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代와 世世祖/世孫 논쟁의 終熄을 위하여
이 논쟁은 論理의 妥當性과 合理性, 論據의 適合性과 充足性, 그리고 主張의 效用性과 實現可能性을 두고 다투는 싸움입니다. 그런데 ‘高祖=5代祖’의 주장은 위의 어떤 면에서도 ‘高祖=4代祖’의 주장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高祖가 4代祖가 되어야 할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해 온 반면, ‘高祖=5代祖’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그에 대해 전혀 반론을 제기하지도 못했고, 자기 주장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第○世/○代의 ‘世/代’와 ○世祖/○代祖, ○代祖/○代孫에 쓰인 ‘世/代’가 다른 말임을 논리적 근거로 하여 ‘高祖=4世祖 ’주장을 피력하오니, 기탄없는 批正과 반론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高祖=5代祖’을 주장하는 분들께서는 그 주장이 무리이고 억지임을 자각하시어 깨끗이 승복할 줄 아는 선비다운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世와 代가 같은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 접근을 보인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소위 典據가 불분명한 ‘代不及身’을 불변의 원칙처럼 내세우면서 代數와 世數를 달리 헤아리자는 사람들도 있고, 소위 유령처럼 떠돌았던 ‘上代下世’라는 말을 근거로 世와 代를 구별하여 사용하자는 의견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서의 용례가 극히 희소함에 따라, 지금은 주장의 명분도 실득도 없어 폐기될 운명에 놓여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리고 그 동안 여러분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1) ○世=○代 : 혈통의 차례이고 祖孫을 헤아리는 단위이다.
2) ○世孫=○代孫 : 혈통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이며, 기준인 上代를 제외하고 後孫 만 헤아린다.
3) ○世祖=○代祖 : 혈통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이며, 기준인 下代를 제외하고 先祖 만 헤아린다.
라는 데에도 의견이 집약된 것으로 압니다.
그럼에도 ○世=○世祖=○世孫=○代=○代祖=○代孫와 같이 혈통의 차례와 혈통의 관계 호칭을 구별하지 않고 섞어 사용하자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그 주장이 논리적 합리성과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고, 그렇게 쓴 용례도 거의 없어 근거가 박약하며, 앞으로 실현 가능성도 전혀 없어, 斯文亂賊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항전을 계속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그런데 차례를 나타내는 세/대도 잘못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 족보 50世에 수록된 사람이 “나는 김수로왕의 50세 ○○이다”, 또는 “나는 김수로왕의 50세손 ○○이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김해김씨 50세 ○○이다” 또는 “나는 김수로왕의 49세손 ○○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高祖=五世祖’의 입장에서 그를 변호하는 논리를 살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5世祖는 5世之祖를 줄인 말로 한 단어가 아니라 두 단어라는 반대편 주장에 대해서는 5世와 祖가 합성된 복합명사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과문한 탓인지 그런 주장을 보진 못했습니다만)
그리고 이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가장 유력한 논거로 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高祖가 5世祖라면 기준이 되는 나는 1世祖가 되어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준이 1세이면, 子는 2세이고 父도 2세인데, 子는 후손이므로 孫을 붙이고, 父는 조상이므로 祖를 붙여 각각 2世孫, 2世祖로 하지만, 기준인 나는 후손이나 조상이 아니므로 孫이나 祖를 불이지 않는다는 논리로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어떻습니까?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이와 관련된 글 몇 가지를 인용해 보기로 합니다.
世와 代는 같다, 혈통의 차례이며 全數 단위다. 世孫 代孫은 後孫을 헤아리는 단위이며 관계다, 代祖 世祖는 祖上을 헤아리는 단위고 관계이다. 世孫 代孫 世祖 代祖는 관계계촌이며, 기준 世와 代에 헤아리는 첫 번째 기준은 제외하고 祖, 孫,을 붙혀 世孫 代孫 世祖 代祖로 칭한다. 즉 世와 代에 1 빼고, 世孫 代孫 世祖 代祖 칭한다. 世와 世孫 世祖 각각 구분해야하고, 代와 代孫 代祖 각각 구분해야 올바른 칭호가 성립된다.
