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언제더라, 그러니까 내가 논산훈련소 마치고 대전에 있는 육군통신학교로 후반기 교육을 받으러 간 1988년도 가을이었지. 도착 다음날 발맞춰 간 영내 식당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수돗가에서 식판을 닦는데 갑자기 "으악!" "악,악,악" 하더라고.
도대체 뭐냐 저거 하며 다들 슬쩍 수돗가 뒤편을 보았더니, 팔각모 쓴 해병대 애들이 두줄로 마주보고 그동안 교육받다가 그날 저녁 기차를 타고 자대로 가기 위해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 거였지. 선임병이 뭐라 소근대서 말하면 그걸 "예!"로 대답하는게 아니라 "악!"으로 대답하더라고. 육군인 우리들은 참 신기한 광경이었어.
2010년 한해의 끝, 서해 북단 백령도 눈보라 속에도 굳건한 해병
유격 훈련 조교가 그랬지 "니들이 정신 바짝 차리면, 아무리 몇십명이라도 목소리가 딱 하나로 들린다"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린가 했는데, 그때 팔각모 쓴 걔들이 그러더라고.
정말 길다란 챙이 있는 팔각모를 하나 같이 코 바로 위까지 쓰고 무게 엄청 잡으면서 다녔지. 해병이 왜 육군통신학교에 있었냐고? 그때 통신학교엔 후반기 위탁 교육을 받기 위해 여러 종류의 군인들이 있었는데 해병은 물론, 전군 하사관,장교 심지어 내무부(지금의 행안부) 소속 전투경찰까지 있었으니까.
해병대 동계 훈련, 늘 눈 밭에서 윗통 벗고 남자다운 호기를 부리는 이미지가 신문에 나가지?
실은 해병도 인간이다. 추우면 떨기도 한다 / 2006년 2월, 강원도
흔히 '땅개'라고 부르는 우리들 육군에 비해 해병들은 그 수는 적었지만, 자기들끼리 군기가 엄청 셌고 나름의 문화가 있었지. 하지만 그때는 얼마전 총기 사건 터진 '기수 열외' 같은 건 없었어. 오히려, 모두 똑같은 이등병들이라 훈련이나 교육에 못 따라가는 일명 '고문관'들이 있으면 그런 애들까지 군대에 와야 했던 현실을 탓했지, 돌아가며 갈구는 부대 문화는 결코 없었어.
난 솔직히, 내가 해병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들이 참 대단해보였어. 지금은 얼룩덜룩한 군복이지만, 평범한 녹색 민무늬 군복을 입던 육군들은 뭔가 좀 다른 복장의 군인들- 특전사, 해병대, 기갑부대, 네이비씰 등에 대해선 같은 군인끼리라도 인정해주는 분위기 였어. 고생을 사서 하면서도 그걸 명예니 영광으로 여기는 군인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육군이 챙피했던건 물론 아니지. 그리고 내가 군생활 했던 이십여년전 대한민국 육군엔 적어도 왕따문화는 존재하지 않았어.
우리 중대에 동기는 나를 포함 5명. 그중에 한 명이 부대 최고의 고문관이 있었지. 그 친구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했는지 몸이 아파 훈련을 못한다고 맨날 빠지는 건 둘째치고, 자기 물품 엄청 챙기는데, 하루는 완전군장을 챙기는데 자기 관물대 옆에 있던 성질 더러운 고참의 야삽을 챙기다가 우리는 그날 저녁 화장실로 집합 당해서 야삽으로 맞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녀석에 대해선 어이 없어하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해주었고, 그의 능력에 맞게 훈련과 일의 분량을 조절해서 챙겨주고 그땐 군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 피곤했으니까. 무조건 동기나 바로 위 고참을 불러 깼는데, 놈 덕분에 많이 혼났다. 하지만 녀석 때문에 집합 당하는게 억울하면서도 '이게 군대니깐, 집단으로 생과 사를 함께 해야하는 곳에 내가 있으니까'라고 이해했었다.
국민 오빠 현빈이 해병대 지원했을때, 지난해 연평도 사건에 이어 참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처진 사람을 소외시키는 그런 문화는 대체 해병대에 언제 생긴거야? 물빠진 팔각모를 썼던 너희 해병 선배들은 안 그랬다. 그러지 마라. 군대는 약자를 밟는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약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양보할줄 아는 것을 처음 인생에서 배우는 곳이라구.
강군시대 해병대 여군부사관 취재때, 팔각모 사나이를 함께 부르고 있다.
해병대도 이제 남자들 만의 집단이 아니다/ 2008년 김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