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지고한 영
세상(삼사라)의 나무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그들의 행위의 결실들을 나에게 의존하고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의 결실들을 나에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헌신의 요가로 나를 섬기는 사람은 나의 은총에 의해 구나들 너머로 건너가며, 지식을 얻어 해방에 이른다.
나의 진정한 성품을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므로 신은 이 장에서 아르주나가 묻지 않았지만 나의 진정한 성품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먼저 그는 모든 애착의 부재(바이라기야)를 낳기 위해 세상의 존재의 성질을 나무로 비유하여 묘사한다.
왜냐하면 오로지 모든 애착에서 자유로운 사람만이 신의 진정한 성품을 아는 지식을 얻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신께서 말씀하셨다.
1.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아슈밧타 나무(반얀 나무, 인도 보리수나무, 창조에 대한 은유)라는 것이 있다. 그 나무의 뿌리들은 위로 자라고, 가지들은 땅을 향하고 있다. 그 나무의 잎들은 베다들의 노래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영원한 나무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베다들을 이해할 수 있다.
마야 즉 나타나지 않는 잠재력을 가진 신은 시간의 관점에서는 미묘하므로, 또한 그는 원인이고 영원하며 위대하므로, 그는 위에 있는 자라고 말해진다.
위에 있는 존재는 이 세상 나무의 뿌리이며, 따라서 그것의 뿌리는 위에 있다고 말해진다.
경전은 말한다.
“뿌리는 위에 있고 가지들은 아래에 있는 이 아슈밧타는 영원하다.”(카타. 우. 3-2-1)
푸라나에서도 말한다.
“신의 영원한 나무가 돋아나는 그 뿌리는 나타나지 않는 것(아비약타)이다.
그것은 그것(나타나지 않는 것)의 힘에 의해 자라났다.
그것의 줄기는 지성(붓디)이고, 감각의 틈들은 그것의 공동(空洞)이며, 대 원소들은 그것의 큰 가지들이며, 감각 대상들은 그것의 잎들과 작은 가지들이고, 다르마와 아다르마는 그것의 수많은 꽃들이고, 즐거움과 고통은 모든 생명들에게 살아가게 하는 그것의 열매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이 거주하는 곳이며, 그 지고의 나(아트만)는 신이라는 나무의 정수이다.
지식의 강력한 검으로 그 나무를 산산이 자르고 쪼갠 사람은 그곳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환영적인 세상을 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무로 비유한다.
마하트, 자아, 기본적인 정수Elemental Essence(탄마트라)들 등은 말하자면 그 나무의 가지들이며, 이것들은 아래로 뻗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무는 가지들을 아래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나무를 ‘아슈밧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심지어 내일까지도 똑같이 지속되지 않으며, 매 순간 파괴를 겪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환영은 시작도 없이 시간 안에 존재해 왔으므로, 그들은 이 세상의 나무가 영원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계속적인 일련의 탄생들 위에 놓여 있으므로 영원하다고 한다.
나아가 세상의 나무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운율(찬다스)들은 말하자면 그것의 잎들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리그 베다, 야주르 베다, 사마 베다 등의 운율(베다)들은 잎들처럼 세상의 나무를 보호하기(덮기) 때문이다.
마치 나무의 잎들이 그 나무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듯이, 베다들도 다르마와 아다르마 및 그것들의 원인과 결과들을 다루므로 세상의 나무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다.
세상의 나무와 그 뿌리를 앞서 설명한 대로 아는 사람은 베다들의 가르침을 아는 자이다. 진정 이 세상의 나무와 그 뿌리 외에는 알려져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안다.
이것은 세상의 나무와 그 뿌리를 찬미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나무의 구성 부분들에 대한 또 다른 비유적인 표현들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