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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날.
잠에서 눈을 뜬 이천운은 서걱서걱하는 뭔가를 가는 소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네.'
그는 아침부터 기분 버렸다는 생각을 하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보니 송영수가 탁자위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갈고 있었다. 송영수는 일에 열중한 듯 이천운이 일어난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손비웅은 고지라와 같은 방을 쓰고, 그는 송영수와 한방을 썼다. 그리고 악승호는 따로 방을 하나 쓰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뭐 하는 짓이냐?"
이천운이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물었다.
"어? 형 이제 일어났어요? 그럼 벌써 정오가 된 건가?"
송영수는 몸을 돌려 이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암~~! 아침부터 뭘 하길래 이렇게 시끄러워? 시끄러워서 깼잖아."
"내가 뭐가 시끄러워요? 정오만 되면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일어나는 사람이......"
"어쭈?! 자꾸 반항이 느는구나. 오랜만에 뒤통수나 한번 쓰다듬어 줄까?"
"쳇! 잠시 작업을 하느라구요."
"무슨 작업?"
이천운은 흥미를 느끼고 침상에서 일어나 느릿하게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는 송영수의 맞은편에 앉아 송영수를 바라봤다. 탁자위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송영수는 커다란 이빨같은 것을 여러 개로 작게 쪼게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
"이게 뭐냐?"
이천운은 이빨의 용도가 궁금해 무심코 손을 뻗으며 물었다.
"안돼요! 그거 만지면 죽어요!"
송영수는 손을 멈추고 급히 그를 제지했다.
"이게 뭐길래?"
"그건 흑거사의 이빨이에요. 그리고 이건 흑거사의 껍질이고...... 이건 힘줄......"
송영수는 탁자위의 물건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검은 가죽장갑이 끼어져 있었다.
"그걸 언제 다 챙겨온 거냐?"
"형이 암놈을 죽이고 잠들었을 때요. 흑거사의 힘줄인 천잠사보다도 더
질기고 탄력이 좋거든요. 그리고 껍질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단단하고......"
송영수는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이빨을 갈았다.
"그걸 어디에 쓰려고?"
이천운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이랑 같이 다니면 목숨이 열 개라도 만수무강에 지장이 많을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이용해 암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이건 기관으로 작동하는 암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쉽게 쓸 수 있어요."
송영수가 고개를 들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와~! 대단하구나~! 그러면 그거 나 주는 거냐?"
이천운이 탐욕스러운 빛을 뿜어내며 물었다.
"왜 형을 줘야 돼죠?"
"원래 그런 좋은 무기는 주인공이 갖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도 좋은 무기를 하나 갖고싶었는데......"
이천운은 당연한 듯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송영수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왜 그래?"
"이거 만드는 게 애들 딱지 만드는 것처럼 쉬운 일인 줄 아세요? 이건 내꺼에요. 꿈도 꾸지 마요!"
송영수는 나중에 이천운이 다른 말하지 못하도록 미리 못박아놓기 위해 단호히 대답했다.
"어쭈~! 좋은 말할 때 내놔라."
이천운은 손을 들고 당장이라도 송영수의 뒤통수를 때릴 기세로 말했다.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런 짓은 악당도 안해요!"
"여기 있지! 자꾸 반항하지 말고 완성되면 좋게 말할 때 내놔라! 아니면 피 본다~!"
이천운은 송영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악당과 별 차이가 없었다.
"네~!"
송영수는 그의 황당함에 질려 결국 승낙했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승복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짜~식~! 진작에 그럴 것이지. 그러면 아침(?)부터 협박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됐잖아."
이천운은 아침부터 한 건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세수를 하기 위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쳇~! 저런 얍삽한 악당같으니...... 내가 이걸 진짜로 줄 것 같어?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든 건데......"
송영수는 흑거사의 껍질을 껴안으며 입을 삐죽 내밀고 작게 투덜거렸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이각정도 지나자 이천운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동경을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뒤, 송영수를 보고 말했다.
