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0:14~29)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26절)’
나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와 명성 등의 축복을 누리는데
경직된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취할 때는 더욱 위험한 면이 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소유하게 된 금을 포함한 여러 물질적인 것이
차고도 넘치고 너무 흔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내 기질상 불안, 불안하게 여기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쯤에
그가 소유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병거와 마병, 그리고 은을 모아두는 내용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한 행동이다.
물질의 풍요, 혜택을 누리게 되니 그 맛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능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지만
우주의 근원이 되시고
만유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보다 어떤 것을 더 높이 두는
어리석음을 행하게 될 때,
당연히 그것을 수정하고자 하신다.
적정선의 경고와 제재가 먹히지 않으면
그 강도는 세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짖궂으신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가 적은 고통으로 깨닫기를 원하시지만
그것으로 수정되어지지 않는다면
회개에 이르기에 필요한 자극을 금하지 않으신다.
자극을 느껴서라도 생명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균열이 며칠 전부터의 본문으로부터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런 아주 조그마한 균열, 작은 선택은
세상에서는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 일들이다.
오히려 때때로 ‘권장사항’이 된다.
그러니 세상의 관성과 권유를 ‘선택의 기준’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시나브로 작은 균열의 선택이 모여서
괴물 수준에 이르게 된다.
갑자기 괴물이 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이 문제시하지 않는 시점부터 쌓이고 쌓이다가
그렇게 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지금 저의 행동을 수정하기 원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