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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2일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5
그때에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21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3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오늘 복음을 대하면서 요한 사도는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아 부럽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나타내기를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 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은 누구든지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며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도 정말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으며,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언제나 머물고 싶습니다. 그것도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받고 싶고, 그렇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 나이에 무슨 주책없는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랑은 나이와 관계없고, 친하고 싶은 감정은 나이에 비례해서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꼭 시소와 같아서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면 정신적으로 사랑은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적으며,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표현한 요한 사도는 이 말씀을 적을 때는 이미 70이 넘은 노인이었을 텐데도 이렇게 기쁨에 넘쳐 소년처럼, 청년처럼 사랑에 대해서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을 또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상만 해도 그가 얼마나 주님의 사랑을 받았는지, 그리고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주님과 얼마나 친했는지 많은 제자들의 질투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요한 사도에 대해서 주님께 여쭈어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무조건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복음을 대하는 나도 질투를 느낄 지경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주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주님과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는 방법에 대하여 요한 사도를 통해서 꾀 약은 방법으로 알아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께 친해지는 방법을 아주 구체적이며, 재미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여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 15-20)
우리도 주님을 정말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적지근하게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구설수에 오를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랑 방식은 잘못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자신이 가증스럽기도 하답니다. 주님은 적극적으로 우리의 가슴에 대고 두드리십니다. “나다, 문을 열라, 그리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 내 가슴에 기대어 살도록 너를 찾아서 왔단다. 자 어서 문을 열어라, 너와 먹고 마시기 위해서 내 살과 피를 가지고 너를 찾아왔단다.”
요한 사도는 주님과 친해지는 방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님으로부터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금을 뽑아내기 위해서 금광석을 아주 뜨거운 제련소의 불로 제련을 하고, 아주 정교한 세공사의 세공을 거쳐 정련된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세상의 온갖 시련을 견디며, 죽기까지 견디며, 모든 시련을 달게 받으며,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치는 시련과 단련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비싼 대가를 주고, 적극적인 투자를 해서 주님의 정련된 금을 사야합니다. 경영학적으로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을 총 동원해서 사랑의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보화를 많이 사 두어야 합니다. 아마 지금 내 하늘나라 창고는 텅텅 비어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주님으로부터 흰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깨끗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의 흰옷은 금방 더러워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얼룩지고 더러운 우리의 삶에서 깨끗해지는 방법은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더러운 죄에서 벗어나 지고지순한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용서받고 주님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용서를 청하여 받아서 현성용에서 보여주신 빛나는 흰옷을 주님으로부터 선사받아야 합니다. 지은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여 받아서 새롭게 흰옷을 입어야 수치스러운 알몸을 감출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주 비싼 옷을 선물하시려고 고해소에서 안달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룩지고 더러운 옷을 입기 위해서 줄을 서고, 목을 길게 빼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고해소를 가기 싫어한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흰옷은 언제나 보이지 않습니다.
세 번째 주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약은 통회의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슬퍼하면서 다시 돌아와 사랑하게 해달라고 흘리는 눈물입니다. 세상으로부터 눈멀고, 주님의 사랑에 눈을 떠서 주님을 바로 볼 수 있듯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을 전부 깨끗이 씻어버리는 눈물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면서 쏟아내는 통회와 회한의 눈물입니다. 주님의 안약을 사서 눈에 넣어보셨습니까? 뿌옇게 내 눈을 가린 모든 것을 전부 씻어버리는 안약을 사서 사랑의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잘못한 모든 것을 뉘우치며 슬피 울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부인하고 슬피 울었듯이, 프란치스코 성인이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짓무르고, 눈이 먼 다음에 아름다운 주님의 사랑을 보고, 아름다운 피조물을 찬미 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안약으로 울어야 하겠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에서 지내면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8,16-20.30-31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17 사흘 뒤에 바오로는 그곳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이 모이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백성이나 조상 전래의 관습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예루살렘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인들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18 로마인들은 나를 신문하고 나서 사형에 처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으므로 나를 풀어 주려고 하였습니다.
19 그러나 유다인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나는 내 민족을 고발할 뜻이 없는데도 하는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였습니다.