"어떠냐? 이 형님 잘생기지 않냐? 역시 난 내가 생각해도 꽃미남이야~!"
그는 온갖 폼을 잡아가며 물었다.
"네~ 네~! 어련하기겠어요~!"
송영수는 그런 일을 너무 많이 들어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그래서 돌아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야~!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자세히 좀 봐봐~! 영웅의 기개가 느껴지지 않냐?"
이천운은 송영수를 채근하며 말했다. 그는 여전히 온갖 느끼한 폼을 잡고 있었다.
"알았아요. 그런데 연무장으로 안가요? 어제 잠에서 깨면 식사하고 곧장 연무장으로 오라고 했잖아요!"
"아~! 깜빡했다~!"
이천운은 머리를 치며 급히 밖으로 나갔다.
"휴~! 대체 왜 저러는 건지? 신이시여~! 이것도 저를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시련입니까?? 이건 제가 감당하기 힘든 너무 가옥한 시련입니다~! 어쩌자고 저를 이런 시련에 빠뜨리십니까??"
송영수는 하늘이 원망스러은 듯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신세한탄을 했다.
이천운이 대강 식사를 마치고 연무장으로 가보니 이미 고지라와 손비웅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무장으로 향하는 동안 패력무관의 상징인 청색무복차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을 봤으나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고지라와 손비웅은 연무장 한쪽에 마련 된 그늘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있었다.
"헉~! 헉~! 늦어서 죄송합니다. 흑룡신공(수면신공)은 너무 부작용이 심해서...... 어쨌든 최선을 다해 뛰어왔습니다."
이천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안색은 평온했고, 땀 한방울 흐르지 않는 게 거짓인 게 확연하게 표시가 났다. 고지라도 눈치챘으나 짐짓 모른 채 하며 말했다.
"첫날부터 늦으면 어쩌자는 건가? 수면신공의 부작용은 막기 힘들다고 하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마. 내일부터는 더 일찍 와라."
"네."
이천운은 자신의 연기가 성공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반성의 빛
을 띠고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는 본인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시작해볼까?"
고지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손비웅은 뜻 모를 웃음을 띠며 이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한가한(韓可汗) 먼저 나와라!"
고지라는 연무장의 우측에 있는 건물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건물안에서 봉을 든 거구의 대머리 청년이 나왔다. 사람을 다치지 않게하기 위한 듯 봉끝을 솜뭉치로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저 청년과 비무를 하면 돼네."
고지라가 옆에서 목검을 꺼내 던지며 말했다.
"그래요? 별로 강해보이지 않는데요."
이천운이 손을 뻗어 목검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가벼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목검은 상당히 무거웠다. 50근은 족히 나갈 듯한 무게였다.
"무슨 목검이 이렇게 무겁죠?"
그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안에 쇠가 들어있는 특수제작목검이거든. 널 위해 특별히 만든 거다."
이천운이 목검을 이리저리 살피는 동안 대머리는 연무대위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도 너무 간단한 것 같은데요? 이게 무서운 특별훈련이라는 겁니까?"
그는 연무대로 올라가며 고지라를 돌아보고 말했다.
"아~! 한가지 깜빡했군. 이것도 가져가게."
고지라는 머리를 치며 품속에서 묵직해 보이는 보자기를 꺼냈다. 그가 보따리를 던지자 보따리는 "쿵!" 소리를 내며 이천운의 발밑에 떨어졌다.
"이게 뭐죠?"
이천운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안에는 쇠로 만든 듯한 검은색의 고리가 네 개 들어있었다.
"꽤 무거운데요?"
"그건 개당 20근 짜리다. 어서 양팔과 다리에 차라."
"네?"
"어서 차라. 이것도 특별훈련의 일부니까......"
고지라의 말에 이천운은 고리를 하나씩 찼다. 두 팔이 축 늘어질 정도로 무거웠으나, 오랫동안 기초연습을 했기 때문에,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었다.
"그럼 비무를 시작하게나......"
고지라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전 이천운이라 합니다."
