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일본놈이 싫고 친일파놈들이 싫고
저에게 할아버지라는 말을 한번을 허용치 않고 할아버님을 모두 빼앗아간 빨갱이도 싫어 이곳을 찾았습니다.
친할머니께서 살아생전에 박 대통령께서 우리집안을 잘 보살펴주셨다며
어렸을때 친할아버님 4분이 잠들어 계신 현충원을 자주 갔었습니다.
저희 큰할아버님은 한국전쟁에서 29살에 맞지않는 대령이란 계급장을 달고
조국을 위해 당당히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큰할아버님은 돌아가실때까지도 결혼도 않으셨습니다.
혼사일 당일이 1950년 6월 25일입니다.
큰할아버님은 친일행위를 하신것도 아니나, 독립군에 가담하여 조국을 위해 싸우지 못한것을 천추의 한으로 삼으기소
부끄러워 할줄 아시며 쌓은 재산을 모두 헌납하신뒤 군인의 길을 걷겠다 하셨습니다.
늘 반성하는 의미에서 쓰신 일기장이 있는데 1951년 1월 6일 이후의 일기는 없습니다.
저희 아버님의 아버님이신 직계 조부께서는 중대장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516군사혁명을 성공리에 이끄시고
대통령의 명을 받고 중령때 월남으로 가셔서 무전기가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교전지로 가시던중
월맹군의 한병사가 쏜 총에 비포장도로에다가 속력이 있던 지프차가 그대로 뒤집히자,
뒤에 탄 작전참모와 중대장이 차체에 깔린 운전병을 구출하는 동안,
몸소 엎드려 사격을 하시다가 승모근에 총상을 입으시고 귀국하셨습니다.
1980년 2월 저희 할아버님은 끝내 후유증을 이기시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65년 4월 28일에는 작은 할아버님 두분이 월남에 참전하셨다가 향년 28세 대위라는 계급으로 돌아가셨고
같은날 36세 소령이라는 계급으로 또 돌아가셨습니다.
큰할아버님의 누님이신 큰할머니는 일본군에게 강간을 당하시고 배갈려 돌아가셨지요.
저희 집안은 참 내력이 특이하다면 할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북괴뢰와 일본이 싫습니다.
정말.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차세대 북한 지도자라고 떠벌리는 김정운까지.
김일성의 썩지도 않는 그시신과 김정일, 김정운 모두를 지금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고군분투하신 어르신들 앞에 꿇려놓고
죽을때까지 반성하며 살게 하는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상입니다.
첫댓글 안녕 하세요? 어린나이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을까 생각 하며, 글을 읽노라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그래도 자랑스러운 가문임을 잊지 마시고 애국의 일선에서 달려 주실것을 부탁 드립니다.
할아버님의 혼사당일에 쓰신 일기가 생각나는군요... "조국이 금시에 대위기를 맞았거늘 장부된 자로써 나서지 않는것은 수치이며 굴욕이다."
좋은 가문의 후손이시구려~~ 조상님의 유지 대로 부강한 나라 정의로운 나라 만드는데 일조하시길 부탁 드립니다
일제시대와 6.25 그리고 월남전을 거치는 동안 bring to life님 가정의 불행한 가족사를 통해 현대사의 비극을 실감합니다. 물론 이해당사자인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말할수 없었겠지요... 그 아픈 세월을 견딘 인내와 순국한 분들의 소중한 피와 땀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목숨걸고 지켜야할 가치가 있습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bring to life 세 분 할아버님의 숭고한 애국심에 숙연한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며 머리숙여 명복을 빕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우리들의 선조들이 흘리신 고귀한 피의 댓가로 이루어 졌습니다.조국 위해 피 흘리신 명문가의 귀한 후손임을 잊지 마시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부친도 6.25 전쟁에서 21살 젊은 나이에 조국의 위기 앞에서 분연히 참전하셨다가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 하셨습니다. 하늘의 큰 위로가 님의 가족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고귀한 희생에 감사드리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