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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 통곡하는 모르드개와 유다인
에스더 4장 1절 – 4절 2024년 1월 21일 주일 오전 말씀지
B.C 586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유다의 멸망 이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돌아오지 못하고 바사 나라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은 이제 교만하고 악한 하만으로 인하여 12월13일 한날 한시에 죽게 된 것입니다. 이제 유다인을 다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온 나라에 퍼지자 대성통곡하는 모르드개와 유다인을 나타내어 주시는데 이들의 믿음이 각기 다르기에 대성통곡의 내용도 역시 다릅니다. 모르드개는 더 열매맺을수 없는 유다 민족을 생각하며 우는 것이고 유다인은 각자 자기 육신의 목숨을 생각하며 우는 것입니다. 룻기서에도 두 며느리가 남편들도 다 죽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시모의 말을 듣고 소리를 높여 우는데 오르바는 이제 어찌 살꼬? 하며 자기 신세를 생각하며 울고 룻은 자기의 영적 생명이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통해서 살아났는데 어찌 가라 하시나요? 하며 울며 복음의 아비 나오미를 붙좇은 것입니다. (룻1:14) 또한 요한복음에 나사로가 병들어 죽음으로 온 유대인들이 울고 마리아도 우는데 유대인들은 나사로의 육신 죽음을 슬퍼하고 마리아는 오빠가 살아있을 때 더 열매맺지 못한 것을 슬퍼합니다. 요11:33-
우리도 환난의 날이 올 때에 내 주위의 형제 이웃이 환난의 날을 알지 못하며 살다가 그날에 배반하고 대 환난 고통 중에 빠지게 되는 것을 미리 보았다면 우리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택자로 이 땅에 보내시고 열매를 맺게 하셨는데 열매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볼때에 모르드개의 심정과 같이 슬퍼하며 기도하는 자가 복음의 아비요 그들을 들어서 한 생명이라도 살리게 하시고 영광 받는 자리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미리 복음의 아비 모르드개처럼 대성통곡하며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눅23:28)
사도 바울의 생명사역은 성도들을 대할 때에 늘 겸손한 자세로 양식을 나누며 자기가 떠난 후에 거짓된 자들이 이리처럼 들어와 성도들을 약탈할 것을 내다보고 눈물로 기도하였고 (행20:19) 많은 성도들이 거짓에 빠져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양식을 나누었습니다. 빌3:18-
강단에 선 자들은 성도들의 영적 상태를 보며 기도하고 양식을 나눠야 하는데 일만 스승들처럼 자기가 배운 것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 사람의 귀에 듣기 좋게 설교하려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가증한 자들로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여 자신도 영이 살지 못하여 영이 살아나지 못한 자와 살아났으나 자라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보이지 않고 그저 성경을 글자로 가르쳐 세상 복 육신 평안만 구하게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마24:15) 모르드개와 같이 앞으로 닥칠 첫삼년반 환난을 앞두고 영광의 복음의 양식인 꿀이요 기름을 채우고 대성통곡하게 되고 왕후가 된 에스더와 함께 기도하게 하시고 악한 자의 꾐에 빠진 왕에게 담대히 나아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달의 영광을 얻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자리에 있을 때에 남은 생애는 한 생명 (별의 영광) 이라도 더 살리게 하사 면류관이 더하게 하시고 나아가서는 민족을 살리는 일에 쓰셔서 해의 영광까지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1절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의로우신 재판장되시는 하나님이여’라는 뜻인데 벨드사살로 ‘바벨론의 신이요 그 생명을 지키소서’의 뜻으로 바꾸어 불렀고, 세친구 하나냐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라는 뜻인데 ‘달신의 명령’이라는 뜻인 사드락으로, 미사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 고’인데 ‘달신과 같은 자 누구뇨?’라는 뜻인 메삭으로, 아사랴는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라는 뜻인데 ‘느고의 종’이라는 뜻으로 아벳느고로 바꾸어 불렀던 것입니다. (단3:14,26) 비록 이름은 모르드개로 바벨론의 신의 아들이라는 이름이지만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영광 받을 아들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태어났지만 태초의 말씀으로 지음 받은 영광 받을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의 영으로 살고 있어야 합니다. 시82:6-
복음이 믿어지게 하사 그 영이 살리심 받은 것이요 이제 진리의 양식으로 그 영이 자라나야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신랑 예수를 믿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힘이 있는 자가 됩니다. 계14:12-