이천운은 맞은편의 상대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추며 말했다.
"너무 예를 갖추기 마십시오. 전 한가한이라 합니다."
한가한도 예를 갖추며 공손히 대꾸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조심스런 모습이었다.
둘은 인사를 나눈 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운횡진령(雲橫秦嶺)!"
한가한은 기합을 지르며 이천운을 향해 봉을 곧게 뻗었다. 날카로운 기세나 빠른 속도가 전혀 없는 평범한 일초였다.
"흥!"
이천운은 한가한의 우측으로 돌아가 그의 옆구리를 수평으로 베어갔다.
"헉!"
한가한은 놀라며 급히 봉을 회수해 옆구리를 보호했다. 그러나 이천운은 검을 회수한 뒤, 한가한의 허벅지를 찔러갔다. 한가한은 순식간에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뒤로 물러났다.
'뭐지? 나보다 더 못하잖아? 날 너무 우습게 본 건가?'
이천운은 의아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한가한을 밀어부쳤다. 한가한은 계속 뒤로 밀려나 연무장의 구석까지 몰렸다.
"이제 끝난 것 같군. 쌍영비천(雙影飛天)!"
"악!"
이천운의 검이 두 개로 늘어나자 한가한은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이천운의 공격에 한가한의 봉은 그의 손을 벗어나 뒤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그는 60여초만에 한가한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이천운은 고지라를 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래. 그는 너무 쉬운 것 같구나. 그러면 다음 상대와 비무를 해볼까? 유명해(兪明解) 나와라!"
고지라는 웃으며 유명해를 불렀다. 그러자 한가한이 나온 건물에서 외소
한 몸집의 청년이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연자창이 들려있었다. 그의 연자창도 창날에 나무가 박혀있어 상대를 상하게 하는 것을 방지했다. 그도 몸이 마르고 비실비실해 보이는 게 별로 강해 보이지 않았다.
"유명해라 합니다."
유명해는 연무장위로 올라가 공손히 말했다.
"이천운이라 합니다."
이천운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으나, 웃으며 예를 갖춰 대꾸했다.
"검영난무(劍影亂舞)!"
이천운은 빨리 끝낼 생각에 인사를 마치자마자, 경공을 전개해 순식간에 유명해와의 간격을 좁혔다. 그리고 검을 어지럽게 휘두르며 유명해의 전신대혈을 공격해갔다.
"앗!"
유명해도 한가한의 실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곧바로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50여초도 지나지 않아 이천운은 유명해의 무기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제가 이겼습니다."
이천운은 웃으며 고지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래. 잘했구나. 이번에는 악순환(岳順換) 나와라."
고지라의 말에 이번에는 채찍을 든 평범한 인상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악순환이라 합니다."
"이천운입니다."
이천운은 인사도 성의 없이 대강한 뒤, 악순환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무음무영(無音無影)의 초식으로 악순환의 대추혈(大椎穴)을 찔러갔다. 그는 앞의 둘보다는 고수인 듯 채찍을 휘두르며 이천운의 공격을 무마시켰다. 그러나 이천운은 쌍편과의 대결을 기억하며 악순환을 밀어붙인 끝에 80여초만에 승리할 수 있었다.
"지금 자꾸 뭐 하는 겁니까? 이건 너무 쉽잖아요!"
이천운은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지라를 향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겨우 세 명 지났네. 벌써 땀을 흘리면 어떻게 하나?"
"이게 무거워서 그래요."
이천운은 손목의 고리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런가? 하여튼 이제 겨우 시작이네. 다음 나오게나."
고지라의 말에 대환도를 든 5척 단신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언제까지 이런 비무를 해야되죠? 특별훈련은 언제 하는 거에요?"
이천운이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이런 쓸모 없는 비무를 그만두고 빨리 특별훈련을 받고 싶었다.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게 특별훈련이라네......"
"네?"
