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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이 거열형을 당하는 동안, 독일에 파견을 가 있던 카를 라데크의 긴급 연락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당과 권위, 경력과 학력을 가리지 않고 소비에트 러시아의 모든 지도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독일 혁명 긴급’이라는 단 세 단어로 도착한 카를 라데크의 전보는 이미 수병 반란 등으로 독일 제국의 행방에 촉각을 기울이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GRU와 체카를 비롯한 모든 조직이 총력을 기울여 독일의 상황을 조사했다. 그리고 1919년 4월 10일, 임시로 독일 공화정부가 선포되고 독일 제1의 정당이자 일명 ‘사회주의 진영의 배신자들’인 독일 사회민주당이 키를 잡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국 노동계급과의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던 프랑스는 독일의 혁명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사민당의 대표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임시의장으로써 취임했지만 각 정당이 하루마다 정권 참여와 불참을 번복해대면서 정국은 혼란스러워졌다. 휴전과 협상은 전혀 논의될 수가 없었고, 독일 제국군은 공중분해 되어 군벌화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지지세로는 여전히 제1정당이었지만, 카를 카우츠키를 비롯한 주요한 구성원이 반전파 개량주의 정당인 독립사민당을 창당해 이탈하며 반 토막이 난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독립사민당 내 로자 룩셈부르크를 필두로 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스파르타쿠스단이라는 급진주의 단체를 결성해 다시 한번 별도의 살림을 차린 상태였다. 전체적인 세력 구도는 5:3:2로 사민당이 우위를 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독립사민당과 스파르타쿠스단이 우위를 점하지도 못하는 기이한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함부르크를 비롯한 엘베강 유역과 바이에른 남부에서는 하인리히 라우펜베르크와 안톤 드렉슬러라는 자가 이끄는 독일 민족 노동자당이라는 프랑스 노동계급의 노선을 따르는 이상한 반자본주의 정당까지 출현한 상태였다.
“이상입니다.”
바레츠노프의 발표가 끝나자 중앙집행위원회 상무회 확대회의에 모인 러시아의 지도부는 격론을 시작했다. 특히 당장이라도 독일에 전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견과 내실을 먼저 다져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독일 내부의 동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독일에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선다면 잘하면 발트 지역과 폴란드를 탈환할 수도 있습니다. 유데니치가 폴란드에 망명해버린 이후로 다우가바강 서쪽은 결국 탈환하지 못했잖습니까.”
“그거야 폴란드를 협상국이 독립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아무리 반신불수가 되었든, 영국, 미국, 일본은 아직 건재합니다. 공멸을 각오로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스탈린파의 대표적인 정치인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카튜셰프의 말에 반박했다. 본래 스탈린파였지만 트로츠키와 손을 잡는 쪽으로 처지가 바뀐 바레츠노프가 발언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여러분, 폴란드는 놔두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쪽은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진영과 개량주의 진영이 혁명주의 진영을 억압하고 국수주의적이고 공상적 사회주의에 기반한 정권을 세웠습니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세워질 가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폴란드가 우리를 공격하게 하고, 자캅카스 때와 마찬가지의 명분을 내세워 폴란드를 공격합시다.”
마찬가지로 스탈린과 한배를 탄 것으로 분류되는 솔제니친이 반박하였다. 사회혁명당 소속이지만 스탈린의 지지자인 알렉산드르 예고로프 또한 솔제니친의 말에 동의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건 말이 안 되오. 군대로 혁명을 전파한다고 쳐들어가며 아무리 선전을 해 보았자, 공격받는 국가의 인민들은 우리를 침략자라고 생각할 것이오. 그리고 자연스레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겠지.”
트로츠키가 반박하자 이번에는 트로츠키파와 손을 잡은 좌파공산주의자들인 부하린을 비롯한 이들이 동의하며 맞장구를 쳤다. 통일전선 정당 체제를 옹호하는 트로츠키파와 급진적으로 모든 권력을 완전히 소비에트에 이양하자는 좌파공산주의자들은 노선의 차이는 잠시 미뤄두고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독일 혁명을 지원해보았자 독일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영·미·일은 폴란드와 손을 잡을 것입니다. 폴란드를 손을 봐야 한단 말입니다.”
