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본절은 '히나''...하기 위하여로 시작한다. 이는 본절이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나게 하는 목적임을 시사한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이방인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드러내게 하는 것은바울의 사명일 뿐 아니라 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교회는 하늘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알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정사와 권세들'은 '하늘에 있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킨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인간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간절히 알기를 원하고 있다. 교회는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비밀'과 같은 것으로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서 완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구속 게획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무너져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교회를 통해서 감취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된다.
[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본절은 바울과 교회를 통해서 드러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영원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계획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하신 것이다.
본절의 '하신 것이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포이에센'은 문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니나 본절에서는 '성취했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단순히 '이루셨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서의 성취'를 시사한다. 본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행하셨음을 시사하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중재하시는 '선재하신 중재자이심을 나타낸다-
[엡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 본절에서 바울의 관심은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선포에서 구속함을 받은 성도인 자신과 에베소 교인에게로 바뀌었다. '담대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안'과 '나아감'의 헬라어 '프로사고겐'은 담대히 나아감을 강조하기 위한 이사 일의이다.
여기서 '파르레시안'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의미한다. (2)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파르레시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나아가며 동시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뢸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징계하시며 심판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언제든지 나아가서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한 아버지이시다. 한편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테스피스테오스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그의 믿음을 통해서'라는 의미로 혹자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서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신 득의를 통해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그러므로 - 이것은 본절이 앞서 언급한 전체 내용과 상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바울 자신은 '갇힌 자'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바울과 에베소 교인은 담대함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
본절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이다. (1) '낙심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카케인'의 주어가 헬라어 본문에서는 명확치 않기 때문에 '바울 자신이 낙심치 않도록 기도 부탁을 했다'는 의미이다. (2)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로 하여금 낙심치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있다는 '기도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3)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낙심치 않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본절에 대한 세 가지 해석 중 마지막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첫 번째 해석의 경우 만약 바울 자신의 절망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본절에서 '나의 환난'이라고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두번째 해석의 경우 '구하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투마이'는 기도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이는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본절을 기도문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절은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 자신의 환난으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기를 부탁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 바울은 본문에서 에베소 교인을 위하여 당하는 자신의 환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이 된다고 말함으로 '자신의 고난'과 '에베소 교인의 영광'을 대조 병렬시키고 있다. 바울 사상에 있어서 '고난'은 '영광'의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고난당하는 사람이 후에 영광을 받는 반면에 본절에서는 바울 사도의 고난이 에베소 교인의 영광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겪는 고통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채워져야 하는 남은 분량의 고난으로 알고 기뻐했던 것과 일맥 상통한다.
이러한 선포를 통해서 바울은 자신이 현재의 고난을 장차 얻게 될 지극히 큰 영광을 예비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처럼 에베소 교인들도 바울의 현재 고난이 미래의 교회에 미칠 그리스도의 영광에의 참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낙심하지 않기를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