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참 삶일까?
세상에는 많은 종교와 철학이 있어서 그 나름대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게 인간인가’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주장들 모두는 인간의 사고와 경험에서 나온 땅의 주장들일뿐 인간을 지은 창조주의 하늘의 지식으로 인간의 근본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오직 기독교, 성경뿐입니다.
따라서 인간 자기는 이 세상을 거쳐 가는 동안에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을 목표와 낙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만들어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궁극적인 그 뜻을 성경을 통해 바로 알아 나그네 인생길을 그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낙이요 궁극적이고 영원적인 복 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계에서 인간에 대해 말할 때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재세기간의 목적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그 방법에 있어서는 같은 기독교인이라도 각이한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동일하게 말을 하는 것은 인간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비록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해서 한이지 '하나님을 닮자' 라는 이 말에 이의를 달거나 거부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닮는다는 게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닮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 주장하는 바가 천차만별인 것이 교계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닮는 것인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서 제시하는 그 정확한 기준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닮는데 있어서 대 전제적으로 반드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닮고자 하는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계시하는 바대로 정확히 알아야 만이 안 그대로 내가 만들어져서 하나님을 바로 닮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는 하나님은 영이시고 무형체(無形體)이시며 비시공간적(非時空間的)인 존재이심을 전제로 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전제로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알려고 할 때 하나님의 어떤 외형이나 형체에 대해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런 가견적(可見的)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나 활동을 통해 그 분의 속성(屬性)을 알아야 한다는 답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란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하는데 이것을 분류해 보면 절대적 속성(絶對的 屬性)과 상대적 속성(相對的 屬性)으로 크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一. 절대적 속성.(비공유적 속성)
절대적 속성은 비공유적 속성(非共有的 屬性)이라고도 하는데 비공유적 속성이란 오직 조물주이신 하나님만이 홀로 가지고 계신 속성으로 인간이나 다른 모든 피조물들은 가질 수 없는 속성을 말합니다.
이 비공유적 속성은 또 네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①자존성(自存性) ②영원성(永遠性) ③완전성(完全性) ④단일성(單一性)입니다.
① 자존성.
하나님은 자존자가 되어야 하는고로 자존성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디로부터 유출물이나 파생이나 발생물이 아니라 자체적 자존자인고로 자존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한 분이십니다.
② 영원성.
하나님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계시는가? 하나님은 과거적 영원, 미래적 영원인 분이시니 이 하나님은 그 존재만이 영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하나님이십니다.
③ 완전성.
학자들 중에는 완전성 대신에 불변성(不變性)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것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성 속에는 절대성도 들어 있는데 완전성이라는 말은 지혜지식과 인격의 성질적 완전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에게는 자랄 것이라든지 부족한 것이라든지 더 보태질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성도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완전성을 시인을 하면서도 실제 신앙 사상적으로나 삶의 적용에 있어서는 이를 부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라고 할 때 인간이 그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보태드리는 것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④ 단일성.
앞에서 말한 완전성은 필연코 이 단일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고로 이 단일성에 대해 부인하거나 무식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 길이 없고, 바로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구원과는(성화구원)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이 단일성을 제하면 바른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구원은 곧 통일성을 이룹니다.(엡4:6)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마찰 충돌 대립성이 없습니다.
二. 상대적 속성.(공유적 속성)
이상의 절대적 속성 밑에 상대적 속성이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는 공유적 속성(共有的 屬性)이라고도 합니다.
이 공유적 속성은 하나님의 인격성이라는 말인데 이 인격성이란 하나님의 활동성을 말하는 게 아니고 활동성 이전의 인간의 용어나 지식으로 형언키 어려운, 마치 인간의 내적 어떤 정신적 느낌성, 즉 생존적 활동성(生存的 活動性)을 말하는 것입니다.(요14:9)
그렇다고 인간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속성을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존적으로 가지신 속성, 즉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인격성이란 그의 판단 평가쾌락 향락성에 있어서 완전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이 속성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도 가질 수 있고, 닮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인간들이 이 속성을 갖는다고 해도 질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그것과 같은 것이지만 양적인 면에서도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이 말은 ‘하나님에게도 있고, 인간에게도 있다’ 라는 말이라기보다도 하나님의 속성을 인간이 가질 수 있다는 면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 공유적 속성에는 ①지식 ②지혜 ③선 ④사랑 ⑤거룩 ⑥진실 ⑦의(義) ⑧주권(主權)의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축소하면 ‘지혜지식성과, 도덕성과, 능력성’이 있는데, 지혜지식성에는 ‘지식성과 지혜성’이 있고, 도덕성에는 ‘선 사랑 거룩 진실’이 있고, 능력성에는 ‘의와 주권’이 있습니다.
