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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시민의 숲 걷기 및 승화회 오찬
2016.08.27(토) 승화등산회는 10:30 전철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에 집결하여
良才 市民의 숲을 돌아보고 양재역 부근 ‘갈비세상’에서 동기생들과 합류하여 飯酒와 午餐을
함께하며 歡談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연일 계속되던 찜통더위로 暴炎特報가 계속 발령되었으나 어제부터 조금 숨통이 트인 날씨에
등산회장의 코스 설명을 듣고 양재시민의숲역을 떠난 28명의 회원들은 유격백마부대충혼탑-
대한항공 피폭희생자 위령탑-삼풍참사 위령탑-매헌기념관을 거쳐 良才川 둑길을 거쳐
永東1橋에서 江南大路를 따라 양재역으로 가 동기생들과 합류하였다.
良才 시민의 숲
1980년대 開浦地區 土地區劃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1983년에 착공하여 1986년 11월에
완공하였으며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위하여 양재I/C 주변에 조성한 공원으로
多樣한 樹種의 숲이 우거져 있다.
면적 약 26만㎡로 그 중 녹지대가 20만여㎡이며 주요시설은 造景시설로 잔디광장과 그늘막 등이
있고 운동시설(배구장·배드민턴장·테니스장)과 주차장, 광장 등이 있다.
공원 안에는 梅軒記念館과 尹奉吉義士 像, 尹奉吉義士 崇慕碑가 있고, 遊擊白馬部隊 忠魂塔과
1987년 미얀마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大韓航空 858機의 犧牲者慰靈塔과
1995년 百貨店崩壞로 사망한 三豊事故 犧牲者慰靈塔이 있다.
梅軒 記念館
良才 시민의 숲 안에 있는 梅軒記念館은 梅軒 尹奉吉 義士의 遺物과 독립운동 관련자료를
전시해 놓은 박물관으로 梅軒 尹奉吉義士 記念事業會 主管으로 誠金을 모아 1988년 12월
竣工∙開館하였다.
3층 구조의 기념관 1층은 遺物展示室, 2층은 독립운동관련 寫眞展示室로 독립운동 관련사진
120여 점이 義兵戰爭, 3∙1운동, 임시정부 활동, 독립군 전쟁, 義烈鬪爭, 光復軍 활동 등의
主題別로 전시되어 있고, 3층은 講堂이며 屋外에는 尹奉吉 義士像과 崇慕碑가 있다.
尹奉吉(1908~1932)
본명 禹儀, 호는 梅軒, 本貫은 坡平이며 1908년 충남 禮山에서 태어나 1918년 德山普通學校에
입학,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日帝植民地敎育에 저항하며 自退하였다.
14세(1921년)에 마을 인근의 儒學者 梅谷 成周錄이 개설한 書堂 烏峙書塾에서 漢學과
四書三經 등 中國古典을 공부하고, 1926년 오치서숙을 마칠 때 스승 梅谷으로부터
<梅軒>이라는 雅號를 받았으며 1929년 농촌 발전을 위한 ‘復興院’과 농촌 自活을 위한
‘月進會’ 등을 조직하여 농촌계몽활동을 펼쳤다.
1930년 ‘丈夫出家生不還(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이라는
信念이 담긴 편지를 남기고 중국으로 亡命하여 1931년 8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가
白凡의 韓人愛國團에 가입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
1932년 4월 29일 日本이 上海 虹口公園에서 열린 上海占領과 天長節(日 天皇誕生日)
기념식에서 도시락 모형의 폭탄을 던져 일본군사령관 白川義則 大將과 居留民團長 河端貞次를
爆殺하고 제3함대사령관과 駐中公使 등 10여명에게 重傷을 입힌 ‘虹口公園 義擧’로 체포되어
11월 일본 大阪으로 護送∙收監되었다가 12월 19일 金澤에서 銃殺刑으로 殉國하였다.
