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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오 상 원
서재에 불이 꺼졌다. 그는 아까부터 줄곧 이층 서재에 시선을 모으고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순간 다가오는 긴장에 전신이 후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십일월, 북쪽 바람은 칼끝처럼 맵다. 그는 오버 깃을 세워 뺨을 묻었다. 그리고 전 신경을 귀에 모으고 실내의 동정을 살폈다.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한 사람을 쏘아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고막을 꿰뚫는 듯한 일발의 총성과 함께 커다란 몸집이 중심을 잃고 털썩 눈앞에 쓰러질 것이다. 복도에 차가이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정확히 침실 쪽으르 다가오고 있다. 그는 숨을 죽였다. 문 앞이다! 한쪽으로 커튼이 드리운 창문 너머로 마주 보이는 도어, 그 도어가 열리는 순간, 그는 오버 포켓 속에서 권총을 꺼내었다. 둘째손가락 끝이 방아쇠 위에서 철편¹ 끝처럼 차가이 울리고 있다.
일 초…… 이 초……
그러나 발자국 소리는 다시 복도를 울리어 방향을 바꾸어 지나쳐버렸다. 발자국 소리가 숨죽인 그의 마음속에서 점점 희미하게 멀어져간다. 순간 긴장이 확 맥없이 풀리며 심장의 고동이 전 혈관 속을 파도처럼 물결쳐갔다. 발자국 소리는 숨죽인 그의 마음 속에서 점점 희미하게 멀어만 간다. 우리의 계획을 알아버린 것일까? 그는 창문 곁에서 한 걸음 물러서 소나무 그늘로 몸을 비키
면서 다시 권총을 오버 포켓 속에 집어넣었다.
한 사람을 죽인다는 것, 한 사람의 심장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긴다는 것, 이것은 간단한 일이다. 무엇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것을 가지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두고 토론과 계획을 셈질 하였는지 모른다. 나로 보면 무의미한 짓이다. 하지만 쏘아 죽여야 한다는 것이 귀결된 유일의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내가 쏘아야 한다. 나로 보면 무의미하다. 하지만 쓴다고 한 이상 나는 쏘아야만 한다. 모든 동지는 내가 쏠 것을 믿고 있고 또 내가 쏘아야만 하며 내가 쏘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쏘아야만 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쏘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무의미 할지라도 쏘아야만 했다.
그는 솔잎 사이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쪽은 곧 작은 뒷문으로 내닿고 있다. 소나무가 우중충하게 세 그루 서 있는 담벽 모퉁이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어두운 솔 그늘 뒤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찌 되었어? 하고 경과를 묻는 동지의 암호인 것이다. 그는 다시금 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나에겐 무의미하여도 쏘아야만 한다.
그는 다시 포켓 속의 권총을 힘 있게 바로잡으며 창문 가까이로 다가섰다.
커튼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침실, 어슴푸레한 전등 아래 벽에 잇대어 침대가 있다. 침대 머리에는 네모진 조그만 테이블이 하나, 그 위에는 유리컵과 책이 두 권 놓여 있었다. 바른쪽 구·석지에는 거울이 복판에 박힌 삼각장과 의장대, 그리고 도어, 그 도어가 열리면서 인제 곧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때 복도를 울리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그는 반사적으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의 시선은 도어에 못 박힌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발자국 소리는 도어 앞을 그대로 지나가버리고 만다. 어찌 된 일일까? 시계를 보았다. 열두 시를 넘어서고 있다. 호흡이 무겁게 가슴을 내리덮는다.
어둡던 이층 서재에 다시 반짝하고 불이 켜졌다. 커다란 그림자가 커튼 위에서 거인(巨人)처럼 지나갔다. 그러고는 다시 조용하여졌다.
열두 시면 꼭 취침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스쳐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철편 위에서 손가락 끝이 얼어붙는 듯 딱딱하다. 그는 무겁게 한숨 죽였다.
