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케 온천장에 있는 우리가 묵었던 숙소...밖에서 보면 아파트 같다.
숙소 입구...한문으로는 채조락이라고 적혀 있다는 것을 보아 아침바다 풍경이 좋다는 의미?
아침에 밖에 나가서 본 미호만
일본에 도착한 둘째 날로 오전에는 마쓰에(松江) 시내에 있는 마쓰에성(松江城)을 구경하고 해자를 유람선을 카고 관광을 한다고 한다.
마쓰에성의 위치
마쓰에 성의 지도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 시가지의 북부, 토노마치(殿町)에 있는 성이다. 1611년에 지어진 성으로, 남쪽으로 흐르는 오하시강(大橋川)을 바깥쪽 해자로 한 평산성(平山城)이다. 치도리성(千鳥城)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국가사적(史蹟)으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 전국에 12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에도시대 이전에 건조된 텐슈카쿠(天守閣)가 있는 성 중의 하나이다.에도시대에는 마쓰에한[松江藩]의 정청(政廳)으로서, 현재의 시마네현 동부에 해당하는 이즈모[出雲]지방의 정치·경제의 중심을 이루었다. 1873년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폐성령(廢城令)으로 성 내의 모든 건물이 철거되었다. 그러나 지방 유지들의 노력으로 텐슈카쿠만은 그대로 보존되었다.그후 1950년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되면서 텐슈카쿠는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60년, 1994년, 2000년, 2001년 4차례에 걸친 복원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06년 일본 100대 명성(名城)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성 주변은 마쓰에성산(城山)공원으로 정비되어 관광명소가 되었다.(두산백과)
우리나라의 에밀레종과 같이 이 성의 건축과 관련괸 전설이 있는데 천수대의 석벽을 쌓지 못하고 계속 붕괴되자, 산 제물이 없으면 공사를 완료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일꾼들이 여기에 본오도리(백중 맞이 춤)를 열어 그 중 가장 예쁘고, 가장 춤을 잘 추는 여자아이를 산 제물로 바치자는 의견에 도달하여 선택된 여자아이를 산 채로 묻었다고 한다. 석벽은 훌륭하게 완성되어 공사도 무사히 마쳤지만, 성주 부자가 영문도 모르게 빨리 죽어 가문은 단절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저주로 여겼기 때문에 성의 천수각은 방치되고 있었다. 이후, 마쓰다이라 가문이 입성하고 나서는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성에서 들리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 또, 성이 흔들린다는 전설에서 본오도리를 추지 않는다.
고이즈미 야쿠모가 쓴《산 제물이 된 딸아이》
이 전설 때문인지 이 성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전공을 올린 도요토미 정권의 3중로 중의 하나인 호리오 요시하루(堀尾吉晴)가 1607년 쓰에구 성이 있던 가메다야마 산에 축성을 시작하여 1611년에 완성을 하였으나 요시하루는 완공을 눈앞에 두고 급사를 했고 그 아들도 후사(後嗣)가 없자 가문이 단절되었고,1634년에 교고꾸 다다타카가 입성을 하였으나 1937년에 아이가 없이 죽어 가문이 단절되자 1638년에 마쓰다이라 나오마사가 입성하여 메이지 유신 시대까지 이곳을 다스렸다고 한다.
일본에는 수많은 성이 있지만 에도시대(江戶時代: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권력을 잡은 1603년부터 에도 성이 메이지 정부군에 함락한 1868년의 265년) 이전의 천수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열 두 곳밖에 되지 않는데 이곳이 그 열두 곳 중의 하나라고 하며, 천수각이 지방영주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중앙집권 국가의 형태가 확립되면서 그 힘을 보이기 위해 천수각을 가장 먼저 파괴했다고 하며 그래서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다고 한다.
천수각의 형태는 대부분이 이곳에서 보는 것처럼 망루(望樓)형태이지만 시마바라의 천수각처럼 승탑(僧塔)형태로 된 것도 있다고 한다.
마쓰에 성의 주차장
마쓰에 성을 축성한 호리오 요시하루(堀尾吉晴)..앉아 있는 사람은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 같다.
마쓰에 성의 설명서...한글 설명서도 있다.
