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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딸기맛 아메리카노
(본문의 내용과 사진은 위키백과, 조선공주실록, 조선왕조실록, 네이버 등을 참조하였습니다.) (참고로 인물의 사진 등은 본문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진이야!)
안녕 여시들!! 여시들이 한국사 속의 여인들, 그러니까 공주나 옹주, 후궁들에 관심이 많은것 같아서 글을 한번 쪄보려고 해!!ㅋㅋㅋ 이 여인들은 왕이나 왕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들이지만 나름대로 흥미돋인 인물을 골랐으니 재밌게 읽어줘~ㅎㅎ
이번 글에서 소개할 인물은 정명공주(貞明公主)야!!!!
정명공주는 조선의 14대 임금인 선조와 인목왕후(훗날 인목대비)의 딸이며, 영창대군의 누나야. 여시들이 잘 알다시피ㅠ_ㅠ 정명공주의 아버지는 조선의 똥차임금 top3 중에서 인조와 함께 1위를 다투는 ㅋㅋㅋㅋ 아들한테까지 열폭을 했던;; 선조............
선조는 정비인 의인왕후를 임진왜란 중에 잃어. 인빈, 공빈 등 많은 후궁들은 자식들이 많았지만(가장 총애받던 후궁인 인빈 김씨는 자그마치 4남 5녀를 두었음ㅋㅋㅋ) 막상 정비인 의인왕후는 소생이 없었어ㅠㅠ 게다가 인빈은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였음 ㅋㅋ 이미 유력한 후보자였던 공빈 김씨의 소생 광해군이 있었음에도, 선조와 인빈은 인빈의 소생 신성군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 그러다가 신성군 또한 임진왜란 중에 죽고, 전쟁 중 공을 세운 광해군이 결국 세자의 자리에 오르지. 근데 선조는 ㅋㅋ 자신보다 오히려 인기가 많은 광해군에게 질투를 했던 모양임;ㅋ 실제로 선조는 광해군이 세자가 된 것을 그리 탐탁지 않아했으니.. 어우; 어디서 찌질냄새 안나여...?
그러다 1602년, 선조는 51세의 나이에 19세의 인목왕후 김씨와 재혼하게 됨 ㅋㅋㅋㅋㅋㅋㅋㅋ
32세 연하....? 나니...? 나니요......? (철컹철컹)
선조 자신이 적장자 출신이 아닌 방계 출신이였기 때문에, 혈통 콤플렉스(?)가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기 때문에, 재혼을 해서라도 적자(즉, 후궁 소생의 왕자인 ‘군’이 아니라 중전 소생의 왕자인 ‘대군’)를 얻고 싶어했어. 이미 당시로 치면 고령의 나이였던 선조는 어린 계비 인목왕후로 하여금 아들을 얻고 싶어했던 거징.
그 바람대로, 선조는 인목왕후에게서 첫째인 정명공주, 그리고 둘째로 영창대군을 얻어. 그치만 선조는 영창대군이 어린 아기일때 승하하고.... 공빈의 소생 광해군이 즉위하게 됨......
그 뒤는 여시들이 아는 그대로... 광해군은 왕위에 위협이 되는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그리고 정명공주를 유폐하게 됨. 이 사건이 추후 인조반정의 빌미가 되어 광해군이 폐위된다능 ㅠㅠ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는 서궁에 유폐되고, 어린 영창대군은 비극적이게도 죽임을 당함 ㅠㅠ
어린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는, 하나 남은 딸마저 잃을까 두려워했어. 그래서 광해군이 정명공주에 대해 물으면, 죽었다고 대답하기도 했대.
어머니와 함께 유폐된 정명공주는, 어머니인 인목대비가 폐서인 되었으므로 공주에서 옹주로 강등될 뻔하였지만, 다행히 늠료(조선시대 관리에게 주던 봉급. 그러니까 공주에게 나라에서 주는 돈)와 혼인의 예만 옹주에 준하도록 했어.
어린 남동생을 잃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던 정명공주는 1623년 인조반정 성공 후 공주로 복권되고, 인목대비와 함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돼.
그런데 당시 정명공주는 벌써 21세였음 ㅠㅠㅠㅠㅠ 조선 여인의 혼기는 보통 10대 중반, 늦어도 후반 정도였어. 게다가 왕실의 혼례는 더 어린 나이에 이루어졌으니까....... 21세의 정명공주는 노처녀 중에서도 노처녀가 되어버렸던 것임 ㅠㅠㅠㅠㅠ
아니 이게 무슨 말이오!!!!! 공주가 노처녀라니!!!!!!!ㅠㅠㅠㅠㅠㅠ
반정을 통해 왕위를 차지한 인조는, 명분 때문에라도 인목대비와 정명공주에게 극진한 예를 다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조정에서는 서둘러 공주를 시집보내기 위해 부마간택령을 내림!!!!
근데 공주의 나이가 너무 많았던 나머지ㅠㅠ 딱 아홉 명만이 사주단자를 낸거 ㅠㅠ.... 왕실 체면이 있지ㅠㅠㅠ... 어떻게 자존심 상하게 아홉명 중에서 부마를 선택하겠어??
결국 조정은 부마단자를 받는 기한을 늘리고, 나이대도 대폭 조절해서 결국 동지중추부사 홍영(洪霙)의 아들 홍주원(洪柱元)이 부마로 간택돼!!! 나? 그래 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홍주원은 관례(성인식)도 치르기 전에 향시(과거의 제 1차시험)에 합격할 만큼, 똑똑한 사내였음 b 정명공주와 홍주원은 1623년 9월 26일 혼례를 올렸고, 홍주원은 그 다음날 숭덕대부(崇德大夫) 영안위(永安尉)의 관직을 제수받아.
