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란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과학시대에도 여전히 기적은 존재한다. 그러나 현생 뿐 아니라 수많은 전생,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확장해 본다면 기적이란 정작 있을 수 없다. 단지 인과(因果)만 있을 뿐이다.
L씨(당시 서울 등촌동 동신아파트 거주)는 1986년 여름 서울 종로구 혜화동 S병원에서 뇌종양으로 길어야 3년이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수술을 해도 치료의 가능성이 희박하고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료진의 말에 L씨는 수술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며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지의 소개로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1988년 나를 찾아온 L씨는 병색이 완연했다. 커다란 혹이 뇌를 눌러서인지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한 쪽 눈마저 감겨진 L씨였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당신 아버지가 6·25 때 비참하게 죽지 않았소? 왜 돈 많고 여유있는 생활을 하면서 부친의 넋을 한 번도 돌보지 않았소?”하고 꾸짖었다.
생명이 오늘 내일하는 시한부 환자에게 호통이라니. 법회 참가자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보다 더 놀란 것은 L씨 당사자였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가족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는지 L씨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는 힘겹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수술은 포기한 상황이니 어떻게 다른 길이 없겠습니까?” L씨의 호소에 나는 먼저 한을 품고 돌아가신 부친의 넋을 위로하는 일을 하고 그 후 수술을 받을 것을 권했다. 자신의 경각에 달린 생명과 어렴풋이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죄스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L씨는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는 구명시식을 거행했다.
나는 L씨에게 가능한 빨리 수술하라고 전했다. 그리고 영혼 앞에서 ‘소생한다면 한 가지 감사의 일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라고 했다. 살게만 해준다면 그까짓 억만금이 문제겠는가. L씨는 망설임 없이 굳게 약속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L씨는 가망성이 거의 없다던 수술을 자청했다. 병원에서는 고개를 저었으나 수술 전에 ‘이로 인한 불의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서 L씨는 평소 입에 담지도 않았던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기도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여섯 시간이 걸리리라던 대수술. 예상 외로 불과 두 시간 남짓 만에 끝나버렸다. 수술 결과 머리 속을 들여다보니 종양이 있어야할 자리에 악성이 아닌 단순한 물혹이 있었다, 이 혹을 제거한 후 다른 후유증이 없는 한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는 게 의사의 진단이었다.
수술에 참가했던 의료진도, L씨 자신도 뜻 밖의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단할 때는 분명 뇌종양이라고 판단되었는데 단순한 물혹이라니 이상한 일도 다 있다는 게 담당 의료진의 반응이었다.
뇌종양이 물혹으로 판명된 L씨는 과연 영혼의 작용으로 소생한 것인가. 수술결과에 대해 의료진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오진이라고 하자니 의사로서 의료과실이고, 기적이라고 하자니 의술의 한계를 고백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의학계의 통계에 따르면 후에 오진으로 판명되는 병들이 상당수 있고, 그로 인해 불치병으로 진단받았다가 기사회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하는 의사의 설명을 들은 L씨는 단순 의료실수와 영혼의 도움으로 종양이 물혹으로 변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나를 찾은 이유는 영계에 사죄하기 위해서였다. 완쾌 후 그녀는 서울 하월곡동에서 꽤 큰 유흥업소를 열었다. 그런데 개점 초에 이곳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화재가 발생하자 그녀는 구명시식 당시 영혼과 한 약속이 새삼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영혼 앞에서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을 사죄했다. 개점 식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일종의 영계의 징계 표시였다. 악몽 같은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미궁을 헤맬 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일부나마 영혼과 약속을 지킨 그녀는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가 다치카와(立川) 지방에서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는 억척스러운 사업가로 변신했다. 큰 눈으로 본 과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영계와의 약속은 무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