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법 ☞ 3. 초점 잡기 / 3) 복합 초점 만들기 윤석산

[흐르는 물]

3) 복합 초점 만들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떤 인식에 초점을 맞춰도 나름대로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방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되도록 비본질적인 것들을 <배제(排除)>하면서 텅 비워 본질만 남기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모자라는 것을 보충하면서 <포괄(包括)>하하는 방법입니다. 아니, 배제하는 방법으로도 가능하냐구요?
그럼 제가 좋아하는 한시 한 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산마다 나는 새 그치고
길마다 사람 자취 그쳤네
강에는 외로운 배 한 척, 그리고 삿갓 쓰고 도롱이 입은 노인네
혼자서 낚시질, 차가운 눈만 내리는데
(千山鳥飛絶 萬逕人從滅 孤舟簑笠翁 獨釣寒降雪)

―유종원(柳宗元), ｢강설(降雪)｣ 전문


어떼요? 천지가 새하얀 눈으로 덮이어 하늘도 땅도 구분이 되지 않는 거 같지요?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광막한 공간에 점처럼 찍힌 배 한 척, 그 배보다 더 작은 삿갓과 도롱이 쓴 노인네, 다시 그보다 더 작은 낚싯대, 그리고 시나브로 내리는 눈발을 통해 있음(有)과 없음(無), 광막함과 가뭇가뭇함, 가득 참과 허전함, 추위와 따뜻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만일 이런 느낌이 들지 않는 분이 있다면 마음의 백지 위에 제가 그리라는 대로 이 시 속의 풍경을 그려보십시오. 우선 눈 내린 산과 들을 그리십시오. 어쩐지 답답하면서 허전한 느낌이 들지요? 이들은 모두 수평(水平) 구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사선(斜線)의 방향으로 길을 그려보십시오. 좀 답답한 느낌이 사라졌지요? 사선 구도를 첨가하여 수평 구도의 답답함에 숨통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광막하면서도 허전한 느낌이 들지요? 자아, 그럼 다시 배를 그려보십시오. 원근의 초점이 잡히면서 허전한 느낌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다시 사람을 그리십시오. 사람을 그리니까 허전한 느낌이 사라지면서 한결 따뜻해졌지요? 그건 광막한 공간에 배와 사람으로 초점을 잡고, 그 초점이 사람이라서 따뜻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정적(靜的)인 느낌은 지울 수 없을 겁니다. 정지태(靜止態)인 것들만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나브로 떨어지는 눈발을 그리십시오. 하지만 바람에 휘날리는 것으로 그려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낚싯줄을 휘둘러 던지는 모습으로 그려서도 안 됩니다. 산과 들과 길과 노인이 이뤄낸 고요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눈보라 치는 날에도 낚시질을 하는 노인의 모습이 강조되어 처참한 풍경으로 바뀝니다.

소리없이 시나브로 내리는 눈발, 그러나 노인은 모든 것을 잊고 낚싯대만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광막함과 가득 참, 고요함과 움직임, 자연과 인간이 대비되면서 고요 속에서도 살아있음이 가득한 그림으로 바뀝니다.
이 작품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는데 어떻게 꾸며냈느냐구요? 예술이란 원래 그런 겁니다. 다시 말해 작품은 작가의 말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이고, 의미는 독자 스스로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각할 거리가 곧 작품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그리지 않은 빈 자리에서 생략한 모든 것들이 떠오르도록 만드는 <여백(餘白)의 기법>을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욕망 중심의 서구 문화에 길든 현대 시인과 독자들에게 이렇게 표현하고 그걸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요. 그런 표현과 이해는 오랜 동안 구도적(求道的)인 수련을 거쳐 몰각(沒覺)의 상태에 이른 다음에야 가능한 거니까요. 그러므로 아주 슬픈 일이긴 하지만, 서구 문예이론에서 주장하는 <포괄의 방법>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이 방법은 앞에서 알아본 각 초점의 장점만 결합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장점만 결합시키면 한결 입체화된다는 것은 다음 작품들을 비교하면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 김현승(金顯承), ｢눈물｣에서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 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죽음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 그리우리.
- 박두진(朴斗鎭), ｢묘지송(墓地頌)｣에서

어떼요? ⓐ보다는 ⓑ가 한결 더 시 속의 풍경이 구체화되면서 시인의 강한 정서를 느낄 수 있지요?