“잠깐. 솔제니친 동무.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동무들. 특히 독일 개입에 반대하는 동무들에게 말할 게 있네.”
솔제니친이 말한 뒤 레닌이 손을 들자 모두가 일순 침묵하며 레닌을 바라보았다. 레닌은 스탈린과 솔제니친, 몰로토프 등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일리가 있는 주장이네. 폴란드 문제도 해결은 해야겠지. 하지만 독일은 세계 자본주의의 총본산이자 과학기술이 가장 발달한 국가이네. 독일이 우리 편이 된다면 폴란드가 몇 개가 있든 의미가 없네. 내가 직접 보아서 알고 있네.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
사회민주노동당의 망명 시절을 함께 한 고참 당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러시아 혁명이 실패하더라도, 독일 혁명은 성공해야 하네.”
혁명정부를 이끄는 수장이 직접적으로 발언하자 일순 회의장이 웅성거렸다. 사회혁명당을 비롯한 러시아를 중시하는 일부 참석자들은 불만스러워했지만, 독일이 러시아의 편이 되었을 때의 파급효과를 그들 또한 알고 있었다.
“주석으로서 독일 혁명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금지하겠습니다. 폴란드와 관련된 주제는 다음 회의에서 다루겠습니다.”
스베르들로프가 레닌의 말에 동의하듯 공포하자 트로츠키는 손뼉을 치며 일어났다. 이 사람이 또 왜 이러나 싶은 눈빛으로 공산당원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트로츠키는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다른 정당의 당원들을 흘긋 보고는 주먹을 쥐며 외쳤다.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가서 독일 혁명의 불씨를 댕기겠소!”
폭탄선언이었다. 그리고 외통수였다. 1917년 이후 트로츠키는 붉은 군대의 창설자이자 총지휘자 같은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력이 긴 인사들이라면 그보다 12년 전, 1905년 혁명을 마르토프와 트로츠키가 진두지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때는 레닌보다도 무당파 트로츠키가 지지자도 없으면서 사회민주노동당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정치인으로 대우받았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 트로츠키가 혁명가로 가겠다고 자원한 이상, 독일 혁명 개입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는 나올 수가 없었다.
*
격론 끝에 독일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공산당과 사회민주노동당의 인사를 중심으로 독일 혁명을 지원할 파견단이 꾸려졌다. 자캅카스에서 활약한 표트르 가이어와 미하일 투하쳅스키를 비롯한 젊은 장교단과 일리야를 비롯한 독일계, 혹은 유대계 인사들이었다.
‘사회주의 동지를 환영’이라는 현수막이 달린 러시아 대표단을 맞이하는 자리에는 카를 카우츠키,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 자신을 배교자라 비난하던 레닌이 혁명을 성공시키고 지원을 위해 장교와 혁명가들을 보냈다는 사실에 난감해진 카우츠키는 별다른 발언이 없었다. 그리고 레닌과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던 룩셈부르크는 뜻밖의 주장을 했다.
“스파르타쿠스단은 독일 공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을 할 예정이지만, 러시아식으로 혁명을 일으킬 생각은 없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레닌 동무는 노동계급이 부족한 러시아에 맞는 혁명이론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전위당이 폭력혁명을 일으켜서라도 반동주의자와 지배계급을 몰아내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거대한 노동계급이 있고, 노동계급의 정치참여 또한 활성화된 곳입니다. 이미 독일 곳곳에는 러시아의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평의회가 결성되어 있습니다.”
“러시아도 규모가 작았을 뿐이지 2월 혁명 이후 소비에트 체제와 공화국 정부가 공존했습니다. 독일도 같은 상황 아닙니까?”
일리야가 연이어 반박을 시도했지만, 룩셈부르크는 한 마디도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소비에트에서는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다수를 점했고, 공화국 정부는 트루도비키가 점유했으며, 볼셰비키는 모든 곳에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사민당이 보수주의자들과 손을 잡기 전까지 독립사민당은 집권 정당이었고, 독립사민당과 스파르타쿠스단은 전국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문장으로 자신의 주장을 정리했다.