1. 지혜지식성.(지식성, 지혜성)
하나님의 예정 계획 설계는 이 지혜지식성에서 나옵니다.
① 지식성.
이 지식성이란 하나님께서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이 지식은 누구에게서 배우거나 습득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 자체적(自體的) 자존적(自存的) 지식을 말합니다. 물론 이 지식성은 영원적 완전적 단일성적 지식도 됩니다.
이 지식성 외에 다른 모든 속성들(지혜 선 사랑 거룩 진실 의 주권)도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인 자존성 영원성 완전성 단일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이 지식을 가지게 되면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알게 되어 과거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점검할 수가 있어서 현재의 자기를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② 지혜성.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아는 것을 말하는데, 이 지혜 역시 누구에게 배우거나 습득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 자체적(自體的) 자존적(自存的)인 지혜를 말합니다. 이 지혜성에서 예정도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가져서 과거와 현재를 바로 알면 미래 역시 알 수 있고, 미래를 알 수 있으면 필연적으로 닥쳐올 사건을 알 수 있어서 이에 대처할 수가 있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바닷가에 서서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만 봐도 미리 겁을 먹고 도망을 가지만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파도를 타고 신나게 노는 것처럼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을 충만히 가지게 되면 세상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오히려 그것을 자기의 이룰구원의 이용물로 잘 활용을 해서 영적 수입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늘 환경에 얽매이고 동화되어 살아가게 되니 이런 사람은 늘 원망불평일 수밖에 없습니다.
2. 도덕성.(선성 애성 거룩성 진실성)
이 도덕성은 인적인 도덕성이 아닌 신적 도덕성을 말하는데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규제하는 도덕이 아닌 하나님 자체적 근원적(根源的) 발생적(發生的) 도덕성입니다.
하나님의 이 도덕성은 상대성을 가지고 있으니 자기를 위한 자위적(自慰的) 자애적(自愛的) 도덕이 아니고 상대를 위한 도덕성입니다. 즉 상대에게 하나님 당신의 도덕성을 입혀준다는 말입니다.
③ 선성.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하는데 참 선은 단순히 ‘너도 좋고 나도 좋고’ 가 아니라 그 사건과 관련성이 있는 모든 존재에게 다 유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 유익은 영원적 궁극적 최종적 결과적으로 천국에서까지도 사용하고 활용하고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이란 하나님 자신이 천국을 지배하고 누리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타 존재에게도 그렇게 하게 해 주는 것 역시도 하나님의 선성입니다.
이 선성에서 인류창조의 원인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게 선성이 없었더라면 인간을 창조하고자 하는 의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걸 인간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하나님 당신이 독존하고 계시던 그 천국을 보니 너무도 좋고 아름다워 혼자 누릴 수가 없어서 ‘이 좋은 천국을 누구에게 줄꼬’ 하는 이 마음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게 된 것입니다. 이 선의 마음으로 신령계를 누리게 해 주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셨고, 성령님은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선이라 할 때 동사(動詞)인 경우에는 상대에게서 찾는 것이고, 동명사(動名詞)인 경우에는 자기가 자기에게도 선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즉 선이란 하나님 당신이 신령계를 누리고 활동하고 다스리시는 그것이 자체적 유익이니 이것도 선이요, 이 유익을 상대에게 주어서 그 천국을 당신처럼 누리게 해 주는 것도 선입니다. 또한 그걸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질 수 있는 사건도 선(善事)입니다. 이 일을 위해 시간 돈 정력 등이 쓰여지는 것도 선(善行)이며, 이 선의 효력은 천국에까지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이라 하는데 나에게는 선(좋음)이 아니라면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내가 선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럴 경우 인간 나의 것을 꺾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선(善心)입니다.