이를 좀더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관념형(conceptional)은 (C)로, 물질형(physical)은 (P)로, 무의식형(unconscious)은 (U)로, 추상정신은 기호적 상징(signal symbol)으로 나타나니까 (S)로 표현하고, 얼마만큼 차지하고 있느냐는 <양(量)>과 어느 쪽에 가까우냐는 <거리(距離)>와 얼마나 자주 사용하느냐는 <빈도(頻度)>의 차이를 대문자와 소문자로 표시하기로 합시다. 이 방식을 적용하여 분석할 경우 ⓐ와 ⓑ는 모두 관념을 다루고 있지만, ⓑ에는 물질적 속성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는 (C), ⓑ는 (Cp)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는 시인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기독교적 신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하지만, ‘당신’으로 표상 되는 신이 무엇이든 요구하면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눈물을 드리겠다는 것 이외는 어떤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시인의 관념과 정서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 역시 죽음에 대한 관념과 정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 속의 사물들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금잔디 기름진 데 동그만 무덤들’이라던가, ‘어둠 속 무덤에 하이얀 촉루’가 그런 것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물질적 인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 비평에서는 시의 유형을 어디에 초점을 맞추었는가에 따라 나누고 보다 많은 것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우수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영미 신비평가 그룹들이 나눈 시의 유형입니다.


꽤 용어가 복잡하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합니다. 관념시는 사고와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어 관념화된 시를 말하고, 즉물시는 시적 대상을 관찰하여 물질적 속성이 강화시킨 시를 말합니다. 그리고, 순수시나 배제의 시는 이성과 감성 중 어느 한 쪽을 배제한 시를 말하고, 비순수시나 포괄의 시는 이들을 모두 담고 있음을 말합니다.

‘형이상시(形而上詩)’는 무슨 뜻이냐구요? ‘개똥 철학자의 시’라는 뜻입니다. 영국의 17세기 단(J. Dane)은 당시 낭만주의자들과 달리 아주 낯선 비유를 택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8세기의 존슨(S. Johnson) 박사님께서 개똥 철학자들 말처럼 어렵다고 말하고, 20세기로 접어들어 엘리엇이 ‘그래, 개똥 철학’의 시가 제일 좋은 시라고 내세워 생긴 명칭입니다.

그들은 이 가운데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을 포괄한 ‘형이상시’를 최고로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 두 작품은 어떻습니까? 난 아직 시인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구요?
네에. 맞습니다. 시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이름으로 읽지 않고 작품 그 자체를 읽는 겁니다. 그리고 대가들의 작품일수록 문제점이 없는가 살펴보고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겁니다.
그럼, 다음 작품은 어떻습니까?

ⓒ나는 모래에 관한 기억을 가진다.
모래의 기억, 밟고 선 여자의 젖은 발
모래의 기억, 여자는 전신을 흔들어서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모래의 기억, 그래도 태양은 여자의 등허리에서 젖고.
모래의 기억, 벌린 두 다리 사이에서 이글거리고
뒤척이고…바다는.
모래의 기억, 여자는 팔을 들어 뻗쳤다.
태양과 바다에 젖어 자꾸자꾸 뻗어 가는 열의 손가락. 여자는 온몸으로 바람을 빨아들였다. 그때 목덜미로 유방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에서 태양은 부서지고. 머리를 빗으면 태양의 가루가 날리는 속에서,
모래의 기억, 여자는 기지개를 켰다.
나는 모래에 관한 기억을 가진다.
- 전봉건(全鳳健), ｢속의 바다·11｣ 전문