世, 代, 世孫, 代孫, 世祖, 代祖, 쉽게 설명 드리면 孫이란, 後孫을 뜻하며, 5世孫=5代孫이란 後孫 명수이며 5명은 後孫명수입니다, 祖는 祖上을 뜻하며 5世祖=5代祖는 祖上명수이고 5명은 祖上명수입니다. 世=代는 전체 총인원 명수입니다, 인원보고를 해보세요 총인원 6명 보고자 외 5명입니다. 즉 6世=6代이고 5代孫=5世孫입니다, 주기, 간격, 주년, 기간, 사이, 공간, 중간, 30년 등의 개념은 아니며, 계보를 연결하는 용어는 世 代로 하며, 世孫 代孫 世祖 代祖는 관계라 합니다. 3世=3代=3명이며, 3世孫=3代孫=4명입니다.
1)국역연수원 교수 成百曉선생 글에서 代와 世는 똑같은 뜻으로 始祖를 1世로 하였다, 그리하여 만일 高祖로부터 자신까지 세어보면 5世가 되는데, 실제로는 고조가 4代祖가 된다. 즉 시조로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지 26世라면 시조는 당연히 25代祖가 되고, 자신은 25代孫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世와 代가 달라서가 아니요, 世 뒤에 祖나 孫을 붙였기 때문에 한 代가 줄었음을 알아야 한다.
2)한문학박사이며 大한학자인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于溪 李炳赫박사께서도 世와 代는 같다고 하며, 27世(代)를 예, 26世孫(代孫)이고 기준이 된 先祖는 孫에 포함하지 않는다, 26代祖하면 자신이 기준이며 자신은 祖가 아니기에 기준인 자신을 빼야한다. 즉 世와 代는 같은 것이고, 世孫, 代孫, 代祖 이럴 때는, 조(祖)와 孫이 붙으면 기준이 되는 世(代)를 포함시키지 말아야한다. 즉 世(代) 를 뺀 代數 世數를 쓴다.
고조를 4세조로 불러야 하느냐, 5세조로 불러야 하느냐 하는 것은 소생이 누차 말한 대로 이는 예학의 문제가 아니라 어학의 문제라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예외 없이 4세조라는 칭호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면 틀림없이 거기에는 반드시 그래야 할 까닭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까지 4세조 논법으로 통일되어 사용해왔지만, 송나라 이후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5세조 논법이 쓰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든 世/代의 數를 똑 같이 맞춰 쓰는 5世=5世祖가 편리성 면에서는 혼동을 일으키지 않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高祖=4世祖를 바꿀 수 없고 바꾸어도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중국에서는 송나라 이전에는 주로 4世祖 논법이 쓰이고 우리 조상들 역시 4世祖 논법을 고수해 왔을까요?
소생은 그 단서를 4世의 ‘世’와 4世祖에 쓰인 ‘世’가 다르다는 데서 찾고, 그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설명을 계속해 왔습니다. 소생이 과문하거나 게을러서인지 몰라도, 이런 관점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소생의 이 주장에 대한 찬반 의견도 별로 보지 못했고, 그에 관한 댓글도 별로 없었습니다. 사실 소생의 주장이 허황한 것이어서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것인지, 공감하여 따로 의견을 표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물론 高祖=5代祖를 주장하는 분들도 본 논의에 기여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과의 논쟁을 통하여 논의의 폭을 넓히고 심도를 깊게 하는 데 도움을 받은 바도 있으며, 다음에 같은 사안을 가지고 야기될지도 모를 분란의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데 기여하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 高祖=5代祖를 주장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제 그만 미련을 떨쳐버리시고, 그 동안 본란의 논쟁을 통해 갈고 닦은 文才를 儒道의 보급을 위해 쓰시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글/ 성균관 자유게시판 4675번 20110220 송전한학자
충청일보 세와 대
대세(代世)와 조손(祖孫)의 올바른 적용법 혈통의 순서 객관적 표현 조상 순서 매겨 호칭 신년 초가 되면 조상이나 종중 일에 관심을 많이 갖는다. 년초에 '사주팔자의 허실'이나 '동양 전통문화' 등에 대한 특강을 다니다보면 대(代)와 세(世), 조(祖)와 손(孫)등에 관한 질문을 가끔씩 받는다.
代(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한 집안에서 이어 내려오는 혈통과 계보" 혹은 "가계나 지위를 이어받은 순서를 나타내는 단위" 등으로 되어 있다. 또한 世(세)의 사전적 의미는 "가계나 지위의 차례" 또는 "왕조의 임금 순위를 나타내는 단위"로 되어 있다.
