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 坤) 32-4
방씨 집안의 막내인 방소구는 흘끔 새로 온 글 선생을 쳐다보다 옆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글 선생의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형은 새로 온 글 선생이 말한 대로 열심히 팔고문이라는 이상한 것을 만들어 내려고 끙끙거리고 있었고, 옆에서 벌을 서고 있는 둘째 누나는 천장을 쳐다보며 또 이상한 상상을 하고 있다 문학사에게 머리를 맞았는지, 한 손으로는 하늘을 향해 올리고 있지만 또 한 손으로는 연신 머리를 비비 대고 있고, 셋째 누나 역시 얼굴과 소매에 먹물을 잔뜩 묻힌 채 옆에서 벌을 받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보나마나 수련 누나는 또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엉뚱한 그림과 낙서를 하다 글 선생에게 걸렸을 것이다.
두 손을 하늘로 뻗고 있는 상태였지만 방소구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다시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안돼! 조금만 더 참으면 글공부 끝나는 시간인데-----.'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 졸음을 참는 방씨 집안의 막내 소구였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벌서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소구는 다시 졸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소구는 항상 졸렸다. 하루종일 원 없이 자본적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고, 기억나지 않은 슬픈 꿈이 소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은 어둡고 대지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있는 소구는 품에 역시 어른이 된 누나 방화련의 시신을 안고 울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소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게 된 문학사는 아이가 무언가 슬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야 가르치고 싶어도 가르칠 기분이 나지 않는 문학사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모두들 이제 그만 나가봐도 좋다."
문학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고 졸고 있던 아이들은 눈을 떴지만 여전히 방씨 집안의 막내는 깨어날 생각을 안하고 울기만 하고 있었다.
문학사는 혀를 차며 정자를 벗어나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고, 남겨진 아이들은 울고 있는 막내를 깨우기 시작했다.
"소구야, 일어나. 수업 끝났어."
"일어나 소구야."
올해로 일곱 살을 맞이한 막내의 잠을 깨우기 시작한 것은 두 명의 누나들이었고, 형 방종구는 책을 챙겨서 종종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옮겼다.
눈물이 흥건한 얼굴을 하고 잠에서 깨어난 소구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명의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나 안 죽었네?"
방화련을 바라보며 소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고, 방화련은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뭐?!"
"소구야 너 무슨 꿈을 꾼 거니?"
재밌다는 얼굴을 하고 거의 동시에 방수련이 옆에서 물었다.
"화련 누나가 죽어 있었어."
"이놈이 꿈속에서 날 죽였구나!"
잔뜩 화가 나서 방화련이 소리치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수련이 동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구야, 네 꿈에 난 안 나오데?"
"나와."
"난 어떻게 되었니?"
"누구하고 싸워서 얼굴에 구멍이 숭숭숭-----."
말을 하다 말고 방소구는 일어나서 슬슬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잔뜩 화가 난 누나들이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거기 서!"
"거기 서!"
후다닥 정자 밖으로 도망치는 막내 방소구를 향해 두 여자아이는 고함을 치며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 시각 그 네 아이들의 아버지인 방종대는 관아에서 재판을 집행하고 있었다.
법정의 벽에 걸려 있는 공명정대(公明正大)라는 현판이 무색하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판은 돈으로 얼룩져 있었다. 등봉현의 유지인 이가장의 막내아들 이엄과 뒷골목의 건달패를 지배하고 있는 등소군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송사로, 관아의 여러 아전들과 재판을 맡고 있는 방종대의 주머니는 묵직해지고, 두 달이나 질질 끈 재판을 이제 끝내야 할 때였다.
"이제 판정을 내리겠다!"
그렇게 소리치면서 방종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판정은 숨소리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방종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맛에 관직을 산 거야---, 돈도 장사 할 때 보다 많이 들어오고---.'
