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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ports.news.naver.com/brazil2014/news/read.nhn?oid=260&aid=0000000894
[뷰티풀게임=서형욱] 둔재가 웃고, 천재가 울었다. 하찮은 선수 경력의 감독이 공들여 만든 팀이, '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재능을 앞세운 팀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독일 대표팀의 뢰브 감독이 선수들에 둘러 싸여 우승컵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보잘 것 없는 선수 시절,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엔 실직 상태였던 무명의 감독 요하임 뢰브. 그가 이끄는 독일 축구대표팀이 축구 사상 최고의 재능으로 꼽히는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결승전을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으로 치른 독일의 뢰브 감독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승리가 확정되자 마침내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4강전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처참하게 무너뜨릴 때만해도 반신반의하던 독일의 월드컵 우승은 그제서야 뚜렷한 현실이 되었다. 2004년 코치로 독일 대표팀 지휘부에 합류한 이래, 꼭 10년이 걸린 성과였다.
뢰브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우승의 환희를 만끽하는 사이, 그 뒤에선 허리춤에 손을 얹은 작은 청년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24년만에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리오넬 메시. FIFA가 그에게 수여한 최우수선수상(골든볼)은 포상이 아닌 위로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목표일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데 실패한 메시는, '대관식'을 그렇게 또 한 번 미루어야 한다.
'B급' 뢰브,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치면 'B급' 선수였다. 요하임 뢰브가 프로 선수로 데뷔한 것은 열 아홉 살 때였다. 분데스리가 2부 리그 프라이부르크 소속으로 성인 무대에 데뷔한 뢰브는 이후 여러 차례 이적을 거치며 다양한 팀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짧은 청소년 대표 경력이 가장 돋보일만큼 별다른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는 커리어였다. 차범근 현 SBS축구해설위원의 교체 멤버로 나서며 1부리그에서 5골을 기록한 프랑크푸르트 시절(1981/82)이 그나마 가장 성공적인 시즌으로 꼽힌다. 15년간 공격수와 미드필더를 오가며 꾸준히 뛰었지만 스타 플레이어가 즐비한 요즘 세상에는 자신있게 내세울만한 경력은 아니다.
은퇴 이후 감독 경력의 시작 역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른 네 살 때 스위스 하위리그팀 프라우엔펠트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지휘자 데뷔전을 치렀다. 스위스 리그에서 인연을 맺은 롤프 프린거 감독의 천거로 2년 뒤 슈투트가르트의 코치로 부임한 것이 독일 분데스리가 복귀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프린거 감독이 스위스 대표팀 감독으로 영전하면서 감독 대행을 떠맡았고 운좋게 잡은 기회를 잘 살려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순식간에 거머쥔 분데스리가 1부 리그 감독직이었지만, 그간 잘 준비해온 덕분에, 그리고 물려받은 선수들이 빼어난 기량을 과시한 덕택에 첫 해부터 좋은 성과를 냈다. 발라코프, 보비치, 엘버 등 유럽 무대에서 앞으로 '한 가닥' 할 선수들을 앞세워 분데스리가 감독 데뷔 첫 시즌(1996/97)에 독일 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듬해 리그 4위를 차지한 뢰브의 슈투트가르트는 그해 유럽 컵위너스컵(현 유로파리그의 전신) 결승전에 오르는 성과를 낸다. (첼시에 0-1로 패해 준우승)
하지만 이후 경력은 들쭉날쭉했다. 화려한 선수 경력이 뒷받침되지 않은데다 지도자 경력도 짧았던 뢰브는 터키의 페네르바체, 독일 2부 칼스루에를 거쳐 다시 터키로 건너가 아다나스포르를 맡았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뒤 오스트리아로 건너갔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01년 인스부르크의 감독을 맡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우승 시즌 종료와 함께 팀이 파산해버려 '강제 실직' 상태가 된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 감독을 맡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중도에 지휘봉을 놓았다. 실력도 운도 모두 뢰브를 비켜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의 클린스만 감독과 뢰브 코치(위)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국과 독일 대표팀의 감독으로 만나 상대팀으로 해후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그러나 방황하던 시절이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 시기 뢰브는 독일축구협회의 코칭 스쿨을 다녔는데 여기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는 인연을 만나게 된다. 초특급 골잡이였던 위르겐 클린스만과 교분을 쌓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4년 여름, 클린스만은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간 눈여겨본 뢰브를 수석 코치로 지명한다. 적잖은 감독 경력을 쌓은 뢰브에게는 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클린스만은 그때까지 감독 경력이 전혀 없었고, 나이도 뢰브보다 네 살이나 어렸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뢰브의 전술적 능력과 사람됨을 높게 평가했고 뢰브 역시 대표팀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손을 잡은 두 사람은 자국에서 열린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3위의 성과를 낸다.