20 그래서 여러분을 뵙고 이야기하려고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희망 때문에 이렇게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30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31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
축일 5월 22일 성녀 율리아 (Juli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코르시카(Corsica)
활동 연도 : +5세기경
같은 이름 : 줄리아, 쥴리아
전설에 의하면 카르타고(Carthago)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녀 율리아는 불행하게도 에우세비우스라는 시리아 상인에게 노예로 팔렸다. 그녀의 주인은 그녀를 데리고 프랑스 지방으로 가다가 코르시카 섬 북쪽의 케이프 코르소(Cape Corso)에서 하선하였다. 마침 이교도의 축제 기간 중으로 그 섬의 통치자인 펠릭스는 그녀의 주인과 그녀로 하여금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권하였다. 희생제물을 바치면 그녀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제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를 거부하자 펠릭스는 성녀 율리아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심한 고문을 한 후 십자가형에 처하였다. 그녀는 코르시카의 수호성인이다. 일부 학자들은 성녀 율리아가 한 세기 또는 두 세기 후에 살았던 인물로 사라센족의 침입 때 살해된 것으로 믿고 있다.
축일 5월 22일 성녀 리타 (Rita)
신분 : 과부, 수녀
활동 지역 : 카시아(Cascia)
활동 연도 : 1381-1457년
같은 이름 : 리다, 리따
성녀 리타는 1381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고원 남단에 있는 스폴레토(Spoleto) 부근 카시아의 작은 마을인 로카포레나(Roccaporena)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도 성소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녀의 부모는 12살밖에 되지 않은 딸을 강제로 혼인시켰다. 원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여 두 아이를 두었지만 18년간 그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남편은 어린 아내를 학대하고 자주 폭력을 행사했다. 그런 남편의 회개를 위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국 남편은 어떤 사람과의 싸움 끝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아이마저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게 되자 그녀는 더욱 간절히 하느님께 매달렸다.
어려서부터 수녀가 되고 싶었던 성녀 리타는 카시아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회에 세 번이나 입회 신청서를 냈지만, 결혼했었다는 이유와 남편을 살해한 가족과 화해하는 문제 등의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절히 주님께 기도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평소처럼 집에서 밤새 기도하던 성녀 리타가 순식간에 수호성인들의 도움으로 수녀원 기도 방에 있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아침에 그녀를 발견한 수녀들은 하느님의 뜻으로 여겨 예외적으로 그녀의 입회를 허락했다고 한다. 성녀 리타는 그녀의 강한 믿음과 인내의 결과로 카시아에 있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에 입회했다.
그 후 1457년 5월 22일 선종할 때까지 성녀 리타는 지난날의 생활을 반성하며 자신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철저한 고행과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수차례의 환시를 체험했고, 선종하기 15년 전에는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과 같은 상흔(傷痕)을 이마에 받아 주님의 고난에 동참했는데, 이 상처는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고 선종 이후에도 이어졌다. 여러 해를 두고 이어진 발굴에서 그녀의 유해는 부패하지 않았고, 이마의 상처도 그대로였다고 한다. 성녀 리타가 선종한 후 그녀의 성덕과 기적에 대한 평판이 높아지면서 성녀의 유해를 유해 안치실로 옮겼다. 유해 안치실에는 그녀의 삶에 대한 간단한 기록과 시복 과정을 포함해 선종 이후 일어난 기적 목록들이 적혀 있고, 생애의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는 그림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후에 유해 안치실을 중심으로 새 성당(The Basilica of Santa Rita in Cascia)이 건축되었는데, 이 성당은 수도원 · 학교 · 병원 · 고아원 · 순례자 센터와 연결되었다.
성녀 리타는 1626년 7월 16일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00년 5월 2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봉사한 성녀 리타는 특별히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녀는 예수님의 상흔을 받은 이유로 보통 이마에 상처 난 모습이나 가시관을 쓰거나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장미꽃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진 성녀 리타가 한겨울에 자신을 찾은 친척에게 고향 집 정원에 핀 장미꽃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친척은 속는 셈 치고 집에 갔더니 장미꽃이 활짝 펴있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는 성녀의 축일 미사 중에 장미꽃을 봉헌하고 축복한 후 서로 나누기도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율리아, 리타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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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웃에 대한 관심만큼 제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제 영혼의 주인이신 하느님!
이 타락한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주님, 수산나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 세상의 타락에서 구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