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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 지하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 다음날 정오가 되서 이천운은 어김없이 눈을 떴다.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자 아래턱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얼라? 턱이 너무 아프군. 어제 잠을 잘못 잤나?'
이천운은 잠든 뒤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만약 이천운이 어제 일을 알았더라면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것이므로, 차라리 모르는 게 좋았다. 그는 잠이 덜 깬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엔 이상한 나무들만 20여 그루정도 서 있었다. 이천운이 깼으니 정오가 분명했으나, 몇 줄기 빛만 들어올 뿐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어디선가 물소리도 들리고, 비릿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어라? 좋은 아침이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송영수를 발견한 이천운이 말했다. 송영수는 이천운의 옆에서 나무를 쓰다듬으며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잠이 덜 깬 듯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긴 지하도죠."
송영수는 잠시 손을 멈추고 이천운을 향해 말했다.
"웬 지하도?"
"기억 안나요?"
"무슨 기억?"
송영수의 물음에 이천운은 웬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 되물었다.
"어제 지하도로 떨어졌잖아요."
"아......"
"이상한 구멍을 따라 계속 떨어지니까 이곳에 도착하게 되더라구요."
송영수는 말을 하며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에는 어제 이천운이 통과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저곳으로 떨어진 건가? 그런데 지하도가 특이하네?"
"그러게요. 위쪽에 몇 개의 구멍이 나 있어서, 그 빛을 받으며 나무가 자란 것 같아요."
"그러면 어제 그 여인네는 어디 있지?"
"저쪽에 있잖아요."
송영수는 손가락으로 우측 가장자리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나무 앞에는 어제의 면사여인이 웅크리고 있었다. 실내가 너무 어둡고, 졸린 눈으로 살폈기 때문에 이천운이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왜 그러지? 힘이 없어 보이는데......"
이천운은 의아한 생각에 송영수에게 물었다.
"휴~!"
송영수는 나직히 한숨을 쉰 뒤, 이천운이 잠든 뒤의 일을 설명했다. 송영수의 설명을 들은 이천운이 나직히 중얼거렸다.
"그래서 저렇게 힘이 없는 것이군. 어서 힘을 내야 될텐데......"
이천운은 몸을 일으켜 면사여인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이천운이 면사여인을 불렀으나, 그녀는 듣지 못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작았나?'
"여보세요~!"
이천운은 더욱 큰 목소리로 면사여인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천운은 그녀의 행동에 오기가 생겨, 그녀의 몸을 흔들며 다시 한번 말했다.
"여보세요~! 대답 좀 해보세요~!"
이천운이 몸을 흔들자, 면사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천운을 바라봤다. 면사때무에 코 아래쪽의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눈이 부은 게 밤새 울은 것 같았다.
"힘내세요. 언제까지 슬퍼할 수는 없잖아요."
이천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면사여인을 위로했다. 평소 이천운의 언행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송영수는 그런 이천운의 행동에 놀라, 잠시 손을 멈추고 이천운을 바라봤다.
"네......"
면사여인은 짧게 대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싶다고 생각한 현실밖에는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기운 내서 밝은 생각을 해보세요. 당신의 어머니도 당신이 이렇게 풀죽어 있는 모습을 기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밝은 생각을 하며 생각을 바꾼다면 슬픈 와중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꺼에요."
이천운은 그 답지 않게 부드럽게 면사여인을 위로했다.
"고마워요. 목숨을 구해주시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다니......"
면사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눈물을 그치고, 기쁜 생각을 하세요."
이천운은 면사여인을 위로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면사여인의 옆에 있는 돌에는 보랏빛이 감도는 특이한 색의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다. 특이한 빛의 이끼를 바라보던 이천운은 잠시 생각했다.
'혹시 저건 전설에나 나오는 이끼가 아닐까? 책에서 보면 이런 지하동굴에는 그런 영약이 꼭 나오던데...... 저것도 100년에 한치씩 자라서 먹으면, 내공이 강해지고 금강불괴가 되는 영약일 꺼야.'
