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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2-5
다음날.
자신의 집무실에서 천하에서 제일 가는 의술을 지녔다고 알려진 노승을 만나게 된 방종대는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드디어 아들의 병을 고쳐줄 사람을 만난 것이다.
"대사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령 대인, 부디 선처를---."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등소군이라는 자는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단순한 폭행으로 잡혀왔습니다. 죄질이 경미하니 훈방조치도 가능하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보다 제 막내가 병에 걸린 것인지 좀 알아 봐 주십시오. 이놈이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움직일 생각을 안 해서---."
"잠을 많이 자는 것은 병이 아닙니다."
등봉현의 관아를 방문한 정각 대사는 현령의 말을 듣자마자 단정하듯 말했다.
"대사님이 생각하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이놈은 깨우지 않으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한번 저희 집을 방문하셔서 병인지 아닌지 좀 알아 봐 주십시오."
현령의 말을 들으면서 정각 대사의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이 더욱 크게 뜨여지며 동그래졌다.
"그 정도란 말입니까?"
"예, 마침 의술이 높다고 알려진 정각 대사를 만난 김에 제 막내아들이 병에 걸린 것인지 꼭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정각 대사는 호기심이 동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럼 한번 진맥이나 해 보도록 하지요."
"그럼 제가 집까지 모시지요."
"업무가 바쁘실 테니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현령 대인의 사택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이 등봉현에 아무도 없으니---, 아미타불."
가볍게 합장하고 인사한 후 관아를 벗어난 정각 대사는 관아를 빙 돌아 현령의 사택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제자 양평의 전음을 듣기 시작했다. 관아에 숨어든 살수(殺手)를 쫓아내었다는 제자의 보고를 들은 그는 바로 제자에게 전음을 날렸다.
'잘 감시하고 있다가 그놈이 출옥하면 바로 소림사로 끌고 가거라. 내 이놈의 버르장머리를 이번에는 반드시 고쳐 놓고 말겠다!'
'명심하겠습니다.'
소구의 미래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날 따라 유달리 일찍 일어난 악동(惡童) 방소구는 자신의 방에 있지 않았다. 본래는 정각 대사가 올 때까지 자신의 방에서 꼼짝을 안하고 있어야 할 소구였지만, 지금 그는 하녀인 취하와 취앵이 함께 쓰고 있는 방에 숨어 있었다.
키득키득 웃으면서 중얼거리는 꼬마는 하녀들의 옷장 안으로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자기 시작했다.
"여기라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하루종일 잘 수 있겠지?"
숨어서 자던 장소가 모두 들통이 나면서 소구는 들키지 않고 잘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그래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소구가 하녀의 방에 있는 옷장 속에 숨어 자고 있는 그 때, 정각 대사는 소구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구척장신의 커다란 체구를 가진 문지기가 정각 대사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았고, 어린 하녀가 안에서 뛰어나와 정각 대사를 맞이했다. 그리고 칼을 가지고 장난치는 방화련과 만난 정각 대사는 한 손에 칼을 든 채 소구의 방에 이르게 되기까지 모든 것이 원래대로 이루어졌지만, 정각 대사와 소구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날 정각 대사와 만나 소림사로 가기로 예정되었던 소구의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이놈이 또 어디에 숨어서 자고 있는 거야?"
정각 대사를 맞이한 옷차림이 화려한 귀부인 장봉화가 비어있는 막내아들의 침상을 보면서 짜증을 내고, 하인과 하녀들을 시켜 찾아보게 시키면서 방씨 집안의 저택을 발칵 뒤집혀졌다. 그러나 붉게 물든 해가 저물어 질 때까지 끝내 막내 방소구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부인, 죄송하지만 저는 사찰에 일이 있어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잠꾸러기 현령의 막내아들을 보려고 저녁 무렵까지 기다린 정각 대사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여기고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고, 장봉화는 물었다.
"대사님, 죄송합니다. 바쁘신 시간을 내어 주셨는데 시간만 허비하게 했으니--. 그래도 제 아들놈을 봐주시겠지요?"
"제가 다시 산에서 내려오기는 어려우니, 아드님을 산으로 올려 보내 주십시오."
"그럼 내일 날이 밝는 데로 소구를 데리고 찾아 뵙겠습니다."
그래서 늙은 노승은 다음날을 기약하고 소림사를 향해 올라갔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깜깜한 한 밤중이 되어서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할 수 있게 된 취하는 잠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 문을 여는 순간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바로 옆에 달라붙어 방들에서 하녀들이 쏟아져 나와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취하의 방으로 몰려오고, 그래서 하녀들은 취하의 옷장 안에 숨어서 자고 있는 막내 도령을 볼 수 있었다.
끔찍한 취하의 비명도 방씨 집안의 막내를 깨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쿨쿨 잘도 자고 있는 상태였다.
"네 방이니까 네가 깨워."
