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정부는 대통령의 임기동안에 탄핵에 의한 경우 이외에는 대통령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제도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단점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임기보장이 대통령제정부의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제 정부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유일한 예외 조항인 탄핵 소추에 내 몰리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헌법 재판소가 한두차례 더 재판일정을 진행한 후 늦어도 3월중순까지는 최종 평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윤대통령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극성스러운 보수진영은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탄핵은 안된다고 절규하며 막바지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악화한 직접적인 원인을 단순히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탓이라고 할 수만 없습니다. 그보다는 국민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지도자가 가져야 할 통찰력, 사리 판단력, 인문교양의 깊이, 내자의 성정과 품성, 본인의 비전, 역사의식, 철학, 윤리관 등에 대한 내밀한 검증 없이 오직 허울 좋은 공정, 정의의 화두에 현혹되어 대통령후보를 졸속으로 검증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일본관서외국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는 장승부 교수는 “‘비상계엄’은 하루아침에 터진 것이 아니다”라는 2월15일자 조선일보(B11)에 실린 기고문에서 “탄핵 재판에 임하는 윤대통령은 마치 신중한 검토와 치밀한 준비 끝에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군을 동원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별로 신뢰가 안 간다고 했습니다. 비상계엄에 이르기까지 윤대통령의 노정에 ‘경솔하고 무리한’ 정책추진과 그 실패의 역사가 더께처럼 앉아있기 때문이다.” 라고 토로했습니다.
장승부 교수는 윤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문제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매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고결정권자가 초장에 구체적인 내용을 강한 어조로 발언해버리면 그때부터 전문가들은 입을 닫고 관료들은 눈치를 본다. 그로 인하여 ‘침묵의 장벽’속에서 지도자는 ‘자기가 옳다’는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무리하고 경솔한 정책 패턴은 의료 정책에만 국한된 애기가 아니다. 부산엑스포를 유치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결과는 민망 할 정도의 대패였다. 과학 기술 카르텔을 잡겠다며 연구개발의 예산을 무려 5조원이나 넘게 삭감했다가 1년만에 복구시켰다. 이 예산 ‘널뛰기’로 인해 젊은 연구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아직 시추 한번 하지 않은 석유 프로젝트가 마치성공이라도 한 양 ‘2000조원’ 운운했다. 석유개발은 초기에 일단 전문가들에게 맡겨 놔야 냉정하고 객관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이것 말고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채 상병사건 등 당정에 맡겨두면 순리대로 잘 풀릴 것을 대통령이 경솔하게 나서서 무리하게 그르친 것이 한둘인가?
장승부 교수님이 지적한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철학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의 발동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해서 일어난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대통령의 실패는 대통령제의 장점인 정책의 실패로 인한 면제부의 범위를 훨씬 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중 부동산 정책을 실패했을 때 국민들은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가슴을 치면서도 스스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에 내몰리게 된 근본원인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철학이 근본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필자도 심정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진행중인 탄핵심의가 기각 되여 정지된 대통령의 권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으면 직무수행 중 또 무슨 엉뚱한 일이 벌어질지 불안 불안하다는 것이 윤대통령을 겪어 본 필자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에서 진행되는 탄핵소추 심판에서 기각을 당하여 대통령의 지위를 회복하는 경우와 최악의 경우 탄핵소추가 인용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 당 하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박근혜 전대통령에 이어 보수진영의 대통령이 두번째로 임기도중 권력에서 쫓겨나는 경우가 됩니다. 보수진영의 유권자로서는 피해의식을 느낄 만 하다고 생각 합니다.
이는 대통령제 정부의 임기보장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최악의 경우로 보수 입장에서 권력을 찬탈(簒奪) 당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피해의식의 연장 선상에서 보수의 강성 지지자들은 사법부 특히 헌법재판소에 대한 편파성 공격을 아무 죄의식 없이 자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윤석열대통령을 구하겠다는 충정은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여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 한가지만 꼽아 보라면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 시도입니다. 사법부를 공격하라고 뒤에서 선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파괴할 수 있는 중대 범죄입니다. 언론도 진보성향이나 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공격을 자제하도록 논조를 펼쳐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간단하게 통제되지 않습니다. 권력은 하나의 원칙으로 순조롭게 길들일 수 없습니다.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헌법의 원칙이 필요 합니다. ‘헌법을 쓰는 시간’의 저자 김진한은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의 여섯 가지 원칙을 법치주의, 민주주의, 권력분립, 자유의 원칙들, 표현의 자유 그리고 헌법재판제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님의 법치주의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시면 법치주의를 좀더 친근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 합니다.