이천운은 횡재했다는 생각을 하며 이끼를 뜯었다. 고약한 썩은 냄새가 강하게 났으나,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생각에 눈을 꼭 감고 삼켰다.
'우웩! 너무 쓰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절세의 고수가 되서 이쁜 색시감을 구해야 한다!'
이천운은 쓴맛을 억지로 참으며 이끼를 씹었다. 송영수와 면사여인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천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일각이 지나자 이천운은 돌위의 이끼를 반이상 씹을 수 있었다.
"너 지금 뭘 먹냐? 맛있는 거면 같이 먹어야지!"
등뒤에서 악승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천운은 뒤를 돌아봤다. 악승호와 손비웅은 손에 과일을 한아름 들고 이천운에게 다가왔다.
"만년석균(萬年石菌)이요. 왠지 벌써 내공이 강해진 듯한 느낌이 드네."
이천운은 이끼를 손에 올려놓고, 자랑하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자부심마저 깃들어 있었다.
"만년석균이라뇨?"
송영수가 의아해 물었다.
"책에 나오는 거 있잖아. 전설의 이끼~! 100년에 한치씩 자라는 이끼~! 먹으면 내공이 강해지는 거. 역시 난 주인공이라니까~! 하하하하~!"
이천운은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도 있어요?"
송영수는 만년석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영약도 있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너 바보냐?"
한참 이끼를 바라보던 손비웅이 말했다.
"바보라뇨?"
"백년에 한치씩 자라는 영약이라니....... 그거 먹으면 배속의 기생충만 일년에 한치씩 자란다."
"네?"
"그건 보통 이끼야. 햇빛을 받지 못하고, 음기가 너무 강한 곳에서 자라 색깔이 그런 것 뿐이야. 남만의 늪지에 가면 그런 이끼는 사방에 널렸다."
손비웅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기생충만 자란다고? 우~~웩~~!"
이천운은 급히 나무뒤로 돌아갔다. 잠시 후 나무 뒤에서는 이천운의 구역질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하하하~! 저런 바보같은 놈~!"
"하하하~! 천운이 형은 아직도 이걸 소설로 착각하는 건가?"
"하하하~! 그리고 소설이라 해도 작가가 너 잘되는 꼴을 볼 것 같으냐? 절대 그럴 리가 없지!"
셋은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킥킥~!"
면사여인도 작게 '킥킥' 대며 웃었다.
"웃었다~! 웃었어~! 그렇게 웃으면서 사세요~! 풀죽어 있는 모습은 보기 싫어요."
어느새 돌아온 이천운은 면사여인의 곁으로 가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고마워요~!"'
면사여인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 활기찬 목소리였다.
"형~! 내가 설마 진짜 저걸 만년석균이라 여기고 먹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이천운이 악승호를 보며 말했다.
"아니었냐?"
"난 아가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일부로 그런 거에요. 사실 저도 저건 그냥 이끼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천운은 당당하게 말했다. 너무 당당했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는 진짜로 그런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악승호는 이천운과 지낸지 오래됐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마라~!"
"진짜라니까요~!"
"우리가 너랑 하루, 이틀 다녔냐?"
"아~우~! 답답하네~!"
이천운과 악승호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손비웅은 생각했다.
'저놈은 진짜 그런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영약으로 착각하고 먹은 것 같은데...... 그래도 덕분에 면사녀가 활기를 찾았으니 다행이군.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잘된 일이야. '
손비웅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천운의 뒤통수를 쳤다.
퍼~억~!
"이~쒸~! 또 왜요?"
"헛소리 그만하고 배나 채우자. 배고프지 않냐?"
손비웅은 과일을 하나 들며 말했다. 그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과일을 집었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다들 배가 고픈 상태였다.
"우선 먹고 보죠. 아가씨도 하나 드세요."
이천운은 과일을 하나들어 면사여인에게 건내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그 면사는 이제 벗어요. 답답하잖아요."
"그러죠."
면사녀는 손을 들어 면사를 벗었다.
"헉!"
