강조한 교육철학의 선언입니다. 곧은 나무를 휘어서 바퀴가 되게 하는 것을 유(輮)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리고 바퀴가 예전처럼 다시 펴지지 않는 것도 이 유(輮)의 효과입니다. 그리고 나무를 곧게 만드는 것도 교육이며 쇠를 날카롭게 벼르는 것도 교육의 역할입니다.
인간사회의 문화적 소산(所産)은 사회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회조직이 바로 예(禮)입니다. 그리고 그 예가 곧 제도와 법입니다. 이러한 제도와 법을 준수하게 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더 푸르게 만들고, 둥글게 만들고, 곧게 만들기도 하고 날카롭게 벼르기도 하는 것 이것이 교육입니다.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욕구충족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고 있다고 하는 성악적 측면이 교육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성인이나 폭군이나, 군자나 소인이나 그 본성은 같은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인간관이 되고 있습니다.(凡人之性 堯舜之與桀跖 其性一也 君子之與小人 其性一也 塗之人可以爲禹. : 性惡篇)
인간에게 선단(善端)은 없지만 인간은 인(仁) 의(義) 법(法) 정(正)을 알 수 있는 지(知)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能力)을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교화(敎化)될 수 있으며 또 본성은 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교육학이며 순자의 사회학입니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까닭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蓬生麻中不扶而直 白沙在涅與之俱黑(勸學)
이 구절은 순자의 교육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 구절입니다.
“쑥이 삼 속에서 자라면 부축하지 않아도 곧게 되고 흰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지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자’의 이 구절은 일반적 교육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제도와 규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순자가 맹자에 비하여 인간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순자는 예(禮) 즉 제도의 의미를 높게 평가함으로써 오히려 맹자에 비하여 문화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순자의 인문사상이며 발전사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가가 치인(治人)에 앞서서 수기(修己)를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치인(治人)이 순자의 체계에서는 예(禮)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수기(修己)보다는 치인(治人)을 앞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양에 앞서 제도의 합리성과 사회적 정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인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개량주의적이기보다는 개혁주의적입니다. 훌륭한 규범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도덕성의 근원을 인간의 본성에서 찾는 맹자가 주정주의(主情主義)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사회제도에서 찾는 순자는 주지주의(主知主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순자의 이와 같은 진보적이고 신선한 관점이 매우 놀라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논의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 선도(鮮度)가 떨어지는 점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충격인 것은 그에게 일관되고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입니다. 순자를 성악설의 주창자로서만 알고 있던 우리들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울 정도의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보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에게서 훨씬 더 짙은 인간주의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도(人道)와 인심(人心)입니다. 천도(天道)와 천심(天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天地之道)가 아니라 사람의 도(人之所道)일 뿐입니다. 순자의 이론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그는 성인(聖人)이라면 하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자기의 내부에 있는 것을 공경할 뿐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주의 인본주의가 감상적으로 피력되지 않고 냉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순자의 예론(禮論)를 이야기하면서 한 가지 빠트려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순자의 악론(樂論)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음악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예론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예’란 마치 훌륭한 음악과 마찬가지로 천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순자’의 악론편(樂論篇)을 음악론으로만 읽는다면 순자의 음악에 대한 견해는 매우 편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악은 사람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 그렇습니다. 음악을 다른 것의 수단(手段)으로 삼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순자’의 악론편(樂論篇)은 음악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예론(禮論)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순자가 음악을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즐겁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즐겁고 감동적인 예(禮), 나아가서 즐겁고 감동적인 법(法)을 구상하는 것이지요.
즐거움이 지나쳐서 그 도를 이탈하고 혼란하게 되는 것은 물론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예(禮)는 근본에 있어서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이례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순자의 예(禮)는 그처럼 유연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순자는 예론에서 예(禮)는 기르는 것(養)이라고 하였습니다. 순자의 예가 곧 법이 되는 것임은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순자는 법이란 무엇을 금지(禁止)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의 잠재력을 길러내는 것이며 ‘법(法)’이란 글자 그대로 물(水)이 잘 흘러가도록(去)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순자의 악론편(樂論篇)은 대체로 묵자의 비악론(非樂論)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악론편의 핵심적인 내용은 ‘화순(和順)’입니다. 분계와 법과 규범과 제도라는 각박하고 비정한 것들을 음악으로 화순시키는 것입니다. 악론편을 좀 더 읽어보기로 하지요.
“무릇 음악은 사람의 감정에 파고듦이 깊고, 사람을 감화시키는 속도가 빠르다. 그러므로 선왕이 형식을 신중히 하신 것이다. 음악이 조화롭고 평온하면 백성이 화락하되 질탕한 데로 흐르지 아니하고, 음악이 엄숙하고 장중하면 백성이 정직하여 어지럽지 아니하다.”(夫聲樂之立人也深 其化人也速 故先王謹爲之文 樂中平 則民和而不流 樂肅莊 則民弟而不亂)
“음악이란 사람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다.”(故樂者 治人之盛者也)
“음악이란 천하를 고르게 하는 것이며, 화목하게 하는 것이며, 사람의 정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왕이 음악을 만든 것이다.”(故樂者 天下之大齊也 中和之紀也 人情之所必不免也 : 악론편)
더 예시하지 않겠습니다만 순자가 악론을 전개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자는 법과 제도적 통제가 가져올 폐단을 경계하였던 것이지요. 나아가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를 계승한 법가의 이론이 바로 이 점을 간과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가 단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라고 하는 것이지요.
이 점과 관련하여 여러분은 상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왕이 예의를 세워서 분별을 두는 이유는 물론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순자가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소극적인 사회질서가 아닙니다.
예로서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함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하여야 하며 이것이 예(禮)의 기원이라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 부분의 의미를 결코 가볍게 읽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끝으로 순자가 열거하고 있는 난세의 징조를 소개함으로써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만 하필이면 악론편에서 난세(亂世)의 여러 가지 징조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의 우리 현실과 비교해서 읽기 바랍니다.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 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쫓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이 거칠다. 그 문장이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養生)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시대에는 이와 반대이다.”(亂世之徵 其服組 其容婦 其俗淫 其志利 其行雜 其聲樂險 其文章匿而采 其養生無度 其送死瘠墨 賤禮義而貴勇力 貧則爲盜 富則爲賊 治世反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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