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묻은 오랜 유물을 씻는다 육신은 언제나 과거의 것 너무 오래 걸쳐 입어 낡은 생애를 씻어 널어 말린다 아직도 씻지 못한 시간들을 씻고 뼈와 살만 남을 때까지 나를 지운다 건기의 피부에 고인 상처를 덜어내어 깃털보다 가벼워질 때까지 내 안에 남은 계절을 달래어 한 잎씩 두 잎씩 조용히 돌려보낸다 다시는 오지 않을 어제를 내던지고 오늘을 날아오를 날개 하나 꺼낸다
57. 바스bath
‘바스’는 ‘Bath’ 글자 그대로 목욕하는 곳 잉글랜드 유일의 자연 온천수가 샘솟는 지역 잉글랜드의 서머싯 카운티Somerset county 에이븐 강 Avon River의 하류 지역에 있는 고대 로마인이 건설한 온천 도시 이 도시의 이름에서 ‘목욕’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bath’가 유래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하나 로마시대의 기념비적 유적들과 신고전주의 양식의 우아한 건축물들 로마시대의 온천마을이여 아름다워라 로마인에 의해 건설되고 앵글로색슨에 의해 우상숭배의 타락한 도시로 여겨져 로마시대의 원형은 파괴되고 잉글랜드에 의해 다시 복원의 길을 걸은 역설을 지닌 곡절 많은 도시 로마인은 처음으로 물에 눈뜬 민족 뛰어난 수질을 첫눈에 알아보고 목욕탕을 짓고 미네르바 여신을 위한 신전을 짓고 이승의 영광을 섬광처럼 쌓아올려 사바의 생을 불멸로 삼았었다 그러나 늙은 로마가 떠나고 나자 온천도 영광도 쇠미衰微의 길로 접어들었으나 로마의 빛이 다시 복원된 것은 18세기 중엽 온천수가 주는 치유의 마력과 걸출한 건축가 존 우드의 손으로 거듭난 신고전주의의 건물양식을 보러 영국의 상류층이 몰려들기 시작한 이후 복원의 시간은 길었으되 낙원의 시간은 더욱 길었다 초승달 모양의 거대 숲으로 둘러싸인 바스의 자연이여 숲은 아름답고 처소는 아늑하고 집들은 평화롭고 사람들은 아무도 바쁘지 않은 곳
밤중에는 몰래 하늘에서 별이 내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낮에는 꽃들이 빛을 뿌리고 저녁에는 보통 사람들이 창가에 온 새소리를 듣고 귀를 씻는 곳 숲 속에 숨은 도시는 너무 크지 않아 아담하고 너무 작지 않아 쓸쓸하지 않아라 도로가 협소한 것은 바쁘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까닭 풍요와 귀족과 사치의 도시 이것들을 소재로 삼아 5년간 바스에 살던 한 여성이 있어 소설을 썼으니 이른바 ‘오만과 편견’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은 이곳에 살았었다
제인 오스틴이 한때 집필하며 살았던 주택의 입구에서 고전적 차림새를 한 두 사람이 집을 찾는 관광객을 맞는 모습
이곳이 그녀의 고향 그녀가 살던 집은 조지아 양식의 집 입구 쪽에 제인 오스틴의 이름이 선명하다 나는 그녀가 살던 집 앞을 지나며 스냅사진을 찍었다 아파트의 입구에 서서 한 위대한 작가가 살았었음을 홍보하며 익살스런 복장을 하고 있던 두 남녀 버스가 잠시 멈춘 사이 나는 차창으로 손을 저었고 저들은 오래 준비된 손으로 응답했다
바스는 런던에서 반나절 거리 어디서나 매한가지일까 이곳 사람들에게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서워서 굴뚝의 수로 세금을 매기면 굴뚝 수를 줄이고 창문의 수로 세금을 매기면 창문의 수를 줄이고 커튼의 수로 세금을 매기면 커튼의 수를 줄이며 풍요의 한복판에서 불안 속에 살았으니 세금의 호랑이는 어디에나 사는 것 휴양도시에는 휴양만 사는 게 아니다 안식의 대처에는 안식만 깃드는 게 아니다 햄버거의 옆집에는 아직도 고전주의가 살고 있고 문명의 깃발 곁에는 중세의 그림자들 벌꿀색의 페인트를 칠한 집과 집들 온천으로 흥하고 온천으로 망한 제국 늙은 로마여 우리는 로마를 껴안고 잘 필요도 없고 중세의 꿈들을 섬길 것도 없지만 여러 시대의 여러 자취들과 함께 이승의 강을 건너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앉아서 함께 보는 이승과 깨어나서 같이 보는 오늘의 삶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작은 도시가 안고 있는 여러 신화들이여 우리는 신화 속에 또 하나의 신화를 보탤 일이 아니라도 서민의 물과 귀족의 물이 서로 어울려 하나의 바다로 가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대여 몸을 씻어라 육신은 언제나 과거의 것 너무 오래 되어 아주 낡은 유물을 씻어라 아직도 돌려보내지 못한 시간들을 씻어버리고 뼈와 살만 남을 때까지 그대를 버려라 두 손 들어 올려 그대를 지우고 건기의 피부에 고인 상처를 털어내어 깃털인 양 아주 가벼워져서 그대 안에 남은 찌꺼기 하나도 없을 때가지 더러움을 지워서 그대를 없애버려라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어제를 내던지고 오늘을 날아오르는 날개가 되라
첫댓글 물을 통과하고 나오면 세계는 바뀌어 지지요.온천을 나오면서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처럼, 여행길에 온천이라 낭만입니다.