긁을 수 있을 때 최대한 긁어야 한다는 좌우명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방종대 현령이었지만 더 이상 재판을 끌 이유가 없었다. 이 두 사람의 주머니에서 나올 돈은 모두 나온 상태였다.
"이엄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고, 등소군은 지금 즉시 감옥에 가두어라! 추후 다시 재심하여 형량을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판결을 내린 방종대는 흐뭇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이곳에 부임하는 현령에게 주어지는 자신의 사택으로 퇴청했지만, 그의 좋았던 기분은 자식들이 하루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고하는 늙은 하인의 말을 들으면서 흐려졌다.
하인을 내 보내고 옷을 갈아입은 방종대는 탁자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갈증이 그의 목을 태웠다.
"정녕---, 소구 녀석의 그 잠버릇은 병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방종대가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새 방으로 들어온 방종대의 아내 장봉화가 조용히 비어있는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있었다.
'쪼르륵'
주전자에서 차를 따르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방종대는 물었다.
"여보, 어떻게 생각하오?"
하얀 궁장을 입고 머리를 틀어 올린 그녀는 찻주전자를 들고 탁자 옆에 서서 물끄러미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시집오기 전부터 아주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래서 그녀를 차지하려고 방종대는 별 수단을 다 강구해야 했다. 그녀는 거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아주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남편이 무엇을 물어보는지 그녀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당신은---. "
그렇게 말을 끊은 후 가슴속에서 울어나는 화를 삭힌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모두가 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당신만이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지금 소구 나이 또래의 아이라면 장난치고 돌아다니길 좋아 할 나이라는 것을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죠? 그런데 소구 녀석이 하는 행동은 -----, 죽을 때가 다 된 노인처럼 하루종일 잠만 자고 있잖아요. 이러다 소구 녀석이 죽으면 당신은 어쩌려고 의원을 안 부르는 거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잔잔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신랄한 비난을 묵묵히 들으면서 방종대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던 방종대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심한 시각에 어디 가시려고요?"
"소구한테 가보려고 하오."
"또 매를 들 작정인가요?"
방종대는 우울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그냥 한 번 보려고."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방을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소구의 방으로 가는 방종대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가 겁내고 있는 것은 의원이 소구가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을 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침상 위에 잠옷으로도 갈아입지 않은 막내아들이 잠에 빠져있는 광경이 방종대의 눈에 들어왔다. 그 광경을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던 방종대는 다시 아들의 방을 빠져 나와 정원으로 걸어갔다. 깜깜해진 밤에 빛나는 별무리를 보면서 방종대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의원을 불러 치료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막내는 점점 더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이 막내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방종대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자고 있는 소구는 다시 꿈속에 머무르고 있었고, 꿈속의 자신은 아주 나이 많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인이 된 자신이 무엇이라 자꾸만 소리치고 있었지만, 너무나 희미해서 무엇이라 소리치는 것인지 소구는 알 수가 없었다. 노인이 된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지 들으려고 소구는 점점 더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고 있을 그 때, 등봉현의 관아에 두 사람이 잠입했다. 하나는 뇌옥에 갇혀 있는 등소군이라는 자를 죽이기 위해 이가장에서 보낸 살수였고, 또 하나는 등소군을 지키기 위해 소림사에서 파견된 무림오룡 중의 하나인 금룡 양평이었다.
모든 것이 원래 벌어진 일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었고, 꿈속에 머무르고 있는 소구는 바로 다음날이 운명의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뜨면 자신의 첫 번째 사부가 되어 줄 정각 대사와 만날 것이고, 그 다음부터 자신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된다는 것을 떠올리고 생각했다.
'여기서부터 바꾸어야 돼. 인연의 얽힘에 따라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은 바꿀 수 없겠지만, 헤어지고 만나는 방법을 바꿀 수는 있을 거야. 이제는 깨어나 있어야 할 때인가? 아주 사소한 차이로 미래가 바뀐다.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미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꿈속의 소구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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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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