이천운은 영문을 몰라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자네는 내공이 부족해 초식의 위력이 약하네. 그러니 근력을 키워 초식의 위력을 높일 수밖에...... 그래서 그 쇠고리를 차게 한 거네. 그리고 수면신공은 내공의 성취가 더디다고 하더군. 그럴바에야 차라리 수많은 비무를 통해 실전감각과 여러 가지 대처요령을 키우는 게 실력향상의 지름길이지."
"아...... 그런가요? 그러면 앞으로 몇 명이나 더 비무를 해야되죠?"
"얼마 안되네."
고지라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이천운은 그의 웃음에서 불안을 느꼈다.
"얼만데요?"
"오늘은 첫날이니 백명하고만 겨루게나. 비무인원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할꺼야."
"네?"
이천운은 놀라며 말했다.
"그러면 아까 장원에서 보이던 사람들이 전부 내 비무상대인가요?"
"그렇네. 내가 자네를 위해 특별히 양양근처의 무사들을 초청해왔네. 실력도 삼류부터 일류까지 다양하게 있으니 마음껏 겨뤄보게나."
고지라는 단신의 중년인을 향해 손짓을 했다.
"공격한다. 조심해라~!'
중년인은 인사도 없이 이천운을 향해 대환도를 휘둘러갔다.
"이 정도 쯤이야~!화영만천(花影滿天)!"
이천운은 화영만천의 초식으로 일종의 검막을 형성해 방어했다. 엉성한 검막이었으나, 중년인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청영참마(靑影斬魔)!"
이천운은 보법을 펼쳐 중년인과 거리를 둔 뒤, 청영참마의 초식으로 공격했다. 중년인은 앞의 세 명보다는 강해 만만치 않았다. 300여초가 지나서야 이천운은 그를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
네 명을 상대했을 때 그의 숨은 이미 거칠어져 있었다. 그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무를 했다. 쇠고리로 인해 몸이 빨리 지치고, 상대도 조금씩 강해졌기 때문에 갈수록 상대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급기야 20명째 상대와 비무할때는 방어만 하다가 신나게 얻어맞았다. 다행이 상대의 무기가 이천운을 보호하기 위해 뭉툭하게 되어있어 심한 상처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심한 타박상으로 인해 비무를 마쳤을 때 그의 몸에는 성한 곳이 없었다.
"따라오너라. 널 위해 준비한 특수 용품이 있다. 아주 비싼 용품이야."
한시진쯤 지나서 이천운의 비무가 끝나자 고지라는 그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천운은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으나, 공짜로 비싼 용품을 준다는 말에 혹해 열심히 따라갔다. 손비웅이 옆에서 거들어 준 덕분에 이천운은 무사히(?) 고지라의 방까지 갈 수 있었다.
고지라는 방으로 들어간 뒤, 벽장을 뒤적였다. 매우 귀중한 물건인 듯 벽장 깊숙이 있어,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뭐죠?"
한참이 지났는데도 물건을 찾지 못하자 이천운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봐라. 그게 엄청 귀한 물건이니까......"
고지라는 벽장속에 얼굴을 집어넣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그게 어디 있더라......"
그는 일각이 더 지난 후에야 겨우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그가 꺼낸 건 하나의 베개와 얇은 이불이었다. 푸른색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베개에서 은은한 한기가 느껴지고, 이불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미세한 기운이었기 때문에, 쉽게 느낄 수 없었다.
"그게 뭐죠?"
내심 잔뜩 기대하던 이천운은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 얼굴로 보지 마라. 이래도 무척 비싼 물건이니까......"
"그게 뭐 하는 물건인데요? 그냥 평범한 침구 아니에요?"
이천운이 퉁명스런 어조로 물었다.
"이건 평범한 물건이 아니야. 재작년에 죽은 우리 마누라가 어느 떠돌이 도사에게 은자 이만냥을 주고 산 물건이다."
"에? 그런 물건이 이만냥이나 해요?"
"이게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침구지만 사실은 엄청난 효능이 있다."
"뭔데요?"