그러나 종친회에서는 둘 다 한 집안에서 이어 내려오는 혈통과 계보의 순서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이고 있다. 이 대와 세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왔으며, 일각에서는 아직도 이를 구분하여 조상들을 호칭할 때는 世를 사용하고 후손을 지칭할 때는 代를 사용하거나, 반대로 조상들을 호칭 할 때는 代를 사용하고 후손을 지칭할 때는 世를 사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또한 代에 비해 世가 하나 적다든가 世에 비대 代가 하나 적다는 등의 주장들도 있어 왔다.
그러나 현재는 수많은 논의와 언쟁을 걸쳐 성균관, 한국 전통문화연구회 등 공인된 여러 기관들 포함하여 대부분의 종사 관련에서 공식적으로 代와 世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조상이든 후손이든 구분하지 않고 모두 代와 世를 같이 사용하면 된다.
-혈통의 순서 객관적 표현 代와 世는 혈통의 순서를 객관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대조(代祖) 혹은 세조(世祖)는 나를 기준으로 하여 나를 제외한 부(父)부터 시작하여 윗대의 조상을 순서 매겨 호칭 하는 것이고, 대손(代孫)혹은 세손(世孫)은 나를 기준으로 하여 나를 제외한 자(子: 아들)부터 시작하여 자손을 순서 매겨 호칭하는 것이다.
할아버지(祖)와 아버지(父), 아들(子)이 한집에 사는 경우를 우리는 3대라고 한다. 이때 아들과 아버지의 부자는 2대가 된다. 그런데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1대조이고 할아버지는 2대조이다. 자신은 기준이 되어 셈의 대상에서 빠지기에 대에서 하나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조인 할아버지를 기준으로 본다면 기준이 되는 할아버지 자신이 빠지기 때문에 아버지는 1세손이고, 아들은 2세손이 되는 것이다. 만약, 고조(高祖)와 현손(玄孫)간이라면 대로는 5대이지만 현손의 입장에서 고조는 4대조이고, 고조의 입장에서 현손은 4대손이 된다.
필자는 진주소씨(晉州蘇氏) 48세로서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에서 김유신과 함께 선덕여왕을 보좌했던 알천공(閼川公: 알천랑)이 시조가 된다. 세수로는 48세이지만 손으로 표현하면 47세손이 된다. 이렇게 세나 대에 조나 손이 붙게 되면 기준이 되는 숫자가 하나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조상 순서 매겨 호칭 조(祖)는 조상을 의미한다. 대조(代祖) 혹은 세조(世祖)는 나를 기준으로 하여 부(父)부터 시작하여 윗대의 조상을 순서 매겨 호칭 하는 것이다.
세와 대는 객관적인 관계를 순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통은 시조나 파조 등 특정한 조상을 기준으로 하여 순차를 표현한다. 시조는 1세 혹은 1대라고 할 수 있지만 1대조라고 할 수는 없다. 시조가 몇 대조인가는 기준 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10대의 경우 손으로는 9대손이 되며, 시조는 9대조가 된다. 20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시조는 19대조가 된다. 이렇게 우리가 조상들을 호칭하거나 표현할 때 그 기준이 자신인지 아니면 몇 세 누구인지 정확히 정해져 있어야 조(祖)를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글/충청일보 소재학 미래예측학 박사
世代는 모두 헤아리고, 조상과 후손은 기준을 제외합니다.
① ‘世와 代’는 본시가 같은 말입니다.
‘世祖와 代祖’도 같은 말이고, ‘世孫과 代孫’도 같은 말입니다. ‘世祖나 代祖’, ‘世孫이나 代孫’이 달라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글자만 다를 뿐,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간의 異義는 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② 世代의 셈법에서 ‘代不及身’이란 없습니다.
순서를 헤아리면서 ‘세에는 나를 넣고, 대에는 나를 빼는 것’이 아니라 모두 넣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代不及身’은 모순의 논리입니다. 과거 성균관이 이런 공지를 했다가 접어둔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불급신의 亡靈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일렬로 세우고 순서를 헤아리는데 어디는 나를 넣고 세고, 어디는 나를 빼고 세겠습니까?
③ 조상은 代로, 후손은 世로 부르자는 ‘上代下世’도 안 됩니다.