멀리서 차가이 얼어붙은 밤공기를 찢고 두 발의 총성이 무기미²하게 울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소스라쳤다. 또 어디서 누가 죽어가는 것일까?
해방 직후 삼 개월이 지난 신의주(新義州)의 공기는 음산하였다. 정당(政黨)은 해가 떴다 지기 무섭게 난립(亂立)하여만 갔다. 그리고 수다한 인물이 죽어갔다. 사회당 당수, 민주당 선전부장, 그리고 자립당(自立黨) 당수인 형도…… 정당 대 정당의 암투에서였던가? 시민은 그렇게 보았다. 그렇게 믿었다. 정치에 익숙지 못한, 정치 훈련이 전연 없는 시민들이 그렇게 믿은 것은 당연하였다. 그러나 자립당 당수인 형이 암살당하면서 그 배후의 암영(暗影)은 점점 그 정체를 밝히게 되고 말았다. 신진당(新進黨) 당수와 적산³관리권(敵産管理權) 문제에 대하여 소련 주둔군 사령관에게 항의하기 위한 공동 전선을 취하기로 손잡은 다음 날(당시 소련 주둔군은 적산계 각 공장에서 기계, 중요 자료, 식료품 등을 소련으로 공공연히 이송〔移送〕하여가고 있었다. 여기에 분발한 자립당은, 이곳은 결코 점령 지구가 아니며 소련 주둔군은 어디까지나 적산을 정중히 보관하였다가 우리의 정부가 수립되는 대로 시〔市〕에 이양하여줄 의무 이외의 어떠한 권한도 갖고 있지 않다고 선언하고 지금껏 가져간 모든 것을 반환할 것을 항의하기로 하였었다) 다시금 신진당 당수를 만나러 가던 길에서 암살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사람은 제삼자(第三者)의 음모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현장의 목격자인 통행인의 한 사람이었던 자립당 당원에 의하여 그
배후는 탄로되었다. 이 목격자는 압록강(鴨綠江) 상류에서 배질을 하며 국경을 끼고 오고 가는 온갖 동향을 탐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가까이에 있는 소련군 강변 경비소에 늘 가서는 잔시중을 들어주곤 하였다. 그날 밤 그는 그 소련 보초선에서 자립당 당수를 암살하고 도주한 그자를 보았으며 그자는 신진당 간부급 두 명과 강변으로 내려가 소련병의 연락으로 배를 타고 안동(安東)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동 전선을 취하기로 손을 잡았던 신진당이? 문제는 컸다. 신진당의 정체, 당수란 자의 배후, 급속도로 조사는 착수되고 문제는 핵심을 향하여 다가갔다. 조사가 진행되면 될수록 모든 것은, 신진당의 정체며 당수란 인물의 배후는 모호하여져만 갔다. 그러나 드디어 한 명이 신진당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의 정체―즉, 신진당 당수는 중공계(中共系) 출신으로서 소련으로부터 밀파(密派)된 자며 신진당을 조직, 그 일당을 총지휘하면서 우파(右派) 순수파와 집근, 외면적으로는 공동보조를 취하는 척하면서 실은 정계(政界) 동향을 내사 밀송(內査密送), 주요 인물 암살, 정당 간의 암투와 내부적 분열을 조장하는 일방¸ 시민의 관심을 사면서 인제 수립되어질 정권의 기초를 지하 공작하는 임무를 지령받고 있다는 것을 탐지했다. 많은 인사가 이자의 음모에 넘어진 것이다.