屍身은 1946년 6월 韓國으로 奉還되어 서울 孝昌公園(사적 제330호)에 安葬되었으며,
충남 禮山郡 德山面에는 位牌를 모신 祠堂 [忠義祠(사적 제229호)]가 있으며 1962년
建國勳章 大韓民國章이 追敍되었다.
2016. 08. 28 孤 山 朴 春 慶
良才 시민의 숲 사진
(01) 전철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에 집결
(02) 승화등산회장의 코스 안내, 양재시민의숲역에서
등산회장은 항상 코스를 미리 답사하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03) 如意橋를 타고 如意川을 건너 良才 시민의 숲으로 들어간다.
(04) 如意橋에서 如意川을 따라 남쪽으로 보이는 淸溪山
*如意川은 淸溪山(해발 618m)에서 發源하여 新院洞을 지나 廉谷洞 부근에서
九龍山(306m)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류하여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과 양재시민의 숲을
거쳐 永東1橋 부근에서 良才川으로 흘러 들며 양재천은 漢江의 제1지류인 炭川으로
유입되어 한강으로 흘러 든다.
여의천의 옛 이름은 廉谷川이었으며, '안개가 자주 끼는 하천'이라 하여 煙內川이라고도
했다.
(05) 遊擊白馬部隊 忠魂塔
6.25전쟁 당시 非正規軍 전투부대로 유격백마부대를 구성, 자유쟁취를 위하여
북괴군과 전투를 벌여 군번이나 계급도 없이 겨레의 자유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犧牲된 이들의 고귀한 정신을 後代에 기리고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遊擊隊員 552位 英靈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忠節을 후세들이 본받게
하기 위하여 1992.07.15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건립위원회에서 건립하였다.
(06) 유격백마부대충혼탑
6.25전쟁 당시 평안북도 定州郡∙博川郡 일대의 治安隊員과 定州 五山學校 학생들이
정주군 葛山面에서 조직한 非正規軍 전투부대로 부대장 金應洙를 핵심으로
2,600여명의 유격백마부대를 구성하여 西海岸, 鴨綠江, 淸川江 입구 등에서
500여 회의 交戰으로 敵 射殺 3,000여명, 중공군 生捕 600여명, 反共愛國靑年과
민간인 1,500여명을 구출하고 철도, 터널, 교량 등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북위 40도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많은 戰果를 올려 UN군의 정규작전에 크게
寄與하였다.
(07) 유격백마부대 英靈들에게 默念
(08) 大韓 航空機 버마上空 被爆 犧牲者 慰靈塔 -높이 8.8m / 1990.11 건립-
북한은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를 시켜
1987.11.29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Boeing 707機)에 시한폭탄을
장치하여 미얀마의 안다만 海域上空에서 폭파시켜 한국인 113명, 외국인 2명 등
총 115명이 희생되었다.
*事故機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하여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寄着한 후, 다시
방콕에 기착하기 위하여 비행하던 중이었으며, 기내에는 中東에서 귀국하던 해외근로자가
대부분인 한국인승객 93명과 외국인승객 2명, 그리고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29일 오후 2시경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의 無線報告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으며 사건발생 15일 후인 12월 13일 미얀마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공기주입펌프 등이
파손된 KAL기 구명보트 등 浮遊物 7점이 발견되어 비행 중 폭발에 의하여 추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수사 결과 KAL기는 日本人으로 僞裝한 북한대남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金正日의
친필지령을 받고 機內에 두고 내린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폭발물(PLX)에 의하여
폭파되었음이 밝혀졌다.
(09) 대한 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에 대한 묵념
(10) 대한 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뒤쪽에서 본 모습
(11) 배롱나무(백일홍나무) 꽃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百日紅나무라고 하며,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즈름나무’ 또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약 5m로 나무껍질은 연한 붉은 갈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무늬가
생기며,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배롱나무라’고 하며, 中國 原産이며 觀賞用으로 재배한다.