여기에 ‘세대이의론’의 ‘代不及身’이 결부되면, 조상과 후손의 대수계산에 오류가 생깁니다. 5대조면 5대손인데, 6세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顯‘五代祖考’ㅇㅇ府君, ‘六世孫’ㅇㅇ敢昭告于>식의 모순이 발생합니다.
④ 최근 세대에 대한 異說은 이제 불식되어야 합니다.
이견이 있으면 논리도 있어야 합니다. 주장의 전거도 희박하고, 모순투성이인데 영서연설을 끌어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또 일부는 바른 듯하면서도, 전후모순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대의 상세한 전거는 없습니다. 다만 先儒들의 문헌에 詳考할만한 기록이 있으니 이를 준용하면 됩니다. 해석상의 이견은 편견일 수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논리는 하나 뿐입니다.
⑤ ‘語類와 儀節’은 표기만 다를 뿐, 같은 말입니다.
중국의 주자와 구준이 先祖의 정의를 두고, 표현을 다르게 함으로써 논쟁의 빌미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글자만 다르지 같은 말입니다. 글을 쓸 때 다른 사람과 똑 같이 쓸 수는 없습니다. 선생들도 토론을 하면서 같은 내용의 표현이 모두 다르지 않았습니까? 아래는 주자와 구준의 기록입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말이 그 말입니다.
四代奉祭祀는 누구까지의 제사인가
李炳赫(釜山大 名譽敎授?文學博士)
이런 상식적인 문제를 제목으로 내세워 글을 쓰려니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요즘 와서 세상 사람들이 옛 예법에 대해 하루가 다르게 무식해 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상식적이었던 것도 지금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4대봉제사란 뜻이다. 4대봉제사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까지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조상에 대해 지내는 제사에 자신까지 여기에 포함시킬 수 없으니 당연히 4대봉제사가 된다. 전통 제례에서 고조할아버지까지는 매년 기제사(忌祭祀)를 지내지만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5대조가 되면 묘제(墓祭)를 지내는 것이 상례다.
여기서 고조할아버지를 왜 5대조라 하지 않고 4대조라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논리대로 하면 이는 계수(計數)의 원리에 합당하는 과학[數理]의 문제로 자신이 대수(代數)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고조할아버지까지의 제사는 4대봉제사가 아니라 5대봉제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자신을 조상의 대수에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참으로 해괴(駭怪)한 말이다.
옛 선현들은 수리에 무식해서 고조할아버지까지의 제사를 5대봉제사라 하지 않고 4대봉제사라 했단 말인가? 이런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수리를 따졌지만 사실은 수리도 모르고 국어의 논리도 모르는 것 같다.
나(0대)→아버지(1대조)→할아버지(2대조)→증조할아버지(3대조)→고조할아버지(4대조)
수리를 따지는 사람은 1(일)만 수리인 줄 알았지, 0(영)에서 수리가 시작되는 것은 모르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4대봉제사라고 할 때에는 나의 제사를 이 대수에 넣을 수 없으니 나를 0(영)대로 잡은 것이다. 예법(禮法)에서 논리성과 합리성을 따지는 문제는 선현들이 현대인보다 훨씬 더 현명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 세(世)와 대(代)에 대해서 묘제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확인해 보자. 묘제의 대상은 오대조(五代祖) 이상에서 시조까지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고조까지는 가정에서 기제사로 지내고 고조의 아버지, 즉 오대조부터는 묘제를 지내는데, 여기서 몇 대조, 몇 세손이라 하는 세(世)와 대(代)가 문제된다. 본래 세(世)와 대(代)는 같은 뜻으로 사용해 왔는데, 후에 당나라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자인 세(世)자를 당나라 사람들이 바로 읽을 수가 없다고 하여 세(世)자 대신에 대(代)자로 바꾸어 썼다.