“즉 이 상태에선 지금 당장 공화국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봉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을 원하는 이들도 없지요.”
일리야는 러시아에서 했던 추측과 독일 내의 상황이 꽤 다르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모스크바에서는 독일 인민당, 중앙당, 사민당의 연정 상태를 혁명 세력이 완전히 정권에서 소외된 상태라고 추측했었다.
하지만 라데크와 룩셈부르크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너무나 거대하여 사민당이 보수주의자들과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마자 독일 전국에 총파업이 발생하였다. 경악한 사민당은 사민당-민주당-독립사민당 연정을 깨 버리고는 보수우파 정당들과 다시 정권을 꾸렸고, 사민당을 제외한 모든 사회주의 정당과 심지어 사민당 내부의 인사들조차도 이를 혁명에 대한 배신이라 주장하였다. 러시아보다는 훨씬 상황이 낫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첫 선거가 언제라고 합니까, 라데크 동무?”
“6월 19일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어차피 독일공산당에 대한 창당 의지도 밝히셨고, 독립사민당 측에서도 스파르타쿠스단과 함께하긴 난감할 겁니다. 그럴 바에는 선거연대만 해서, 같은 선거구에 양 조직의 후보가 같이 출마하는 일만은 피하는 겁니다.”
“으음….”
카우츠키가 고민하는 듯 보이자, 일리야는 설득을 이어갔다.
“이렇게 하면 독립사민당과 스파르타쿠스단이 선거에서 큰 성과를 볼 확률이 높아집니다. 만약 우익에서 선거를 취소시켜 버리거나, 선거를 했는데 어느 당도 제1당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지금의 독일 공화국은 그대로 붕괴할 겁니다.”
일리야는 자신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 독일 대표들을 둘러보았다.
“독일 노동계급이 우리의 편입니다. 급할 게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는 우리의 편을 들 겁니다.”
*
독일 민족노동자당(Deutschenationale Arbeiterpartei, DNAP)은... 아시죠..?
의외겠지만, 소비에트-폴란드 전쟁때 폴란드 내부 진입을 반대한건 트로츠키입니다. 트로츠키는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가고 부수면서 혁명을 전파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으며, 해당 국가의 적개심만 불러올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아래는 소설 내 세력구도입니다. 진행때와는 좀 다르죠?
무당파 – 레닌, 스베르들로프 + 몇몇 원로 당원들 + 일리야 + 유대인 노동총연맹 + 군 총정치부 + 파우코이와 GRU + 핀란드 민주공화국, 자캅카스 민주연방공화국
트로츠키 – 표트르, 바레츠노프, 사회민주노동당, 아나키스트, 사회혁명당을 비롯한 타 정당, 러시아 제국군 출신 장성급, 카메네프, 러시아 제국 및 주변국의 민족(조선 등) +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 우랄 및 시베리아 지역
스탈린 – 솔제니친, 몰로토프, 키로프, 카가노비치, 무라노프를 비롯한 공산당원 및 관련 인사 거의 대부분, 지노비에프, 카자크인들, 러시아 제국군 출신 중간장교, 니콜라이 우스트랼로프를 비롯한 ‘보수혁명주의자’ + 제르진스키와 체카 + 중앙아시아 지역
부하린 – 보그다노프, 막심 고리키, 카튜셰프, 콜론타이, 쉴랴프니코프의 노동조합 세력, 독일 공산당 및 독립사민당, 뤼코프, 톰스키, 소콜니코프, 이외 해외의 마르크스주의 세력 대부분 + 모스크바와 페트로그라드를 비롯한 도심지역
보시다시피 세력구도가 비슷합니다. 참고로 결정적인 성향이 실제 역사와 좀 다릅니다.
