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똥물 망신.
나는 15년도 훨씬 더넘은. 고물차를 갖이고 있다. 한번은 길거리에 세워 놓았는데 그 고물차가 없어젔다. 이상하다. 문짝도 없는 고물차를 누가 훔처가지는 않았을턴데.
어디 갔을까? 두루 찾아 보았으나. 도모지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낡았고 고장뱅이 차일지라도. 내게는 손발이 되기에. 소중하고 보화처럼 여기는 애인인데... 그런데 그 다음날 그귀한 보물차를 쓰레기장에서 찾았다.그렇치만 나는 나름대로 변명을 곧 잘한다.
사람이 호화로운 문화주택에서 살면서. 호의호식 하는사람이나. 오막살이 초가삼간에서. 꽁보리밥을 먹으며 사는사람이나.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사람이 무었을 먹고 살았느냐? 어디서 살았느냐. 그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것이 더 중요한게 아니겠느냐 고. 사람같이 살았느냐? 아니면 짐승같이 살았느냐? 마귀같이 살았느냐? 아니면 성도같이 살았느냐" 하는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이것은 나의 변명이자. 내신앙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것이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사람이 왕궁에서 태여나서. 왕궁에서 살다가. 왕궁에서 죽는다면. 그런사람은 인생의 삶에진미를 모를게 아니겠는가? 인생은 삶의 희로애락을 통해서. 생의진미와 .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섭리와. 그리고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바라심의 뜻을 알수 있기때문이다.
내가 외국에 나온지 어연 30년이 되였는데. 그많은 세월동안을 원주민 선교에 몽땅 다 바처버렸다. 그렇니까 나의 반평생을 원주민들의 영혼구원에 아낌없이 드리고 바친셈이 된다.
이곳 과테말라에서 만도 무려 300여교회의 집회를 인도 했는데. 집회를 해달라고 해서 가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교회에서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강단에 올라와서. 그렇게도 잘하는 특송을 하든가. 인접교회의 두.세팀의 키타쟁이들이 와서. 장황스리 설교에 방불한 연설과. 키타순서를 갖인다.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앞가슴도 가리지 않은체. 강단에 올라와서 간증을 늘어놓는다. 예배당이 마치 시장거리나. 극장을 방불케 한다.
모두는 제사장이기에. 예배순서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강단은 목사의 독점물이 아니란다. 목사는 자기들이 월급을 주기에. 교회는 교인이 주인이요. 목사는 종업원에 불과 하다는것이다. 그렇기에 목사를 아예 목사라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형제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목사들에 설교는 10분이나 15분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교회는 교인들에 의해. 운영 되여진다,
목사는 자기순서에 나와서. 설교만 해주고 간다. 교회마다 찬송가는 거의 부르지 않는다. 찬송가의 종류도 많거니와. 유행에 따른 복음성가로 열을 올린다. 중남미의 특징은 여자분들이 판을친다. 고린도교회를 방불케 하는 느낌이다. 중남미는 남존여비가 아닌. 여존남비격이다. 또 사실 여자들이 남자들 보다 더 똑똑하다. 밤 10시경이 되여지면. 그때사 강사의 차례가 온다
또 부흥회를 한다고 해서. 강사 사례비를 준다든가. 아니면 냉수 한잔이라도 대접하는 예가없다. 예수님도 월급이나. 사례비를 받은 기록이 없다는것이다. 또 은혜받기위한 준비가 되여 있는것도 아니고. 그저 북 장구 치면서 노래부르고 떠들다가 예배마치는게 통례로 되여있다.
이곳 사람들의 기질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손벽을 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다가. 울다가. 은혜받았다고 간증을 하기위해. 줄을지여 강단에 오른다. 어느때는 예배분위기가 너무나 혼잡하고 산란해서.부흥회를 포기하고. 귀가하고 싶은때도 있다.