하녀들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장소였다. 그 중의 하나 취하와 취앵이라는 두 어린 하녀가 머무르고 있는 방에 숨어서 자고 있는 소구를 깨울 용감한 하녀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하녀들은 그 말만 남기고 모두 자신들의 방으로 떠나고, 남겨진 두 하녀는 잔뜩 겁에 질려서 옷장을 바라보았다. 자고 있는 방소구를 깨우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자신의 잠을 깨우는 하녀나 하인은 결코 가만 놔두는 법이 없는 방소구였다.
이제 열 세 살 난 소녀 취하와 취앵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 옷장이잖아? 네가 깨워."
취앵은 잠옷으로 갈아입더니 침상에 누워 한마디만을 남기고 잠들어 버리고, 취하는 멍하니 자신의 옷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왜 하필 여기에서---."
정각 대사와 만나던 날 소구의 잠을 깨운 것은 취하였다. 장소도 틀려지고 시간도 틀렸지만 취하는 어떻게든 소구의 잠을 깨워야 할 운명이었다.
"도련님, 일어나세요."
살며시 소구를 흔들며 깨우는 취하는 울고 싶어졌다. 성질 더러운 막내 도련님이 자신의 옷장에 숨어서 자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소구는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수 없이 취하는 잠든 소구를 등에 업고, 소구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환한 달빛이 지상에 쏟아져 내리는 그 밤에 취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소구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상 위에 소구의 몸을 눕히고 문 밖으로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던 취하는 뒤에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 섰다. 방금 침상에 눕힌 막내 도련님이 깨어나 앉아 있었다.
"배고파. 밥 가져와."
침상 위에 앉은 소구의 입에서 나온 첫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네?"
"나 배고프단 말이야! 빨리 밥 가져와!"
성을 내며 소리치는 악동의 말에 취하는 바로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새벽으로 치닫는 이 시간에 부엌에 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떡하지? 먹을 것을 안 갖다 주면 날 막 두들겨 팰텐데----."
부엌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하고 있는 취하를 구원해 준 것은 부엌을 책임지고 있는 장씨 아주머니였다.
"취하야, 거기서 뭐하냐?"
"먹을게 필요해요."
앞치마를 풀고 이제 잠자리에 들어서려던 장씨 아주머니는 취하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네가 먹을 거냐, 아니면 누구 갖다 줄 거냐?"
"막내 도련님이 밥 가져오라고 시켰어요."
"그래? 마침 잘 됐구나. 막내 도련님의 식사는 따로 준비해 놓았지. 저기 솥 안에 들어 있는 쟁반을 갖다 주면 된다."
그렇게 해서 취하는 소구의 잠을 깨우고, 식사를 갖다주는 그녀의 운명을 끝낼 수 있었다.
"싫어! 싫어! 싫다구 내가 왜 절간에 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을 치며 가기 싫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다음 순간 소구의 몸은 번데기처럼 꽁꽁 밧줄에 묶였다.
"들어라."
"예! 마님!"
현령의 부인인 장봉화의 옆에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포졸은 힘차게 대답했다. 밉살스러운 현령의 막내아들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쁜 두 포졸 이휘와 왕종이었다. 처음 이사오던 날의 악몽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는 두 포졸은 밧줄에 꽁꽁 묶여서 작대기에 매달린 현령의 막내아들의 모습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하나의 작대기에 밧줄로 꽁꽁 묶여서 매달린 꼬마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어머니 장봉화는 아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중원 오악 중의 하나인 숭산(嵩山)의 소실봉(少室峰) 중턱에 위치한 소림사라는 절을 향해 아이를 들고 걸음을 옮기는 두 포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소실봉 아래를 흐르고 있는 이름 없는 작은 냇가에 도착하고 나서야, 장봉화가 뒤돌아 서서 포졸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록 하자. 그 녀석은 저기 바위 그늘에 내려놓도록 해라."
한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 계속 걸음을 옮겨야 했던 두 포졸은 확실히 지친 상태이기는 했지만, 포졸들에게 날마다 수난을 안겨주고 있는 꼬마와 한시라도 빨리 떨어지고 싶었다.
"저희들은 괜찮습니다, 마님. 정각 대사님은 하루에도 수십명의 환자를 돌보시는 분이라 늦게 가면 오늘 진료를 받을 차례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휘가 아직 힘이 남아돈다는 표정을 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장봉화는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산 중턱의 지붕과 포졸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럴까?"
"그럼요, 마님. 한시라도 빨리 가셔야 정각 대사님을 뵐 수 있습니다."
왕종이라는 이름의 포졸이 재빨리 동료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대답했다. 보기만 해도 울화가 치미는 꼬마가 바로 현령의 막내아들 방소구였다. 그 역시 한시라도 빨리 이 꼬마와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쉬지 않고 걸음을 옮겨 정오가 되기 전에 소림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대기에 매달린 채 소림사에 오게 된 꼬마 방소구는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소림사의 현판을 바라보았다.
'내가 전에 여기 온 적이 있었나? 이상하다. 이 절의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다 기억나.'