세(世)와 대(代)의 쓰임을 정확히 알려면 이 말이 쓰이던 역사적인 배경부터 알아야 한다. 청(淸)나라 선종(宣宗)의 도광(道光) 26년(1846)에 편집하여 지경학재장판(知敬學齋藏板)에서 출판한 《피휘록(避諱錄)》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중국 역사상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나올 때 이것을 감히 바로 읽지 못하고 달리 읽는 것을 고증하여 보인 것이다. 이 책의 3권에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이름을 당시 사람들이 다른 글자로 고쳐서 읽는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당태종의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기 때문에 당나라 사람들은 이를 감히 그대로 읽을 수 없어 모든 글에서 세(世)자는 대(代)자로 바꾸어 읽었다. 이를 학술적인 용어로 피세작대(避世作代)라고 했다. 즉 세(世)자를 피해 대(代)자로 바꾸어 썼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잘 다스려진 세상을 본래 치세(治世)라고 했으나 이를 치대(治代)로 고쳤다. 또 세종(世宗)은 대종(代宗)이라 고쳤다. 이처럼 세(世)자만 바꾼 것이 아니라, 민(民)자도 바꾸어서 본래 민부(民部)라 쓰던 것을 호부(戶部)라고 했다. 이때부터 몇 세(世)라는 말도 몇 대(代)로 바꾸어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관례를 따라 세(世)와 대(代)는 아무런 혼란 없이 써왔다. 그런데 1960년대에 한갑수의 ≪바른말 고운말≫(1111~1112쪽. 책은 1968년 융문사에서 펴냈으나, 방송은 훨씬 그 이전에 있었음.)에서 잘못 방송되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世)는 위에서 내리칠 때 쓰이는 말이고, 대(代)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칠 때 쓰이는 말이란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아래에서 위로 올려칠 경우
고조의 아버지(五代祖) ← 고조(四代) ← 증조(三代) ← 조(二代) ← 부(一 代) ← 본인(대수에 넣지 않음)
② 위에서 아래로 내리칠 경우
고조의 아버지(一世) → 고조(二世) → 증조(三世) → 조(四世) → 부(五世) → 본인(六世)
와 같이 계산하여 몇 세손(世孫)이라고 할 때, 세(世)에는 자신까지 계산하고 몇 대조(代祖)할 때, 대(代)에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世)와 대(代)는 본래 같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한갑수의 말대로 하면 오대조(五代祖) 묘제(墓祭)에는 육세손(六世孫) ○○가 오대조(五代祖)에게 올리는 것으로 된다. 매스컴에 서 한번 잘못 보도된 이 주장은 오늘날까지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과거에도 조상을 중심으로 내리 계산할 때는 오세손(五世孫)처럼 세(世)자를 많이 쓰고 자신을 중심으로 위로 계산할 때는 오대조(五代祖)처럼 대(代)자를 쓰는 경향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世)와 대((代)는 본래 같다. 따라서 오세손의 기점이 되는 할아버지는 오대조가 된다. 오대조(五代祖)라 하면 조상의 대수(代數)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기준점이 되는 자신은 대수에 넣을 수가 없다. 자신을 이 대수에 넣으면 자신이 조상의 대수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세손(五世孫)이라 하면 자손의 세수(世數)를 헤아리는 것이므로 기준 점이 되는 그 조상은 이 세수에 넣을 수가 없다. 그 조상을 이 세수에 넣으면 조상 이 자손의 세수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몇 세손이라 하면 기준점이 되는 조상은 세수에서 계산하지 않고, 몇 대조라 하면 기준점이 되는 자신은 대 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祖)가 손(孫)의 세수(世數)에 계산 되 고, 손(孫)이 조(祖)의 대수(代數)에 계산되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오세손 하면 나를 손의 세수에 계산할 수 없고, 또 나의 오대조라 하면 나를 조의 대수에 계 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대불급신(代不及身)이라는 말도 대수를 계산할 때는 본 인을 대수에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世)와 대(代)는 본래부터 동일한 것이다. 다만 진시황이후 왕가(王家)에서는 세(世)를 쓰고, 사가(私家)에서 는 대(代)를 쓰는 경향은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같은 집에 살 때, 삼대(三代)가 한 집에 산다고 한다. 이때는 객관적인 사실을 말한 것이요, 기점이 되는 몇 대조나, 몇 세손의 조(祖) 와 손(孫)이 붙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보아도 타당하고 우 리 역사상 고문헌에 아무런 혼란 없이 써온 것으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묘제 축문에는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① 六世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② 五世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③ 五世孫○○ 敢昭告于 顯五世祖考...
④ 五代孫○○ 敢昭告于 顯五代祖考...
⑤ 後孫○○ 敢昭告于 顯先祖考...