(12) 三豊慘事 慰靈塔
1995년 삼풍백화점의 붕괴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502명의 영혼을 위로하고 슬픔에 젖어있는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고 3주기를 맞아 위령탑을 건립하였다.
*三豊百貨店 崩壞事故
1995.06.29 17:52경 서울 瑞草洞 삼풍백화점이 不實工事 등의 원인으로 갑자기 무너져
1천 여명 이상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대형 사고였다.
大團地 商街로 설계되었던 건물을 정밀한 構造診斷 없이 백화점으로 변경하여 1989년
완공된 후에도 무리한 확장공사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으며, 붕괴 조짐이 있었으나
백화점 측은 응급조치로 대응하였으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設計∙施工∙維持管理의
不實에 따른 예고된 慘事로 1년 전 聖水大橋 붕괴사건(1994.10.21/ 한강으로 추락하여
32명 사망)과 함께 ‘總體的인 不實’과 ‘安全不感症’의 標本이었다.
지상 5층, 지하 4층, 屋上의 附帶施設로 이루어진 삼풍백화점은 수개월 전부터 龜裂 등
붕괴 조짐이 있었으며, 1995년 6월 29일 오전 5층에서 심각한 붕괴의 조짐이 나타났으나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때 1천 여명 이상의 고객과
종업원들이 건물 내에 있었다. 당일 오후 6시 직전 5층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건물은
먼지 기둥을 일으키며 20여 秒 만에 완전히 붕괴되었다.
인명피해는 사망 502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으로 6∙25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로
재산 피해액은 2,700여 억으로 추정되었으며 이 사고로 三豊그룹 회장 이준 등
백화점 관계자와 공무원 등 25명이 기소되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건물에 대한 안전 평가가 실시되었고, 緊急救助救難體系의 문제점이
노출되어 119中央救助隊가 서울∙釜山∙光州에 설치되었다.
(13) 삼풍참사 희생자에 대한 묵념
(14) 梅軒紀念館
補修工事 中으로 내부를 관람할 수 없어 2012.09.02에 찍은 사진을 간추려 올린다.
(15) 梅軒 尹奉吉義士 胸像 -2012.09.02 사진-
(16) 梅軒 尹奉吉義士 立像 -2012.09.02 사진-
(17) 建國功勞勳章. 1962년 3월 1일 追敍. -2012.09.02 사진-
(18) 影幀 위에 行跡을 기록하였다. -2012.09.02 사진-
(19) <新公園을 踏靑하며>
尹義士가 4월 27일 虹口公園에 갔다가 짓밟힌 잔디를 보고 깊이 느낀 바가 있어 돌아와
그 感懷를 詩로 써서 人間과 自然의 삶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면서 擧事를 다짐하는 愛國의
焚火라고 한다. (*焚: 불사를 분)
(20) 梅軒이 季氏 南儀에게 보낸 書翰의 일절. - 一中 金忠顯 글씨-
-2012.09.02 사진-
*尹南儀(1916~2003): 尹義士의 영향을 받아 10대 때부터 고향에서 ‘角谷讀書會’,
‘月進會’등에 참여,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으며 梅軒이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월진회’를 이끌며 주민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1968년 ‘梅軒文化祭’ 창설을 주도했으며, 1992년에는 私財를 出捐하여 일본에
‘윤봉길의사 추모비’를 건립하기도 했다. 1996년 建國褒章 受賞.
(21) <丈夫出家 生不還>, 梅軒 尹奉吉義士 親筆 -2012.09.02 사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 라는 信念이
담긴 글로 1930년 3월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남긴 편지.
(22) 梅軒 尹奉吉義士의 <宣誓文> -2012.09.02 사진-
(23) 일본의 梅軒 尹奉吉義士 순국기념비 -2012.09.02 사진-
일본 가나자와(金澤)市에 있는 尹奉吉義士 殉國紀念碑이다.
