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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3;1-18. 양보한 것 때문에 막막할 지라도 머지않아!!! 2024. 11. 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강의 문명의 문화권을 벗어나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납니다. 집 떠나는 것이 쉽지 않음에도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갔는데 지시하신 땅인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기근을 피하여 먹고 살만하다는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많은 재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의 믿음과 인격을 성숙하게 하셨으며 다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오늘 본문이 시작이 됩니다. 13;1-2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 새 그와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과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모든 것이 풍부했습니다. 3-4.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처음으로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애굽으로 갔지만 부자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잃은 것이 하나 없이 오히려 많은 재산을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브람과 조카 롯의 처세술과 능력이 좋아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세우신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역사하신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출발하게 된 아브라함과 롯에게 새로운 도전이 다가왔습니다. 5-7절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아브람도 롯도 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삼춘과 조카의 소유가 많아졌습니다. 식솔이 많아졌고 가축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것 때문에 문제가 되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여러분, 소유가 많아 진 것은 축복인데, 제한된 목초지에서 가축들이 먹을 풀이 넉넉하지 않아 목자들과 종들이 다툽니다. 재산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사람간의 갈등과 다툼의 소지가 나타났습니다. 이런 일들은 아브라함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렇게 다툼이 발생할 때 어떻게 행동합니까? 8-9절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갈등이 있을 때 서로 다투고 싸우며 상처를 남기지 않고 성숙한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싸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승리나 패배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유익 때문에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 아브라함은 고향집을 떠나온 이후 지금까지 함께 해온 조카 롯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와의 관계를 훼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조카 롯에게 양보를 합니다. 조카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그러면 조카에게 우선권을 양보한 아브라함은 어떻게 됩니까? 14절~17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런 상황에서 아브람은 좋은 조건이 상실되고, 남은 것이 없고, 목초지가 없는데, 당장 수많은 가축과 목자와 종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주위를 보고, 동서남북의 축복을 말씀하시고, 자손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머지않아 모든 상황은 바뀝니다. 여러분, 내가 누리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계속 되지 않습니다. 보장이 없습니다. 항상 새로운 다른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잃은 사람도 차지한 사람도 머지않아 상황이 바뀌고, 반전이 됩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싶고 위에 있기를 원합니다. 더 많이 축적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전한 경쟁심은 긴장감을 주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과욕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공동체 내에 시기와 다툼을 불러일으키는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그 많은 가축과 목자와 종들이 살아갈 장소가 없고 토양이 없고 목초지가 없습니다. 좋은 것은 다 잃었습니다. 광대한 지역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정도 되면 낙심을 하고 배은망덕한 조카 롯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 상식인데 아무 것도 없는, 허전하고, 망막하고, 대안이 없다고 할 바로 그 때에 주어진 말씀이 14-17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머지않아 상황이 바뀝니다. 요단 온들과 에덴동산 같고, 애굽 땅 같은 모든 것을 잃어도 머지않아 동서남북의 놀라운 복을 받습니다. 땅도 주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손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조카 롯에게 양보하였을 때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상황이 반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롯은 어떻습니까? 롯은 마음대로 다 만들었고, 생각을 한데로 다 되었습니다. 우선권이 주어졌을 때 그가 선택한 것을 통하여 그의 마음상태를 알 수 있는데 10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좋은 것을 먼저 차지를 했습니다. 요단 온들을 차지하고 에덴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광활한 목초지를 차지했습니다. 보이는 좋은 것은 다 롯의 것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추구하는 가치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경험과 지식에 근거하여 필요와 공급의 좋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결정하고 소유한 것이 영원할 줄 알았고 평생 지켜줄 줄 알았습니다. 늘 부요하고 날마다 기쁨이 솟고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부러워했고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잘못된 결정과 선택이었음이 알게 됩니다.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유혹과 탐욕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재물 때문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결국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습니다. 롯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다 겪고 나서 압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상황을 만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머리를 쓰고 수단을 사용합니다. 이런 방법과 저런 방법을 다 끌어 들입니다. 그런데 상황은 내가 만든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되고, 함께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나의 것이 되고, 지켜주셔야 나의 몫이 내 것으로 남습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결정을 한다고 다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의 상황이 힘이 드십니까? 12월을 앞에 두고 괴롭고 메이고 닫히고 갇혔습니까? 