정명공주와 홍주원이 혼인했을 때, 정명공주는 21세, 홍주원은 18세였다능! ㅎㅎㅎㅎㅎㅎㅎㅎ(음흉)
연하..연하라니...!! 자그마치 3살이나!!!! 크흡....ㅠㅠ
유일하게 남은 자식인 정명공주를 무척이나 아꼈던 인목대비는 (이제는 대왕대비!) 사위인 홍주원에게 왕만이 탈 수 있는 말인 어승마를 타고 궁에 들어오라고 하여 한차례 난리법석을 일으킴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인조는,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는 명분으로 반정을 일으켰자나요??? 그러면 무조건 인목대비에게 잘해줄 수밖에 없자나요? ㅋ... 결국 인조는 인목대비를 벌하지 못함 ㅎㅎ 그뿐만이 아님 ㅎ 인조는 혼인하여 하가한 정명공주를 엄청나게 후대하였다고 해. 본래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공주의 집은 50간을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었는데, 정명공주의 집은 자그마치 200간이었음 ㅋㅋㅋㅋㅋ 게다가 경상도에만 8,076결에 이르는 넓은 땅을 하사받는 등 엄청난 호사를 누렸어 ㅋㅋㅋ (모르긴 몰라도 조선 공주들 중에 젤 부자였을듯 ㅇ_x) ㅋㅋㅋㅋ 게다가 인조는 부마의 부친인 홍영을 예조참판으로 올려주기도 하고, 홍주원의 품계를 올려주기도 하면서 정명공주에 대한 엄청난 예우를 해줬어 ㅎㅎ
정명공주의 남편인 홍주원은, 1647년 10월 4일에서 1648년 2월 27일까지 청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왔을 정도로 능력도 좋았고, 준수한 외모에 성품도 좋고 주위 평판도 좋았다고 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부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명공주는 선조와 인목왕후를 닮아서, 선이 굵고 힘이 넘치는 한석봉체를 잘 썼다고 해.
인목왕후 또한 한석봉체를 잘 써 생전의 선조를 기쁘게 했는데,
정명공주도 서궁에 어머니와 함께 유폐되어 있을 당시 아버지 선조를 닮은 글씨를 쓰며 어머니를 위로하였어.
그러나 30대와 40대 때에는 붓글씨를 끊었고, 한문도 쓰지 않았다고 해.
왜냐하면, 인목왕후 사후 궁중에서 발견된 무도한 백서(帛書)사건과 저주 의혹 등
인조와 효종의 의심을 산 적도 있었기 때문이야 ㅋㅋ
이러한 사건으로 봤을 때,
인조는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를 이용해 반정에 성공했지만 속으로는 일말의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고 생각돼 ㅋㅋ
명분 때문에 겉으로는 매우 잘 대해줬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경계를 했다는 뜻이지ㅠㅠ
또한, 정명공주가 여느 사람들보다 총명했으며, 시댁인 풍산 홍씨 가문 또한 노론의 명문가였기 때문에
인조 등이 계속 경계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정명공주는 이러한 위험 속에서 살았지만, 인조반정의 공신들의 구명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어.
인조가 죽고 나자 효종, 현종, 숙종 3대 동안 정명공주는 종친의 어른으로서 최고의 대접을 받았어.
기록에 따르면, 노년의 정명공주의 생일을 맞아 숙종이 아주 거대한 생일상을 준비했다가 ㅋㅋㅋㅋㅋ
예산문제로 대사간과 대립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정명공주는 남편 홍주원과의 사이에 7남 1녀를 두었고, 1685년에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고
남편인 홍주원의 무덤에 합장되었어.
이는 조선시대 공주 가운데 가장 장수한 기록이야.
그리고 여시들이 잘 아는 사도세자의 비 혜경궁 홍씨, 홍봉한, 홍인한, 홍국영, 원빈 홍씨 등이
모두 정명공주의 후손들이라고 해!!!ㅋㅋ
(이건 나도 정명공주를 조사하면서 알게된건데 겁나 신기했다능 ㅋㅋ)
정명공주는 80세 되던 해, 막내아들에게 써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
‘나는 원하건대 너희들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논의하기 좋아하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미워한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들 사이에 이런 행실이 있다는 말을 나는 듣지 않기 원한다.’
어린나이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평생을 순탄하게 살지 못했던 정명공주의 아픔이
잘 나타난 말인 것 같아 ㅠㅠ
귀하디 귀한 공주로 태어났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던 정명공주..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는 조선의 그 어느 공주보다도 호화롭고 행복하게 살았던 공주..
공주의 인생치고는 무척이나 불행한 삶이었지만ㅠㅠ
어찌 보면 여자로서는 행복한 삶을 산 정명공주인것 같아ㅎㅎㅎ
다음에는 다른 여인의 이야기로 찾아올게~~~^0^ 읽어줘서 고마워!!ㅎㅎ
문제시 둥글게 둥글게 댓글로 알려줘!!!!
재빠르게 수정하겠음 ㅎㅎㅎㅎㅎㅎ
한중록!! 맞아 ㅎㅎㅎ 나는 드라마 보면서 알았는데 혜경궁 홍씨랑 홍국영,원빈홍씨(홍국영 여동생)등도 다 친척이더라구ㅋㅋㅋㅋ
언니 글 잘읽었어ㅋㅋㅋ눈에 잘 들어온다!!
재밌어!!!! > < 역사는 알면 알수록 재밋는거같아!! ㅋㅋㅋㅋ
와 진짜 재밌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읽었어!! 완전 흥미돋ㅋㅋㅋ
효정옹주 글 읽고 궁금해서 왔어ㅋㅋㅋ이런 얘기 완전 재밌어ㅋㅋㅋ잘봤어♥
언니 글 연어 왔다능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