축성의 모서리가 너무 각이 져 있어서 날카로운 느낌이 든다. 지진에도 약해 보이고...
축성과 함께 심어진 삼나무가 아닐까....
마쓰에 성에 도착해서 맨 처음 인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석축이었는데 석축의 모습이 날카롭게 생겼다.
이 성이 지어질 때부터 있었던 삼나무나 소나무들의 모습과 평지에서부터 무척 높은 높이로 쌓아 높은 석축과 또 그 안에 높은 석축을 쌓아 놓은 모습이다.
본래 야산이었기도 하겠지만 이 성이 평지에 있는 성이기 때문에 해자를 판 흙들을 돋우어서 성을 만들었을 것인데 그 높이가 상당하다.
천수각은 입장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요금을 내야 하는데 시간도 없고 걸어 올라가는데 힘도 든다고 하여 생략을 하고 천수각의 외모와 성의 주변만 둘러보고 해자(垓字)의 유람선을 타러 갔다.
마쓰에 성의 이곳 저곳
성안에 있는 신사
천수각
왔다가 갔다는 이런 기념 사진을 꼭 찍어야 하는지...
석벽을 보면 얼마나 높이 쌓아 올렸는지 알 수 있다.
마쓰에 성을 구경하러 오는 아이들...일본에서는 아이들이 야외에 나가면 반드시 모자를 쓰게 해야 한다고....
석축이 2단으로 쌓여 있다.
정면에서 본 석축
미마바라의 천수각...승탑형이라고
해자는 산성이 아닌 평지에 있는 모든 성들이 적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파놓는 연못과 같은 것으로 보통 강물을 끌어들여서 강물로 흘러 나가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곳의 해자도 오하시강과 아사쿠미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람선을 타고 해자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40여분 정도로 마쓰에 성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타보아야 할 정도로 필수코스인 셈이다.
유람선은 납작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지붕이 아래로 숙여졌다 바로 섰다가를 하는데 처음에 승선을 하면 머리를 숙이고 지붕을 내리는 연습을 한다.
왜 그런가 했는데 해자를 가로지르는 다리들 때문이다.
유람선은 10여명 정도가 탈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담요와 전기난로도 있으며 한국어도 주변경치와 건물들을 설명해 주기도 하며 뱃사공이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유람선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전부 노인들로 아마도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 노인들을 고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유람선 선착장
선착장 주변...매화나무에는 꽃이 피어 있다.
한국사람이 많이 오는 듯...힌글로 안내가 되어 있다.
납짝 유람선
노인들이 관리를 한다.
신발을 벋고 올라가게 되어 있으며 바닥이 따뜻하다....지붕을 내리면 납짝 엎드리여 한다.
해자 주변의 경치들
이런 다리를 통과하기 위해서 지붕이 내려간다.
유람선을 타고 보이는 천수각 벚꽃이 피면 경치가 좋을 수 밖에 없다.
내리면 이곳에 언제 이곳에 왔다가 갔는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점심은 선착장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음식점 자체에서 맥주를 생산하는 집이라고 가이드가 한 번 맛을 보라고 하여 식사를 하면서 사 먹어 봤는데 솔직히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식사를 하고는 아다찌(足立) 미술관과 청수사를 보러 가는데 돗토리 현에서 시마네 현으로 왔다가 다시 돗토리 현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식당으로 가는 길
식당이 지(地)비루 관 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 맥주 이름이 地 인가 보다
식당에 있는 맥주 만드는 곳
식사 매뉴
팻말이 우메라고 붙어 있는 것을 보아 매화나무인데 꽃이 색갈이 곱다.
참고로 시마네 현은 독도와 가장 가까운 현으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주장하는데 선봉에 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2.22일을 다께지마의 날로 선포하였는데 이는 시마네현의 1905.2.22일의 고시에 독도가 주인이 없는 땅이므로 일본의 영토에 편입시켰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일본도 사실 가고 싶지 않은 나라지만 세계의 어느 곳이나 이웃 나라들은 이런 갈등이 없는 곳이 없는 일반적인 현상이므로 이웃과 원수 시 하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가이케 온천지대애서 본 미호만
마쓰에 해자 유람선
마쓰에 해자 유람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