또한 모르드개 한 사람 때문에 왜? 유다인 전체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일이 닥친 것은? 1.우상만 섬기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포로로 잡혀와 악한 자 앞에 이미 무릎을 꿇은 유다인을 회개케 하시려는 역사요. 2.모르드개처럼 무릎을 꿇지 않는 자들은 순교케 되는 역사를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3.아브라함 때부터 한번 언약하신 그 별의 영광의 언약을 (창15:5)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시나?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지면 맨살인 몸이 다 드러납니다. 그 육신인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안에는 원죄가 가득하고 육신은 병에 약하고 사고나면 부숴지기 잘하며 피부도 연하여 다치기 잘합니다. 사도 바울도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매 그것을 본 자들이 신대접을 하려 할때 옷을 찢어 자신도 이방인들처럼 성정이 같아 원죄가 가득한 죄인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행14:14-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그 몸이 가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은 입고 있는 겉옷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데 그 옷은 그 사람의 직업이나 신분이 어떠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제 모르드개는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임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이 환난을 당한 욥처럼 겉옷을 찢는 것입니다. 욥1:20-
다윗도 압살롬의 악행에 왕복인 옷을 찢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삼하13:31-
굵은 베는 초상집에서 입는 옷이고 구약에 회개할 때에 입는 옷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에는 철저하게 자기를 다 내려놓고 해야 합니다. 환난을 통해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이 반드시 입어야 할 굵은 베옷입니다. 렘4:8-
그러나 잘못된 복음을 믿는 자들은 세상에서 잘될수록 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연락하는 부자처럼 세상에서 좋은 것만 가지고 사치하는 것입니다.
재를 무릅 쓰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이땅에서의 삶은 모두 허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재)같이 여기고 조카 롯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18:20-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왕후의 오빠로 화려한 궁중에서 대접받아도 모자라는데 옷을 찢고 초상집 의복으로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유다인들이 한날 한시에 다 죽게 되는 환난의 날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선지로는 3년 동안 벌거벗은 몸 벗은 발로 다니게 하사 사람들에게 앞으로 닥칠 포로 생활의 고통과 이방인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것인지를 알게 하셨고 사20:3-
에스겔로는 사람들 보는 앞에서 행구를 준비하여 이주하게 하셔서 앞으로 패역한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살게 될 것을 징조로 보이게 하셨습니다. 겔12:3-
이제 그 예표(豫表)대로 포로로 잡혀 왔고 여전히 이방인들처럼 살아가는 유다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만을 들어서 11개월 후 다 죽을 수밖에 없게 하시는 것이요 미리 그 역사를 보는 모르드개로 환난을 알리기 위해서 자신의 부끄러움까지 개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3년간의 사역 동안 세 번 우셨는데 1.먼저는 자기 열심을 강조하고 있는 마르다와 나사로를 살리러 오셨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살려 주시기를 애원하는 마리아를 보고 우셨고 요11:35-
2.두 번째는 암탉의 품을 떠나듯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 악해진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셨습니다. 눅19:41-
3.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을 하셨다고 나타내주셨습니다. 히5:7-
우리의 영광길은 육신 적으로는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살리심 받지 못한 영적 생명을 볼때에 안타까움이 있어야 하고 자라나지 못해 기름을 풍성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볼때에 안타까움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정신없이 자고 있는 새벽에 혹은 밤중에 엎드려 간절히 울며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2절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왕궁안에서 평안중에 있는 왕후 에스더는 대궐 밖에서 일어난 일을 모릅니다. 에스더에게도 이 환난이 오는 것을 알려야 유다인인 에스더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준비한 자들은 ‘죽으면 죽으리라’하며 담대히 나아가고 하나님께서는 제비를 뽑아 정해진 날을 오히려 역전시켜 부림절로 바꾸사 유다인들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유월절을 깊이 되새길 수 있게 하사 잔치하며 기뻐하는 날로 삼게 하신 것입니다. 에9:19-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날마다 세상 즐거움으로 잔치하는 왕궁인데 모르드개가 입은 옷차림이 초상집에 가는 자들이 입는 옷이니 격에 맞지 아니함으로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지금도 음녀 교회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로 많은 재정가지고 온갖 행사로 즐거움을 누리며 심령이 가난하고 검소하여 외적의 미보다 환난을 준비하는 내적인 미를 갖춘 복음의 사람들을 예루살렘 여자처럼 멸시하고 (아1:6) 감히 받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멸시하며 핍박하는 것입니다. 약2:9-