악승호와 이천운은 동시에 감탄사를 질렀다. 면사여인은 상당한 미인이었다. 청순하면서도 약해 보여서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쁘다~! 옥진이가 발랄함이라면 이 여인네는 청순함이군. 이제야 여주인공다운 인물들이 등장하는구나. 하하하.'
이천운은 면사여인을 보고 생각했다. 악승호도 옆에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험~! 험~! 이놈들아~! 뭐하냐? 어서 먹어라!"
이천운과 악승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손비웅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말에 이천운과 악승호는 정신을 차리고 과일을 들었다. 그러나 과일은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연신 면사여인을 훔쳐보기 바뻤다. 여자를 밝히는 둘 때문에 장내에는 묘한 침묵이 돌았다.
"저~어~!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나요?"
이천운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전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어본 것이었다.
"네가 어디서 저런 미인을 봤다는 거냐? 헛소리 마라!"
악승호는 괜히 질투심 섞인 말투로 이천운을 타박했다.
"아니에요~! 진짜로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이천운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면사여인같은 미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휴~! 절 모르시겠어요?"
면사여인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할 수 없군요. 이러면 아시겠습니까?"
이천운의 말에 면사여인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용히 시를 읊었다.
너를 알기 전에 나의 모습은
정지된 시간속에서와 같았어.
너의 눈동자를 사랑하기 전엔
시간의 모래속에 나는 그저 묻혀있었어.
여기까지 들은 이천운은 비로소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임가촌에서 단체만남시에 만났던 한연화였다. 시간이 오래되고, 이천운은 곧바로 잠들었기 때문에, 그녀를 쉽게 기억해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 가슴의 아픈 흔적들이
내게 영원히 지어지지 않는다 해도
너만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
나는 그 다른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이천운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의 뒷부분을 이었다.
"이제 기억나시나 보군요."
한연화는 이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붉게 상기돼있었다. 그러나 실내가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네. 그런데 그때는 무림맹소속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지금은 왜 마화교에 있는 거죠?"
이천운이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맞아요. 무림맹 현무당주이기도 합니다."
한연화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하다더니...... 그럼 제가 누군지 알고 있었겠군요?"
악승호가 끼어들며 물었다.
"네. 알고 있었습니다. 한때 무림맹의 삼대소영웅(三代少英雄)이라 불리던 화산일검. 화산괴걸 악승호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장래가 촉망받던 세명이 한꺼번에 맹에서 탈퇴를 하고 떠도는 거죠? 그대로 있었으면 명예가 보장됐을 텐데...... 영문을 몰라 항간에 많은 추측들이 떠돌았습니다."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악승호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면 누나는 두 가지 신분을 갖고 있는 건가요?"
송영수가 갑자기 끼어들며 물었다.
"네."
"그러면 마화교는 대체 뭐죠? 설명 좀 해주세요."
"마화교는 여자들이 중심이 되 만든 단체입니다. 세상에서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들에게 억눌리며 불공평한 대접을 받았죠. 그래서 20여년전에 저희 어머님이 중심이 되 만드셨습니다."
"마화교에는 복면을 한 남자들도 상당수 포함돼있던데...... 그들은 어떻게 된 거죠?"
"그들은 저희가 포섭한 사내들입니다. 남자들은 미인계에 쉽게 넘어오더
군요. 그들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복면을 했습니다."
"그리고 왜 마교가 마화교를 공격한거죠?"
"글세요. 얼마전부터 마교가 강남에 세를 확장시키며 저희와 몇 번 충돌이 있었어요.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말에 송영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교는 강호제패에 관심이 없는 걸로 알고있는데...... 역시 마교내부에 변고가 생긴 건가?"
"네. 저희측에서도 확실하게 파악하진 못했지만 내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처음부터 두 가지 신분을 갖고 무림맹에 일부로 잠입한 겁니까?"
"아니요. 저도 처음에는 무림맹에만 소속돼 있었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어렸을 때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 가입하게 된 겁니다."
"헤어진 어머니요?"
"네. 그건 사정이 길으니 나중에 얘기해 드리지요.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 외전 형식으로 나오겠죠."
