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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성도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본문 이사야 62장 1-5절
찬송 210장
요즘 뉴스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우리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뉴스는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소식, 어디에서 권력자의 억압으로 국민이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 어디에서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이 집을 잃고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는 소식, 어디에서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죽어갈 것이라는 소식들만 넘쳐나고 정말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소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납니다. 지구촌만 그러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국가가 마음먹고 누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면 그 일을 당하는 개인은 아무런 항거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항거도 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그 죄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이 하는 짓들을 보십시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너나없이 오직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누군가를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얼마나 답답한지요. 뉴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싹없어집니다. 보고 있으면 정말 답답해지는데 해결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소망 없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리라(사60:2)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캄캄한 어두움으로 뒤덮여 아무런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사60:2)
분명 세상은 어둡습니다. 캄캄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우리의 소망을 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 위에, 성도와 그 가정 위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충만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빛이 있습니다. 그 빛으로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빛이신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와 성도와 그 가정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어두움과 캄캄함을 봅니다. 하지만 성도는 그 어떤 어두움과 캄캄함 앞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어두움 가운데 등불이 되어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이 이 진리를 선포합니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이라(사62:1)
여기서 시온의 공의는 시온, 곧 예루살렘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나타나리라는 말씀은 시온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이루어 드리리라는 말씀이지요.
또 여기서 빛은 별빛이라고 새기거나 새벽빛이라고 새길 수 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밤하늘을 밝히는 별빛을 바라보는 행복을 경험해보셨는지요. 캄캄한 어둠을 뚫고 새날을 밝히며 온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여명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행복을 경험해보셨는지요. 얼마나 가슴 벅찬 감격입니까? 생각해보면 둥근 해가 불끈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캄캄한 어두움을 서서히 몰아내며 온 세상을 밝히는 새벽빛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이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캄캄한 어두움을 뚫고 비치는 별빛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은 또 어떻고요.
지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 교회와 성도와 그 가정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뜻을 이루어드리는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회복시키셔서 어두운 세상을 비치는 별빛과 새벽빛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세상을 뒤덮은 어두움의 깊이를 알기에 이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를 잘 압니다.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뒤덮은 캄캄한 어두움을 밝히는 별빛과 새벽빛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지혜와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바로 이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로운 구원입니다. 그 은혜로운 구원의 빛이 횃불같이 세상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나타났습니다. 어떻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횃불같이 세상 가운데 나타나신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이 지금 우리 위에 있으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세상 가운데 횃불이 되어 서 있습니다.
우리가 들은 이 말씀은 결코 허황한 말씀이 아닙니다. 만약 이 모든 일을 우리가 이루어야 한다면 이 말씀은 허황한 말씀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두운 세상 가운데 별빛과 새벽빛과 횃불이 될 만한 능력도 지혜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결코 잠잠하지 않으시며 쉬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쉬지 아니하십니다. 다음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62:6-7)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사9:7)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위와 같은 말씀을 의지하여 여러분의 소망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캄캄하여지고 어두워져서 우리를 슬프게 할지라도, 그 어떤 환란이나 고난이 우리 앞을 막을지라도, 세상 앞에서 우리가 아무리 작게 보일지라도 이 소망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그리고 세상의 참된 소망이시며 빛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별빛과 새벽빛과 횃불로 세우셨습니다. 이 빛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과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므로 우리는 빛을 발할 수 있게 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십니다.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62:3)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을 오늘 우리 시대의 교회와 성도와 그 가정에 직접 적용하며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읽고 또 듣고 있는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십시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여기 예루살렘은 오늘을 사는 교회와 성도와 그 가정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시온, 곧 예루살렘을 향해 주신 말씀을, 다른 설명 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눈을 돌려 성경 말씀을 따라 이 말씀을 맨 처음 받았던 예루살렘의 형편을 생각해봅시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 있는 예루살렘의 형편은 참으로 비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 성벽과 그 안에 있던 성전은 다 무너졌고 그 아름답던 성읍이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며 아무도 옛날 하나님께서 거기에 거처를 두시므로 말미암아 아름다웠던 예루살렘, 어두운 세상 가운데 별빛과 새벽빛과 횃불이 되어 빛나던 예루살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서 예루살렘은 버려진 땅, 황무지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의 가슴은 감격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으며 우리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입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도 예루살렘의 형편처럼, 마치 황무지와 버려진 땅처럼 그렇게 계시는 분이 계신다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이 말씀 때문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성도와 그 가정으로 새롭게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어두움과 캄캄함에 묻혀 빛을 잃어 버리지 않고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와 그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주신 새 이름, 곧 헵시바와 쁄라는 무슨 뜻입니까? 그 이름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그렇게 감격스럽게 합니까?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성경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헵시바란 ‘그녀 안에 나의 기쁨이 있도다.’란 뜻이며, 쁄라란 ‘결혼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그들의 죄악 때문에 싫어 버리셨는데, 이제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싫어 버리시므로 그 땅이 황무지가 되었는데, 이제는 신부와 같이 아름답고 소망이 가득한 땅이 되었습니다.
이 귀한 언약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죄와 그 오염으로 말미암아 아무런 소망 없이 영원한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 아래 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안에 친히 거처를 삼으시고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며, 또 동행하십니다. 더 이상 죄에 끌려 육신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소망없는 인생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사는 성도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시고, 한없이 사랑하며 기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기뻐 어찌할 바를 모르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와 사망과 사탄의 종으로 살던 내가, 죄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조차 없던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며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나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성도의 영광과 행복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성도의 영광과 행복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너는 내게 헵시바디. 너는 내게 쁄라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라고 말씀해 주시는 데 있습니다. 아! 여기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62:5)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3)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는 것보다 성도에게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 더 큰 영광이 있을까요? 이런 행복과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를 절망하게 하고 넘어뜨릴 수 있는 세력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위하시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거나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 이제 한 가지만 더 생각해봅시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더 구하고 있습니까?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헵시바라면,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신부 뿔라라면, 우리가 항상 구하고 찾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 곧 헵시바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 곧 쁄라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어떤 모습일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많이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 궁정에 심으신 의의 나무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그렇게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와 가정과 교회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모습이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가운데 얼마나 분명하고 풍성하게 나타나고 있는지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다시 품게 됩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꿈이 아니라 생생하여 현실이 되는 꿈을 품게 됩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 별빛과 새벽빛과 횃불이 되어 빛나는 우리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늘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한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 불타 없어지는 열매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심판으로 말미암아 더욱 빛나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나무의 모습을 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 하나님께서 심으신 의의 나무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궁정에 서 있는 우리와 우리 가정과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사62:12)
이 행복한 꿈을 함께 꾸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복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에게 항상 충만하길 바랍니다. 또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의 자리에로 우리가 품은 예비가족을 초청하는 일에 열심 내는 성도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모든 교회와 열방과 모든 민족들이 다 우리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또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