위의 보기에서 ①은 한갑수식 발상으로 아예 말이 안 된다. ②, ③, ④는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다만 ②는 내리 계산할 때는 ○世孫, 위로 계산할 때는 ○代祖라는 관례를 살려서 사용한 것이다. ③은 모두 ○世孫, ○世祖를 사용한 것인데,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④는 내리 계산할 때도 ○代孫, 위로 계산할 때에도 ○代祖라 한 것인데 이것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⑤는 이런 번거로운 것을 다 버리고 오대조(五代祖) 이상은 모두 선조라 쓰고 그 후손은 모 두 후손이라고 쓰는 것이다. 이는 우암(尤菴) 후손들과 노론계열에서 쓰는 예이다. 즉 서인 계열에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②나 ④의 예문을 많이 사용하므로 대중을 따르는 것이 무난할 듯하다.
이처럼 논리적인 측면이나 역사적인 사실이 명확한데도 이를 믿으려 들지 않는다니 한심스럽다.
더 나아가 오히려 과거의 것이 수리상(數理上)으로 보아 잘못되었으니 지금이라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란다. 필자가 위에서 설명한 논리와 실례를 이해하면 이런 의문이 풀릴 것으로 믿는다. 이와 같이 논리가 정연하고 역사적으로 아무 혼란 없이 써 오던 것을 지금 와서 왈가왈부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금까지 4대봉제사라 하면 고조할아버지까지 제사를 이르는데, 나를 1대로 잡아야 한다는 사람의 주장을 따르면 고조까지의 제사를 5대봉제사라 해야 한다. 이 무슨 망발인가? <司直公派>
글/부산대학교 한문학과명예교수 李炳赫문학박사
울산 김영길씨의 글을 읽고
얼마전 카페 '한울타리'에서 김영길씨의 '의성김씨 구제공파의 족보를 찾아서'의 글을 읽고 몇가지 조언을 하려고 합니다.
나무란다 생각하지 말고 선배로서 바라는 참고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어 주기 바랍니다.
먼저 구제공의 '제'字가 아니고 '재'字로 써야 합니다. '제'字는 祭祀를 지낸다 할때 祭(제) 이고 齋(재) 字는 齋室(재실) 또는 神主(신주)를 묘시는 齋堂(재당)을 가르킬 때 쓰는 '재'字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착각하기 쉬운 글자이지요.
그다음 懼齋公(구재공)할아버지를 中始祖라 하였는데 중시조가 아닙니다. 의성김씨의 중시조는 의성오토산 첨사공 용비(龍庇)공을 중시조라고 많이 부릅니다.
始祖에는 都시조, 鼻祖, 始祖, 起世祖, 派祖, 入鄕祖 등 많이 있는데 우리 의성김씨에 해당되는 시조들을 들어 보기전에 먼저 종류별로 뜻을 알아보면 이렇습니다.
鼻祖와 都시조의 정확한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조는 흔히들 많이 쓰여져 잘 알고 있다시피 시조 이전의 先系조상중 가장 높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럼 都시조와 무엇이 다른가, 都시조란 系代의 맨 윗대 조상을 시조로 하였는데 시조위의 계대를 모르다가 나중에 문헌이나 자료가 발견되어 그 시조의 諱를 알게 되었을때 이를 都始祖 라 합니다. 비조와는 비슷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門中일을 보는 有司위에 都유사가 있듯이 말입니다.
起世祖도 이와 비슷하게 해석이 되며 中始祖와 같습니다. 中始祖 란 시조 이후에 쇠퇴하였던 가문을 중흥시킨 조상을 지칭하는데 중흥시조라고도 하지요. 起世祖란, 보통 족보등 계대를 보면 시조를 1世로 하는데 윗대 조상의 후계를 상고할 수 없어 세계가 불분명하여 나중에 世를 정함에 도시조나 시조를 계보에 1世로 할 수 없을때 宗中의 推尊(추존)을 받아 어느 훌륭한 조상을 1世로 하는 조상을 기세조라 보는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나 맨 윗대의 조상을 처음부터 시조로 호칭하였다면 구태어 도시조라고 할 필요는 없지요.
