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 坤) 32-2
'데구르르---'
하얀 바탕 위에 검은 색 동그라미는 열심히 굴러다녔다. 그리고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갔다 좌우를 돌며 바쁘게 돌아다니던 동그라미의 움직임은 멈추어졌다. 얼마 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주위는 완전한 암흑에 묻혀버렸다.
"이제 다 실었군, 어서 출발하세."
"그래, 나리께서 무척 기다리시겠구만---."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소년의 보이지 않는 입가로 미소가 머금어졌다. 이제 지긋지긋하게 흔들리던 마차에서 졸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있는 곳까지 편안하게 자면서 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사흘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흔들거리던 마차에 앉아 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이가 갈리는 소년이었다. 천생의 잠꾸러기인 소년에게 잠을 잘 수 없게 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싫은 일이었다.
지난 사흘동안 마차 안에서 졸다가 머리를 바닥과 충돌하는 일이 몇 번인지---.
다섯 대의 마차와 열대의 수레 그리고 삼십명의 병졸들과 함께 아버지가 현령으로 있다는 하남성의 등봉현으로 온 가족들이 몽땅 이사가는 행렬에 소년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좋아하는 잠을 자기 위해 이불보따리가 들어 있는 상자 속에 몰래 몸을 눕힌 상태였다.
수레행렬은 아무래도 소가 끌다보니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고 마차보다도 적게 흔들리는 데다 밑에는 푹신푹신한 이불이 깔려 있는 것이다. 소년에게는 더 할 수 없이 편안한 잠자리였다. 날씨도 여름에서 선선한 가을로 넘어가고 있을 때라, 덥지도 춥지도 않을 만큼 딱 잠자기에 좋은 시기였다. 그렇게 소년은 이불보따리가 들어있는 상자 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끄아아악!"
갑자기 커다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조용하기만 이 장소에 때아닌 비명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분분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명이 울려 퍼진 곳은 하남성(河南省)하고도 등봉현(登封縣)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중원 선종의 본산이자 강력한 무승(武僧)들을 배출해내는 거대한 사찰이 있어, 등봉현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소림사(少林寺)겠지만 지금 비명이 터진 곳은 소림사하고 아무 관계도 없는 곳이다.
등봉현의 관아 한 가운데에서 터져 나온 비명의 주인공은, 너무 열 받아서 시뻘개진 얼굴로 관아의 마당 한 가운데로 나와서 소리쳤다.
"몽땅 집합!"
관아 전체가 들썩일 듯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바로 몇 시간 전 이사온 등봉현의 현령 방종대(方種大)의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하인 하녀들이 모두 관아의 마당 한 가운데로 몰려들었고, 거기에 아전들과 아전들에 빌붙어서 사는 소뇌자와 방호 같은 무리들 모두가 관아의 마당 한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현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현령이라는 지위를 가진 방종대였다. 그러니 그의 명을 거역할 만한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잔뜩 열 받은 상관을 바라보며 포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손에 든 창을 굳게 움켜쥐고 현령(縣令) 방종대를 쳐다보았다.
방종대는 관아의 너른 마당에 가득 찬 무리들을 쳐다보았다. 못 되어도 족히 오백은 넘어 보이는 무리가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곳에는 그가 찾는 아이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포졸들과 아전들을 헤치고 방종대의 아내와 아들과 딸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여보, 무슨 일인데 모두 모이라고 한 거죠?"
한참 이삿짐을 정리하느라고 정신없는 자신을 불러낸 남편을 바라보며 그녀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물었다. 방종대는 속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잔잔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여보, 짐은 다 챙겨 온 거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럼요,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챙겨서 갖고 왔다구요! 당신이 아끼던 도자기와 그림 그리고---."
기껏 바쁜 사람 불러내서 짐이나 다 챙겨 갖고 왔냐는 질문을 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잔뜩 성질 난 그녀는 침을 튀기면서 이사하면서 가지고 온 것들을 하나하나 다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바늘하나 실패하나까지 모조리 떠들어대는 그녀를 바라보며 방종대는 가만히 서 있었다.
"-----, 심지어 그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쭈그러진 요강까지 다 챙겼다구요!"
무려 반시진이나 요란한 말을 들으며 침묵하고 있던 방종대의 얼굴은 마누라의 입에서 튀어 나온 침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소매로 얼굴에 묻은 침을 소매로 닦으며 방종대는 아까부터 참고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막내는 어디다 팔아먹고 온 거야 이 여편네야?!"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현령의 고함소리에 그 관아의 마당 한 가운데에 모여 있던 모두가 바싹 얼어버렸다. 이럴 때 현령한테 잘못 보이면 무슨 화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조심스럽게 현령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때 방종대의 마누라 장봉화(張鳳花)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남편을 쳐다보며 물었다.
"막내?"
관복을 입고 있는 남편은 긴소매로 연신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내며 못마땅한 얼굴로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자신의 장남과 두 딸을 쳐다보며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 마차에 소구(少救) 타고 온 거 아니니?"
세 명의 아이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둘째 딸 방화련(方花蓮)이 말했다.
"어머니하고 같은 마차에 탄 줄 알았는데요."
