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제 재위 3년 무렵인 대업 3년(서기 607년). 허영심이 많던 편이던 그는 북방 순행을 하면서 동돌궐의 카간인 야미카간(흔히 계민가한으로 알려진 그 인물, 돌리가한으로 알려져있기도 함. 이제부터 익숙한 계민 가한으로 표기합니다.)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이 때 야미 카간이 놀랄 수 있다 하여 수나라 내 최고의 돌궐 전문가였던 대신 장손성을 보냅니다.
장손성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계민 가한은 그를 맞이해줍니다. 이 때 장손성이 계민 가한의 장막을 훑어보다가 풀들을 보고 말합니다.
"저 풀들은 특별한 향이 나는 것 같소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계민 가한이 풀을 뽑아다가 냄새를 맡아봅니다. 당연하겠지만 풀에서 냄새가 날 리가 없습니다.
"향이 안 나는데..."
그러자 장손성이 계민 가한에게 말합니다.
"우리 중원에서는 천자가 올 때 제후들이 친히 나와 길을 닦고 잡초를 제거하여 천자께 공경을 보이오. 그런데 좋은 향이 나는 풀, 향초라면 그냥 놔두지. 그래서 난 향초인 줄 알았수다."
그러자 계민 가한의 얼굴이 하얘집니다.
"저희가 궁벽한 곳에 사는지라 법도를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계민 가한은 직접(...) 장막 근처의 풀을 베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때 계민 가한은 혼자 있던 게 아닙니다. 휘하 여러 부족의 부족장들이나 부하들, 즉 나름 높으신 분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려 카간이 직접 풀을 베는 판인데 이들이 놀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들도 같이 장막 근처의 풀을 베었습니다.
며칠 후 수 양제가 계민 가한의 장막에 도착합니다. 수 양제는 이 때 계민 가한의 장막에서 연회를 개최합니다. 그러고는 장손성이 한 행동을 듣고는 상을 내립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수나라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돌궐은 수나라가 건국됬을 무렵에만 해도 최강 국가라고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고구려에서 비잔틴 제국 사이의 스텝지대는 사실상 돌궐이 전부 장악하고 있었으며, 페르시아와 중국 모두 돌궐을 두려워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수나라의 책략이나 내부 불안정 등 여러 요인으로 분열되고 내전이 터지더니 결국은... 수나라 대신의 말 한 마디에 벌벌 떨면서 카간이 직접 풀을 베는 굴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분열되었어도 외몽골과 내몽골을 전부 지배하던 동돌궐의 카간인데 말이지요...
추신 1: 이 벌초 사건은 정황상 고구려 사신도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유명한 돌궐을 방문했다가 수양제와 마주쳐 경고를 들은 고구려 사신 사건이 바로 이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추신 2: 장손성이란 인물은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활솜씨가 뛰어나 화살 하나로 새 2마리를 잡은 전력이 있고, 북주 시절 돌궐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뛰어난 돌궐 전문가였습니다. 수나라가 건국되고 얼마 안 되어 그는 돌궐의 내부 불안정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 돌궐의 분열을 획책하는 전략을 수 문제에게 제안했습니다. 수 문제가 그것을 승인하고 장손성의 말대로 하자 돌궐은 내부의 세력 다툼이 가시화되면서 내전이 터지고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장손성 덕에 수나라는 군사적 원정을 거의 벌이지 않고도(방어 목적의 출병은 꽤 됩니다만 직접적으로 돌궐 카간 때려잡겠다고 초원으로 진격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돌궐을 거의 가지고 놀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장손성은 장손무기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첫댓글 돌궐은 짱짱 쎘데여: 그럼 뭐해 저 꼴 났는걸.
수나란 더 쎘데여: 그럼 뭐해 금방 망했는걸.
고구련 술 이겼데여: 그럼 뭐해 나라 파탄났는걸.
당은 그런 고구렬 멸했데여: 그럼 뭐해 당나라군대.
당시 동북아 정세가 참 혼란스러웠는듯 하네요.
멸했지만 토번 와쩌영~♡ 잦은 전쟁으로 부병제 붕괴, 당이여 돌궐이 돌아왔소. 돌궐 부활. 그리고 정말 노예생활했는지 카파간 가한의 원정 웨이브~
수,당초 관롱집단들 보면 한화되면서 에너지란에너지를 활활 뽐내서ㄷㄷ 당태종 시대 대신들까진 능력이 쩔더군요. 문제는 이후 세대교체가 내정은 평타지만 군재는 실패
와;;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