이자를 그냥 둘 수는 없다. 이자를 죽여야만 한다. 허다한 희생이 눈앞에 임박하여 오고 있는 것이다. 누가 쏘느냐? 쏠 사람은 많다. 이자는 형을 죽였다. 그로 인하여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말았다. 물론 쏠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내가 쏘아야만 한다. 모두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왜? 그에게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신진당 당수, 이자를 하나 죽이기는 쉬운 일이다. 방아쇠를 한 번 당기면 고만이다. 그러나 이자를 하나 죽임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자를 죽였다고 배후의 음모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소련 점령군 치하(治下)다. 그들은 다만 입맛을 한 번 쓰게 다질 뿐 다시 더 강력한 자를 밀파할 것이며 그들은 더욱 치밀히 그들의 음모와 술책을 강화 촉진하여만 갈 것이다. 그때마
다 우리의 희생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소련 점령군 치하다. 밀파된 자들은 아무리 죽여도 그것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 한 인물을 죽임으로써 모든 것이 끝날 수는 없다는 것, 이것은 이미 지나간 모든 혁명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그자를 그대로 두어둬야 한단 말이냐?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당수의 눈물을 머금은 음성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쟁쟁하게 남아 있었다. 쏠 사람은 많다. 선전부장, 간부, 당원들의 긴장된 얼굴이 수없이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형은 그자의 손에 죽었다. 그로 인하여 아버님도 영원히 눈을 감으시고 말았다. 물론 쏠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내가 쏘아야만
한다. 모든 동지는 내가 쏘리라고 믿고 있다. 나에겐 무의미하다. 그러나 내가 쏘는 데 의무가 있다고 모두들 생각하고 있다. 무의미할지라도 나는 쏘지 않을 수 없다.
네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자를 하나 죽인다는 것, 이것이 큰 의의는 갖고 있지 않을지 모른다. 소련 점령군 치하라는 것은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당의 정강(政綱), 이는 자주 자립의 정신이다. 역사를 두고 우리는 항상 지배만 받아왔다. 정당 이념을 지키는 의미에서도 소련에서 밀파된 그자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그자 하나를 죽임으로써 큰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희생은 컸다. 또 앞으로도 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정신을 사수하여야 한다. 어디에서고 희생은 필요하다. 희생이 두려워 물러서는 자는 비겁자다! 자립당 당수, 그는 바로 네 형이었다. 부당수의 마지막 이 한마디는 너무도 아프게 그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었다. 정면으로 마주 보던 부당수와 눈, 그 눈 속에는 결의와 의지와 차가운 빛이 침착하게 떠돌고 있었다.
나는 쏘아야만 한다.
그는 쏘아야만 했다. 무의미할지 라도 쏘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권총을 잡았다. 차가운 철편의 감촉이 딱딱하게 추위로 마비된 손가락에 얼어붙는 듯하다. 이층 서재에는 불이 환히 켜진 채 조용하다.
동지는 응접실에서 당수의 호위 (護衛)인 ‘친’ 이란 자에게 술을 처먹이고 있다. 이자는 북지에서 비적질을 하며 돌아가던 자로서 몸집이 거대하고 백발백중의 명사수다. 하지만 당수의 침실에서 일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이자도 고만인 것이다. 그리고 당수의 직계 부하 두 명은 지금쯤 시내 어느 한구석에서 술 계집의 희롱 속에 심신이 녹아가고 있을 것이다. 모든 계획은 용의주도하게 설정되어 있다.
남은 것은 내가 쏘는 것뿐. 지금 이 집 속에서, 그리고 밖에서 또는 시내에 산재하고 있는 각 동지들이 이 서쪽 신진당 저택에서부터 무거운 밤공기를 울리는 일방의 총성이 일어나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마치 무엇에 뒤쫓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거운 그늘이 그의 눈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강력히 뒤 밀려 다가오며 점점 겹겹이 눈앞에 드리우는 무거움, 빨리 이 속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그것을 쏘는 순간뿐이다. 방아쇠를 당기고 한 인간이 쓰러지는 순간이다. 그는 호흡이 가빴다. 열두 시면 꼭 취침한다던 이자가 왜 아직 안 내려오는 것일까? 그는 초조하게 서재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마음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 순간 실내에서 약간 소동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전 주택 내에 불이 획 꺼졌다. 그는 창문 곁으로 바싹 다가서며 숨죽이고 기다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몇 발의 총성이 연발하였다. 유리창이 쟁그랑하고 깨어지며 떨어진다. 서재다! 그는 어느 사이엔지 권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뭐냐?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지가 곁으로 다가서며 조급히 입속말로 속삭인다. 그는 더욱 눈앞이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또 몇 방의 총성이 서재에서 울렸다. 그는 어느 틈에 돌을 들어 침실 창문을 부쉈다. 그리고 뛰어들려고 할 때에 동지의 손이 그의 허리를 잡았다. 서둘다가는 실수다. 그때 무엇인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무수히 줄을 긋고 지나가고 있었다. ‘친’ 이 란 자를 맡았던 김동지가 쏜 것일까? 그렇다면…… 그러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도리어 맞아 쓰러지고 만 것 이 아닐까.