한연화는 다시 어머니가 생각나는지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장내에는 다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죄송하지만 혹시 이무결이란 사람을 아십니까?"
다시 이천운이 침묵을 깨며 한연화에게 물었다.
"이무결이요? 그게 누구죠?"
한연화는 처음 들어보는 듯 이천운에게 되물었다.
"그게요......"
이천운은 한연화에게 자신이 강호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호호호호~!"
이천운의 설명이 끝나자 한연화는 일각동안 배를 잡고 웃기만 했다.
"이런......"
이천운은 머쓱해져서 괜히 뒤통수를 긁적였다.
"웃어서 죄송합니다. 호호. 이런 경우는 처음 들어봐서요. 정말 죄송해요. 호호."
한연화가 이성을 찾고 사과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한연화는 연신
웃어댔다.
"소협의 아버님은 저희 교인이 아닌 것 같군요. 저희 교에 속해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각 지역에서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리고 최근에 이무결이란 사람이 가입했다는 말은 못들어 봤습니다."
한연화가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휴~! 그러면 이젠 어떻게 해야되지......"
이천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기죽지 마시고, 힘내세요."
한연화는 이천운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래야죠. 한숨 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왜 처음부터 이런 지하통로를 이용하지 않았죠? 이곳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했으면 어제처럼 심각한 타격은 모면했을 것 같은데......"
이천운은 자신 때문에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으려 하자, 화제를 바꾸며 활기찬 어조로 물었다.
"이 지하도는 완전한 게 아니거든요. 사실 이곳에는 더 큰 위험이 있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위쪽에 있는 게 훨씬 더 안전했을지도 몰라요."
"무슨 위험이죠?"
"그건......"
말을 하려던 한연화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따라오세요."
한연화는 말을 한 뒤, 앞장서서 어디론가 향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이
천운일행도 과일을 먹고 배운 채운 상태였으므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연화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이상하게 생긴 검은색 나무를 헤치며 일각여 정도 걸어갔다.
그들이 있던 곳은 커다란 섬과 같은 곳이었다. 이십여장쯤 이동하자 나무가 없어지고 해안가같은 모래가 나타났다. 그리고 앞에는 검은 색의 깊어 보이는 물이 있었다. 그곳은 지하통로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섬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었다. 천장에는 주먹만한 크기의 야명주가 촘촘히 박혀있어 주위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바다라는 건가? 이걸 어떻게 만든 거죠?"
"원래 넓은 일종의 지하광장이었다고 합니다. 그걸 우연히 발견해서 약
간 개조한 거에요."
이천운이 놀라 입을 벌리며 말했다.
"이건 바다라기 보다는 하나의 호수같군요. 그런데 여기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되죠."
송영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보이시죠?"
한연화는 손가락으로 50여장쯤 떨어진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곳과 비슷한 모양의 섬이 있었다.
"저쪽까지 가면 통로가 있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요."
"간단하네요. 뭐가 문제라는 거죠?"
송영수가 물었다.
"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랍니다."
한연화는 한숨을 내쉰 뒤 바닥에서 돌을 하나 주었다.
"놀라지 말고 잘 보세요.
그녀는 돌을 물속을 향해 던졌다. 돌이 물속에 빠지자 물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뭐지?"
이천운일행은 자연히 긴장하며 내력을 모았다.
부글부글~!
물이 요동을 치더니 곧 엄청난 수의 뱀떼가 물속에서 나타났다. 검은색의 뱀들은 하나같이 길이가 20자가 넘어보였다. 두께도 이천운의 허리보다 훨씬 두꺼워 공포감을 주었다. 게다가 뱀들은 심한 비린내가 나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날뛰던 뱀들은 배가 고팠는지 곧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작은뱀을 발견하면 입을 벌려 상대를 삼켜버렸다. 일각정도가 지나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던 뱀들은 십여마리로 줄어들었다. 남은 뱀들은 고르고, 고른 정예요원(?)이었기 때문에 30자가 넘는 커다란 뱀들뿐이었다. 십여마리의 뱀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더니, 배가 부른 듯 다시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아 갔다.