법치주의(The rule of law)에서 이야기하는 법은 첫째, 단순한 형식적인 법이 아니라 정의로운 법, 인간의 존엄과 가치 존중을 포함하는 법을 의미하며, 둘째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법, 역사적으로 특히 권력 담당자에게 타당한 법을 의미하며 셋째, 법이냐 아니냐의 최종적인 판단은 독립된 판사로 구성된 법원(또는 헌법재판소 등)이 행하는 내용의 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법치주의는 법의 보편성을 대 전제로 한다.
치자이든 피 치자이든 법의 대상자의 편의나 치자와 피치자의 친소관계에 따라 법의 운영이 달라지는 법과 법치주의는 양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법치주의에 대해서 최대권 교수님이 한 말을 전해드렸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법치주의의 핵심은 타당한 법이 지위나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어 법의 정의가 실현될 때 법치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존 스튜어트밀은 자신의 저서 “대의 정부론(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에서 두가지 유형의 사회 즉 ‘지배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지배당하기 싫어하는 마음’ 중 어떤 성향의 사람이 많은 가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가 결정되는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존스튜어트 밀은 영국의 국민들이 개별적인 독립성을 지키려는 성향 즉 지배당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영국사람들은 상류계급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높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 굴종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따라서 권력자들이 일정한 한계를 넘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 싶으면 가차 없이 저항의 깃발을 든다. 그리고 그 지배자들에게 반드시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주지시킨다.
오늘날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선진국을 보면 개인의 출세나 성공보다 자유의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정치인들이 자기 진영의 잘못한 사람을 편들기 위해 사법부를 부당하게 공격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실을 왜곡하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헌법재판관을 공격하라고 선동하는 일은 절대로 삼가 해야 합니다. 헌법을 무시하고 위반하는 권력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헌법 재판 제도입니다. 이제도를 운영하는 헌법재판관을 위협하는 일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치인들이 이를 조장하거나 선동하는 일은 공동체의 안위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고 이성에 입각한 사리판단을 하자는 것이 오늘의 화두입니다. 법치주의를 숭상하는 민주 시민이라면 헌법재판소나 헌법재판관을 공격하는 일이 합당한 일인지 사리판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연유이건 법치주의의 둑이 무너지면 무법천지가 되어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전통시대 지도자들은 수법(守法)의 주체가 통치자가 되여 모범을 보여야 백성들이 수법(守法)의 윤리관을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한비자 “외저설 우상”에 나와 있는 군주가 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하루는 초나라 왕이 급히 태자를 불렀다. 초나라 법에는 수레를 궁궐의 정문인 묘문(茆門)에 이르게 할 수 없었다. 그날 마침 비가 내려 궁궐안에는 물이 고여 있었다. 태자가 그대로 수레를 몰아 묘문에 이르렀다. 궐내의 질서를 관장하는 정리(廷理)가 말했다.
“수레를 묘문에 이르게 해서는 안됩니다. 불법입니다.”
“대왕이 급히 부른 까닭에 고인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오.”
태자는 수레를 몰고 묘문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러자 정리가 들고 있던 창을 휘둘러 말을 찌르면서 수레를 부숴버렸다. 태자가 왕에게 울며 말했다.
“궁궐안에 물이 많이 고여 있어 부득불 수레를 몰아 묘문을 지나가려 했더니 일개 정리가 불법이라며 말을 찌르고 수레를 부쉈습니다.
대왕이 반드시 그를 처벌해 주십시오.”
초나라왕이 말했다.
“먼저 정리는 늙은 군주를 위해 법을 위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고 대를 이을 태자를 위해서는 결코 아첨하지 않았다. 참으로 당당한 모습이다. 그는 진정 법을 지킨 과인의 신하이다.” 그리고는 그의 작위를 2등급이나 높여 주었다. 이어 후문으로 태자를 내보내며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했다.
오늘 글의 결론 입니다.
유난군(有亂君), 무난국(無亂國). 유치인(有治人), 무치법(無治法).
(나라를)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 (원래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없다. (잘)다스리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 (잘)다스리는 법은 없다.
-순자 제12편 군도(君道), 임금의 도리.
을유 문화사에서 출간한 “순자(荀子)”를 번역한 김학주 교수님님의 책 중에서 군도(君道) 제1장에 대한 해설입니다.
나라에는 법이나 제도가 있지만 이를 운용하며 다스리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따라서 다스리는 사람이 훌륭한 군자라면 법이나 제도가 약간 불완전해도 나라를 다스 릴 수 있다. 그러나 다스리는 자가 소인이라면 아무리 완전한 법과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나라는 올바로 다스려 질 수 없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임금 자신도 현명해야 하지만 그 밑에 신하들을 잘 골라 등용해야 한다. 훌륭한 사람들을 잘 등용하면 그 나라는 번창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