그때 후정원의 인기척을 듣고 그들은 나무 그늘로 급히 몸을 숨겼다. 간신히 몸을 의지하고 허덕거리며 급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김 동지다! 그들은 마주 달려가 김 동지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리고 뒷문으로 빠져 담벽을 끼고 잠시 줄달음쳐 나오다 어두운 골목길로 방향을 꺾었다. 그는 거기에서 같이 갔던 동지에게 김을 부축하여 둑길로 향할 것을 지시한 다음, 잠시 머물러 서서 뒷 기세를 살폈다. 아무런 동정도 없다. 어둠 속을 차가운 바람만이 휘몰아쳐가고 있다. 그는 곧 발길을 돌려 먼저 간 그들 뒤를 쫓았다.
둑 위에서 합류하였을 때, 멀리서 요란히 신호를 울려가며 신진당 당수 저택을 향하여 두 대의 자동차가 질주하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을 헤치고 긴 선을 굵게 그으며 헤드라이트가 방향을 휙 꺾을 때마다 둑 위까지 환하니 어둠을 씻어간다. 저택 쪽은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어둠과 적막 속에 잠겨 있다. 그들은 다시 피를 흘리고 쓰러져 누운 김 동지를 간신히 부축하여 둑을
넘어 그 가까운 한 동지의 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직하고 깊숙이 들어앉은 방이었다. 그들은 아랫목에 김을 눕히고 검게 피에 젖은 옷을 절개하였다. 두 발의 총탄을 맞은 왼쪽 가슴 하복부에서는 검붉은 피가 끈적끈적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그는 괴로운 듯이 잠시 몸을 뒤틀었다. 간들거리는 등잔불 밑에 메마른 입술을 기운 없이 다시면서,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적이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지금쯤은 그자도 나처럼 피에 젖어 쓰러진 채 죽음을 재어가고 있을 거다.” 그의 시선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속히 간단한 응급 치료를 했다.
“괜찮어, 괜찮어. 이렇게 죽는 것이 도리어 통쾌한 거야. 쏘았지. 자식도 필사적으로 반격을 하더군. 하지만 그자는 내 눈앞에서 털썩 맥없이 쓰러졌다. 나는 그자가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끝까지 지키고 었었다. 끝까지.” 그의 음성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통쾌하더군. 그 순간 나는 눈물이 확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다시 눈물에 젖어가는 그의 시선이 등잔불에 반사되어 붉게 타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통쾌하였던 그 순간순간이 다시금 다시금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은 ‘친’에게 술을 먹여가며 다가올 순간을 향하여 숨 가쁘게 조여가며 있었다. 인제 침실로부터 일발의 총성이 터질 것이다. 그는 내의 속에 품고 있던 단도의 위치를 다시 정확히 더듬어보았다. ‘친’은 술기가 붉게 퍼져가는 입술을 씰룩거려가며 연상 북지에서 떠돌아가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열두 시가 지나고 초조한 속에 삼십 분이 넘어갔다. 그러나 응접실 속에서는 아무런 동정도 없다. 그는 취한 척 상대의 술 기세를 더듬어가며 말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또 하나의 새로운 정보를 탐지하는 동시에 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급히 모 정보 지령에 의하여 오늘 소련 주둔군 측에서 한 시에 당수를 데리러 온다는 것, 오늘 밤중으로는 돌아오기 힘들 것이며, 이 비밀회의에서 결정되는 태로 정권 확립을 위하여 공작이 대대적으로 표면화되고 노골화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한 시는 다가오고 있다. 