그렇다면 의성김씨의 시조는 당연히 신라 56대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4자 석(錫)공 이고 구태여 논하라면 도시조는 김알지공이지요. 파조는 의성김씨 종중에서는 성주 문절공 用超(용초)공이며 入鄕祖는 임계 希達(희달)공이 됩니다. 김영길씨가 중시조라한 구재공선조는 그냥 구재공 할아버지, 쉽게 '구재공'하면 됩니다. 임진왜란 원종 2등공신이지요. 꼭히 派로 말하라면 支派祖(지파조)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게 시조에도 단계가 있다는 원칙만을 알고 누구 혼자서는 못 정하고 宗中의 衆論(중론)으로 推尊(추존)되어야 합니다.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뜻이니 문중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영일정씨 문중에서는 연대가 오래고 계대를 상고할 수 없어 모든정씨의 조상인 지백호의 원손(遠孫)인 宗殷(종은)공을 도시조, 추밀원 지주사를 지낸 襲明(습명)공을 1世로 하는 동시 起世祖로 하고 있으며 光州盧氏(광주노씨와 교하노씨는 모두 노수(盧穗)를 도시조로 삼고 있지만, 시조는 盧穗(노수)의 아들인 노해(盧垓)와 노오(盧塢)입니다.
아렇게 문중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것은 종중에서 그렇게 推尊(추존)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宗派(종파)란 支派(지파)에 대한 宗家(종가)의 계통을 말하며 종파로 부터 갈리어 나온 계통을 派라고 하며 宗孫도 그 종가의 맏손자를 일컷는 말이며 長孫이란 종가가 아닌 次子계통의 맏손자를 말하고 大宗孫은 大宗家의 맏손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大宗孫 다음에는 宗孫, 종손 다음에는 胄孫(주손), 그다음은 長孫으로 내려 옵니니다. 의성김씨의 성주문절공파 胄孫은 金基大씨입니다. 김영길씨의 구재공파 맏이는 宗孫이 되는지, 胄孫이되는지, 長孫이 되는지 알아 맞춰보세요.
그리고 의성김씨의 宗家(종가)는 원칙적으로 첨사공 용비공의 맏아들 僕射公 諱 宜 (복야공휘의)선조의 아들이 넷이 있는데 맏이는 인지, 둘째는 서지, 셋째는 춘, 넷째는 기지입니다. 여기에 맏집, 즉 대종손은 인지의 맏집이 의성 문흥파들인데 워낙 활동이 빈약하고 더러는 絶孫(절손)이 되어 흔히들 안동 내앞(川前)靑溪公派(청계공파)를 말합니다만 그이론도 불확실합니다. 그이야기는 복잡하여 다 이야기를 못하고 후일을 기약합니다.
이상으로 대충 본인이 알고 있는 몇 가지를 예로 들어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라고는 보지말고 참고로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젊은 나인데도 조상에 대하여 연구를하고 족보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 같은데 요사히 흔치 않는 일이라 치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잔소리가 많아서 미안합니다만 더욱 더 족보상식에 대하여 관심과 연구를 하여 훌륭한 후손, 자랑스런 의성김씨의 왕족의 후손임을 萬方(만방)에 펼쳐주시고 가정에서도 훌륭한 家長이 되어 주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각박스럽고 매말라가는 씨족사회 문화에 김영길씨 같은 아름다운 후손이 더욱 더 많이나와 구재공선조의 명예를 빛내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義城金氏 석(錫)시조로 부터 32世(代), 시조의 31世孫(代孫), 竹軒 드림
시조는 나의 31대조(세조)이시고 문절공 용초공은 나의 19대조(세조)이십니다.
세=대, 세조=대조, 세손=대손 만고 불변의 법칙
圃隱家門 世와 代 해설 ◐○대손(代孫)과 ○세손(世孫)의 차이? 1. ○대(代)과 ○세(世)는 같은 의미이다. 시조, 중시조 또는 어느 기준인물로부터 세어서 몇 번째 인물인가 하는 순서의 의미를 갖는 말이다. 2. ○대손(代孫)과 ○세손(世孫)는 같은 의미이다. 시조, 중시조의 어느 기준인물 다음사람(아들)부터 세어서 몇 번째 자손인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예)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의 시조인 정습명(鄭襲明)을 기준으로 할 때
(예) 포은공파(圃隱公派)의 파조인 정몽주(鄭夢周)를 기준으로 할 때 (10을 빼고 계산한다)
3. ○대조(代祖)과 ○세조(世祖)는 같은 의미이다. 후손의 어느 기준인물 윗대(아버지)부터 세어서 몇 번째 조상인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예)鄭義○를 기준으로 조상을 나타낼 때
*참고사항* 중시조인 습(襲)자 명(明)자 할아버지로 부터 義자 항렬은 33세 32代孫이 되고 洙자항렬은 34世 33代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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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죽헌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