"저게 뭐지? 저게 뱀인가?"
멍하게 구경하던 악승호가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나도 살다가 저런 광경은 처음 보는구나."
손비웅도 어이가 없는 광경에 힘없이 중얼거렸다.
"맞아요. 천운이 형도 처음 보죠?"
송영수는 손비웅의 말에 맞장구치며 이천운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이천운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형~! 어디 간거에요?"
송영수가 놀라 외치자 손비웅을 비롯한 셋도 이천운이 보이지 않는 걸 눈치챘다.
"어디 갔냐? 설마 물속에 빠진거냐?"
"어디 갔어요? 어서 대답을 해보세요!"
"장난하다 걸리면 죽는다~!"
셋이 애타게 이천운을 부르자 숲속에서 이천운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 우~웩~! 여기에...... 우~웩~! 있어요~! 우~웩~!"
이상한 생각에 넷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천운은 커다란 나무를 붙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우~웩~! 난 뱀만 보면...... 우~웩~! 속이 울렁거려. 우~웩~!"
이천운은 연신 구역질을 해대며 말했다.
"괜찮으세요?"
한연화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이천운의 등을 두들기며 물었다.
"에라이 못난 놈아~! 사내놈이 겨우 저 정도에 놀라 구역질이냐? 거시기가 아깝구나~!"
손비웅이 어이없는 음성으로 이천운을 타박했다. 그러나 말투와는 달리 얼굴에는 걱정하는 빛이 역력했다.
"저건 혹시 상고시대의 기물 조화흑거사(遭禍黑巨蛇) 아닙니까? 일명 흑
거사(黑巨蛇)라고도 하죠."
송영수가 한연화에게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원래 이곳은 물도 없는 평범한 지하통로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비상탈출구로 만들어졌죠. 그런데 십여년전 쯤에 거대한 검은 뱀 두 마리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하통로밑으로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던지 점점 물이 차올라 지금과 같은 지형으로 변했다고 해요.
아까 그 뱀들은 처음에 나타난 두 마리 뱀의 새끼들일 꺼에요. 물 속에 몇 마리의 흑거사가 있는지는 저희도 잘 몰라요."
"허...... 새끼가 그 정도면 진짜는 대체 어느 정도 크기라는 거야?"
악승호가 어이가 없어 투덜거렸다.
"아마 물이 검은 색으로 변한 것도 뱀의 독 때문일 겁니다. 기록에 의하면 성장을 마친 흑거사는 길이만해도 100자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흑거사의 독은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어떤 독충의 독보다 강력하고요. 아마 저 검은 물에 닿기만 하더라도 몸이 녹아 없어질 겁니다."
송영수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사실 마화교에서 비밀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조화흑거사 때문이었다. 일년전 마화교측에서 지하통로를 다시 뚫기위해 백여명의 고수들을 내려보냈으나, 살아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마화교에서는 지하통로를 폐쇄시키고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여자들은 천성적으로 뱀을 싫어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주축이 된 마화교측에서 지하통로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곳 말고 다른 통로는 없어요?"
이천운이 허리를 피며 말했다. 구역질을 심하게 했기 때문에, 이천운의 얼굴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하얗게 질려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아까 보신 섬까지 가지 못하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이곳을 이용하지 않으려 했는데......"
한연화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도 이천운만큼은 아니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데 왜 저 뱀들은 이곳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거지? 뱀들이 이곳까지 올라오면 우리는 모두 몰살일텐데......"
악승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건 이 나무 때문일꺼에요."
송영수는 섬에 널려 있는 특이한 향기가 나는 검은나무를 쓰다듬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나무길래?"
"이건 상고시대에 존재했다는 추사목(追蛇木) 이에요. 오래전에 멸망됐다고 하던데 이곳에 남아있군요. 이 나무에서 나는 독특한 향은 뱀을 쫓는다고 하지요."
"냄새?"
"네. 뱀은 사람보다 후각이 민감하기 때문에 이런 냄새를 싫어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저쪽에 있는 땅에도 추사목이 있어 뱀이 접근하지 못할 겁니다. 반대편까지 도착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텐데......"