트로츠키는 노동조합을 국가에 통합해 노동자를 징병하자는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이 이젠 없습니다. 따라서 프라오브라젠스키를 비롯한 트로츠키파 경제론자(강경한 중앙집중적 개발 및 중공업화)는 여기선 스탈린주의자입니다.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는 아니나, 러시아 내부의 개발을 더 잘 해보자는 입장입니다. 또한 강력한 중앙집권을 옹호합니다.
부하린은 일국사회주의가 아니라 영구혁명론을 신봉합니다.(룩셈부르크주의자입니다 아예)
레닌은 조금 더 다른 정당에 우호적입니다.
첫댓글 페트로그라드의 유대인(?) 일리야..!
+ 무당파 면면을 보니 이거… 저기서 레닌이 사망하거나 은퇴하면… ㅎㅎㅎㅎㅎ
때로는 무당파가 가장 강력하기도 합니다. 실제 역사에선 스탈린이 무당파였죠..!
솔제니친이 여기서는 독자 파별이 아니네요.
+ 어후... 림월드에서 아주 경악할 일이 벌어졌어요...
뭐 저야 처음부터 스탈린 지지할 작정이었기에 이상한건 아니에요.
갑자기 후계자 후보군에 제가 들어가서 계획이 바뀐것뿐
참, 스탈린이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이 양반이 대숙청 전까지는 엄청난 빈민우대정책을 폅니다. 스탈린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정말 믿기지 않지만, 스탈린 이후의 소련 지도자 4인방이 전부 하층민 출신인게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대학 예비과정이란게 있는데 6개월 공부하면 무시험 대학 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엄청난 비율의 노동자+농민 할당제를 실시하는데 아예 노동조합 출신만 대학 입학허가를 내주라는 지시가 내려오거나 해서 1930년대에는 대학생의 37%가 노동자/농민 출신이었습니다.
스탈린 정권은 이에 대해 크게 실망해서 80퍼센트 할당제(!)를 하는데, 좀처럼 할당비율이 늘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스탈린은 자신 또래의 당간부들을 다 죽여버리고, 흐루쇼프, 셰르바코프, 즈다노프 같은 인물을 등용하고 전후에는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를 공산당 당중앙으로 등용합니다. 이 다섯명 중 세 명이 소련의 지도자가 되는데.. 흐루쇼프는 무학에 대학예비과정을 거쳤고, 셰르바코프는 노동자 가족에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브레즈네프는 아버지와 본인이 제철 노동자였고 안드로포프는 상하차;;; 했습니다. 즈다노프 정도나 대학 중퇴고요..
@렌지파일 와우...
@카라멜 마끼아또 물론 이 방식은 대숙청이 없고(...) 고도성장도 못 하는 60년대 이후부터는 소련을 나락으로 밀어버려서, 우리가 아는 소련 붕괴를 초래합니다..
@렌지파일 브레즈네프가 현상유지와 자원팔이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혁을 해서 체질개선 및 경제구조 개선에 성공했다면 소련이 남았을수도 있었을텐데.
@카라멜 마끼아또 그때 중앙위원회 간부들 평균연령이 70대~80대 이랬던 걸로 압니다. 고인물 중 고인물 틀딱들만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으니 혁신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는 셈이었죠…
@E.E.샤츠슈나이더 그래서 안드로포프가 젊은이 한명 틀딱들 사이에 끼워넣었죠. 그런데 결과는 뭐;;;
@카라멜 마끼아또 뭐 그래도 그 시기에도 코시긴 개혁이라던지, 중간에 좌초되긴 했지만 리베르만 개혁 같은 게 꾸준히 나오긴 했습니다만… 본질적인 부분은 많이 건들지를 못했던 걸로 기억하네요.
현실과 달라질만한 전환점이 뭐려나요?
트로츠키가 현실에선 절망적인 상황에서 500만 병력을 강제징집하고 식량을 약탈해서 붉은군대를 만들었는데, 여기선 상황도 더 좋았고 솔제니친이 자원병위주로 꾸린 병력이 더 효과가 좋은 걸 보고 '군사적 총동원체제(전시공산주의)'를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은 그대로입니다(...)