3절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드디어 환난의 날이 공포되고 각처에 흩어진 유다인들은 다 알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을 통하여 (단12:1) 예수님을 통하여 (마24:21) 사도바울을 통하여 (행14:22) 계시록을 통하여 (계13장) 첫삼년반 환난이 예언되었으니 우리의 할 일은 이제 만나게 하신 자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을 주신 목적입니다. 알리는 자들은 별의 영광을 얻는 자가 되게 하시고 나아가 때에 양식을 나누는 자로 세우사 제일 먼저 순교케 하사 달의 영광까지 얻는 복된 자가 되게 하십니다. 마24:45-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유다인과 모르드개는(1절) 신앙의 정도가 다릅니다. 유다인은 각자의 믿음대로 우는데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지 못한 자들은 포로로 잡혀와 이제 겨우 자리잡혀 살만한데 그 육신이 죽게 되었으니 우는 것이요 답답하니 이제야 금식하며 지난날 세상 위주로 육신대로 살아온 잘못된 생활을 다 끊는 것입니다. 욜1:13-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잘못 가면서 깨닫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애곡하는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잡혀갈 때에 세상의 소망이 끊어졌으니 독자를 잃음과 같은 큰 슬픔을 당했던 것입니다. 렘6:26-
그런데 이제는 죽을 일이 생겼으니 육신의 안일만을 생각하는 자들은‘이제 나는 죽었구나’하며 기가 막힌 것입니다. 아예 재에 누운 자는 낙심과 절망에 빠진 자들입니다.
4절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궁의 생활은 평안합니다. 수산궁은 어지러운데 궁안에는 아직도 큰 환난의 소식을 모르니 평안합니다. 시녀와 내시가 왜? 수산성이 어수선한지 알게 한 것입니다.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왕후 에스더는 그동안 궁안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면서 만나게 하신 자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성도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별의 영광은 얻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복음을 아구까지 채워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나의 누이 나의 신부감이 되지는 못합니다. (아4:10) 그동안 모르드개를 만나지 못함으로 양식을 받지 못했고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환난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늘 깨어 항상 준비치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되어지는 일들을 깨닫지 못하고 심히 근심하여 복음의 아비인 모르드개에게 합당한 화려한 의복을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매 제자들이 심히 근심한 것과 같습니다. 마26:22-
마가는 그냥 근심하였다고 (막14:19) 누가로는 서로 누구일까? 혹은 나는 아닐까? 하였고 (눅22:23) 요한으로는 서로 의심하였다고 하였는데 (요13:22) 베드로는 자기가 아닐까? 궁금하여 견딜수 없어 직접 묻지는 못하고 머릿짓하며 요한에게 물어봐라고 하였고 요한은 주님의 품안에 의지하여 누구오니이까? 하며 자기는 확실히 아니라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요13:25-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왕후가 보낸 좋은 옷이지만 받지 않는 모르드개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환난의 날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환난의 날이 오건만 좋은 옷을 입고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날마다 호화롭게 사치와 연락에 빠진 음녀같은 부자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계17:2) 복음의 아비 모르드개는 육신의 평안과 안일에 빠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 ‘때가 단축되었다’고 하신 것은 주님의 신부감들인 십사만 사천의 수와 순교자의 수가 채워지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수가 채워져 나감으로 때가 단축되었건만 여전히 세상에 기울어져 육신의 즐거움에 빠진 자들이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고전7:29-
구원의 복음 은혜의 복음 영광의 복음까지 받았으면서 환난의 날을 보고 있지 못하십니까? 이날은 이미 정하셨고 수만 차면 기어코 꼭 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육신의 안일과 즐거움 재물 쌓는 재미로 사십니까? 그들은 환난의 날에 주를 배반할 자들이요 대 환난에 떨어져 영원토록 후회할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