교회에서 영원과 상관없이, 신령계와 상관없이 현재적 육신적 임시적으로 상대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성경의 선의 원리는 그런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하는 선은 자타에게 영원히(천국에까지) 유익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선하더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렁이나 뱀이나 송충이를 지어 놓고도 ‘그 모양이 좋구나’ 라는 식의 물질이나 감정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인격자의 어떤 행위를 하게 된 그 행위의 성분, 즉 그런 것들을 짓게 된 의사와 목적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원인 동기 목적은 당신의 택자를 구원해 이 인간으로 하여금 천국에서 당신과 같은 차원으로 천국을 활용하고 통치하고 누리며 영원히 살게 하려는 것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아무나 무조건 그 천국에 데려다 놓는다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천국을 누리고 다스릴 수 있는 영적인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 실력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 세상과 세상 것들이 아주 잘 만들어졌기 때문에(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좋았더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을 구원해 곧바로 그 좋은 천국에 데려가시지 않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재세기간 동안에 하나님처럼 천국을 영원히 누리고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영능의 실력을 키우라고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이런 저런 사건을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어떤 유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궁핍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 자체가 선이 아니고 세상에 매이고 물질에 매이고 죄에 매인 사람을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자로 사상과 정신과 소원과 목적을 바꾸어 주는 것이 선이요, 그렇게 바뀐 것이 선입니다.
내가 선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타에게 선을 줄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내가 선의 사람이 된 것만큼 이웃에게 선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니 이런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에서의 할 일이요, 성도가 재세기간 동안에 해야 할 일입니다.
④ 애성.(사랑)
애성은 선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이는 애성은 선행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애성에는 필연적으로 상대성이 있는 것인데 이 애성이 효력을 내기 위해서는 상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사랑은 임시적이고, 시간 따라 변하고, 물질이나 환경에 좌우되고, 길어야 100년 안팎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적으로 영원한(천국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사랑이요, 그 무엇에 의해 변질 변동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천국에 가서까지 영원히 변질되지 않고 영원히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땅에는 오로지 인간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이웃에게 주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고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로 만드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이 일을 위해 물질 시간 노력 등을 쓰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으로 그 인격이 만들어지는고로 이러한 투자는 자기에게 영원히 유익된 효력을 주게 됩니다. 남녀 간에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기본이 되어 사랑을 하게 되면 이건 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사가 하나님의 의지세계(意志 世界)로부터 이 애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인간이 타락을 했기 때문에 세우신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는 영원 전, 창세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애성의 대상자로 삼으신 것이니 교회는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하는 곳입니다.
⑤ 거룩성.
거룩이란 구별(명사적으로)이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거룩은 외래적 평가적 상대적 성성(聖性)이 아니라 자체적 능력적 구별입니다. 누가 구별을 해 놓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체적으로 구별이 된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그 누가 하나님의 성품이나 도덕성을 혼잡을 시키거나 혼합하더라도 하나님은 혼돈도 혼잡도 되지 않는 자체적 완전적 구별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물질과도 비물질과도 자체적으로 구별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 무엇에도 감염성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존재가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거룩을 입을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고 하신 것입니다.
나 스스로도 하나님의 거룩으로 구별하고 나가면 내가 나를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유사성이나 비슷한 것이 없이 완전 구별이 됩니다.
비슷한 것을 구별할 줄 모르면 내 속에 나쁜 것이 숨어 들어오게 됩니다. 구별을 해야만 거룩(진짜)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의 인격과 상대의 인격을 구별해야 합니다.(비판과 구별은 다른 것임) 정확한 구별을 하려면 옳은 교훈(진리교훈)을 받아야 하고, 옳은 교훈을 받으면 옳은 지식을 소유할 수가 있으니, 이 옳은 지식을 가져야만 바른 양심이 됩니다. 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심이 옳아야 내 마음이 나의 몸을 하나님의 옳은 쪽(의)으로 움직이게 해서 나의 이성과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인격과 성품을 덧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옳음을 덧입으면 영원히 변질이 되지 않고 천국에서도 그 거룩을 써먹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나를 거룩하게 만들어 그 거룩의 나라에서 살게 하려고 거룩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세상과는 완전히 구별된 영적이요 신령적이요 영원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진리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 진리를 바로 알고, 그 진리로 자체화 되어야만 거룩해 질 수가 있습니다.
⑥ 진실성.
하나님의 진실이란 참이라는 말인데 이 참은 절대 정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진실이란 진리로 자체화 되어 활동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실은 존재적으로 사건적으로 성질적으로 능력적으로 진실이니 독단적 자체적 가치적 영원적 진실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존재도 여기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가 부족이요 비뚤어진 것입니다. 성질적으로 진리진실이 아닌 것은 이질이요, 전부가 죄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말씀하셨는데 주님은 자체적으로 진리이시기에 우리에게 대하심도 진실 그 자체입니다.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처사가 진실이 아닌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있다 할지라도 영원적 궁극적 최종적 결과적인 면에 가서 보면 전부 다 진실로 판명이 납니다.
