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자료도 볼 겸, 종이도 살 겸 교보행을 하려다 양수리행 시외버스를 잡아 탔다.
실은 대단히 피곤해서 시내행이건 시외행이건 엄두내기가 쉽지 않았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바지 주머니에 카드가 든 지갑과 현금 얼마. 전에 165-1이었던 번호는 2***로 바뀌어 있었다.
밖은 더운데 버스 안은 지나친 냉방으로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주머니에 든 소수건을 을 길게 접어 목에 둘러야 할 만큼 추웠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이내 졸기 시작, 실은 차창에 기대 마낭 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눈을 비집고 떠 바라보는 차창 밖은 궁색하긴 해도 여전히 푸르렀다.
팔당댐은 물이 많이 줄었다. 물가 바위 위에 서있거나 앉아 있는 물새들이 졸음에 겨운 눈 에 들어왔다 벗어났다 했다.
마침내 양수리 종점 도착, 옥수수를 쪄 파는 곳이 두 곳 보였다. 가지와 호박 몇 개를 앞에 놓은 시골 할머니도 보였다. 가지 한 무더기가 2000원이란다. 푸르딩딩, 나물 해먹기 딱 좋은 둥근 애호박은 한 개에 1000원. 찐 옥수수 한 봉다리에 3000원. 장은 다 본 셈이었다.
오후 세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기웃기웃 밥 먹을만한 집을 둘러보았다.
동치미 국수.
간판은 김밥집인데 창 유리에 써붙인 글귀가 보였다. 국수는 좋아하지 않는데 '동치미'가 마음을 끌었다. 동치미 국물에 담긴 국수라면 먹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 국수를 많이 넣지 말고 한 그릇 달라고 일렀다.
테이블이라곤 다섯 개 정도인 작은 집인데 주인 내외인 듯 싶은 두 사람이 늦은 점심을 먹는 중인 듯 했다.
한 그릇에 4000원. 고춧가루를 약간 푼 동치미 국물이 짐작한 대로 일품이었다. (시장한 탓도 있겠지) 함께 내온 동치미까지 바닥내고 곧바로 시외버스를 타고 되돌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졸음이 완전히 내 눈을 떠나기 전에 다시 졸아야 했으므로.
옥수수 한 자루를 꺼내 뜯기 시작, 이내 다시 졸기 시작했다.
몇 달간 나는 얼마나 고달팠던가.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살아가는 동안 또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거의 집 가까이까지 왔을 무렵, 버스에서 한 후배의 어디 쯤인지, 하는 전화를 받았다.
"양수리 다녀오는 길인데 짐을 집에 놓아두고 곧장 나갈게."
이미 싸놓은 배낭만 등에 메면 그만이다.
교보 대신 반디앤루니스에 들러 몇 가지를 사고 자료도 보고, 식당 백두산에서 저녁을 끼적끼적(점신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차도 마시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길로 졸음으로 길들여진 '맛있는 잠'을 자고 이르게 깼다.
푸르딩딩 둥근 호박은 밤 사이 달아나지 않고 잘 있다. 윤기가 도는 새까만 가지도 잘 있다.
호박은 두껍지 않게 썰어 비닐 돗자리에 널어 말려야 할 것 같다. 삶의 진액같은 호박의 앳된 진이 말라 마침내는 비틀어지고 말듯, 살아가는 일이 그같은 일 아닌지... 돗자리에 썬 호박을 펴 널었다, 거둬들였다 호박을 말리는 동안 깨우치게도 될 것이다.
첫댓글 가만가만 읽으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아름 품고, 바람아이 갑니다.
부럽다.
동치미 국수가 부러운 걸까. 양수리까지 졸매 졸매 다녀온 게 부러운 걸까, 그도 아니면 호박을 썰어 말리는 동안 깨우치게 될 도가 부러운 걸까, 맛있는 가지 나물 볶음이 부러운 걸까???
틀에 박히지 않은 생활...
165번 종점 그곳에서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두물머린가 하는 한켠에 연꽃단지가 조성되었다는데 가보았니? 9,10월이 좋단다.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우. 그날은 게까지는 못 갔다우. 돌아올 시간이 바빠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