(24) 중국 上海 虹口公園에 있는 義擧現場 紀念碑. -2012.09.02 사진-
아래는 <尹奉吉 義擧現場(1932.4.29)>
(25) <千秋義烈 尹奉吉 義士 崇慕碑>, 매헌기념관 남서쪽에 있다.
나라의 독립과 인류의 平和∙平等∙自由를 위하여 25세에 殉國한 梅軒 尹奉吉義士의
上海 義擧 61주년을 맞아 建立한 것으로 義士의 뜻을 널리 전하고 後孫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尹喆相 表誠으로 숭모비를 세우고 1996.04.08 除幕式을 거행하였다.
(26) 梅軒 尹奉吉 義士 銅像. -1992년 건립-
높이 9.2m, 彫刻 沈貞秀, 隸題[梅軒 尹奉吉 義士像] 金膺顯, 글씨 呂元九.
(27) 매헌 윤봉길 의사 동상
1992.04.29 尹奉吉 義士 上海 義擧 60주년을 맞이하여 義士의 銅像
건립으로 殺身成仁의 崇高한 愛國獨立精神을 後世에 전하고자
매헌 윤봉길의사 의거 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主管하여
양재 시민의 숲에 동상을 세웠다.
(28) 양재 시민의 숲을 걷다.
(29) 정열의 꽃, 칸나
(30) 그물봉지를 씌운 수수이삭
*새들이 쪼아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인 것 같다.
(31) 서울둘레길 표지
*서울 외곽을 한 바퀴 휘감는 총 연장 157km의 서울둘레길은 8개 코스로 서울의 歷史,
文化, 自然生態 등을 스토리로 엮어 국내외 探訪客들이 느끼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한 도보길로 서울의 外廓山, 하천, 마을길을 연결하여 2014. 11. 15에 개통되었다.
양재 시민의 숲길은 서울둘레길 8개 코스 중 제4코스 大母·牛眠山 코스(水西驛-牛眠山-
舍堂驛) 17.9㎞의 일부 구간이다.
(32) 어린이놀이터에서 한숨 돌린다.
(33) 작은 연못을 건넌다.
(34) 양재 시민의 숲에는 <바비큐場>도 있다.
(35) 양재천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良才川橋
(36) 양재천 둑길을 따라 동쪽으로 간다.
(37) 양재 시민의 숲
(38) 양재천 둑길에서 남쪽 양재 시민의 숲 쪽으로 보이는 테니스 코트.
(39) 양재천 수영장
(40) 如意川 교량을 건너기 전에….
(41) 여의천을 건넌다.
(42) 남쪽으로 如意川과 교량 너머 보이는 淸溪山
(43) 永東1橋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모습.
(44) 영동1교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冠岳山, 줌 렌즈를 조금 당겨 보았다.
(45) 푸른 하늘에 깔린 멋진 구름, 高積雲인가?
(46) 江南大路 길가의 白馬 한 쌍
(47) 午餐場所 <갈비세상>에 도착, 同期生들과 合流하였다.
(48) 즐거운 오찬
(49) 즐거운 오찬
(50) 오찬장에서 수고하는 同期會 總務
- 끝 -
첫댓글 어제는 모처럼 날씨가 시원해서 오랜만에 소생도 대공원에서 옥녀봉을거쳐 헬기징까지
오랜만에 염 쌀롱파도 헬기장까지 등정했는데 고산이 빠지니 앙꼬없는 찐빵처럼 허전합디다
어제는 하산후 고량주며 시바스까지 곁들여 마시면서 고산 생각이 많이 나단데... 덕분에 고산 몫까지 소생이 처분하느라 고생했다오 진단 잘 받으시고추석 지난 다음만납시다
소생은 9월5일 부터11일 까지 블라디보스톡을 경유 캄차카반도화산 트레킹을 떠납니다 러시아 항공기를 탄다니 북한근방 하늘 위을 날 것 같은데 우리생전 통일은 요원하니 하늘에서라도 북한 땅을 걷는 마음으로 가보려고.... 땅긑마을에서 온성까지고삼천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