부하린은 본래는 진짜로 영구혁명론 신봉자였고, 브레스트-리토프츠크 조약 당시 조약 체결 하지 않고 미루기(트로츠키의 계획)가 아니라, 그냥 독일을 공격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금세 정신차리고 일국사회주의로 전환하지만요. 또한 이양반은 위로부터의 혁명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중시했습니다. 여기서는 브레스트-리토프츠크 조약이 대참사로 끝나지 않았고, 내전도 훨씬 일찍 끝나며 원래 성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레닌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상황이 잘 풀려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렌지파일 일국사회주의가 스탈린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대로는 아닌것 같은데요
@931117 일국사회주의는 부하린이 만들었습니다. 여기선 아닐뿐이죠.
@렌지파일 그럼 위키백과가 엉터리군요.
"일국사회주의(러시아어: Социализм в отдельно взятой стране)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일국 혁명 이론에 기초하여 1924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만들어졌다.
레닌은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에 걸쳐 일국 혁명의 결과로서 일국사회주의의 불가피성을 논하였다. 이론화는 레닌 사후 스탈린에 의해 추진되었다. 스탈린은 당시 소련의 후진성에 대해 체감하고 있었으며, 공산당 주도로 소련의 국내적 생산력 발전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라고 나와있길래요
@931117 영어 위키는 제가 정독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소련사에 관한 한국어 위키 문헌들은 부정확한 내용이 많더라고요(…)
@E.E.샤츠슈나이더 전 불행히도 몇몇분들과 달리 정치 사상이나 공산주의,사회주의 관련 차이를 잘 모르기에 의존도가 높을수밖에...
몬티 파이선에서 나온 아나르코 생디칼리즘도 아 무정부주의 계열이구나 하고 마니까.
@E.E.샤츠슈나이더 한국어 위키피디아는 영어 위키피디아에 비해 부실한 문서들도 많죠. 대표적으로 북한 정치범수용소 문서라던가. 나무위키보다 부실한 문서가 있을 정도니 뭐...
@931117 혁명사상 쪽은 책 사서 열심히 공부해도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가 익숙한 세계랑 너무 동떨어져 있다 보니까… ㅋㅋ
@E.E.샤츠슈나이더 그래도 조금이라도 아는거랑 아예 모르는거랑은 또 다르니까.
@931117 대략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집니다. 독일-헝가리-중국에서 혁명이 죄다 실패해버리니까, 스탈린이 1924년에 책을 쓰면서 '세계혁명은 기본 중 기본이지만, 이거 세계혁명 가능하겠냐 아이고...' 라는 내용을 씁니다. 그리고 1년 후에 부하린이 '서유럽 프롤레타리아의 승리 없이 한 나라 안에서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가?' 라는 책자를 씁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두 명이(서로 친구였으니) 일국사회주의라는 개념적인 구상의 기초를 잡는데, 부하린이 1926년 코민테른 총서기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부하린이 코민테른의 목적을 세계혁명에서 소련의 수호로 바꾸면서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실천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즉 스탈린이 대안을 찾느라 고심하는 와중 부하린이 아이디어를 건넸고, 스탈린이 동의하며 부하린을 밀어주자 부하린이 실천한 셈입니다. 스탈린은 본인도 대단히 뛰어난 이론가였고(진짜로요)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잘 써먹을 줄도 알았습니다. 소련이라는 국명, 우리가 아는 소련기(낫과망치+별에 붉은바탕),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사상명은 죄다 스탈린이 만들었죠..
@렌지파일 아니 소련이 소련이 아니면 그 전엔 뭐였나요?
@렌지파일 아 그 얘기는 들어봤던 것 같습니다.