김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 음모를 눈앞에 보면서 이 기회를 상실한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무서운 사실이었다. 이 순간을 그대로 버리느냐? 그렬 수는 없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친’의 권총이 눈에 띄었다. 저기에는 항상 알이 재워져 있다. 안전선만 돌리고 발사하면 고만이었다. 하지만 ‘친’부터 해치워야 한다. 밖에서는 이런 일을 알 리가 만무다. 급히 계획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쨌든 당수를 죽이면 고만언 것이다. 당수를 죽이기 위해선 이자를 소리 없이 먼저 죽여야 한다. 시간은 촉박하여오고 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는 ‘친’의 일거일동을 살피며 틈을 엿보았다. ‘친’이 술을 그에게 따르려고 상체를 기울여오는 순간 그는 잽싸게 소지하였던 단도로 ‘친’의 가슴을 마주 콱 찔렀다. 그러자 ‘친’의 억센 손아귀가 그의 목을 꾹 움켜쥐었다. 그는 그 손을 뿌리치고 쳐 넘겼다. ‘친’은 뒤뚝하고 테이블로 다가서려는 듯하다가 맥없이 눈을 부릅뜨고 쓰러지면서 벽의 전등 스위치를 탁 쳤다. 순간 불이 꺼지고 캄캄하여졌다. 그는 어둠 속에서 신속히 권총을 찾아 들고 이층으로 다가갔다. 그는 서재 도어 곁에 다가붙어 잠시 실내의 동정을 더듬었다. 조용하다. 가볍게 노크를 하였다. 대답이 없다. 핸들에 가볍게 손을 얹고 문을 열었다.
“촛불을 켜드릴까요?” 말과 함께 그는 남쪽 창을 등지고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어두운 하나의 그림자를 향하여 일발을 발사하였다. 다음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연달아 그쪽을 향하여 난사(亂射)하였다. 반격이 왔다. 적막과 어둠을 찢는 총성과 함께 그의 내부에서도 무엇이 터져 흐르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문에 기대어 섰다. 손에는 총알은 없을망정 권총이 꽉 움켜쥐어져 있었다. 그자가 쓰러지는 것을 보기 전에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책상 곁에 맥없이 기대어 서 있는 그자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상체는 점점 기운 없이 무너지다가 털썩 쓰러졌다. 그는 눈앞에 쓰러진 그자의 어두운 그림자를 잠시 지켰다. 이자는 쓰러졌다: 내가 발사한 총알에 맞아 내 눈앞에서 쓰러진 것이다. 그의 손에 꼭 움켜쥐어졌던 권총은 그 순간 맥없이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그때서야 그는 자신도 총에 맞은 것을 알았다. 하지만 통쾌하였다.
죽음이 눈앞에서 감도는 지금에도 그 순간만은 통쾌한 것이었다. 김의 맥박은 점점 거세어가고 있었다.
“자기가 믿는 그 하나를 위하여 죽어가는 것이 인간일 것이다. 모든 것을……한 번에 모든 것을 위하여 죽기는 불가능하다. 박, 네가 못 쏜 것이 유감일 것이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심장이 가쁘게 파닥이고 있다. 박은 김의 얼굴 위로 조심히 눈 주었다. 희미하게 타들어가는 등잔불 밑에 그의 얼굴은 몹시 어둡게 흐려만 간다. 조용히 내리감았던 눈이 이따금 고통을 이겨가는 듯 경련적으로 부릅떠지고 그 눈동자는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차가이 재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인제 곧 죽어갈 것이다. 통쾌하다는 것뿐, 간단하다. 나는 네 형님을 숭배하고 있었다.”