아, 아 아. 눈부신 태양과 차르르 차르르 하고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떠오르고, 남을 훔쳐보는 것은 점잖은 짓이 아니지만 자꾸만 시선이 여인 쪽으로 가면서, 이래서는 안 되는 안 되는 데하며 손을 뻗고 싶고, 손끝이 닿는 순간 작품 속의 여인이 화르르 떨 것 같지요?
그것은 단지 물 속에서 빠져나온 여인이라는 관능적인 화제를 택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여인에 대한 관념적 인식(c)을 약화시키는 대신 외관의 이미지(P)를 강화시키고, 무의식적 인식(u)을 첨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의 ⓑ도 이와 마찬가지로 (U>) 빠진 (CP) 형이고, 다만 (P)가 약화되었을 뿐인데, 왜 이와 같은 차이가 날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융의 견해와 제가 인식의 순서를 고려하여 수정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융의 설명에 의하면 감각(P)은 ‘주어진 것(所與)’에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어지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인을 본다는 것은 여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인을 생각한다는 것은 보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보면서 생각하는 것과 보지 않으며 생각하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독자들은 (P)가 약화시켰을 경우에는 그 풍경을 떠올 리 수 없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P)를 강화시켰을 때만이 (C)도 (U)도 윈활하게 형성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목적이 관념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든 다른 그 무엇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든 물질적 감각을 충분히 강화시킨 다음에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시를 평가할 일차적인 기준으로 이미지화 여부를 살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초점들이 자극하는 미적 쾌락(aesthetic pleasure)의 유형은 오감(五感)을 만족시키는 <감각적(sensuous) 쾌락>, 심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emotional) 쾌락>,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관능적(sensual) 쾌락>, 논리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지적(intellectual) 쾌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각적 쾌락은 대상의 물질적 감각에서, 정서적 쾌락은 관념에서, 관능적 쾌락은 무의식의 자극에서, 논리적 쾌락은 추상적 인식에서 얻어집니다.

또 이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각적 쾌락은 정서적 쾌락을 불러일으키는 동인(動因)이 되고, 정서적 쾌락은 공감(empathy)을 불러일으켜 시인과 작중 인물과 독자의 구분을 없애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지적 쾌락은 공감을 오래가도록 만들고, 관능적 쾌락은 다른 쾌락의 질을 높혀 줍니다. 그리고 정서적 쾌락을 동반하지 않는 지적, 감각적 쾌락은 이내 무관심해지고, 관능적 쾌락만 내세울 때는 추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춘 작품보다 여러 개에 초점을 맞추되 이들끼리 강약의 차이를 갖도록 조직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전봉건 작품이 앞의 두 작품보다 훨씬 강렬한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대부분의 작품들은 지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서정에서 다룰 초점이 아니라며 제외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동안 이런 초점을 모두 포괄하는 방법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모든 초점을 결합시킬 경우 작품의 특질이 어떻게 변하나 한편만 소개해볼까요?

  신문(新聞)을 집어들었다. 조르주 무스타키가 카운터 뒤편 흔들이 문을 밀고 들어선다.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고향도 추억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뭐 드시겠어요? 어두운 강물 저 편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온 마녀같이 클로즈업된 레지의 얼굴. 광고(廣告) 속의 나타샤 킨스키는 입술을 반쯤 벌린 채 웃고. 이제쯤 그녀는 샤워를 끝내고 콤팩트를 꺼내들 꺼야.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사랑도 추억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두 뺨을 두들기는 은어같이 하이얀 손. 자주 한눈을 파는 목관악기(木管樂器) 주자(奏者)는 반음(半音)씩 이탈하고.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사랑도 미움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팽창하는 거시기와 유방(乳房). 인간에겐 정말 사랑이란 게 존재하는 걸까? 지금쯤 장마가 끝난 고향집 뒷산 굴참나무 숲은 수묵빛으로 한결 투명해졌을 꺼야. 증시(證市)는 연일 폭락(暴落). 치안 부재(治安不在), 어제도 어린 여고생이 부모 앞에서 집단 폭행 당해. 暴行? 暴行? 暴行! 점점 커지는 신문지의 활자. 지워버리고 싶어라, 지워버리고 싶어라. 고향도 추억도 지워버리고 싶어라. 그녀는 지금쯤 골목길을 빠져 나와 버스를 기다리겠지. 바람이 불 때마다 간당간당 뒤집히는 포프라 이파리, 우두둑 우두둑 떨어지는 햇살 소리에 놀라 양산을 비껴 들고 바라보는 하늘. 앞 자리 스타킹을 내리는 킨스키를 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무스타키. 무스타키? 킨스키? 스키? 키스? ‘Kiss’의 ‘K'음은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날카롭고도 불같은 욕망을, ‘S'는 입술 스치는 소리이거나 그 다음에 밀려오는 허망을 돋보이게 만드는 음상징(音象徵)? 그렇다면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빠는 것도 키스가 아닐까? 키스? 스키? 눈부신 입술의 활강(滑降). 허공 가득 날리는 눈가루. 키스하고 싶어라, 키스하고 싶어라. 사랑도 추억도 고향집 산그늘처럼 비워두고 키스하고 싶어라. 어머, 오래 기다리셨어요? 음? 음. 인생은 기다리며 사는 것. 사랑을 기다리고, 죽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싶어라, 기다리고 싶어라. 고향집 산그늘처럼 기다리고 싶어라.
- 필자, ｢그녀를 기다리며 : 사랑찾기․5｣ 전문