그제야 이천운도 호기심을 드러내며 침구를 자세히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특이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것 이외에는 평범한 물건이었다.
"그 베게는 청빙옥(淸氷玉)으로 만들어진 물건이야. 밤이 되면 음기를 받아 엄청난 한기를 발하지. 그리고 이불은 화잠(火蠶)이라는 세외의 누에가 뽑아낸 실로 만든 거다. 화잠은 특이하게도 불 근처에만 서식하며, 양기가 강한 독충을 먹고사는 누에의 일종이지. 그 실로 뽑아낸 이불은 밤이 되면 뜨거운 온기를 발휘하지."
"그런데요?"
고지라의 진지한 설명을 들은 이천운은 전혀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만약 밤에 운기를 할 때 두 물건을 이용하면 내공을 모으는 속도가 세 배이상 빨라진다."
"와~!"
그제야 이천운은 두 침구를 바라보며 탐욕의 눈빛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이천운의 모습을 보고 고지라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우리 마누라가 내가 내공을 수련할 때 도움이 되라고 사온 물건인데...... 너도 알다시피 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정좌를 하고 자세를 흐트러뜨리면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지 않느냐? 그래서 그걸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벽장속에 쳐 박아 둔 것이다."
"와...... 이게 그렇게 귀한 물건이라니......"
이천운은 고지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 침구를 관찰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건 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너에게 주마."
"진짜요? 이런걸 저에게 줘도 되겠습니까?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천운은 은근한 거절의 뜻을 비추며 말했다. 그러나 말만 예의상 그렇게 했을 뿐, 이미 침구를 가슴에 품고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허~! 그냥 고맙다고 해라. 괜히 예의 차리지 말고...... 누가 내공을 연마하면서 그런 침구를 쓰겠냐?"
"예~! 너무 감사합니다."
이천운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고지라를 향해 절을 했다.
"감사는 이 친구에게 해라."
고지라는 손비웅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나도 이 물건을 주는데 아까웠으니까...... 이 친구가 나에겐 쓸모 없는 물건이니 너에게 주라고 추천하더구나......"
그 말에 이천운은 고개를 돌려 손비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할아버지가 웬 일이지? 겉으로는 구박해도 날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천운은 감동하고 손비웅을 향해 절했다.
"그 물건으로 열심히 내공을 수련해 홍노의 제자를 이겨봐라."
손비웅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천운의 귀엔 다른 전음이 들렸다.
"이놈아~! 내가 그걸 괜히 너한테 주라고 한 줄 아냐? 저번에 마화교에서 너에게 들은 <당신도 일주일만 하면 이천운처럼 될 수 있다.>의 강연료로 준거다. 나머지 거스름돈 은자 일만구천구백칠십 냥은 일시불로 갚던지 십이개월 할부로 갚아라. 물론 이자는 일년에 오할이다."
'쳇! 그러면 그렇지 괜히 감동했군.'
이천운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치사하게 이자가 일년에 오할이라니...... 너무 높은 거 아니에요?"
"왜 억울하냐? 억울하면 일시불로 지금 지급할래?"
"헉! 네...... 그냥 할부로 낼 께요."
그는 일시불로 지급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승낙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세상에 공짜가 있는 줄 알았냐?"
둘은 전음으로 이런 한심한 대화를 나눴다.
"지금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거냐? 그런 감사의 말은 나중에 술이나 마시면서 해라."
둘이 전음을 나누는 것을 눈치 챈 고지라가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그러나 무슨 내용의 대화였는지는 몰랐기 때문에, 감사의 내용이라 생각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으로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잠시 비웅할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어요."
고지라의 물음에 이천운이 천연덕스럽게 표정을 바꾸며 대꾸했다.
"너무 그렇게 감사할 것까지는 없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는 게 세상사지."
손비웅도 얼굴을 바꾸며 말했다.
그들은 악승호와 송영수를 불러 한바탕 술판을 벌였다. 그러나 이천운과 손비웅의 보이지 않는 암투 때문에 자리가 끝날 때까지 어색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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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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