내차례가 되여지면. 나는 예배순서에서 부터. 다시 시작한다. 내가 흔히 쓰는말중에 교회는 극장도 아니고. 시장도 아니고. 난장판도 아니며. 하나님은 질서정현하신 분이시기에 . 교회는 질서와 경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배를 11시경에 마치고. 땀으로 홈뻑젖은 몸둥이를. 차문을 열어놓고. 집으로 달려오고 나면. 어느센지 땀은 다 말라버린다. 나는 20여년동안을 이런생활을 하면서. 무슨 좋은묘안이 없을까고 기도하며 생각하든중에. 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였다.
이곳의 목사들은. 정규신학을 공부한분들이 거의없다. 70%이상이 자칭목사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그리고 목사안수를 받지 않아도. 목사행세를 할수 있기때문이다.머리좋고. 입심좋은분이 몇사람을 모으면. 그냥 목사행세를 하게된다. 이것을 규제하는법도 어떤기관도 없다. 그래서 목사중에는. 글씨를 쓸줄 모르는 목사도 있고. 글을 읽지못하는 목사도 있다. 국민학교도 못나온 목사가 50% 이상이고. 겨우 국민학교 나온분. 중학교 공부한분은. 아주적다. 그리고 고등학교 공부한분이 간혹 있다.
물론 교단 신학교가 있는교단도 있다. 3개월마다 한주간씩 모여서 공부하는데. 3년과정으로 마친다. 생각컨데 한국의 평신도 성경학교 수준보다 났다고 할수없는. 그런정도다.
내가 처음에 신학교를 시작하니. 흰둥이 검둥이 할것없이 때를지여 들어왔다. 대부분 목사들이였다. 그런데 한학기도 채못가서. 감나무에서 홍시가 떨어지듯. 거의 떨어저 나갔다.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불과15$ 정도의 학비를 낼돈이 없다는것이고.둘째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 하다는것이고. 새째는 교수들의 강의를 알아듣지도 못하고. 필기도 못한다는것이다. 그래서 공부시간이 되면. 병든 병아리 새끼. 시들시들 졸다가 결국 죽어버리듯이.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가버린다.
교회에서는. 카타도치고. 북장구도 두드리고. 괭과리도 울리고. 손벽도 치기에. 신바람이 나는데. 신학교에 와보니 그렇치 않다는것이다. 거기에 교수들의 숙제를 감당할수가 없다는것이다. 그래서 가을바람에 가랑잎 떨어지듯 한다. 내가 갈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악하기만 한 길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일을 포기 할수는 없다.
설령 내가 포기를 한다 해도. 그 누군가가. 이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때문이다.
어떤분은. 돈선교.보고선교.관광선교.벤스타고 다니며 선교하는데. 나는 이렇게 고달푼 선교를 해야하는... 그렇치만 나는 선교하다가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니. 죽을때까지 해보자는 주장이다.. 그래서 고등 성경학교를 만들고. 토요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저들의 진학에 징검다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신학교의 본교는 수도에 있고. 제1분교는 제2도시에 있다. 보통 한주간에 두차례를
분교에가서 강의를 한다. 그런데 수도에서 제2도시까지는 뻐스로 5시간이나 6시간이 걸린다. 거기에 길이 얼마나 험악한지. 몸통운동이 저절로 잘된다. 몸통운동은 잘 되여서 좋지만. 너무나 꼬불통 길인지라. 아침에 무었을 먹고 떠나면 기필코 구토를 하고야 만다.
그래서 아예 조반을 먹지않고. 세벽 4시경에 출발하는데.출발전에 빈속에 소금물 한대접을 마시고 떠난다. 어느목사님의 말슴에 차멀미에는 소금물이 좋다고 해서다. 어째튼 조반도 먹지않은체 빈속에 소금물을 한대접 마시고가면. 뱃속에서는 꿀렁 꿀렁 소리가 난다. 학교에는 10시경에 도착된다. 연거퍼 2시간을 강의하고 나면. 약간의 현기증이 일고. 또 속이 미식거리기 시작한다. 그렇나 그걸 억제하면서 강의를 마치고. 이어서 몇사람과 상담을 하고나면. 언제나. 1시반 뻐스 타기에 쫓긴다. 물론 차를 타기전에 또 한대접의 소금물을 마시고 떠난다.
