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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라는 진리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 온 만큼 오랜 세월을 존속하며 발전을 거듭해 온 음악이라는 현상의 역사는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거대한 진리다. 지금까지 출간된 많은 음악사 책들을 훑어보면, 이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역사를 꿰어 나가는 방식과 주제가 대부분 비슷하다. 각 시대의 음악 스타일과 특징을 기술하고, 중요한 작곡가들의 생애와 작품들에 초점을 맞추어 써 내려간다. 하지만 독일의 음악학자 발터 잘멘은 예전부터 다른 눈으로 음악사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 왔다. 가령 그는 춤, 음악회, 정원음악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놓고 그 역사를 더듬어 왔다.
사회사적으로 접근하기 잘멘은 음악사나 음악가의 역사를 그저 음악 작품의 역사로 폭을 좁혀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음악가의 탄생』에서 그는 사회사적으로 방향을 맞춘 연구를 펼쳐 보임으로써 독자들이 음악가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부유층의 사치나 호화로움에 큰 몫을 해 온 음악가에게만 집중되어, 보잘 것 없고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 음악가를 비켜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뮤즈, 무지카, 무지쿠스 음악가라는 명칭의 어원을 따져보면 예술의 수호자인 뮤즈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무지카(musica)를 거쳐 ‘음악에 경험이 풍부한 자’를 뜻하는 무지쿠스(musicus)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잘멘이 말하는 무지쿠스는 전문성을 지닌 딜레탕트뿐 아니라, 이론에 뛰어난 음악가 혹은 음악 활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전문 음악가까지 포함한다. 또한, 사회 체계에 헌신하며 타인의 욕구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피고용인 음악가와 자율적인 미의 세계에 틀어박혀 사는 예술가도 이 범주에 넣는다.
그림으로 본 사회사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제1부 ‘시대 변화에 따른 음악가의 모습’에서는 음악가의 역사적 개관을 시도하고 있다. 원시시대의 샤먼에서 근대의 개인 교사까지, 노예, 성직자, 관리 또는 예술가였던 음악가를 엄격한 체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방적으로, 모자이크식으로 배치하였다. 이를 통해 잘멘은 가능한 많은 음악가의 유형을 언급하고 이를 사회적 체계 속에서 해석해 내려고 했다. 제2부 ‘음악가와 그의 활동 영역’에서는 음악가를 궁정, 시나고그와 교회, 관청과 군대, 학교, 극장, 콘서트 홀, 길거리, 휴양지 등 그가 활동했던 영역별로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에 음악가의 모습이 담긴 다양한 도판을 보여줌으로써 원서의 부제와 같은 ‘그림으로 본 사회사’를 완성하고 있다.
음악가의 미래 - 경멸당하고 신격화되고 상품화될 것이다 잘멘은 책을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시대에 음악가는 어떤 조건과 기반 위에서 존재할 것인가 묻는다. “‘음악 애호가’와 ‘신과 같은 대가’와 ‘돈을 긁어모으는 마술가’의 구분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까?” “날카로운 전위 음악가와 대중의 욕구를 채워 주는 여흥 음악가의 구분은 계속 지켜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음악가가 전제적인 정체 체계나 상업 시스템 속에 갇혀 자유를 빼앗긴 채 미리 짜인 계획대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 벌어질까?” 여기에 잘멘은 각 나라의 사회적 현실이 제각각인 만큼 음악가의 지위나 조건 또한 상당히 다양한 양상을 띨 것이라고 답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음악가가 미래에도 여전히 “경멸당하고 신격화되고 상품화될 것이다”라는 추측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