무명 선수 출신을 감독에 임명, 계속된 신뢰로 힘 실어
클린스만은 뢰브에게 끝까지 은인이었다. 독일 월드컵에서 보여준 경기력으로 독일 미디어와 축구계의 높은 평가를 받은 클린스만은 "쉬고 싶다"는 이유로 재계약을 거절했다. 그리고 대표팀 감독 자리를 떠나며 그간 자신을 보좌한 뢰브 수석코치를 후임으로 강력히 추천한다. 당시 클린스만이 이끌던 독일 대표팀은 이전까지 수비에 중점을 두고 선이 굵은 축구를 구사하던 전차 군단을 공격적인 팀으로 변모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클린스만 뒤에서 전술을 짜고 팀웍을 다진 뢰브가 있었다. 독일 축구협회가 뢰브를 후임으로 임명하는 데에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은 이유다.
뢰브에게 지휘봉을 맡긴 독일축구협회는 그가 클린스만과 함께 보여준 역량과 앞으로의 청사진에 만족감을 표했고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클린스만과 함께 추구해온 공격적인 축구 철학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힌 뢰브 감독은 1군의 경기력을 꾸준하게 유지시키는 한편 리그에서 배출하는 어린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대표팀에 불러들여 독일 대표팀 스쿼드의 깊이를 동시에 확보해 나갔다. 이른바 '황금 세대'라는 흔한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출생 독일 유망주들은 자신이 뛰고 있는 팀의 명성과 상관없이 자국 리그에서의 좋은 성과가 대표팀 발탁으로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독일은 전례없이 풍부한 선수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하는 데에 이처럼 깊이있는 스쿼드가 큰 몫을 차지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뢰브 감독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유로2008과 2010년 월드컵, 유로2012를 거치며 독일은 정상 문턱에서 늘 고배를 마셨다. 승승장구하다가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보수적인 결단으로 고비를 넘지 못하던 뢰브 감독을 향해 불평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담력이 부족하다거나, 선수 경력을 트집잡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하지만 독일축구협회와 뢰브 감독은 자신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는 2014년 7월, 브라질에서 우승 트로피로 돌아왔다.
'원 팀'으로 천재를 넘어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위기는 있었다. '복병' 알제리와의 16강전에서 독일은 사선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순간을 가까스로 넘겼다. 이후 뢰브는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간 준비해온 또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상 선수와 회복 선수가 드나드는 과정에서 필립 람을 중원에서 오른쪽 수비수로 돌렸고 최전방에는 제로톱 대신 원톱을 다시 내세웠다. 4강에서 '개최국' 브라질을 무려 7-1로 대파하는 모습은 지난 10년간 뢰브가 그려온 그림의 완성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자신이 꾸린 '팀'의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와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으로 성과를 일궜다. 워밍업 도중 다친 케디라를 대신해 경험이 많지 않은 크라머를 기용한 것은 그 첫번째였다. 이후 벤치에서 킥오프를 지켜본 슈얼레와 괴체를 적시에 경기장에 투입하며 경기를 매듭지었다. 이들은 연장전 후반에 결승골을 합작하며 뢰브 감독의 신뢰에 답했다. 경기 후 뢰브 감독은 괴체를 투입하며 "네가 메시보다 낫다는 걸 세상에 보여줘"라고 귀띔했다고 밝혔다.
골든볼 트로피를 받기 위해 시상대를 오르는 리오넬 메시의 뒷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스스로를 '천재'로 아는 선수들이 잔뜩 모인 독일 대표팀에서 어쩌면 뢰브는 가장 평범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뢰브는 미약한 자신의 모든 것을 '팀'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물론 그 뒤에는 그에게 기회를 준 클린스만과 그런 그를 신뢰한 독일축구협회의 뚝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이끈, 아니 그를 밀어준 선수들을 빼놓을 수 없다. 우승이 확정된 뒤 인터뷰장에 나선 독일 선수들은 하나같이 '팀'을 강조했다. 상대팀 아르헨티나가 불세출의 천재 공격수인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메시의 팀으로 받아들여졌다면, 독일은 뢰브가 직조한 구도 안에 뛰어난 선수들이 제 몫을 기꺼이 떠안은 뢰브의 팀으로 기억될 것이다. B급으로 불릴만한 선수 경력의 끝에서 치열한 고민과 철저한 준비로 특급 감독의 반열에 오른 뢰브, 그리고 그를 긴 시간 믿고 지원한 독일축구협회의 판단은 독일의 우승과 함께 또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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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 서형욱 칼럼
메시 좋아해서 아르헨티나 응원했지만
축구는 역시 팀경기임을 느끼게 해준 독일~!!!
이번 월드컵에서 계속 좋은 경기 해서 우승이 당연해 보여
첫댓글 케클 팬으로써도 독국이 우승하길 바랐어 자국리그의 성공이 국가대표로의 성공으로도 이어지는 대표적인 예였으니까
으흠 뢰브감독도 시련이 있었던 사람이엇군 흑 독일무튼잘되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