그런데 어느날이였다. 강의를 마친후 상담시간이 좀 길어졌다. 한성도가 자기차로 뻐스 정유장까지 대려다 주겠으니. 상담을 해야 하겠다는것이다. 그래서 정유장에 와보니. 내가 타야할 뻐스는 이미 떠나 버렸다. 그 성도의 도움으로 한20여분을 추적헤서 그뻐스를 잡았다. 참으로 천만대행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차는 초만원이였다.
비비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늘찌를 틈도 없었다. 차는 꼬불통길을 달리고 있었고.애기들은 더워서 울고. 강아지들은 낑낑거리고. 닭들은 대가리만 내놓고 헐덕거리고. 돼지새끼들은 꿀꿀거리고. 몸은 진땀으로 흘러내린다.
신세타령이 절로나오는데. 것잡을수가 없었다. 어떤분들은 벤스타고 다니는데. 어떤분들은 선교비를 5.000$ 이상을 받는다는데. 나는 쓸만한 차한대가 없어서 이렇게 비지땀을 흘리며. 냄새나는 원주민들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헐덕이며 선교를 해야 하는가? 하고 서글품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목매이는 호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는 계속 달리고. 거리마다 단속 경찰관이 서있어서 검문소를 통과 할때마다 운전사와 조수는 통로에 앉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욱박질을 한다.
할수없이 물속에 빠진 생쥐새끼처럼. 땀으로 쫄쫄해진 몸둥이를 몇차레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데. 차가 모퉁이를 돌아갈때 마다. 사람들은 이리밀치고 저리밀치고.애들은울고. 짐승들은 삑삑거리고...
그런데 체면도없이 뒷구멍에서는. 방구가 나올 기미다. 그래서 시원스럽게 방구나 뀌여 버리자 하고. 힘을 꼭 주었다. 그런데 이 웬일인가? 아침에 마셧든 소금똥물이 사정없이 봇물 터지듯 터저나와서. 두가르쟁이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려.구두에 고이고 있는 체감이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이상한 냄세가 난다고. 소동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냄새는 더 요란하다. 모두에 시선은 나에게 집중되는 느낌이다. 나는 두가르쟁이를 새끼꼬듯 꼬고 있었다. 2차의 똥물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는 하나님께. 이런 푸념을 했다.
하나님 해도 너무 하시지 않읍니까. 어떤분들은 풍성한 선교비를 받으며 선교를 한다는데. 나는 도대체 이게 뭡니까?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집에 도착 했을때는 소금물은 다 말라붙어서 딱지가 되여있었다. 차안에서의 따거운 그많은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였다.
첫댓글 구차하고 가난스레 선교하는것도 교회이지만,...큰건물에 수천명이 모여서 예배하는곳도 교회이다 라고 생각하면,..우리의 마음이 훨씬 수월해 짐은 어인 일인지요!!~...
선교의 자질을 말하기 보다는 모두 누구나 하나님이 쓰시면 도구가 됨을 말하고 싶군요.연재 하듯이 쓰신 글을 읽었는데 단기 선교를 다니는 저로서는 지적 사항과 글의 내용의 정보가 너무나 다르고,견해차이가 많군요.선교의 보고인지 그 나라의 문화 소개인지.선교의 애로 사항인지는 모르겠지만,지적 하신 그러한 단기 선교를 하는 교회는 이제는 드물어요.헌금이라 그들은 그렇게 준비하여 가지 않습니다.자칫 선교에 도전 하려는 믿음의 용사는 잘 판단 하여 읽었으면 합니다.옷을 팔면서 자신의 직업을 통하여서도 복음을 전하는 삶의 현장이 사역지가 되는 시대입니다.비지니스 선교라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