해결이 안 되십니까? 머지않아 주님께서 풀어주시고 상황을 반전 시켜주십니다. 늘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바꾸어 주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믿으면 강제로 움직이고 강제로 행동하도록 만드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머지않아 지금의 상황은 종료가 되고 새로운 상황이 전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그러면 왜 롯이 삼촌 아브라함을 떠나게 됩니까? 은혜를 받은 사람이 떠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롯은 출발할 때 말씀을 따라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출발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12;1-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인 사람인데 조카 롯은 삼촌을 따라 나섰습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4절에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쫒아갔고 롯은 아브람과 함께 갔으며. 롯은 아브람 삼촌을 쫒아 갔습니다. 롯은 태생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과 좋은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현상적이고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득 앞에 부모형제도 없고, 관계성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도 모릅니다. 그래서 말씀의 사람, 예배의 사람, 아브람을 떠납니다. 이것이 사람을 쫒아간 사람의 모습입니다. 롯이 말씀을 쫒아 시작을 했으면 말씀을 따라 사는 아브람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롯은 사람을 따라 갔기 때문에 결국 아브람을 떠납니다. 이 것이 롯의 한계입니다. 여러분, 말씀은 우리의 모든 것을 지켜줍니다. 사탄과 세상과 어두움으로 부터 지켜줍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시작은 말씀 따라 하는 것이 복을 받고 받은 복을 유지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보이는 것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아는데 보이는 것으로 사는 사람은 산술에 능합니다. 수학을 해야 하는데 산수를 합니다. 여러분, 크고 작은 빙하의 90퍼센트는 바다 밑에 있습니다. 물속에 있습니다. 수학을 해야 하는데 산수만을 합니다. 10% 만이 위로 드러나 있습니다. 가려진 것을 모릅니다. 롯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삭막해 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물질만능주의가 한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이 물질을 먼저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다면 양보하겠습니까? 아브람은 하나님과 조카를 생각하는 마음이 먼저이었습니다. 여러분, 보이는 것으로만 살지 않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롯은 계산이 빨랐습니다. 요단 온 들과 에덴동산과 애굽 같은 것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보이는 것으로 사는 사람은 장유유서를 모릅니다. 삼촌이 눈에 안보이고 받은 은혜도 모릅니다. 현재의 화려함과 영광만을 봅니다. 누리고 있는 축복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가 없기 때문에 양보하는 마음도 없고 사람들과 씨름합니다. 이런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게 되는데 떠나면 끝인 것을 모릅니다. 나중이 안보이고, 결국이 안보입니다. 지금 롯이 이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고 감추어진 더 놀라운 복과 나머지 90퍼센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감추어진 것을 볼 수 있는 여러분의 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어떻게 해야 은혜를 계속 누리며 지금까지 받은 복을 유지할까요? 여러분,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이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것이 많이 있는데 해석을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으로 시작을 하지 않았더라도 복을 주시기로 약속된 사람과 함께 붙어 있으면 복을 받고 받은 것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입니다. 이름이 창대케 될 사람입니다. 큰 민족을 이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브라함을 이렇게 축복을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잘못을 하든지 그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거짓말을 해도 그 거짓말에 게의치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축복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 붙어 있던 롯이 어디를 가든지 덩달아 복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가축의 목초지를 위해서 두 목자와 하인이 싸울 수밖에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복 받은 사람 옆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기로 한 사람 옆에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떨어져 나가면 안 됩니다. 떨어뜨려도 바지 끄뎅이를 잡고 메어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롯은 좋은 요단 온 들과 에덴동산 같고 애굽 땅 같은 광활한 목초지 때문에 아브라함을 떠납니다. 복의 근원이고 이름이 창대케되고 큰 민족이 될 사람 옆에 붙어 있으면 복은 저절로 받습니다. 당연히 롯도 아브람을 따라서 복의 근원이 되고, 이름이 창대케 되고, 큰 민족이 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까? 사무엘 옆에 있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반드시 사무엘과 상의를 합니다. 처음의 시작도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까지 갑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통곡을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를 이끌어 주고 예언해주고 방향을 설정해줄 사무엘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호수아는 어떻게 여호수아가 됩니까? 모세의 시종입니다. 모세 밑에서 시키는 대로 했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를 대신해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동행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복을 받을 사람이 아브람입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동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동서남북의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어떻게 제자가, 사도가 됩니까? 어부이었고 세관원이고 나사렛이라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동행을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엘리사 시대에 게하시라는 종이 있는데 게하시가 세상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 난감하지요. 그래서 엘리사 선생님에게 지금의 상황이 안 보인다고 했더니 엘리사가 기도하여 그의 시종 게하시의 눈이 열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수많은 불말과 불 전차를 게하시가 봅니다. 여러분, 하늘 문을 여는 것도 지도자 옆에 있으면 하늘의 신비가 보입니다. 