레닌주의라는 단어는 원래 레닌과 대립하던 트로츠키가 당원들의 예상과 달리 10월 혁명 이후 레닌의 노선을 철저히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뭐여? 쟤 무슨 레닌’주의자’냐?” 하는 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카라멜 마끼아또 그 전에는 '유럽-아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이라는 국명이 레닌에 의해 제시되었습니다. 스탈린은 이 국명이 다른 국가들에 대한 도발로 비춰질 수 있다며 지역명을 뺀 국명을 제시해서 소련이 되었죠. 호이4 NSB DLC에서 트로츠키파로 반란 일으키면 이국명 씁니다 ㅋㅋㅋ
@카라멜 마끼아또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 우크라이나 SSR, 자캅카스 SFSR, 벨라루스 SSR, 부하라 SSR, 호라즘 SSR 하는 식으로 각 공화국들이 명목 상 독립적으로 존재했습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모스크바에서 관장했겠지만…
@렌지파일 유라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이라... 누군가 좋아할만한 국명같네요.
@렌지파일 근데 여기선 다른 지역에서의 혁명이 성공하고 하니까 그럴일이 없다 이건가요?
+ 솔직히 독재자 할라면 그정도 지식은 있어야...아무것도 모르는데 독재자 된 케이스가 얼마나 있으려나요?
@931117 글쎄요? 김정일..? 전두환..?
@931117 사마충이나 천계제?
@931117 솔제니친의 활약으로 적백내전이 매우 빨리 끝났고 반대로 외국이 휘청거리고 있어서 모두들 혹시? 서유럽에도 공산주의가? 하고 기대하는 상황인 셈입니다.
@카라멜 마끼아또 그둘은 세습 전제군주이므로 제외해야....
@렌지파일 결국 솔제니친의 믿을수 없는 전공이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
@E.E.샤츠슈나이더 전두환은 육사 성적 자체는 좋았는데, 김정일은 확실히 공부를 못했긴 합니다(...)
@E.E.샤츠슈나이더 김정일은 권력 세습이라 애매한듯...
@931117 아예 노베이스부터 올라와서 한 국가의 실권을 장악할 정도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능력이 출중하긴 해야겠죠. 멩기스투나 이디 아민처럼 사람 죽이는 것만 잘하는 독재자들도 유학 다녀온 엘리트 장교들이었고, 차우셰스쿠나 폴 포트도 아주 맹탕은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독재자라는 게 상당히 피곤한 직업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시켜줘도 안하렵니다(?)
과중한 업무량으로 워라밸 최악, 의심병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편집증, 결정적으로 노후보장이 안된다는 점이…
@렌지파일 장쉐량도 (반쯤 세습 독재자이긴 했지만) 장난아니게 무능하지 않았나요? ㅋㅋ
물론 정식 국가지도자는 아니고 지역 군벌 수장이지만..
@E.E.샤츠슈나이더 ???: 장학량 그 자식만 아니었어도 모가놈이 여기에 있었을거야.
@E.E.샤츠슈나이더 김정일과 장쉐량도 세습 독재자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
@카라멜 마끼아또 장작림이 자신한테 부족한 학식과 국정운영 지식을 채워주려고 장학량의 교육에 엄청 신경썼는데, 결과물은 지 아버지 카리스마의 100분의 1도 못 발휘하는 아편중독자 무골장군(…)이었죠…
애초에 그릇 자체가 너무 차이나서 전형적인 호부견자의 사례가 아닌가 싶네요.
@E.E.샤츠슈나이더 아편 중독자에 부저항장군, 골초, 술꾼, 여자 밝히는 호색한인데다. 더 넓게 보면 지금의 우한 코로나 펜데믹을 만든 인간이죠...
캬 트로츠키 동무의 혁명의지에 취합니다(..)
요즘 rp를 되새기면서 프랑스 때 표트르가 현역이었으면 어떻게 하는게 좋았을까 생각해보는데, 제 결론을 소폴전쟁에서 트로츠키가 이미 했었네요. 사스가 트로츠키 콤레이드..
확실히 게임의 정치성향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네요. 미래예측은...불가능하다!
아 자기가 독일가겠다는건 실제로 한 주장입니다 스파르타쿠스단 봉기실패 후지만요
@렌지파일 앗....정말 위대합니다 동무!
@렌지파일 이것도 뭔가 나비효과로 벌어진 상황 같은 느낌이...
일단 트로츠키가 독일 혁명에 성공한다면 트로츠키가 얻을게 상당하긴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