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가 소정묘(少正卯)를 처단한 것처럼 이재명도 똑같이 하라 !
이 내용은
공자가어(孔子家語) 시주편(始誅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孔子)는 나이 56세에 노(魯)나라 대사구(大司寇)가되었다.
노(魯)나라 대사구(大司寇)는 지금의 법무장관이나 검찰총장급이다.
공자(孔子)일생에서 처음 벼슬이자 마지막 벼슬이다.
그런데 큰 사건이 일어났다.
공자(孔子)가 대사구(大司寇)가 된지 7일 만에
대부(大夫)인 난신(亂臣) 소정묘(小正卯)를 전격적으로 처형해 버렸다.
대부(大夫)는 자신의 영지(領地)를 소유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귀족(貴族)의
신분이다.
공자가 소정묘(小正卯)를 처형한 내용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공자세가편(孔子世家篇), 공자가어(孔子家語)의
시주편(始誅篇),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篇) 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본 내용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책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보통 공자(孔子)라 하면 인(仁)과 예(禮)를 숭상(崇尙)하는
그냥 순박한 성인(聖人)으로만 생각한다.
공자가 죄인을 사형(死刑) 집행을 직접 지휘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의 기록에는 노(魯)나라 정공(定公) 14년(BC 496)에 공자(孔子)는
대사구(大司寇: 司法長官)가 된 지 7일째 되는 날 정치를 문란 시킨
소정묘(小正卯)를 죽여 그 시체를 3일간 궁정(宮庭)에 내걸었다고 한다.
공자(孔子)는 소정묘(小正卯)가 죽음을 당한 까닭이 나라의 정사(政事)를
어지럽힌 악행(惡行)에서 비롯하였다고 하였다.
그 악행의 내용으로는,
①心逆而險-마음이 거역함을 좋아하고 음흉(陰凶)하였다
②行辟而堅-행실이 편벽(偏僻) 되고 고집이 세었다.
③言僞而辨-거짓말을 잘하고 괴변을 잘하였다
④記醜而博-추한 것만을 기억하고 이를 넓게 알았다
⑤順非而澤-그릇된 일만 좇아 하고 자기 겉모습만을 윤택하게 하였다.
순자(荀子) 유좌편(宥坐篇)이 기록하고 있는 이 내용은 공자가 정치를 맡으면
가장 먼저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한 고사(故事)를, 공자가 실제 정치에
참여하여 입으로만 정치를 하는 달변가(達辯家) 한사람을 아예 세상과 격리
시켜놓은 것이다.
공자(孔子)가 도적(盜賊)을 잡는 일보다 말만 번지르하게 백성을 속이는
달변가(達辯家)를 잡아 죽이는 일을 앞세웠다는 유좌편(宥坐篇)의
내용은 백성을 속이는 나쁜 정치인의 처형이 도적 잡는 일보다 급선무라는
순자(苟子)의 비상편(非相篇)의 어법과 공교롭게 일치한다.
위에 그림의 글에서 명시한 것처럼
“공자가 소정묘를 처단한 것이 이재명과 똑 같은 경우다--”
이말은 이재명이 국민에게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큰가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