여러분, 지금 롯이 아브람과 동행하면 복은 자동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지키게 됩니다. 여러분, 주님이 그렇습니다. 주님의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이 구원과 복입니다. 항상 복을 주시는 주님 곁에 계시고 동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그러면 아브라함이 자기 곁을 떠난 롯을 어떻게 할까요? 매우 중요하고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당신이 가장 안타까워했던 사람이 누구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조카 롯이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사람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쌍둥이 형제인 하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첫 조카입니다. 그 집안의 장자이었기에 롯을 무척 귀여워했습니다. 하란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롯은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존재이었습니다. 조카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돌보아야 할 피붙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르치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브라함을 사로잡았습니다. 롯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커지고, 기대를 합니다. 롯도 아브라함을 아버지같이 대합니다. 모든 것을 의논하고 아브라함을 따랐습니다. 그 결과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 가나안을 향해 하란을 떠납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가는 동행길입니다. 둘 사이에는 둘만이 아는 깊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아브라함과 롯의 재산이 각기 많아지고 둘의 하인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면서 변합니다. 그리고 롯은 아브라함을 떠납니다. 그러면 롯을 떠난 보낸 다음 아브라함이 어떠했을까요? 속이 시원했을까요? 걱정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까요? 아니면 조금씩 잊어버렸을까요? 처음에는 자식 같은 롯을 떠나보내고 안심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멀어지니 자연히 마음도 멀어졌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잘 살고 있다는 롯의 소식을 듣기는 했으나 한 번 찾아가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아브라함은 롯이 사는 지역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혹시 롯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는 중에 전쟁에서 도망 나온 사람에게서 롯이 재산을 다 빼앗기고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정신이 아득합니다. 지체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곧바로 수하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을 데리고 롯을 구하러 갑니다.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면서 먼 길을 달려갑니다.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상대 부족들은 기습적인 아브라함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승리한 아브라함은 롯을 찾았습니다. 살아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롯을 발견한 아브라함은 감사를 드리며 롯을 부둥켜안고 웁니다. 이게 얼마만의 일입니까? 이 순간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롯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었는지 실감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다시는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유가 있어서 롯을 떠나보냈지만 또 다시 떨어져 살수가 없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제 같이 지내자고 합니다. 그러나 롯은 거절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성공해 보겠다고 합니다. 몇 번 더 권면을 했지만 롯의 마음은 확고합니다.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롯을 그대로 두고 아브라함은 혼자 돌아옵니다. 롯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저 지켜만 보고 기도할 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롯을 구해서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제사장, 멜기세덱이 롯을 구한 아브라함의 행동에 축복을 합니다. 물불 안 가리고 롯을 구하러 간 아브라함의 마음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멜기세덱의 축복에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그 의미를 알아챕니다. 자신이 잘 나서 롯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칩니다. 이후 아브라함과 롯은 다시 만나지 못하지만 롯에 대한 사랑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 곳에 롯이 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와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한다고 했을 때 그곳에 있는 롯을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 곳에 의인 50명만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50명에서 45명, 30명, 20명으로 계속 내려가, 최종적으로는 의인 10명만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소돔에는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소돔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생각하고 롯에게는 미리 이야기를 해 주어 가족과 함께 소돔성을 떠나도록 합니다. 롯이 떠난 뒤 소돔성에는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립니다. 끝까지 아브람은 롯을 놓지 않습니다. 한 사람, 롯을 살려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믿음생활에서 무심코 잊고 지내는, 아니 간과하고 있는 것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같이 지내던 많은 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잊고 지냅니다. 자연히 멀어지지요. 어떨 때에는 변화하지 못하는 부분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멀리 떠나보내고 그저 잊고 지낼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에 아무 뜻 없이 다가왔다가 그저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의미가 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부서지고 지체인 내 자신의 몸을 드려서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이 마가 요한을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주님이 생명을 드려서 사랑을 했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을 하셨습니다. 심장이 녹아내리고 아픔이 눈물처럼 흘러 내려도 주님이 가신 그 길을 조금이나마 가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진 창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람처럼 끝까지 사랑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기도해주고 살리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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