하나님의 진실은 의는 의대로, 불의는 불의대로, 진(眞)은 진대로, 가(假)는 가대로 정확한 결과성을 가져오게 합니다. 참은 영원히 행복이고, 영원히 영광이고, 불변의 권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변성보다 진실이 더 힘이 있습니다. 마귀는 마귀로서 변치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마귀도 불변성이지만 진실은 아닙니다.
진실은 영원히 옳은 것, 참된 것, 좋은 것, 존영적인 것, 행복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느 집사가 담배 피우는 것을 다른 교인이 보고 그 소문을 퍼뜨린다면 그 말은 참이지만 담배를 피운 그 사람을 유익되게 해 주려고 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자나, 담배를 피운 자나, 그 말을 듣는 자나 유익은 없고 해가 되니 진실이 아닙니다. 영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말, 또 그런 말을 옮긴 것은 그 사람의 진실된 정신이 아닌 거짓된 데서 나온 것이므로 사실대로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면 내가 나의 영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도록 그 생각을 한 번도 말을 안 했다면 그것도 진실입니까? 아닙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말을 하고 안 하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이 진실입니다. 설교를 할 때 영에 유익이 아닌 육에 이익이 되는 말이라면 아무리 성경을 근거로 말을 해도 진실된 말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엄격합니다. ‘설교가 영적이냐, 육적이냐’에 대해 아주 엄격합니다. 육적으로 설교를 먹이면 이건 영적 살인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에 따른 심판이 매우 큽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것을 동네에서 아이들이 모여 노는 놀이터 정도로 생각해서 ‘아무 교회나 가서 분위기 좋게 지내면 이게 예수 믿는 거려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데는 하나님의 심판이 붙어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가르치는 면이나, 듣는 면의 중요성을 모르는 결과입니다.
진실은 모든 동작을 타에게 영원히 유익되게 하려는 진리정신에서 나온 활동입니다. 이 진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진실이 아닌 것은 기쁨도 향락도 명예도 영광도 사랑도 행복도 부요도 이력도 모두가 자타에게 있어서 앙화요 고통이요 눈물이요 심판거리요 사망거리입니다.
3. 능력성.(의성, 주권성)
하나님의 능력은 완전적 자체적 능동적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란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모든 것을 이기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단일성(單一性)으로 되지 않은 것을 정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⑦ 의.(義)
의란 우리말로는 옳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에 맞는 것, 옳은 것이 아닌 그 모든 것은 거짓된 데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가지고 사회적인 어떤 좋은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틀린 것입니다.
사랑하고 쓰다듬고 업어주고 하는 이런 것을 일반 사회적 개념으로 말을 했다면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틀린 말이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인간 각자의 기준에 맞추면 각자가 다 틀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옳은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의에게 모두 정죄가 됩니다. 인간 누구도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당신이 틀렸소’ 라고 할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근본적 근원적 기준적 의(義)이므로 이 기준에 맞는 것은 칭의(稱義)가 되는 것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옳은 것을 많이 가지면 영적인 면에 능력이 있습니다. 시험문제를 채점할 때 채점을 하는 사람은 답을 알기 때문에 시험지에 쓴 답이 정답에서 틀리면 / 하고 정죄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하나님의 의(옳음)를 알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하나님의 옳은 것(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옳음이 아닌 것은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게 참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천국에까지 가지고 가서 영원히 효력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하나님의 의를 가지는 것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지혜지식과 인격과 성품을 덧입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⑧ 주권성.(심판성)
하나님의 주권은 자체적 능동적 능력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그 어떤 존재에게도 침해를 받지 않는 주권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요인이나 원인에 의해서도 침해를 받음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 주권성을 가지면 세상 그 어떤 풍파가 나를 넘어뜨리려 해도 능히 이기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주권은 의(옳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판단하고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고전6:2, 계12:5) 그래서 옳은 것을 가지면 힘이 있습니다.