등봉현의 현령 방종대는 다시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구, 내가 탄 마차에 타지 않았어요."
장봉화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이 들려있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를 흘려내는 마누라가 너무 얄미워서, 방종대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 말을 끝으로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이다.
'풀썩'
그리고 장봉화는 그대로 방종대에 기대어 쓰러져 버렸다. 방종대는 아내가 선 채로 기절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 소리쳤다.
"의원! 어서 의원을 불러라!"
방종대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침상에 누워 고른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칠칠맞게---, 다른 건 다 챙겨 왔으면서 아들녀석을 챙기지 못하다니----.에잉!"
이제 고른 숨을 내쉬며 자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그렇게 투덜거리던 방종대는 그 방을 나와서 관아의 마당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주문(主文)이라는 직책의 아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인, 분부하신 대로 발이 빠른 자들로만 추려서 개봉까지 가서 막내도련님을 찾아보라고 일렀습니다."
"음---, 수고했다."
방소구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일곱 살 난 꼬마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세상모르고 잘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소년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방씨 일가의 하녀중의 하나인 취하는 짐을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낮의 대소동은 주인나리가 포졸들을 개봉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그녀는 가장 성질 더러운 막내 도련님이 차라리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체, 뭐야 여기 숨어서 자고 있었잖아?"
그녀는 이불 보따리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는 소구를 발견하고는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리다,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이 막내 도령의 끔찍한 성격을 아는 취하는 잠을 자고 있는 막내 도련님을 깨우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지만 어떡해서라도 깨워야만 했다. 끔찍할 만큼 심술 굳은 이 막내 도련님이 자신의 잠을 깨운 하녀와 하인들에게 가한 그 처절한 복수극을 알고 있는 취하였다.
"도련님, 소구 도련님 어서 일어나요."
방소구를 흔들어 깨우는 취하의 손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막내 도련님은 쉽게 깨어날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이런, 어서 대인하고 마님께 알려드리면 될 일을----."
취하는 자신이 직접 도련님을 깨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방소구라는 이름의 소년은 이불보따리 속에서 여전히 잠들어 있고, 취하는 주인나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취하가 떠나고 방소구라는 이름의 소년은 조용히 눈을 뜨면서 중얼거렸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아무도 안 죽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혼천일검으로 시간과 공간을 베고, 혼천독보로 베어진 공간 안으로 걸음을 옮긴 소구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머리 속에 기억되고 있는 수 많은 무학에 대한 지식과 깨달음과 기억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면 안돼. 내가 본 미래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지 않으면--, 미래를 바꿀 수 없어."
황급히 소리치면서 여섯 살 난 꼬마의 두 손이 아주 빠르게 머리의 이곳저곳을 만지면서 자신의 기억과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방소구가 백년 아니 몇 천년일지도 모를 긴 시간의 흐름 속에 터득한 모든 능력이 사라지고 있었다.
방소구라는 이름의 여섯 살 난 꼬마가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달려와 보게 된, 꼬마의 아버지 방종대는 천둥처럼 고함을 내질렀다.
"이놈의 자식! 그렇게 아무 데서나 자지 말라고 일렀거늘!"
다음 순간 방종대는 무릎 위에 막내아들을 올려놓고 엉덩이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요란하게 막내 도련님의 엉덩이를 패는 주인나리의 모습을 보면서 취하는 소리도 내지 않고 밖으로 도망쳤다.
'찰싹 찰싹'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짐 정리를 하고 있던 방 밖으로 나온 취하는 울상을 지었다.
"이를 어째? 내가 고자질한 것을 알며 도련님이 날 가만 두지 않을 텐데---."
발을 동동 구르며 취하가 걱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맞고 있는 방씨 집안의 막내아들은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엉덩이는 아버지에게 계속 맞아서 불이 나는 것처럼 아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다른 모든 능력이 사라졌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기억은 머리 속에 온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요란하게 맞은 후에는 푸짐한 저녁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래에 자신의 아내가 될 취하를 바라보며 소구가 말했다.
"취하야, 이리와. 너도 저녁 안 먹었지? 같이 먹자."
"예?!"
끔찍하리 만치 성격이 더럽다고 알려진 방씨 일가의 막내가 음식을 같이 먹자고 하는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한 취하는 놀라서 되물었다.
"이리와 같이 밥 먹자고! 성질 내기 전에 얼른 이리와 내 앞에 앉아!"
성질을 내면서 소리치는 꼬마 방소구의 모습에, 문 밖에 서 있던 취하는 놀라 황급히 안으로 뛰어들어와 식탁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식사를 한 후였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느라 소구는 식사를 못했고, 얼떨결에 부엌에서 소구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게 된 취하 역시 식사를 못하고 문 밖에서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구가 식사를 끝내면 그릇들을 부엌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은 취하의 몫이었다.
소구의 눈치를 살피면서 취하는 젓가락을 깨작거리고, 소구는 식사를 하면서 슬쩍 곁눈질로 그런 하녀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모든 것을 바꿔 버릴 거야.'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즐감합니다
즐감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드디어 현세가 펼쳐지네요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