죽음에 젖어가는 김의 눈동자는 이 순간 더욱 싸늘히 식어가고 있었다. 박은 자기를 곧바로 지키고 있는 김의 시선을 받아가며 그의 손을 가벼이 더듬어주었다. 도리어 숨져가는 김의 손맥⁷이 자기의 그것보다도 강력 하게 느껴졌다.
“간단하다. 복잡하다면 인간은 싸우다 죽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간단하니까 싸우다 쓰러질 수도 있는 것이지. 이것이 인간이다. 박, 그것뿐이다.”
박은 김의 손맥이 힘없이 점점 풀려가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부룹뜬 눈은 차가이 박을 언제까지나 주시한 가운데 얼음장처럼 식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점점 걷혀가고 희미하게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은 부당수에게 연락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 뚜드리는 소리에 노파가 나와 빗장을 연다. 손님방에는 아직도 전등이 환히 그대로 켜져 있었다. 방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섰을 때 그는 아직도 아버님이 살아 계셔서 자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안락의자에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서 날이 샐 때
까지라도 두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안락의자에는 누구도 없었다. 휑하니 빈 방 안 다만 전등불만이 그전처럼 방 안을 쓸쓸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십유여 년⁸ 전 그의 부친은 독립단에 가입하여 만주로 망명, 항일 투쟁에 전력을 기울여 싸우다가 일관헌 (日官憲)에게 체포되어 갖은 악형에 못 이겨 끝내는 종신 불구자로서 가출옥되어 집으로 이송되었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이미 병사하였고 어린 두 아들이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그때부터 모든 것을 잊고 남은 재산을 의지하고 오직 두 아들을 키워 그야말로 가정의 따뜻한 물결 속에 젖어보려 하였다. 완전히 부자유한 몸이 되어버린 노인에게 여생 (餘生)을 즐길 길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자랐다. 해방이 되었다. 두 아들은 이미 삼십 대에 이르러 있었다. 곧 그들은 난립하는 정계로 뛰어들어갔다. 노인은 말렸다. 그러나 두 아들은 듣지 않았다. 노인은 두 아들에게 다시금 자기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젊음은 노인의 심경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정열에 넘쳐 있었다.
과도기의 정계, 노인은 잘 알고 있다. 밤마다 살기 어린 총성은 요란스러이 노인의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손님방 안락의자에 노인은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조용히 걷는 발자국 소리가 연달아 들리면 두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알고 가벼이 숨길을 돌리며 그대로 눈을 감는 것이었다. 아무리 밤이 늦어도 이렇게 아들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아들은 아버지가 그대로 안락의자에서 잠들고 계신 줄만 알고 잠이 깨실까 하여 그들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노인은 문이 조용히 닫히는 소리를 듣고 눈을 뗬다. 또 무사하였다는 것, 그 이상을 노인은 바라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노인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무겁게 어두워만 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맏아들이 피살당하던 날 노인은 안락의자에서 그대로 졸도하여 쓰러졌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최후가 눈앞에 떠오르자 더욱 마음이 무거워져 자기 방으로 물러갔다.
그는 피곤에 젖어 잠시 눈을 붙였다. 열 시가 가까웠을 무렵 희미한 기억 속에 몹시 문을 뚜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부당수다. 둘은 잠시 긴장 속에 얼굴만 마주 보았다.
그자는 살아 있다. 다만 바른팔과 왼다리에 부상을 입었을 뿐. 놀라운 사실이었다. 도리어 이쪽에서 억울하게 희생을 내었을 뿐이다. 그의 눈앞에는 마지막 숨져가던 김 동지의 눈동자가 똑똑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자는 내 눈앞에서 털썩 맥없이 쓰러졌다. 나는 그자가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 하면서 믿고 죽어가던 김…… 네가 못 쏜 것이 유감일 것이다. 네가 못…… 이 말이 확 떠오르자 그는 다시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갔다. 나는 다시 쏘아야만 한다. 무의미해도 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김처림 죽어갈지 모른다. 하지만 김처럼 죽어서는 안 된다. 쏘는 한 그것이 무의미할지 라도 정확히 쓰러트려야만 한다.