소림사의 건물들에 대한 기억이 소년의 머리 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지객당의 젊은 승려들은 킥킥거리며 산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꼬마를 바라보았다. 소림사는 수 없이 많은 향화객이 찾아오는 불문의 성지였지만, 꼬마처럼 작대기에 매달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뒤에서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소년의 얼굴은 시뻘개졌지만 작대기에서 풀려나지는 못했고, 정각 대사가 환자들을 돌보는 약왕전이라 불리는 건물 앞에 이르게 되어서야 소년은 손과 발이 묶여 있는 작대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미타불."
그 건물에서 문어머리를 한 늙은 중이 나와서 불호를 외우면서 어머니와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구는 또 한번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전에 본 얼굴이었지만 어디에서 본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고 있었다.
"이 아이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장봉화는 자신의 막내아들을 앞에 세우고 정각 대사를 향해 말했다.
"이리로 데리고 들어오십시오. 어디 진맥을 해 보지요."
약왕전의 한 방 안으로 들어간 정각 대사는 눈을 지긋이 감고 소년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시작하고, 소구의 어머니 장봉화는 초조한 얼굴로 정각 대사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뒤 눈을 뜬 정각 대사는 약간은 놀란 눈으로 장봉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부인, 이 아이가 그렇게 잠을 많이 잡니까?"
"말도 마세요. 바로 어제만 해도 하루종일 아무 것도 안 먹고 잠만 잤어요. 그런 일이 하루이틀이라야 말이지요. 무슨 병에 걸린 것인지-----."
"허허, 세상에 이렇게 지독한 잠꾸러기가 있다는 것은 이제 알았습니다. 부인, 안심하십시오. 이 아이의 몸에는 아무런 병도 없습니다. 오히려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몸이 튼튼하군요."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정각 대사의 말에 장봉화는 한순간 말을 잊고 잠시 천장만 바라보았다. 병이라고 생각해서 혼내지 않고 오냐오냐 봐준 것이지만 지금 들은 말은----.
"지금 그 말씀은 우리 소구가 그냥 잠꾸러기라 그렇게 잠만 퍼 질러 잔다는 그런---, 그런---."
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막내아들을 노려보는 그녀 장봉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소구는 투덜거렸다.
"거봐, 올 필요없다고 그랬잖아. 나 아픈데 없다고 그랬잖아?"
아들의 말에 장봉화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천하의 게으른 놈!"
말이 끝나기가 무서웠다. 잔뜩 화가 난 현령의 부인은 소림사에 데리고 온 아들을 쥐어 패기 시작했다.
정각 대사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날 하루종일 소구는 어머니의 손맛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여기저기 얻어터져서 멍투성이가 된 아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린 장봉화는 정각 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대사님, 이놈의 잠버릇과 게으름은 병이 아닌 것 같지만 병입니다. 하루종일 어떻게 사람이 잠만 자고 살 수 있겠습니까? 이놈이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도 병을 고치는 일의 하나일 테니 대사님에게 이놈을 맡기겠습니다. 두들겨 패서 병신이 되도 좋으니 사람 구실만 하게 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장봉화는 아들을 소림사에 남겨 놓고 집으로 떠나버리고, 정각 대사는 갑자기 자신이 맡게 된 애물단지를 바라보았다.
"끄--응, 골치로다. 이런 천생의 게으름뱅이를 어떻게 사람 구실 하게 만들지?"
신음을 터트리며 말하는 정각 대사의 앞에 서 있는 꼬마는 멍한 얼굴로 치맛자락을 휘적이며 멀어져 가는 엄마의 등을 바라보았다.
"스님, 엄마가 나 버린 거예요?"
멍하니 문 밖만 쳐다보던 꼬마는 한참이 지나서 정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버린 게 아니라 나보고 너의 게으름이라는 병을 치료하라고 이곳에 남겨 놓은 것이지."
"게으름이라는 것도 병입니까?"
"물론 병이고 말고, 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병이지. 그 병을 고치지 않으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고, 뜻하는 일이 무엇이 있더라도 절대로 이룰 수 없게 하는 아주 악질적인 병이란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 정각은 다시 한번 소년의 몸을 진맥할 필요를 느꼈다. 아무래도 이 아이의 비정상적인 잠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다시 한번 진맥을 해보자꾸나. 아무리 네가 잠꾸러기라지만 넌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 원인을 알아야 치료를 할 수 있으니---."
게으르고 욕심 많고, 심술꾸러기이면서 또 잠꾸러기인 악동(惡童) 방소구는 재빠르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공부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었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아니 영리하다는 편이 옳았다. 잔머리를 굴리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서 혼나고 두들겨 맞고 항상 감시를 당해도 잘도 도망쳐서 원하는 잠을 실컷 잘 수 있었고, 공포로서 집안의 하인과 하녀들을 꼼짝 못하게 지배하는 꼬마였다. 소림사라는 절에 혼자 남겨진 꼬마는 앞에 서 있는 문어머리를 한 늙은 중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밥도 못 먹고 잠도 잘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늙은 중의 말을 잘 들을 필요가 있었다.
"예."
어울리지 않게 얌전하게 대답한 꼬마는 조금 전처럼 방안에 있는 침상에 드러누웠고, 꼬마의 상체를 풀어헤친 정각 대사는 이번엔 소년의 전신을 세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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