송영수는 나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기까지 다리를 하나 만들면 되잖아.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다들 방법을 생각하느라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이천운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퍼~억~!
"지금 장난하냐? 저기까지 어떻게 다리를 만들어? 네가 한번 만들어봐라!"
뒤통수를 때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손비웅이 이천운을 타박했다.
"이~쒸~! 다리 놓는 게 힘들면 징검다리라도 만들면 되잖아요. 괜히 타박이야. 그리고 뒤통수좀 때리지 마요~!"
이천운은 뒤통수를 감싸쥐고, 고리눈을 뜬 채 항변했다. 한편, 송영수는 이천운의 말을 듣고 "아~!" 하는 감탄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어~쭈~! 이놈이~! 실현 가능한 계획을 말해봐~! 쓸데없는 계획만 말하지 말고~!"
손비웅은 다시 손을 들어 이천운의 머리를 때리려했다. 이천운은 재빨리 한연화의 뒤에 가서 숨었다.
"어~라~?? 빨리 여기로 않나오냐?"
"내가 머리에 탄지신공 맞았어요? 거기에 내가 왜 가요? 나가면 또 맞을텐데......"
이천운은 혀를 내밀며 약올리듯 말했다.
"이놈이~!"
"잠깐만요~!"
손비웅이 화가나 덤벼들려는 순간 송영수가 손비웅을 만류하며 말했다.
"왜 그러냐?"
손비웅은 아직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천운이 형이 말한 방법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어떻게? 난 그냥 아무렇게나 한 말인데......"
이천운이 황당한 음성으로 물었다.
"저기까지 나무로 징검다리를 만드는 겁니다."
"천운이랑 같이 다니더니 너도 물들었냐? 왜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거야?"
악승호가 어이가 없어 물었다.
"가능해요! 여기서 던지는 각과 힘을 계산해서 곡선을 그리며 나무를 던지는 겁니다. 그러면 나무는 바닥과 어느 정도 각을 이루며 꽂힐 꺼에요. 그러면 나무를 밟고 이동하는 거죠. 마침 바닥이 부드러운 모래로 이뤄졌으니, 나무끝을 날카롭게 깎는다면 가능합니다."
"진짜 그게 가능할 거 같냐?"
손비웅도 어느새 평정을 되찾아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송영수는 자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하며 말을 이었다.
"포투리수(砲投理數)라는 책에 의하면 포탄을 쏠 때, 알맞은 각도와 힘을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우선 한근짜리 돌을 구합니다. 물속에 돌을 던져서 물이 솟구치는 높이와 형태, 시간을 구한 뒤, 그 값을 연립 이십차 방정식에 대입해 물의 반발계수 갑(甲)의 값을 구합니다. 그런 뒤 다시 갑을 소인수분해(小因數分解)해서 모래의 평면계수 을(乙)을 구합니다. 그래서 다시 웁......."
송영수가 신이 나서 풀이 과정을 설명하자, 이천운이 급히 손으로 송영수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여러분들도 이해했죠?"
"네~!"
"당연하지~!"
"그정도 쯤이야~!"
다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으나,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들었겠지? 우린 다들 이해했으니까, 네가 열심히 계산해서 알려줘라~! 우린 너만 믿으마."
"그런 게 어디에 있어요? 전 아직 반도 설명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을의 값을...... 웁!"
송영수가 다시 길게 설명하려하자 이천운이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알았어~! 하여튼 너만 믿는다. 모두 해산~!"
이천운이 말하자 악승호와 손비웅, 한연화는 신법을 펼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천운도 송영수의 입을 막았던 손을 떼고 재빨리 몸을 날렸다.
"이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 설마 나 혼자 그 많은 수를 전부 계산하라는 거야?"
송영수는 허공에 한 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그러자 어디선가 얄미운 이천운의 음성이 길게 울려퍼졌다.
"당~~연~~하~~지~~!"
첫댓글 감사합니다
ㅈㄷㄱ~~~~~~~```````````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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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2, 3, 4 누락
잘읽었습니다
즐독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