의는 진실에서 나오고, 진실은 또한 거룩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거룩은 또한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은 또한......에서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속성 하나 하나가 전부 연결 연관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인간이 이해할수 있도록 인간의 표현으로 설명을 하려니 앞에서 나눈 것처럼 이론적 논리적으로 12속성으로 나눈 것이지 에스겔서에 나오는 생물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 다른 모든 생물도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듯이 하나님의 속성이 움직일 때 어느 한 속성만이 움직인다거나, 각 속성이 별개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모두가 연결 연관이 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무한자이신 하나님에 대해 유한된 인간의 지식과 용어로 설명을 하려니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즉 이상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여러 속성을 우리가 덧입을 때 하나님의 8대 속성 중 그 어느 것 하나만을 입고 다른 속성들은 안 입고 하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속성을 입으면 다른 속성도 같은 비율로 입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를 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10%를 입었으면 다른 7대 상대적 속성(공유적 속성)도 각 속성대로 똑같이 10%씩 입어지는 것이지 각 속성이 입어지는 양이 각기 다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견적 사역적인 면에서 어느 한 속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이 속성 자체는 순전히 인격적이요 불가견적이요 영적이요 신령적이요 천국적이요 영원적인 것이지 유형적 물질적 육신적 세상적 임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을 닮으라고 말하기에 앞서 ‘우리가 닮으려고 하는 하나님의 속성(인격과 성품)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절대 정확한 기준을 먼저 제시해 놓고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힘을 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원형이라면 우리 인간은 모형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이라면 우리 인간은 이질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이라면 우리 인간은 불완전입니다.(그러나 인간은 인간이라는 면에서는 완전입니다)
원형이시요 본질이시요 완전이신 이 주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인격적으로 누리고 다스리고 통치하는 천국이 바로 우리가 가서 거할 곳이기에 그곳에 갈 우리가 그곳을 주님과 함께 주님처럼 마음껏 누리고 다스리고 통치하며 주님처럼 만족해하며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영적인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 실력이 바로 앞에서 말한 원형이신 그리스도의 속성, 즉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속성을 입기 위해서 먼저는 앞에서 말한 하나님의 속성을 바로 알고, 그 다음에 인간 내 것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하나님의 것에 비하면 내 것은 모두가 이질적인 것이니 이것은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실 때 모든 피조물 중에 오직 인간에게만 인격성과 감염성을 넣어 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오로지 인간만이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히 쾌락하게 살 수 있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특별도모 하에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존재로 될 수 있게 하려고 인간을 인격성과 감염성을 넣어 지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죽은 영을 살려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이 내 속에 들어와야 하고,(이것은 기본구원) 이것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 옳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바른 양심을 가지고,(양심은 지식의 지배를 받음) 그 바른 양심에 따라 나의 마음과 몸이 움직여 나가면 나의 이성과 몸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의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속성이 나에게 감염이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성화구원)
이 성화구원은 마치 영어선생과 가까이 지내면 영어실력이 늘고, 춤추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춤추는 실력이 느는 것처럼 중생한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그 하나님 말씀의 뜻을 잡고 그 뜻을 좇아 이성과 몸을 움직여 나가면 그 사람의 속이 세상성은 빠져나가면서 점점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하나님의 속성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인격적이요 비물질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설교를 하건, 성경공부를 하건, 무슨 활동을 하건, 또한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그 무엇을 하건 그 주목적은 인간을 하나님의 성품을 입혀서 하나님이 누리시는 그 신령세계를 주님과 함께 주님처럼 마음껏 다스리고 누리며 쾌락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그 뜻을 잡고, 그런 감화로써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깨달을 때에도 성경에 죽은 사람을 살린 것이건, 병자를 고친 것이건, 환상이나 음성이나 꿈 등에 대해 기록이 된 것이건, 이스라엘의 역사건 모두는 임시적이고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것으로 해석을 해서 자신도 그렇게 해 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그런 문자적이고 표면적이고 가견적인 것을 영적이고 신령적이고 천국적이고 영원적인 것으로 깨달아 그 정신과 사상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만이 앞에서 말한 인간에게 주어진 감염성에 의해 그 사람은 주님의 인격과 성품이 덧입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닌 눈에 보이는 어떤 활동이나 방편 자체로 믿음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닮은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방편과 목적이 뒤바뀐 신앙이므로 이런 신앙정신으로 가견적이고 종교적인 업적과 이력을 제 아무리 많이 이루고, 이로 인해 교회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얻고, 권세와 물질을 얻었다고 해도 그의 속사람은 주님으로 닮아지지도 않는 것이고,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천국을 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영능의 실력인 상급은 없는 것입니다.
이상의 글을 통해 교회란 무엇이며, 성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를 바로 알아서 자신의 궁극적인 미래를 바로 준비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