다시금 계획은 치밀히 진행되었다. 저쪽의 경계는 더욱 삼엄하여갔다. 이쪽도 그에 따라 치밀히 전개된다, 하지만 조건은 역전(逆轉)되어가고 있다. 저쪽을 쏘기 위해선 이쪽의 희생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희생을 피하여야 한다. 퇴원하는 날 병원 입구에서, 모든 배치와 조건은 부당수자 맡았다. 맞은편 상점에서 발사하면 그 후 도피가 곤란하다. 또 대기하는 차가 병원 앞에 설 것이므로 정확히 상대를 총구 속에 포착하기가 힘들다. 그 곁 가구상에서 대기하였다가 나오는 즉각에 쏘아 넘기고 바로 옆 골목으로 빠진다. 그러면 곧 배후에 배치된 동료에 의하여 감쪽같이 자취를 감출 수 있다. 그는 며칠을 두고 병원 주변의 지리를 낯익혔다. 그리고 가구상에서 나와 총을 가장 정확히 발사할 위치까지도 잡았다.
날은 왔다. 하오 정각 세 시.
한 시간쯤 여유를 두고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 그는 손님방 안락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형의 피살로 졸도하여 쓰러졌던 이틀 후 아버지는 이 방에서 영원히 눈을 감으신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조용히 내리감은 눈과 주름살에 여윈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한 노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윽고 가늘게 뜬 노인의 시선이 차갑게 그를 지켰다. 그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한 가지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 아버지의 말이 옳을지 그를지는 네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결코 나는 네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음성은 몹시 부드러운 것이었으나 폐부를 찌르는 듯한 쓰라림이 있었다.
“인간이란 충실히 자기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상을 위한 것도 좋다. 주의를 위한 것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전부는 아니다. 하나를 위하여 인간을 버려서는 안 된다. 생활의 한 조건을 위하여 자기를 불구로 만들고 죽여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를 위하여 자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부여된 생명을 끝까지 손색없이 충실히 살려가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닐까?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더 큰 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
노인은 눈을 감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보며 인간으로서의 패배를 믿어가는 모습이었다.
이것이 노인의 최후였던 것이다. 그는 다시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병원 앞, 제 시, 쏠 것, 이 순간을 향하여 그는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러서면 비겁자요 배반자다. 쏘는 것, 이것은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머물러 설 수도 없다. 나는 자립당 당원이며 당원들은 내가 지금 그자를 쏠 것을 믿고 있다. 이것이 또한 정당한 포크리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모든 것에 의하여 결정되어 있다. 오직 이 결정 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이 결정 속에 사로잡혀 있다. 이 속에서 빠져나가는 순간은 방아쇠를 당기는 그 순간뿐이다. 일발의 총성과 함께 한 자가 쓰러지는 그 순간이다. 그 순간에만 모든 제약 속에 사로잡혀 있던 ‘내’가 ‘나’를 찾아 진실히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안락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집을 나서자 서서히 의주(義州)통 쪽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두터운 오버의 목덜미 속에 깊숙이 얼굴을 묻고 낡은 중절모를 눈썹까지 내려 쓰고 있었다. 모래를 뿌려오는 북쪽 바람은 맵다. 그는 아무런 잡념도 없었다.
쏘는 것뿐, 그 이외의 어무것도 없었다.
