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前生에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라고... 쉽게 말해 부모는 전생에 자식에게 빚을 진 사람이고 자식은 그 빚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이다.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자식은 받으면서도 당당하다. 밀린 빚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면 저렇게 당당할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문제가 좀 있어 인큐베이터로 직행해야 했다. 딸아이는 체중이 2.0kg을 넘지 않은 미숙아로 태어난 것에다 다른 문제까지 겹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냈고 다시 앰뷸런스에 실려 도착한 서울대병원에서 석 달 가량을 더 보내고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당시 병원비로 날린 돈만 이천만원이 넘었다. 집이 부산이고 애가 있는 곳이 서울이었기 때문에 길바닥에 뿌린 돈이 적지 않았었다.
언젠가 아내가 비탈길에 주차한 차를 빼주겠다고 친절을 베풀던 사람이 우리 차를 전봇대에 들이받은 적이 있었다. 주차된 장소가 비탈이라 아내가 차를 움직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자 길을 가던 신사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그 신사는 아내로부터 자동차키를 넘겨받았다. 그러나 그는 수동변속기를 작동해 본 적이 없어 당황해 하면서도 친절을 계속 고집하였던가 보다.
시동을 넣자마자 급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대었고 자동차는 튕겨나가 인근의 전봇대를 처박아 버렸다. 상황이 참으로 애매했다. 자동차값을 물어내라고 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다행히 정면충돌은 피해 운전석 문짝이 찌그려졌는데 견적이 백만 원 가량이 나왔었다. 내가 하지 않은 남이 저지른 일로 대가를 지불해야 했던 당시 그 백만 원이 눈물이 나도록 아까웠었다. 쓸데없이 끼어 들어 어중간한 기사도정신을 발휘했던 그 신사가 원망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 아이의 병원비로 쏟아 부은 돈은 백만 원이 아니라 그 스무 배가 넘는 돈이었다. 그것도 손에 쥔 병원비 영수증으로만 계산한 금액이 그러했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해결한 금액이지만 솔직히 아깝지가 않았다. 끝이 어떻게 결판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는 집 따까리 전체를 들어먹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식이 위태로운데 집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엇이 나에게 그토록 관대하게 만든 것인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정말 알 수가 없다.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자식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청구서를 들이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그 비용을 불평 하나 없이 감당해 낸 것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그와 같이 숙명적일 수밖에 없음을 우리 부부는 그때 뼈저리게 경험을 했었다. 전생에 빚쟁이가 맞았던 것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딸년은 평생 도둑이라는 소리가 있다. 장모는 사위가 오면 제 딸을 데리고 사는 것에 비위를 맞추기 위해 극진히 대하는데 그 딸년은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집어갈 것을 찾는 것이다. 곡식을 쌓아둔 광도 열어보고 장독대의 뚜껑도 일일이 열어본다. 심지어 안방의 장롱도 무시로 열어본다. 그리고 쓸만한 것이 보이면 챙기는 것이다.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냥 당연히 제 것으로 알고 가져간다.
우리 처가는 형제가 팔 남매이고 처남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처형, 처제들이다. 모두가 출가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명절이나 무슨 행사가 있어 처가에 왔다가 돌아갈 때면 처가마당은 마치 장날을 맞은 장터모양으로 어수선했다. 제각각 싸가는 곡식이며 말린 고추, 밭에서 뽑은 갖가지 채소를 차에 싣느라고 분주한 것이다. 집이 거덜날 상황인데도 장모님은 부족하다고 느끼시는지 광이며 뒤란을 바쁘게 쏘다니신다. 그러다 뭔가 눈에 띄는게 있으면 집어 들고 나오는 것이다. 장모님은 무엇이든 집어주고 딸들은 거절 없이 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는 전생에 진 빚이 많은가 보다.
저녁에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작은 딸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와 제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아내는 그 시간에 요가를 다니기 때문에 집에 없는 상태였다. 딸아이가 옷을 갈아입다 말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걸쳐놓은 제 엄마의 겉옷을 입어보았다. 오래 전에 산 옷이라 유행에 뒤쳐졌다며 며칠 동안 새롭게 개조를 하고 있는 옷이었다. 아내는 손재주가 있어 재봉틀도 돌리고 옷 수선도 제법이던 것이다. 딸아이는 많이 마른 편에 속했다. 그런데도 수선중인 제 엄마의 옷을 껴입고는 거울 앞에 섰다.
'아빠, 이 옷이 제한테 맞는 것 같아요.’
제 엄마의 옷을 탐을 내는 것 같았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좀 묘했다. 중학생이 입을 만한 옷은 분명히 아닌데도 딸아이는 엄마의 옷을 걸치고 이리 저리 품을 재보며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맞는지 가늠하는 것이다. 얼마 전 아들놈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휴일 날 목욕을 가면서 아들의 학원까지 동행하던 길이었다.
'아빠가 운동화를 사면 내 운동화가 하나 더 생기는 것 같아요.’
그 소리를 듣고 살펴보니 녀석이 새로 산 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발이 같아지자 아빠의 신발을 제 신발로 알고 신는 것이다. 한 번은 바지의 혁대도 마음대로 빼가는 바람에 아침에 출근길이 난처해진 적도 있었다. 제 것이 있어도 내 것이 마음에 들더라고 했다.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아들의 신발을 신고 아들놈이 벗어 던진 혁대를 찰 수는 없었다. 혁대를 잃었던 날 저녁 아들놈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주었다. 그러자 그 다음부터는 혁대를 빼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운동화는 여전히 사라지곤 하였다. 신장에 제 신발은 놓여있는데 내 신발이 없는 것이다. 녀석은 내 것을 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도 언제나 당당하다. 남의 것이 아니라 제 아빠의 것이기 때문이란다. 부모는 자식에게 전생에 빚을 진 게 맞는 것이다.
세면을 끝내고 나오는데 딸아이가 안방 장롱을 열어두고 제 엄마의 옷가지를 이것저것 끄집어 내고 있었다. 조금 전 거실에서 수선 중인 제 엄마의 옷을 걸쳐보자 자신이 생긴 것 같았다. 몸에 맞다고 생각되는 흰색 바바리코트를 걸치고는 '아빠 이 옷도 나에게 맞는 것 같아요’ 한다. 팔이 약간 길어 보인다. 그렇다고 애가 입을 만한 옷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딸아이는 제 엄마의 옷이 어느 정도 제 몸에 맞아 들어가자 스스로 만족스러운가 보았다.
조만간 아내도 딸아이에게 자신의 것을 하나 둘 빼앗길 모양인가 보다. 딸아이는 다른 옷도 입어보고는 거울 앞에 서서 이리저리 몸을 비춰본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고 한 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자식들이 커가면서 녀석들의 빚 독촉이 한층 가열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자식을 두지 않은 사람은 전생에 많은 덕을 쌓은 사람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