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러에 우크라전 포탄 주고 첨단기술·식량·원유 등 받을 듯
구체적 합의 미공개…‘안보리 상임이사국’ 러, 국제사회 의식
경제·교육 등 협력도 가속화 예상…한·미·일 밀착에 ‘반작용’
배웅객들에 손 인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7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0㎞ 북동쪽에 위치한 연해주 아르-1역에서 북한으로 출발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박6일간 방러 일정으로 북·러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과 전략폭격기·대잠호위함을 두루 둘러보면서 그간 전략자산 전개와 연합훈련 강화로 북핵 위협에 대응해온 한·미에 응수했다. 북·러는 군사 및 경제 협력으로 밀착해 북·중·러 3각 구도를 다지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이 ‘북·중·러’라는 틀에 깊숙이 들어갈지는 미지수다. 양국은 각자 필요한 지원을 이끌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김 위원장을 초청해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기술 개발을 돕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해서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포탄 등을 북한으로부터 지원받고,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필요한 러시아의 첨단기술과 원유·식량 지원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후 러시아 군사시설을 연달아 방문한 것도 이 같은 의혹을 증폭시킨다. 북·러 간 무기 거래가 현실이 되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유엔 제재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번 김 위원장의 행보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방미 당시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를 방문하고, 지난 7월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에 승선하는 등 한·미 동맹을 강조한 행보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군사적 실리’ 챙긴 김정은, 다음 행보 ‘시진핑과 만남’ 촉각© 경향신문
북·러 간 무기 거래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거대한 실수”(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과가 있을 것”(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이라며 경고했다. 국제사회 경고를 의식한 듯 북·러 정상회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5시간 이상 함께했지만 기자회견은 물론 공동선언문 발표도 없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17일 통화하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유엔 제재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대외적으로는 북·러 간 무기 거래를 부인하거나 군사협력 내용을 제한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교육·농업 등 유엔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분야 협력은 가속화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발레 공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관람했고 연해주 측과 발레단의 북한 공연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북한과 러시아가 고립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 교류로 우군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다”며 “북·러가 밀착하면 중국을 자극해 끌어들일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본격 외교 행보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김 위원장이 북한 선수단이 참여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23일~10월8일)을 계기로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를 지렛대로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시계추 외교’로 양측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 이어 시 주석과 연쇄 회담을 성사시킨다면 한·미·일에 대항하는 북·중·러 결속을 과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서방이 ‘국제 왕따’ ‘불량 국가’로 분류하는 북·러와 거리를 두고 싶어 하기 때문에 느슨한 연대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