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17) 상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 ② 푸르른 날이 다 가기 전에/ 시인,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재찬
상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jjy6791/ 송창식-푸르른 날
② 푸르른 날이 다 가기 전에
가수 송창식의 노래로 널리 알려지게 된 〈푸르른 날〉.
미당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니 KBS 가요대상에서 가사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남세스러울 정도입니다.
이 노래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청년 가수 송창식은 동갑내기 시인 문정희를 만나게 됩니다.
시인의 회고에 따르면 신문사 좌담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여고 시절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며 미당으로부터 ‘천재 문학소녀’라는 극찬을 받고
일찌감치 미당의 문하생이 되었던 시인인데,
그날 뜻밖에도 송창식에게서 그가 중학교 시절부터
서정주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고백을 듣게 됩니다.
마침 그날 그녀가 미당과 만날 약속이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번에도 시인의 기억에 따르자면, 송창식의 ‘특청(特請)’을 받아들여
그날로 그를 미당 시인에게 소개했다는 겁니다.
뭐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평소에 대중가요 노랫말로 시가 쓰이는 데 대해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미당이
송창식에게 자작시 〈푸르른 날〉을 그날로 내어줬답니다.
짐작건대 기승전결 양식의 시상 전개도 그렇고, 일정한 음절수와 음보수도 그렇고,
노래로 만들어지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을 겁니다.
그날 이후 아마도 송창식은 의욕과 부담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야 했겠지요.
미당의 전집도 다 구해 읽었다고도 하는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고요,
대가의 시에 곡을 붙여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밤, 문정희 시인은 느닷없는 전화 한 통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그 밤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아니, 이런 밤에 시인이 잠을 자고 있어요?”
수화기 저쪽에서 적이 실망한 목소리가 나의 잠을 밝게 깨워버렸다.
“이런 밤이라니요?” 나는 누군가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이같이 반문했다.
“창문을 열어 보세요.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요.” (중략)
그러나 뒤이어 전화 속의 목소리는 더 기쁜 소식 하나를 나에게 전했다.
서정주 시인의 시 〈푸르른 날〉에 곡을 붙이는 일이 드디어 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나는 그날 밤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을 나와 동갑내기인 가수로부터 처음으로 노래로 들었다.
(중략) 숲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지만 그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숲길에는 마침 행인이 뜸했고 우산을 받고 선 그 유명가수의 목소리는 아름답게 떨리고 있었다.
―문정희, 〈눈부신 슬픔, 뭉클한 절창〉
마침내 곡을 완성한 송창식의 행복한 흥분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전화기를 통해 그 떨림을 교감하면서 노래의 날개를 단 스승의 시를 새삼스럽게 듣고 있는
시인의 전율도 느껴집니다.
푸른 하늘은커녕 숲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입니까.
모두 젊었던 시절, 청년이란 말처럼 매일이 푸른 하늘같던 시절의 이야기인 걸요.
하지만 푸름은 희망과 설움의 접경지대입니다.
푸름은 희망에도 어울리고 설움에도 어울려서,
푸른 희망이라고 하면 희망이 더 희망차게 들리고,
푸른 설움이라고 하면 설움이 더 서럽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 노래의 매력은 어쩌면 송창식의 후련하게 터진 그 푸른 목소리에 담긴 푸른 설움을 듣는 데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시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같은 시구도 좋습니다.
‘저기 저기 저 가을’이라니, 아주 멀리까지 펼쳐진 가을 하늘을 가리키는 것도 같고,
그러면 꽤나 유장하게 읽어야 할 것도 같고,
아니면 이 아름다운 가을 저 고운 단풍도 오래가지는 못할 터,
살짝 버벅거리며 더듬는 듯한 어조로 안타까움을 담아 가슴 벅차게 낭송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 미묘함이 저는 좋습니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같은 표현은 말할 것도 없지요.
좋아하든 싫어하든 서정주 아니고서는 나오기 힘든 절묘한 시구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이 단순한 선언에 마음이 끌립니다.
아마 일상어로 저렇게 이야기했다면 싱겁기 그지없었을 겁니다.
예쁜 사람을 예뻐하자.
존경할 사람을 존경하자 따위의 말은 얼마나 하나마나한 소리입니까.
허접한 동어반복이지요.
그런데 그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에’를 동반하자 달라집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 특별한 날, 당신은 누구랑 무슨 일을 꿈꾸십니까.
연인과 멋진 곳으로 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야외 콘서트도 가고 싶고, 풍광 좋은 곳에서 우아한 식탁을 마주하고도 싶겠죠.
아름다운 날이니까요.
그런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말이죠.
묘하게 서글퍼지기도 한다는 걸 아시나요?
아직 그런 감성이 남아 있다면 마냥 들뜨지만 마시고 그때 이 시, 이 노래를 불러보세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이 좋은 날, 이 아름다운 날,
그리운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서글픕니다.
아니,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보지도 못한 게 너무 미안해집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시인은 말할 뿐인 겁니다.
맞아요, 내가 무심한 탓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다신 만나지 못할 운명이라 그리운 사람이니,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그리워는 했어야 하는 거지요. 살아 있는 이든 이미 저 가을 하늘 위로 가버린 이든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
이 노래가 주는 감동을 단순함에서 오는 뭉클함으로 요약하면 어떨까요?
잊고 있던 감정들, 닫아두었던 감성들,
억눌렸던 그리움들을, 복잡하고 긴 말 필요 없이,
그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당연하고 단순한 명령으로 작동케 하다니 말입니다.
업무에 치여서, 선약이 있어서, 여유가 없어서 따위 일체의 핑계를 거절하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라는 생각이 든 바로 그때,
모든 것 잠시 놓아두고 그리운 사람을 마구 그리워하라는 겁니다.
눈부시게 그립고 보고픈 그대,
아니 그리워하면 할수록 서럽고 서글프지만 그럴수록 눈부신 그대들을 불러보라는 겁니다.
그 명령은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푸르른 날이지만 그 청명한 하늘은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입니다.
벌써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듭니다.
머잖아 눈이 오고 봄이 올 겁니다.
나중에서야, 잃어버리고, 상실하고, 놓치고, 보내놓고,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그리운 사람은 지금 당장 그리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죽을지도, 네가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가고 누구는 남지만, 그도 결국엔 떠납니다. 우리 모두 죽습니다.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정재찬, 인플루엔셜, 2020)’에서 옮겨 적음. (2023. 2. 9.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17) 상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 ② 푸르른 날이 다 가기 전에/ 시인,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재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