그는 곧바로 의주통로 길을 따라 올라가다 역전(驛前)통로와의 교차점에서 시계를 더듬었다. 두 시 반. 여기서 병원까지 삼 분이면 된다. 아직 이르다. 먼저 가서 주위를 배회한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그는 바로 두 집 밑에서 선술집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쑥 들어섰다. 스토브에서는 불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었다. 손님이라고는 어둑시근한 구석지에 허술히 입은 두 사람이 마주 술을 나
누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문이 열리자 힐끗 한 번 꼭같이 그에게로 눈 주고 나서 다시 자기들의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음성으로 보아 술이 엔간히 기울어진 모양이다. 그는 배갈 한 잔을 시키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버 포켓 속에서 권총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래서 튀어나왔지 뭐야. 정당이란 게 묘하더란 말야. 들어가서 몇 주일 훈련을 받고 보니 그렇게 다정하던 친구 녀석들이 모두 원수처럼 눈앞에 어른거리거든, 핫핫핫…… (뚱뚱한 편은 말끝에 이렇게 껄껄 웃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또 정치란 게 뭔지 알어. 결국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거든, 사람을 죽이지 않고는 해 나갈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정치가 대대적으로나 소규모적으로나 인간을 학살할 때에는 다 눈을 감고 정당하다고 묵인해야 된단 말이다. 그야말로 묵인…… 역사가 그렇게 걸어왔거든. 아니 역사가 그렇게 되어먹었는지, 인간이 그렇게 되어먹었는지 둘 중에 하날 테지. 핫핫핫하…… 하지만 역사는 항상 정직:한 것이라니! 웃후후후…….”
뚱뚱한 편은 배를 안고 늘어지게 웃어댔다.
술잔을 입술 위에 기울이면서 그는 무심히 이야기에 귀를 모아가지고 있다가 문득 무언지 모르게 마음이 헝클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생각을 해서는. 모든 것은 결정되었고 지금 나에게는 쏘는 것만이 남아 있다.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곧 술집을 나섰다. 십 분 전. 그는 병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신에서 술기운이 얼굴 위로 확 퍼져 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무엇이 앞에 마주 다가서 있었다. 모자와 오버 속에 얼굴이 푹 파묻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다. 그는 길을 비키려 하였다.
“잠깐.”
그는 전 신경이 긴장에 확 조여드는 것 같았다. 상대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성냥을 가지셨는지요?” 두 손가락 끝에 잡힌 담배를 입가로 옮겨가는 한편 성냥을 제 손으로 그어대고 있다.
“그자의 두 사복 호위가 병원 주위를 배회, 신중을 기할 것. 기회가 없으면 쏘지 말라.” 바람에 불이 꺼지므로 상대는 간신히 불을 붙였다. “감사합니다.” 이 상대는 성냥을 그에게 주고 지나가 버렸다. 성냥갑 위에는 ‘신(申)’ 이라고 낙서처럼 씌어져 있다. 자립당 선전부장이다. 변장(變裝)으로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속히 걸음을 옮겨 예정의 병원 앞길로 접어들려고 하였을 때 그는 주춤하였다. 병원 앞에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다. 그리고 현관 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나오고 있는 것이다. 늦었다. 아니 자식들이 빨리 나온 것이다. 신진당 당수가 곧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간호부와 호위가 그 곁에 다가서서 계단을 내려서는 것을 부축하고 있다. 쏠 수가 없다. 간호부가 막아서 있다. 쏘아도 헛되다. 그러나 자동차에 오르면 기회는 아주 없어진다. 그는 자동차 앞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험은 결정적이다. 그는 사오 미터까지 육박하여갔다. 쏘는 이상 죽여야 한다. 그의 걸음이 멈춰지는 것과 동시에 몇 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눈앞에는 신진당 당수가 맥없이 점점 쓰러져가고 있었다. 또 연발하여 총성이 울렸다. 커다란 몸집이 털썩 쓰러지며 계단을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는 또 당겼다. 현관 유리창이 요란하게 부서져 날아갔다. 동시에 모든 것이 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깨어져 나간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 몇 방의 총성이 거리를 두고 측근에서 울려왔다. 그는 경련적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 뜨거운 무엇이 주르르 이번에는 그의 내부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그의 주위에서부터 깨어져 나갔다.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이 순간을 위하여 그는 다가온 것이다. 무의미하지는 않은 것이다.
-끝-
2016년 6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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