너무 길지요? 하지만 그냥 설명해보겠습니다.
화자는 조르주 무스타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커피숖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며 연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가 무료하다는 생각을 하고, 엉뚱한 환상에 빠지는가 하면 혼자 말장난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다 포괄하려고 다실 안 풍경과 상상을 이미지화(P)하고, 그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C), 무의식적 환상(U)과 작위적으로 추론한 기호적 상징(S)도 뒤섞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점을 이동하면서 동일 화자를 넷으로 분리하여 그들대로 행동하게 뇌뒀습니다. 그 결과 첫째 화자는 다방 안의 풍경을 살피면서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적이면서 이성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화자는 이런 기다림을 번거롭다고 생각하며 모든 걸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일상적이되 감성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셋째 화자는 레지 얼굴을 마녀의 얼굴로 바꿔 보는가 하면, 음악 속의 무스타키가 신문 광고 속의 킨스키와 만나 수작을 거는 걸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에서 읽은 성폭행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목욕하는 연인의 나신(裸身)을 떠올립니다. 따라서 비일상적이며,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화자는 ‘무스타키’와 ‘킨스키’의 이름의 ‘K’음에서 ‘키스’라는 단어로 연결하고, 다시 ‘킬리만자로의 눈’같이 날카롭고도 불같은 욕망과 연결하고, 키스의 ‘S’음을 입술을 스치거나 그 다음에 밀려오는 허망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음상징이라고 해석하고, 두 입술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활강’으로 비유한 다음 그것이 스키 용어임을 이용하여 허공 가득 눈가루가 휘날리는 스키장 풍경을 추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적으로 분석하고 추론하는 화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복합초점>을 채택하면 대상을 인식하던 순간의 모든 것들이 입체화됩니다. 그리고 시적 충동(poetic impulse)을 느끼던 그 순간의 팽팽하고도 상반된 감각과 관념을 작품 속에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아, 그럼 여러분들이 시를 쓸 때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우선 초점의 결합 관계의 도표를 살펴본 다음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이제까지 신비평에서는 의미(C)와 물질(P)만 인정하고, 그 결합형(CP)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아왔습니다. 그러므로 통합의 방법으로 쓰려는 사람들은 최소 관념과 물질은 결합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어느 수준을 유지하는 문예지의 추천(推薦)이나 신춘문예 심사 기준도 이 기준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우수한 시인으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이미 현대 시인들은 위의 전봉건 시처럼 무의식까지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들을 뛰어넘으려면 분석적 인식과 기호화(S)까지 담아야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확인했듯이 이런 작품들은 너무 길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두를 통합하되 보다 간결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몫이니 직접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자아, 아래의 과제를 해결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갑시다.


【여러분들이 할 일】
○ 초점의 변화를 중심으로 시문학사의 흐름을 노트에 정리해두십시오.
○ 자신이 시 쓴 시를 가급적 복합초점으로 바꿔 보십시오.

[못난놈]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